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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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잘 안 납니다. 예전엔 이런 소설을 굉장히 재미있어 했었던 것 같긴 한데, 굉장히 재미있어 했었던 게 이런 소설이 맞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이런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를 먼저 말해야겠죠.


일단은 굉장히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너무 매력적이다보니 비현실적입니다. 미스터리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나요? 암튼, 그런데 그 주변 인물들도 다 그렇습니다. 너무 완벽하고 모든 걸 알고 있고 늘 한 발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좀 재미가 없습니다. 너무 완벽한 인물들만 등장하면 오히려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뻔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달까요. 솔직히 말하면 모든 걸 작가가 쓴대로 예측하고 그러지는 못하지만 막상 흘러간 이야기를 돌아보면 뻔하게 느껴진달까요.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왕국]은 전형적인 일본의 장르물의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완벽하고 매력적인 주인공들 역시 일본 장르소설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이나 묘사 방식 역시 그렇습니다.

뜻하지 않은 이유로 어둠의 세계에 들어선 유리카와 그녀를 조종하는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야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기자키와 갑자기 나타난 것 치고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너무 깊이 유리카의 인생에 관여하고 있고 또 야다와도 여러가지로 얽힌 관계는 미스터리를 구성하기 위한 가장 전통적인 요소입니다. 거기다 갑자기 나타나 기자키의 존재에 대해서 경고를 던지는 남자의 등장은 작품에 서스펜스를 더하고, 유리카가 거의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지만 죽고 마는 쇼타의 존재는 드라마를 강화하지만 역시 너무 전통적인 방식이라 통속적입니다.

[왕국]과 짝꿍이라는 [쓰리]를 읽어보지 못한 영향일까요. 물론 작가는 [왕국]과 [쓰리]는 짝꿍이지만 둘 중 무엇을 먼저 읽어도 되고, 다만 하나를 읽고 나머지 하나를 읽으면 더 재미가 있게끔 썼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를 읽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하나의 재미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 듯 싶습니다. 

분명히 이런 전형적인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을 겁니다. 실제로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유수의 상을 받았고 다양한 언론으로부터 찬사도 받았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랐고 많이 읽히고 있는 작가니까요. 다만 저는 너무 완벽하기만한 주인공보다는 어딘가 모자라는 것이 있어 인간적인 주인공에게 끌리고, 계속해서 허를 찌르는 데에만 집중하는 이야기보다는 반전의 묘미는 좀 떨어져도 인생의 묘미가 엿보이는 이야기가 좋을 뿐입니다.

이 서평의 도입부에서 이 책이 마치 별로 재미 없었다는 듯 시작한 것 같기도 한데 사실은 단숨에 읽었습니다. 재미는 분명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계속해서 주인공은 궁지에 몰리기 때문에 과연 상황은 어떻게 흘러갈지, 무슨 일이 생기고 우리의 주인공은 그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부라는 점에 기인해서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유리카는 매춘부가 아닙니다.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충분히 이용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매춘의 단계까지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공감이 덜 갑니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제 아무리 악한이라도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데, 유리카나 야다나 기자키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쓰고 보니 계속해서 반복이네요.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이 작품은 유리카의 성적 매력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과 성에 대한 묘사가 적지 않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도 남자작가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주의해서 읽으면 또다른 읽는 재미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여자작가라면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을 것 같은 남성중심의 묘사가 많고 강합니다. 그런 특징에 대해 남성중심적 시각이네 어쩌네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다만 그런 점을 인지하고 읽어보면 분명한 차이가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읽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라고 생각해준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작년에 읽은 오기 오가스와 사이 가담의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라는 책을 읽은 후에야 이러한 차이를 비로소 인지할 수 있게 됐거든요. 

[왕국]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 굉장히 허망한 곳입니다. 그 왕국의 주인이고 지배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조차 사실은 그 왕국에 제대로 속해있지 못하고 전혀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달성했다고 해도 당신은 허망함을 느낄 뿐이야."
"넌 아무것도 모르는군."
기자키가 돌연 웃는다. 
"그때는 허망함을 즐기면 되잖아.......그것이 이 세계의 대답이야."

말로는 허망함을 즐긴다고 하지만, 그래서 굉장히 쿨하고 시크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허망함을 즐기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것을 즐기거나 행복한 것을 즐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현대의 유행어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피할 수 없으니까 즐기(려고 노력해보)는 거지, 어쩔 수 없으니까 즐기(려고 애써보)는 거지, 그게 정말 즐거워서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허망함은 처음부터 추구하거나 이루고자 했던 목표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그저 어떤 것을 이뤘는데 뒤따라오는 것이 허망함이라면 그것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좋게 봐준 겁니다.

실제로 인생은 허망합니다. 허망할 때가 있습니다. 허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소설 속의 삶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또 달라서, 우리는 전혀 완벽하지 않고 한 치 앞도 모르고 유리카처럼 모든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도 못해서, 그러니까 앞서 제가 단점으로 언급했던 이 소설의 비현실성 덕분에, 그래도 오히려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다 쓰고 보니 그렇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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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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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착하다거나, 똑똑하다거나, 예쁘다거나, 부자라거나, 늘씬하다거나, 하는 명확한 특성을 가졌다기보다는 그저 묘해서 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딱히 어떻다고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왠지 기억에 남고 눈길이 갑니다.


요 몇 년 새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있지만, 배수아라는 작가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이번에 읽은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처음으로 읽은 배수아 작가의 책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게 받은 첫인상은 묘하다는 겁니다. 특유의 분위기도 있습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왠지 책을 덮은 후에도 그녀가 내뿜은 어떤 기운이 여전히 느껴집니다.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잔향과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푹푹 찌는 여름입니다. 등장인물은 오디오극장에서 근무했던 김아야미와 극장장과 제약회사 영업사원 부하킴과 여니와 볼피입니다. 또 김철썩이라는 시인과 눈 먼 소녀와 고등학생들도 있습니다.


여름은 작년의 여름이 그랬고, 재작년의 여름도 그랬었고, 또 내년의 여름도 그럴 것처럼 푹푹 찝니다. 반복입니다. 그런 여름을 서로 다른 이들이 느끼고 묘사하지만 언어로 발화되는 문장은 같습니다. 이렇게 늘 비슷하게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똑같은 여름 속에서 인물과 문장들도 반복됩니다. 묘사되는 여자들은 서로 다르지만 그녀들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같습니다.


김아야미는 누군가에게는 시인 여자이고 누군가에게는 김아야미이며, 때로는 눈 먼 소녀이고 또 어떨 때는 스스로 여니가 되기도 합니다. 여니는 극장장이 소개해준 독일어 선생이고 오디오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성우이며 제약회사 직원이 늘 약을 배달하는 고객이기도 하고 운전하며 오디오극장을 지나는 중년 여자이기도 합니다.


김아야미가 본 것은 다른 때 부하킴이 본 것이기도 하고 김아야미가 땀에 젖은 유일한 옷 대신 입은 옷은 눈 먼 소녀의 옷이기도 합니다. 누가 언제, 혹은 먼저 그것을 보았는지 그것을 겪었는지 그것을 느꼈는지 그것을 말했는지, 독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늘 극장장이 맞이하고 배웅하는 음향기사의 버스도 흰 버스이고, 어느 날 사고가 나는 것도 흰 버스이고, 그 사고나는 흰 버스의 사진을 김철썩이라는 이름의 시인이 찍습니다. 그 흰 버스는 같은 흰 버스인 것같이 보이긴 하지만 누구도 명확히 그것은 모두 같은 버스라고 감히 말하지 못할 겁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분명 이것과 저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은 서로 같지만, 연결되어 있는 이것과 저것 중 무엇이 먼저이고, 서로 같게 보이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은 정말 같은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모든 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설 속에는 이처럼 무수한 반복이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읽어 낯익은 그 문장은 때로는 누구의 것이었는지 기억 나기도 하고 때로는 기억이 안 나기도 합니다. 친절하게도 이 작품의 해설을 붙인 소설가 김사과가 중요한 문장들은 이 책 속에서 총 몇 번 나왔는지 세어놓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에 붙은 해설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이 믿음직한 김사과 나름의 풀이를 보면서도, 과연 김사과가 문장이 등장한 횟수를 제대로 세었는가, 실수는 없었을까 의심이 드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특정 문장이 총 4번 나왔다고 했지만 왠지 그것보다 더 많이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꿈에 빗댑니다. 입구도 출구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고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고 가능한 것도 불가능한 것도 없는 꿈 같이 그렇습니다.


저는 특정 꿈을 반복해서 꿀 때가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꿈에서 깨고 나면, 이 꿈을 꾼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만 말할 수 있을 뿐 어떤 꿈이었는지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희미하게 느낌이나 인상만 남아 있어서 도무지 설명할 수 없지만, 다시 꾸게 되면 그 꿈이 전에 꾸었던 그 꿈이라는 건 알 수 있는 그런 타입의 꿈입니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이 소설은 마법 같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문장들은 배수아가 거는 주문 같습니다. 아야미는 시각장애인 소녀가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아야미는 부하킴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저는 배수아의 주문 같은 문장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대하고 있다는 생각'이라는 이 문장 자체는 하나도 독특할 것이 없지만 이 말조차 반복해서 읽거나 말해보면 알게 됩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저도 기꺼이 초대에 응하고 싶어졌습니다. 과거의 받지 못한 초대장까지 찾아 모조리 응해볼 작정입니다. 거기가 식당이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식당일 것이고, 거기가 극장이라면 화면 없이 소리만 나오는 오디오 극장일 것이고, 거기가 여니의 동네라면 이상하게 인적도 없고 불빛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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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 1 밤과 낮 사이 1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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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는 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선택한 단편 모음집입니다. 2권까지 있습니다. 1권에는 영화화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등으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를 비롯한 16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장르소설 콜렉션인 만큼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CSI와 같은 범죄미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줍니다. 전형적이 범죄소설이나 미스터리의 문법을 따른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대단한 반전이나 명확한 하나의 범죄사건이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도 있습니다.

 

반전의 매력으로 말하자면 첫 작품으로 실려 있는 패트리샤 애보트의 <그들 욕망의 도구>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진실에 대한 질문을 오빠에게 던질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상처를 품고 있었던 여동생의 오해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반전의 매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편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문학적인 측면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안겨줍니다.

 

또 다른 반전 작품들로는 마틴 에드워즈의 <책 제본가의 도제>, 피터 로빈슨의 <개 산책시키기>, 게리 필립스의 <킴 노박 효과> 등이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특성상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작품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소개하기는 그렇습니다. 다만 <책 제본가의 도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측면이 있습니다. <개 산책시키기>는 전형적인 범죄소설의 면모를 갖고 있고, <킴 노박 효과>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을 떠올리게합니다.

 

톰 피치릴리의 <밤과 낮 사이>나 낸시 피커드의 <심술생크스 여사 유감>, 조이스 캐롤 오츠의 <첫 남편>, 숀 셰코버의 <죽음과도 같은 잠>은 모두 어쩌다보니 마지막에는 누군가 죽게 되거나 죽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발적인 살인도 있고, 자기를 지키기 위한 살인도 있고, 보복성 살인도 있습니다. 쓰고 보니 이러한 3가지 형태의 살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인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아버지날>과 제레미아 힐리의 <모자 족인>은 수사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사건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면, 이 두 작품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가 등장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CSI와 같은 수사미드의 특징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익숙하게 범인을 쫓고, 그들의 증언에서 거짓말과 진실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묶어서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T.제퍼슨 파커의 <스킨헤드 센트럴>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범죄의 정도가 가볍고(?), 그 범죄의 위협을 받는 자들의 대처방법 역시 유합니다. 장르소설이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달까요.

 

또 샬레인 해리스의 <운이 좋아>는 유일하게 판타지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마법을 쓰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마법을 쓰긴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과 그 실적(?)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단편 안에 이런 소재의 작품을 밀도 있고 완성도 있게 풀어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소 유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교훈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있기도 하고요.

 

스콧 필립스의 <뱁스>는 큰 이야기의 중간의 있는 에피소드 같았습니다. 성장소설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듯 합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고 다 자라지 않은 주인공이 나오는 장편 소설 가운데, 뱁스라는 한 멋진 여성을 만나 겪은 짧은 사건에 대한 한 챕터 같은 작품입니다.

 

메건 애보트의 <즐거운 응원단>은 이 책의 16편의 작품 중 살인이나 강력범죄가 등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물론, 마약과 등등의 장르 소설로의 기본 요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어쨌든 직접적으로 살인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섬뜩한 작품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기를 쓰지 않고 죽이지 않고도 여자의 복수는 이렇게 살벌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빌 크라이더의 <교차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장르 소설이라 그런지, 실제로 많은 작품들이 특정 영화나 특정 장르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와 결국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결말까지, 특정 사건의 강렬함보다는 캐릭터와 분위기가 작품을 이끌어갑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 중 하나는 마지막으로 언급할 스티브 호큰스미스의 <악마의 땅>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르소설의 특성상 '이야기' 자체가 중심이어서 문장이 특별히 좋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는 작품들이 별로 없었습니다(다만, 번역에서 영어가 매끄럽게 우리말로 옮겨지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들이 꽤 있었고, 거기에서 오는 개성(?), 어색함(?)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화자의 캐릭터와 거기서 나오는 말투와 문체가 재미있었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영화가 조금씩은 유머를 갖고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제가, 결국은 또 여러 장르소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머러스한 문체의 이 작품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나봅니다. 재미는 웃김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던 점은, 앞서 잠깐 언급한 번역의 문제, 그리고 편집자님께서 작품들을 빨리 소개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셨나봅니다. 후반 작품들 중에는 마친 문장에 미처 마침표도 찍지 않고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채 다음 문장을 시작한 곳도 두어군데 있었습니다말하자면 이런 식이었죠. 또 작가소개 부분도 받은 상을 열거하는 것보다는 대표작품 위주로 소개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대표작품들 소개도 있었지만, 상받은 게 더 부각돼서 소개된 것 같은 인상이었거든요. 그리고 영문 제목에 'Beetween the Dark and the Daylight'라고 돼 있는데, 이건 정녕 의도된 바이기를 빌었습니다. 벌써 1, 2권이 하나의 콜렉션으로 많이 찍혀서 시중에 나왔을텐데 다른 데도 아니고 표지의 이런 오타는 좀 안타깝습니다. 1, 2권을 나란히 놓으면 1권에는 'Beetween the Dark'가 2권에는 'and the Daylight'가 써 있어서 비로소 전체 영문제목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이 16편의 작품들이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순서로 실리게 됐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각각의 색깔이 다양해서 사실 저에게 '그럼 너라면 어떤 순서로 실었을 것 같니?'라고 물어본다면 저도 입을 다물 것 같긴 합니다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된 일부 작가들은 한국에 작품이 번역되지 않은 경우도 꽤 많을 듯 합니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또 장르문학으로 각각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작가들의 대표 단편들이고요. 그래서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이렇게 단편적으로라도(? 단편소설이니까 :) 만나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이어서 읽게 될 2권에서는 또 어떤 작품들을 보게 될 지 기대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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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돌콩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0
홍종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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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만 써오던 작가가 청소년소설을 써보자고 마음 먹고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동화라고 아이들만 읽으라는 법 없고, 청소년소설이라고 청소년만 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런 이름이 붙여진 소설들은 확실히 분량도 적고 술술 잘 읽히는 편입니다.

 

[달려라, 돌콩]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고, 가계도도 꽤나 복잡한 키작은 소년, 오공일의 이야기입니다. 돌콩은 고아영이라는 오공일의 친구가 지어준 별명입니다. 작지만 단단하고 여문 식물의 이름이고, 알고 보면 고아영이 고향 제주에 두고 온 그리운 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에 고민 끝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오공일은 우공일이라는 이름의 소와 금주라는 듬직한 친구와 우정을 쌓아가던 중에 우연하게 말을 타는 기수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작은 것에 대한 제한을 두지만 기수는 거꾸로 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공일은 마침 키나 몸무게 등이 체구가 작아 말을 타기 좋은 기수의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수가 되기 위해 기수교육원에서 말 타는 법을 배우며 고아영과 만들어가는 우정, 서먹하고 어색했던 가족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그려진 책입니다. 이 책의 추천글에도 나오지만 이 책은 세상의 작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작은 것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책이랄까요. 마냥 행복한 일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따뜻합니다.

 

단지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문장에 군더더기가 좀 많게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청소년소설이라서 더 친절하게 배려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덧붙이거나, 같은 말을 의미 없이 반복한다는 느낌을 주는 문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오공일과 고아영이 어색해지는 과정은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들이 문학적인 완성도를 좀 떨어뜨리는 것 같았달까요.

 

편한 마음으로 쉽게 읽히는 따뜻한 이야기가 읽고 싶은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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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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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소설가 이상권의 소설집입니다. 소설집에는 모두 6편의 동물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집에서 동물을 키우지 않거나 키워본 경험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사실 동물들에 대해 잘 모릅니다. 집오리라는 말도 들으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라는 소설 원작의 영화가 떠오르지 집오리의 이미지가 딱하고 떠오르지 않습니다. 집오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라는 글자를 읽고 '집오리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라야 하지만 저는 그저 그 아홉글자를 읽었을 뿐입니다.

집오리는 원래 야생에 익숙하지 않아 날 수 없는 걸 몰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날지 못하는 집오리가 각종 야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청둥오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새끼를 낳지만 결국 아빠 청둥오리도 가족을 지키다 안타깝게 죽고 맙니다. 살아남은 집오리는 그 새끼오리들이 날지 못하는 집오리로보다는 날 수 있는 청둥오리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무서운 야생동물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국 새끼오리들은 하늘을 날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

몇 십 년 전만 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수달이 강가에 나타나기 시작한 후 물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돕니다. 물살이 센 나산강에서 무리하게 수영을 하거나, 늦은 밤에 물 한가운데로 들어가거나, 술을 마신 후 위험한 수영을 하다가 죽는 사람이 생깁니다. 나산강에 재빨리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물귀신이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잡아간다는 소문도 빠르게 퍼집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물귀신이라 알려진 이 동물은 바로 수달이었습니다. 

수달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몰랐던 사람들은 수달이 쉽게 만날 수 없는 희귀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수달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과 수달을 활용해 자신의 안위를 명예를 드높이고 싶은 사람들의 싸움으로 결국 나산강은 수달을 멀리 떠나보내고 맙니다. 안타깝습니다.


두 발로 걷는 족제비

족제비 잡기 선수인 동네 형과 두 발로 걷는 똑똑한 족제비와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간혹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무서워하는데, 생각해보면 동물을 무서워하게 된 건 결국 사람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래 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른 동물들을 해치지 않고, 야생동물들은 산에 먹이가 모자라지 않으면 사람의 재산을 탐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풍년이냐 흉년이냐에 따라서 동물들은 먹이 구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풍족하기도 한데, 요즘은 바로 이러한 환경에 가장 인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족제비를 잡아서 가죽을 예쁘게(?) 벗기는 데 선수인 문태 형은 두 발로 걷는 족제비를 보고 신기해서 꼭 잡고 싶어 하지만 두 발로 걷는 족제비는 쉽게 문태 형에게 잡히지 않습니다. 오기가 발동한 문태 형은 더욱 악독하게 덫을 놓아 족제비를 잡고 잡은 후에도 다른 족제비를 잡았을 때처럼 가죽을 벗겨서 팔지 않고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괴롭힙니다.

결국 문태 형에게서 도망친 똑똑한 족제비는 문태 형에게 보복을 해오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문태 형은 결국 자연의 섭리를 무리하게 거스르고 지나친 승부욕으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온 것을 반성하지만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밤의 사냥꾼 살쾡이

살쾡이는 지금도 이름만으로도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도 자꾸 가축들을 물어갑니다. 원래 살쾡이 역시 산에 먹을 것이 풍부하면 사람이 키우는 가축까지 잡아먹지는 않지만 사냥꾼들의 무리한 사냥으로 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사람의 가축을 잡아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형은 처음에는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을 자꾸 물어가는 살쾡이를 잡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하는 것을 알고 주인공은 연민을 품습니다. 그리고 형이 놓아둔 덫에 걸린 살쾡이를 결국 놓아줌으로써 살쾡이와의 싸움도 끝이 납니다. 동물들이야말로 욕심을 내지 않고 또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존재였습니다. 도리를 아는 모습이 웬만한 사람보다 더 낫다는 말을 들을 만 합니다.


긴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

긴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은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배가 고파 방으로 침투한 긴꼬리 들쥐를 쫓아내고 싶어하는 주인공과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긴꼬리 들쥐와의 사투를 일지로 적은 것입니다.

어떤 동물이든 생명에 대한 의지와 생존력은 실로 놀랍습니다. 그런 진심어린 생에 대한 갈망을 느끼자 긴 시간 대결을 펼쳐온 어린 소년도 그 의지에 감동하게 됩니다.


조폭의 개

이런 이야기야말로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를 기르는 조폭들과 조폭의 젊은 여자의 태도는 참으로 그 의도가 짐작이 되지 않고, 소설 속에서도 끝까지 왜 그랬는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오히려 동물보다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실제 삶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 대해서 전부 알 수도 없고 전부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삶에 굉장히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예의 없이 대하면서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극진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또 어떤 마음으로 동물을 대할까 많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동물의 이야기보다 사람의 이야기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도 제가 사람과 동물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이기적인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분명 따뜻하고 좋은 소설집입니다. 특히 자연스럽게 동물의 습성을 익히고 또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이라 남녀노소 읽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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