(3) 헐의 10계
헐의 본명은 리처드 헨리 샘프슨(Richard Henry Sampson)인데 어머니의 성인 헐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큰어머니 살인사건>(The Murder of My Aunt,1935)으로 유명한 그는 1935년에 출간한 <캐슬 문학 백과사전>의 탐정 소설 항목에 다음과 같은 ‘추리 소설 10계’를 발표했다.

1. 추리 작가는 하나의 사실에 대해 모순되는 두 가지의 기술을 해서는 안 된다.
2. 단서 또는 증거가 될 만한 사실을 최후까지 감춰서는 안 된다.
3. 고의로 허위의 진술 또는 오해를 초래할 만한 진술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전문가가 보더라도 틀린 곳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단,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등장인물을 통해서 하는 말은 용납된다. 일부러 틀린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예외이다.
4. 의학 또는 법률에 관한 것이 스토리의 구성분이 되었을 때는 어떤 전문가가 보더라도 틀린 곳이 없어야 한다.
5. 독자에게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6. 틀린 실마리라도 최종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제시해 주어도 좋다. 그러나 산만한 결말은 맹렬한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7. 추리 소설 작가의 정신상태는 온전해야 하며, 그에 의한 인물 묘사도 확실해야 한다. 단, 범인의 인물 묘사에는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동정받을 만한 인물로 등장했다가 차츰 사악한 본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상대를 속이려면 반대쪽을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8. 좋은 문장과 어느 정도의 유머 감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애의 재미를 첨가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반드시 첨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9. 결말에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한다.
10.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최종적으로는 범인의 체포, 또는 자백으로 막을 내려야 한다.

이상 헐의 10계는 로널드 녹스나 탐정 클럽의 내용보다는 훨씬 구체적이다. 연애 사건은 필수적으로 권장하지는 않지만 있어도 무방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탐정이 범인을 교도소로 보내려는 것이지 결혼식장으로 보내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해왔다. 실제로 고전 중의 고전인 셜록 홈스에는 연애 사건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헐 이후 추리 소설에 섹스나 연애 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이고 그 자체를 주제로 삼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또한 결말은 탐정에 의한 범인의 자백이나 체포로 끝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추리 소설에서는 범인 체포 이후의 이야기, 즉 법정 추리 소설이 주류의 하나가 되어 있다.
어쨌든 헐의 10계는 사문화(死文化)된 계명이 아니라, 아직도 추리 소설 작가들에게는 굉장한 명심보감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4) 반다인의 20규칙
반다인이 1928년 <아메리칸 매거진>에 발표했다가 1939년의 <살인사건 옴니버스>에 재록한 ‘반다인의 20규칙’은 선풍을 일으킨 추리 소설의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추리 소설은 극명한 지적 게임이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1.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작중의 탐정과 독자가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모든 단서는 명확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2. 작중의 범인이 탐정에 대해서 적당히 행하는 속임수나 술책이 아닌, 독자를 속이는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3. 이야기 중에 로맨스적 흥미를 곁들여서는 안 된다. 요컨대, 탐정은 범인을 재판정에 보내려는 것이지 사랑에 고민하는 남녀를 예식장에 보내려는 것이 아니다.
4. 탐정 또는 수사 당국의 직원 중의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리로 만든 돈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 금화라고 속이는 것과 같다. 명백한 사기행위이다.
5. 범인은 이론적 추리를 통해서 판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연, 암호, 무동기의 자백 등에 의한 해결은 안 된다.
6. 반드시 탐정이 등장해야 한다.
7. 추리 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있어야 한다. 살인이 아닌 범죄를 다루는 것은 재미없다. 가벼운 범죄로 독자에게 수백 페이지를 읽게 할 수는 없다.
8.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격한 자연 법칙에 따라 풀어야 한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점을 친다든가, 심령술, 최면술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9. 탐정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10. 범인은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독자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이 갑자기 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11. 작가는 심부름이나 하는 하인을 범인으로 해서는 안 된다.
12. 범죄가 몇 번 있든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공범은 있어도 되나 주범은 있어야 한다.
13. 비밀결사, 카모라당(1820년 무렵,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생긴 정치적 범죄 비밀 결사-편집자주), 마피아 등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교묘한 사건의 배후가 조직이라면 재미가 줄어들 것이다.
14. 살인 방법과 수사 방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환상적인 세계에서의 살인은 용납되지 않는다.
15. 통찰력 있는 독자가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야 된다. 사건의 종결을 다 읽고 나서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모든 사실이 정확히 부합되어야 한다.
16. 정확한 서술적 묘사, 지엽적인 일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설명, 정교한 성격 분석을 해야 하며 분위기에 도취되어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된다.
17. 직업적 범죄자가 범인인 것은 좋지 않다. 근엄한 성직자라든가, 자선가로 소문난 귀부인의 범죄 같은 것이 훨씬 흥미롭다.

18. 사고 또는 자살이었다고 결말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독자를 놀리는 일이다.
19. 살인의 동기는 모두 개인적인 것이라야 한다.
20. 끝으로 나의 신조를 20항으로 끝내기 위하여 자존심이 없는 작가라면 써먹을지도 모르는 수법을 열거하려 한다. 이 수법을 쓰면 작가의 무식을 폭로하는 것이다.

최면술, 지문위조, 대용품 알리바이, 개가 안 짖었다고 지인이라는 것, 피하주사와 맹독, 최종적으로 탐정에 의해서만 해독되는 암호.

반다인의 20규칙은 추리 소설을 위한 상당히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추리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으로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비밀을 다 알려주는 것 같아 추리 작가이기도 한 필자로서는 쓴 웃음이 날 뿐이다. ㅋㅋㅋ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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