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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ㅣ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하엘 엔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비교적 늦게(?) '모모'라는 책을 접한 건 이 나이에 무슨 동화야 라는 알량한 허위의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아뭏든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많이 알려져 있음에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해 생일에 교회의 동급생 친구가 불현듯 그 책을 선물로 건네주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이에 맞지 않는 친구의 조숙함과 진중함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책이란 모름지기 자기가 읽어보고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게 주기 전 그 책을 자기가 먼저 보았다며 괜챦은 책이라 말하던 그 친구의 성의에 감동하여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모모'라는 책이 그저 그런 동화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가슴이 벅찼었다. 덕분에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는 다른 작가와는 조금 틀린 이미지로 내 머릿 속에 자리잡히게 된 듯 하다.
이 책이 나왔을 때 한번 더 망설였다. 혹시 그 '모모'라는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 다는 아닐까 환타지 동화라는 쟝르가 과연 더 이상의 인생에 대한 얘기를 담보할 수 있을까 라는 잡다한 걱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신뢰를 담아 이 책을 골랐고 지금 다 읽고 나니 예전 그 당시의 가슴 벅참이 다시 밀려오는 듯 하다.
역자 후기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거창한 말로 문명을 비판하지 않아도, 난해한 용어로 철학적 사항을 설파하지 않아도 그 이상의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얻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엔데의 작품들이 지닌 힘이다." 이 문장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정말 잘 정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상력을 너무나 뛰어넘는 작가의 환타지에 약간의 기괴함까지도 느껴지지만 그 상상력의 저변에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철학,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문명에 대한 냉소섞인 서늘한 분석 등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구술하지 않아도 내 정신에 이미지로 각인되게 하는 힘이, 그의 소설에는 있다.
이 책은 표제인 '자유의 감옥' 이외에도 7가지의 중단편을 담고 있다. '긴 여행의 목표', '보르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챦아', '미스라임의 동굴',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길잡이의 전설' 이라는 제목을 가진 각각의 글들은 일면 말도 안되는 얘기들의 나열로 보일 수 있지만 기실은 지금의 나, 혹은 그 언젠가의 나와 세상에 단단히 발을 붙인 채 서술되어지고 있다. 작가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독창적으로 풀어가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 속의 자신과 그 너머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혹은, 문명 세계라는 정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생각도 이끌어내며 사람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아주 강력하게.
'내 앞엔 나의 길이 놓여 있다. 나, 막스 무토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막스 무토의 비망록 中).' 수많은 상념들이 교차되며 때아닌 철학적 화두에 복잡한 심경이 되었을 지라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나였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미하엘 엔데가 말하고자 했던 꿈(이걸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면 말이다)이 나의 혹은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하나의 빛으로 늘 존재할 것임도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람의 본질 속에서 꿈틀거리는 가치의 문제들을 쉼없이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