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란 특정의 책을 읽거나 팔지 못하게 하는 조치로 조선시대에는 통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책이나 민심을 선동하는 책의 유통과 읽기를 금지시켜, 지배체제를 다지는 수법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초기에는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체제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로 정했고 중기이후에는 유교적 이념과 통치체제에 반하는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후 혼돈한 세태탓에 많은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의 금서들 중 대표적인 책 5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1.도선비기

이성계와 그 일파는 조선을 건국시 고려말에 유행하던 비기 도참설을 이용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은바 있는데 이는 다시 조선에 위협이 되는 사상이었기에 1417년 태종은 비기금서령을 내렸습니다. 태종은 “도참 술수의 책은 혹세무민하는 가장 나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먼저 이것을 없애야 한다”고 표명했고 이들 서적을 보관한 백성은 관가에 바치게 하고 관가에서는 이를 모아 모조리 불태우게 했습니다. 또 이를 보관하고도 신고하지 아니한 자는 요서(妖書)의 규정에 따라 엄하게 처벌하고 자진해 바치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렸습니다.


2.정감록

정감록은  18세기 영조, 정조 무렵에 나왔다고 추측되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역사 기록들 중에서 정감록이 최초로 언급된 예는 조선 영조 15년(1739) 6월 9일자 승정원일기인데, 여기서 영조 임금은 "정감록은 도적들이 믿는 책이니 매우 교활하고 사악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감록은 정씨 성을 가진 구세주인 정도령이 조선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왕이 된다는 내용으로 이 내용은 선조시절 정여립의 역모사건에서 잘 알려졌지만 정조시절 홍복영의 모반사건시 정감록이 확실하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정감록의 내용들은 조선왕조 건국 직후 불안한 민심을 배경으로 이런 류의 내용들이 돌아다니다가 조선 후기에 작자미상으로 집필된것 같은데 사실 정감록은 정본은 없고 세월에 따라 많은 이본이 있다고 합니다.


3.설공찬전

조선 초기, 중종 때에 쓰여진 고전소설로 조선판 엑소시스트라 할  수 있는데 작가는 당대의 문신 채수로  당대에 지어진 소설들 중에서 흔치 않은 괴담형 소설입니다.

설공찬전은 20세에 결혼도 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은 설공찬이 한이 맺혀 사촌동생 설공침의 몸으로 들어가 저승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내용인데 문제는 설공찬의 저승에 관한 이야기중 "이승에서 어진 재상이면 죽어서도 재상으로 다니고, 이승에서는 비록 여편네 몸이었어도 약간이라도 글을 잘 하면 저승에서 아무 소임이나 맡으면 잘 지낸다. 이승에서 비록 비명에 죽었어도 임금께 충성하여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면 저승에 가서도 좋은 벼슬을 하고, 비록 여기에서 임금을 하였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란 글귀가 있었다는 것이죠.이는 당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을 빗댔기에 중종이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4.전습록

조선 중기에 들어 양명학이 유입되었는데 양명학은 “지식과 실천을 일치시키고(지행합일), 알기만 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고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특히 조선 후기에 통치철학으로 굳어진 관념론적 주자학에 반대되는 개념이었기에 왕안명의 ‘전습록’은 당시 통치세력이었던 노론의 정치관과 맞지않아 금서로 지정됩니다.


5.천주실의

천주교 교리를 해설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는 18세기 후반무렵 베이징을 통해 들어왔는데  윤지충이 신주를 불태운 진산사건이 일어난 뒤 천주교 관련 서적은 인륜을 저버린 무부무군의 사설이라 하여 금서로 지목되었고 천주실의는  ‘정감록’보다 훨씬 가혹한 금서 대상어서.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의 집을 수색하여 십자가나 마리아의 초상과 함께 이들 서적을 찾아내면 어김없이 불태우게 하고 역적의 율로 다스렸다고 합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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