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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백수에겐 가장 보람된 날로 기록될 만합니다. 두 달 가량 보수공사로 문을 닫았던 대구 동성아트홀에 가서 영화 두 편을 내리 봤거든요. 평일 대낮에 말입니다.

 

대구 동성아트홀은 2004년에 문을 연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입니다. 올초 대구에 '오오극장'이라는 곳이 생겼는데 공교롭게도 동성아트홀이 경영난으로 폐관을 선언한 것과 시기가 비슷해 저는 잠시 동성아트홀의 역할을 오오극장이 하게 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잘 몰랐던 거죠. 동성아트홀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상업영화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들을 주로 상영하고, 오오극장은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독립영화만을 상영합니다. 오오극장은 객석이 55개라서 오오극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오오극장의 간판. 자세히 보시면 오오극장에서는 삼삼다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오오극장의 한쪽 벽은 이렇습니다.

 

오오극장의 단 하나뿐인 상영관 입구.

 

삼삼다방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죽치고 있었더니 한 잔 더 주셨습니다.

 

동성아트홀은 200석 가량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치는 예전과 같은 교동시장 부근입니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곳이 교동시장이고, 사진 속 가방 든 여성분이 걸어가시는 방향으로 가면 대구역, 모자 쓴 여성분이 걸어가시는 방향으로 가면 동성로가 나오지요.

 

새롭게 리모델링된 공간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있어서 간단한 과자와 음료수를 팔았고 책들이 꽂힌 서가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져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저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고 좋았어요.

 

객석입니다. 아쉽게도 오늘 본 <위로공단>은 관객이 단 둘뿐이었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제작한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을 연달아 본 것은, 물론 극장에서 짠 시간표 때문입니다만, 실제로 이 두개 영화가 모두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성아트홀이나 오오극장 모두 단관극장이기 때문에 여러 편의 영화들을 매일매일 교차상영하고 있어요.

 

두 개의 영화는 별개의 영화지만 저는 하나의 영화로 읽었습니다. 단순히 연달아 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두 영화 모두 성실하게 노동하는 한국의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성실이 현실에서의 정당한 보상과 만족과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위로공단>에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 중 한 분이 "박근혜 대통령이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감정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이가 없었다인지, 울화통이 터졌다인지, 피식 웃음이 났다인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고 저에게는 '울화통이 터졌다'에 가까운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만)"는 인터뷰는 특히나 두 영화의 부정할 수 없는 연결고리가 아닌가 싶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진심 빠진 허언에 대한 그로테스크하고 컬트적인 대답이라는 걸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감독이 박 대통령의 그 공약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사는 나라가 '성실한 나라'로 바뀐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혼자 추측해봤습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남은, 사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발적인 성실함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너무 많았던 불행을 조금이나마 행복으로 바꿔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성실함입니다.

 

제가 본 이 영화의 매력은 이런 수남의 이야기를 감독만의 개성을 살려 컬트적으로 풀었다는 데 있습니다. 정말 영화는 우울하고 절망스럽기 짝이 없지만 세상을 향해 대놓고 분노하거나 주인공이 그저 울고만 있질 않습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본 물파스 고문을 연상시키는 고문 장면들이나 수남이 뜻하지 않게 잔인해지는 장면들이 비인간적으로 잔인한 노동자의 현실을 감독만의 방식으로, 수남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만의 캐릭터로 보여줍니다.

 

세상에 저런 여자가 어딨을까 싶은 사람이 거기에 있듯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까 싶은 일들이 실제로 한국사회를 비롯한 세계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게 다음에 봤던 <위로공단>에서 그대로 증언됩니다. <위로공단>은 인터뷰 중심의 다큐멘터리 영화거든요.

 

영화의 오프닝이나 인터뷰 중간중간 등장하는 연극 장면과 퍼포먼스들이 인터뷰에서 다 말하지 못했을 행간을 채워주고 영화의 개성을 더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중심은 실제 여성노동자들의 인터뷰, 증언들입니다.

 

70년대에서 시작된 여성노동자들의 검은 역사는 현재까지도 숙주만 바꿔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해외로 수출되기까지 했습니다. 혹시라도 "일부일 뿐 능력대로, 혹은 능력 이상으로 보상받으며 일하는 여성들도 많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그 말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여성노동자'들을 주로 다룬다고 해서 한국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이러하고, 남성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감독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도 최소한의 보상과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여성노동자들을 다루고 있으며, 가급적이면 광범위하게, 최대한 많은 경우들을 다루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지금도 그런데' '나도 그랬는데' 생각할 사람이 많을 거고 감독은 제한된 시간과 화면 안에서 가급적 많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70~80년대 방직공장부터 현재의 다산콜센터 직원들, 일부는 이들과 같이 이야기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승무원들까지 다양하게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또 구로공단을 위시한 한국 공장노동자들부터 캄보디아 프놈펜의 여성노동자들과 그들의 시위까지도 범위를 넓혔습니다.

 

올여름 캄보디아 프놈펜을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온 것들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한국의 건설사들, 한국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빵집들, 그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건 한국의 중고차들이었습니다. 주로 한국의 학원들에서 쓰던 봉고차와 2000년대 이후로는 보기 힘들었던 낡은 대형 관광버스들이었는데, 거기 써있는 한글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사용 중인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여전히 문제가 없는 중고차도 있겠지만 한눈에 봐도 위험해보이는 차량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반갑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이상한 수출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것보다 더 나쁘고 위험한 것, '노동착취'라는 비인간적인 행태까지 수출이 되어있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이제 약 100일 정도(,라고 쓰고 한번 세어보니 오늘로 정확히 백수된 지 100일이 됐네요!)가 지난 지금까지도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내가 나답고 행복할지 여전히 미로 속에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의 노동, 그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명확하지만 그 일로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돈을 벌 수 없다면 그 일을 끝까지 원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저는,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해 노동을 잠시 멈추거나 쉬지도 못했던 노동자들에 비하면 배가 부른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제일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영화는 가장 힘들지만 누구보다 외면받았던 계층의 노동과 그들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해줬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핑크빛 희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거나 함께 행동하자고 선전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그건 두 영화의 몫이 전혀 아니기도 하죠.

 

그리하여 저는 조금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볼 것인가.

 

 

+그런데 왜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아니라 동성아트홀에서 두 영화를 봤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현재 동성아트홀 재개관 기념으로 오오극장과 '해피투게더'라는 이름의 교환전을 진행 중입니다. 9월 17일이 지나면 독립영화는 오오극장에서 예술영화는 동성아트홀에서 상영합니다. 물론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라는 구분이 겹치고 애매하지만 오오극장에서는 한국독립영화를 상영한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저는 오늘 할인받지 못해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동성아트홀 카페(네이버/다음) 회원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위로공단>을 보고 나서 실로 오랜만에 서점에 가 책을 구경하다가 서점에 없는 책을 알라딘에서 주문했습니다. 주문한 게 저녁 7시반이었는데, 9시쯤 출고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사실 내일 중에는 봐야 하는 책이라 정말 고마웠는데, 영화의 한 장면이 문득 생각이 났어요. 제가 이용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 대형마트에서는 온라인으로 클릭만 하면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클릭만으로 주문이 완료되면 담당 직원들은 그걸 실제로 쇼핑해서 시간 안에 배송을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창고 안에 파란색-초록색-노란색-빨간색 순으로 경고등이 들어오고 그걸 바탕으로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고된 노동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런데 알라딘 역시 책을 빨리 배송해주기 위해 아마도 밤 늦게 고생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그래서 든 생각인데, 책이 급하면 당일배송을 따로 신청하면서 동시에 빠른 배송을 위한 추가비용을 지불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비용은 늦은 시각에 급하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지급되어야겠죠. 오늘 주문한 책이 오늘 오고, 밤 늦게 주문한 책이 다음날 오면 기분이 좋기야 합니다만 그 책을 그 날 못 읽는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늘 몇 권씩은 남아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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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포일러입니다]

 

결혼 5주년 기념일에 닉의 아내 에이미가 사라졌다.

- 에이미는 왜 사라졌는가

그녀는 닉과의 관계에서 결혼 후 약 2년까지는 완벽하게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완벽한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키는대로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더군다나 에이미는 퀴즈를 내어가며 남자가 어떤 게 정답일지 고민하게 만드는 여자가 아니었다. 넥타이도, 시계도 그저 골라주는대로만 하면 에이미를 화나게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닉은 에이미를 화나게 했고 에이미는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갚아주기 위해 사라졌다.

- 에이미는 왜 화가 났나

에이미가 닉에게 그토록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얼핏 보기엔 바람을 피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에이미가 닉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 진짜 계기는 어머니가 죽을병에 걸린 것을 알고 닉이 에이미와 상의 없이 미저리로의 이사를 결정했을 때라고 생각된다.
이전까지는 닉의 중심이 에이미였을테지만, 이때 중심이 엄마에게로 옮겨간다. 낳고 키워준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자식이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에이미는 닉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것 자체에 저 깊은 곳으로부터의 분노를 느낀다.
이후 드러난 이전 연애의 패턴을 보아도 에이미는 모든 관계에서 명확하고 독점적인 주도권을 갖고자 했다.

- 에이미는 왜 연인들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하나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마도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남자를 내 뜻대로 컨트롤하는 것. 그러한 통제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기보다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에이미는 보통의 여성들보다 연인을 직접 통제하고자하는 성향이 더욱 강하다. 이는 작가인 어머니가 만들어낸 '어메이징 에이미'의 영향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가 항상 자신의 삶을 앞질렀다는 말을 한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아이가 자라는 모습 그대로를 지켜보고 사랑해주었을텐데, 작가였던 에이미의 엄마는 딸의 성장과 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앞지르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미리 만들어뒀던 것이다.
에이미가 남자들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한 것은 정작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지 못하고 엄마가 만들어놓은 어메이징에이미에게 늘 추월당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에이미가 조금만 덜 똑똑하고, 조금만 더 평범했더라도, 그러한 유명세를 별 생각 없이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어메이징 에이미의 역할을 해내야한다는 강박도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 크고 나서도 어느 정도 엄마가 원하고 매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인터뷰에 응해주는 에이미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다.

- 그들의 결혼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결혼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결합인 만큼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나로서는 아무래도 닉의 편으로 기운다. 예쁘고 똑똑해서 에이미에게 끌렸다는 닉이 다소 멍청해보이는 큰 가슴을 가진 어린 여자에게 빠진 것도, 에이미의 통제 속 삶에 대한 갑갑함의 반작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가 봐도 백치미가 넘치는 앤디와 만나면서도 닉이 앤디에게 꿈을 가지라고 설교하고, 그 말을 들어 앤디가 연극을 했다는 것을 보면 닉은 여자에 대한 취향 자체가 바뀌었다기보다눈 에이미가 조인 숨통을 앤디에게 가서 틔웠던 것 같다. 에이미와의 관계에서 상실했던 주도권을 확실히 회복하기에는 사제지간만한 관계도 없지 않나.

- 그렇다면 어디서부터가 에이미의 대본인가

미저리로 온 이후는 모두 에이미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처음 미저리로 이사한 후 자신이 잘못 챙긴 짐처럼 느껴진다는 에이미의 일기는 전반부의 입장에서 보면 몹시 애잔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역시 에이미의 관점이거나, 에이미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낸 이야기의 일부로 해석 가능하다. 오히려 닉은 에이미에게서 멀어지는 마음을 아이를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이를 거부한 것은 에이미인데, 이것이 닉에게 벌을 주기 위함인지, 자신만이 중심이 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다.
결혼기념일마다 주제를 정해놓고 선물을 주고 받고 퀴즈를 풀던 두 사람은, 결혼 5주년 숙제의 주제로 '에이미'를 받게 된다. 답을 찾지 못한 4주년 때부터 이는 이미 예고된 바였다. 에이미가 스스로 명확하게 자신이 닉의 주인임을 인지하고 있을 때는 굳이 자신이 퀴즈의 중심이 될 필요가 없었지만, 4년차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던 거다. 마침내 닉이 아예 정답을 못 맞히는 상황이 되자 다음해는 에이미 자신이 퀴즈가 된다.

- 에이미는 왜 돌아왔는가

다른 사람들의 평을 보니, 에이미가 돌아간 것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닉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에이미가 닉의 그 말들을 진심이라고 믿을만큼 멍청하거나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보고 에이미가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고 돌아가기 위한 시나리오를 다시 쓴 것은, 그 상황에서의 새로운 시나리오가 떠올랐기 때문일 뿐이다.
그 인터뷰를 한 후 닉과 마고, 변호사가 모두 흡족해하지만 이때도 에이미는 한 수 위였다. 닉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에이미를 찾고자 했고 그 작전에 에이미가 넘어왔다고 믿겠지만, 어메이징한 에이미는 오히려 닉의 어설픈 시나리오에 착안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돌아가서 다시 둘의 관계를 완벽한 자신의 통제하에 놓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이를 행동에 착착 옮긴다.

- 에이미와 닉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에이미라는 이름이 화면에서 타이트하게 잡힌 적이 있는데, 그때 'aim'이라는 단어를 품은 에이미의 이름과 '던'이라는 발음을 가진 던의 이름 또한 상징성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에이미의 명확한 조준과, 정해진 결말.
태어나기 전부터 닉과 함께였던 마고가 에이미를 싫어했다는 것은 본능적인 자기방어였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속에 비친 언론과 마녀사냥 등에 대해서는 워낙 리뷰마다 언급됐으니 굳이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이조차도 이야기와 에이미라는 캐릭터를 보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왜냐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나 원작자가 이미 식상할대로 식상한 황색저널리즘이나 여론몰이 자체를 다루고자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라지만 이 영화의 힘은 두 주인공 캐릭터에 있다고 본다. 모든 놀라움과 반전과 스릴과 공포 역시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처음에는 에이미역의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에 엄지를 들지만, 곰곰히 곱씹을수록 벤 에플렉의 연기야말로 놀랍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찌보면 불쌍하고 어찌보면 나쁘고 어찌보면 멍청하고 어찌보면 평범한 이 남자가 겪는 이 어메이징한 결혼생활과 갖가지 감정들을 오버하지 않고 너무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에이미의 실체를 모르고 보면 나빠 보이고, 알고 보면 불쌍해보이는 이 남자를,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만드는 연기야말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력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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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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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생각만 하고 보지 못했던 영화를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봤다. [트리 오브 라이프 ㅣ The Tree of Life]는 2011년 마지막으로 본 영화이자, 2012년 처음으로 본 영화이다. 밀란쿤데라 전집 중 한 권을 사고 민음사에서 선물로 받은 '불멸'이라는 이름의 커피콩을 믹서기에 갈아 드리퍼로 내려 한 모금 할 때 영화는 시작됐다. 첫 장면의 이미지는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뿌옇게 흐린 화면만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그것이 영화의 첫 장면인 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는 그렇게 장면, 장면을 비추었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 신음 소리, 울음 소리, 그리고 그 이후 대부분의 소리는 기도 소리였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독실한 크리스찬 엄마의 기도는 원망으로 시작해 결국은 수용으로 끝이 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있고, 더 솔직히 말하면 집단으로서의 기독교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싫은 것은 일부이나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전도 방식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하느님을 원망할 때뿐만 아니라 결국 그 모든 것을 체념하고 결국 원망 없이 받아들일 때조차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이 함께 움직였다.

 

조금은 지루할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였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대사가 별로 없고 마치 지구과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줘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우주와 자연을 담은 영상들이 끊임없이, 뜬금없이, 그러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영화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는 공룡도 나온다.

 

온화하고 다정한 엄마와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동생, 그리고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 두려움과 미움이 온통 지배하고 있는 잭 오브라이언은 이미 중년이 됐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잭은, 이미 그 당시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에 그랬듯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늙은 아버지는 여전히 그때처럼 아들을 다그친다. 그리고 이후의 기억은 거의가 동생이 죽기 전, 경외심에서 시작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두려움으로, 반항심으로, 그리고 미움으로 변해버린 어린 시절을 더듬는다. 그리고 여전히 우주며 대자연이며 구름이며 바람 같은 것들이 사이사이 화면을 메운다. 엄마의 기도소리와 함께.

 

무척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영화다. 그럼에도 별 거부감 없이 이 영화를 받아들인 데에는 그 '종교적인 색채'를 개인적인 다른 무엇으로 바꿔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도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하느님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앗아가버린 것을 원망하고 오랫동안 처음과 같이 고통받으며 결국은 세월이 흐르며 모든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그 인간적인 면모는 종교를 떠나서 모두 같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불행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만큼 원망할 대상이 따로 없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비종교인에게도 이 영화는 똑같은 질문을 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또 느끼게 한다. 그 누구보다 엄마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을 캐스팅한 것이 이 영화에 굉장한 힘을 부여한다. 그녀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그렇게 한결같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 속에 담아낸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들. 좋았다.

 

씨네21의 한 기자는 이 영화를 2011년 과대평가된 영화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강렬한 종교적 색깔을 담고도, 나처럼 기독교에 대해 일종의 경멸까지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참으로 거대한 영화다. 지루한 자연 다큐멘터리라고도, 편협한 기독교적 영화라고도, 또 거장으로 평가받아오다 결국 꼰대스러워진 감독의 그저 그런 작품이라고도 비판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거대한 작품이다.

 

2012년을 맞으며 보기로 선택하기를 참으로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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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 Docu 강정 - Jam Docu KANG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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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광고가 없으니 영화는 정시에 시작할 거라고도 했다. 시간이 어중간했고 거리도 애매했고 그에 비해 밖은 너무도 분명하게 추웠지만 꼭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었다. 먼 데까지 왔는데, 의외로 좀 빨리 와서 간단하게 요기는 할 수 있겠다 기대했는데 생각지 않게 길을 헤맨 데다 건물 출입구가 너무 복잡해서 약간 짜증이 나 있었다. 요기는 못해도 뜨거운 커피는 꼭 마시고 싶었다.

 

가깝지 않은 1층 출입구를 통해 건물을 돌아나가 건널목을 건넜다. 커피집은 바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뜨거운 어묵 국물이라도 먹고 싶어 어묵 2개를 먹었다. 어묵을 팔던 할머니는 다 먹고 나가면 길을 막고 이상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이 앞에 한 200명은 된다고 했다. 그들은 늘 짝을 지어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할머니가 저것 보라며 손가락을 하는 멀지 않은 곳에는 남녀 한 쌍이 길 가는 남자를 붙잡고 남자는 화를 내며 가버리는 장면이 보였다. 어떤 이는 그들에게 5만원을 자기도 모르게 강탈 당하고 어떤 이는 그들과 함께 아주 먼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가 요금을 덤터기 쓰기도 했다고 했다.

 

어묵 2개를 먹고 국물을 완전히 마신 후 커피집을 찾아나섰다. 너무 맹렬히 걸어서인지 평소 내게도 곧잘 말을 걸어오던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갈 건널목 앞에 서서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모든 것이 괜찮았다. 영화 상영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전에 다 마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커피는 너무 뜨거웠고 5분은 너무 짧았다. 표를 주었던 분에게 커피를 맡기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현실은 여기저기 잔뜩 널려 있는데 영화를 통해서만은 조금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너무 잘 은유해서 다큐인지 픽션인지 구별이 힘든 사실적인 영화도 있다. 하지만 그런 류의 영화는 어쨌든 다큐멘터리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 않으므로 부담이 덜하다. 다큐멘터리는 다르다. 아무리 편집을 통한 의도와 재해석의 여지와 요소가 있다 해도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고 현실은 현실이라 부담스럽다.

 

[잼 다큐 강정]이 시작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불이 켜지고 GV를 위해 영화에 참여한 감독 2명과 트위터를 통해 나를 이곳에 초대해준 이송희일 감독이 앞에 나와 관객석을 향할 것을 생각하니 부담스러워졌다. 너는 무얼하고 있느냐고, 지금까지는 몰라서 그랬다 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물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바다에 던지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처럼 무거운 이 마음도 영화관을 나서면, 지하철을 타면, 내일이 타면 서서히 희미해져 갈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지금은 강정마을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데 마음이 아프고 정부가 싫고 미래가 두려운데 아이팟 이어폰을 귀에 꽂고 리드미컬한 음악이 나오면 곧 몸을 흔들며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탈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나는 이벤트로, 공짜로, 이 객석에 앉아서 이 영화를 보는 것 말고는 별 것 안 할 안일한 인간인데 저 앞에서는 감독들이 나를 향해 앉아 있으니 부담스러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나중에 항변하고 싶은 치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잼 다큐에 참여한 감독들은 추운 날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저 알아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며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고마워 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다면 다른 분들에게도 제주 강정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아픔이 있으며 그것을 찍은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면 된다고 했다.

 

활동가 송강호 씨가 들려줬던 경험이 생각난다. 인도네시아 바다에 폐형광등이 떠내려와서 봤더니 ‘번개표’라고 써 있었다는 거다. 이 바다가 저 바다고 우리 바다가 그들의 바다다.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강정에 해군기지 건설로 주민 간 분열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강정 바다 속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해 온 한 주민은 육지처럼 바다도 4계절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6개월만에 타당성조사를 끝내고 이 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해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사실 나도 영화에서 본 것 이상은 잘 모른다. 지난 10월 두물머리에서 강정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사실 그 때는 그저 그 곳에 공연오는 밴드들에 더 관심이 있었고, 두물머리가 서울 근교라서 가보고 싶었다. 강정에서 오신 분들이 카페 한 번만 방문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후 그냥 잊어버렸다.

 

확실히 ‘거기 그런 일이 있다더라’ 정도로 듣고 넘기는 것과 ‘어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고 듣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그 후에 어떻게 하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잼 다큐 강정]은 8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들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관심가져주기를 바라며 만든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다.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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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0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karma님.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 봤었는데, GV가 있을 때 가셨던 모양이네요. 정말 이런 영화는 말씀하신대로 많은 분들이 좀 볼 필요가 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시고 반대를 하시던, 찬성을 하시건 말이예요. 자꾸 일이 잘 알려져서 일종의 논쟁거리가 되도 좋을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KU시네마테크에서 보신 모양이네요. 거기 극장과 바로 통하는 지하층 출입구 쪽 공사완료되서 아마도 그쪽으로 나가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종종 가는 극장이기에, 담번에 혹 가실일있다면 괜히 돌아가시지 말라는 뜻에서 덧붙입니다.;;)

karma 2012-01-0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같은 생각입니다. 알고 난 후 찬성이든, 반대든, 암튼 이 일에 대한 여론이라는 게 생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영관도 많지 않고 상영횟수도 적고 안타까워요. 그리고 극장에 대한 정보는 앞으로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
 
50/50 - 50/50
영화
평점 :
현재상영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엄마한테 말한다. 서울-대구만큼 떨어져있어서 말 안 하면 모르시고, 모르시면 걱정도 안 하실텐데 왜 굳이 말하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한다.

 

전화목소리라고 어설프게 연기를 해봤자 귀신 같은 엄마한테는 먹히지도 않고, 애초에 완벽한 연기를 선보일 마음이 없는 연약한 나 자신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엔 일종의 협정 같은 게 있다.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하기.

 

서울에 온 지 얼마나 지났을 때였던가 가물가물하지만 엄마가 일주일이나 아파놓고도 티를 안 내서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됐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대개 너무 마음이 아프면 화를 내고 나도 그 땐 화를 냈다.

 

덕분에, 엄마도 내가 서울에서 아픈데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아팠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헤아려볼 수 있게 됐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내가 아프면 남들처럼 '쟨 원래 잔병치레가 많은 애니까'라고 생각하며 점점 걱정을 덜 하게 되는 면역력 같은 게 도무지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당장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도 지금 아프면 지금 아프다고 말하는 게 낫다.

 

그래야 분명 목소리는 어디가 아픈 것 같은데도 자꾸 아니라고 할 때 진짜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개 우리는 금방 낫지 않는가.

 

영화 50/50은 치사율 50%(그러니까 생존률도 50%인)의 희귀암에 걸린 20대 남자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너무 심각하지 않게, 유쾌하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그려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지만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조셉 고든 레빗이 엄마한테 처음 암메 걸렸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제 그랬니?" "며칠 안 됐어요." "그 며칠 동안은 뭐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엄마는 이러고서 암을 예방해준다는 녹차를 만들어주겠다며 주방에 가서 운다.

 

엄마는 그렇다. 단 며칠이라도 아들이 엄마한테 말 안 하고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아직 엄마가 돼보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 덕에 너무 잘 아는 이 점.

 

우리는 모두 살아 있어서 다행이고,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고, 어쨌든 다행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아이팟에서 임의재생으로 들려준 노래는 재미있게도 Rufus Wainwright의 '11:11'이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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