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국도 Revisited (특별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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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틀스의 그 음반을 내게 판 뒤, 이제는 기타를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은다는 걸, 그리하여 이제 자신이 영원히 외로우리라는 걸 깨달았다.-61쪽

술자리에서 재현은 쉴새없이 떠들었다. 그 시절에는 나도 꽤 떠들었다. 우린 앞다퉈 자기 이야기만 했다. 떠들어대지 않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또 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게 우리가 아는 외로움의 정의였다. 그러므로 재현이 장광설을 늘어놓는 동안, 귀를 기울어 듣는 척하면서도 나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71쪽

스무 살 무렵의 기억은 웬일인지 너무나 희미하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내뿜는 광채가 너무 눈부시니까 그 빛에 가려져 그때 내가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 듯.-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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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지옥 紙屋 - 신청곡 안 틀어 드립니다
윤성현 지음 / 바다봄 / 2010년 11월
품절


청취자 이OO: 혼자 좋아했던 사람이 이번에 결혼한대요.
막말하는 DJ: 혼자 좋아했으니까요.-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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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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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까지 집행이 안 된 거죠?"
"법무장관이 법률을 안 지키니까 그렇지."-152쪽

"저는 사형수의 원죄를 밝히는 일을 맡았어요. 한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요. 그런데 만약 진범을 찾아내면 결국 다른 인간을 사형대로 보낸다는 거 아닙니까?"-155쪽

그리고 지금 160번의 종교적 지도에 관한 내용을 접하며 난고는 또 하나의 얄궂은 감개를 느꼈다. 종교 지도에서 보이는 태도는 사형 확정수의 심적 안정을 측정하는 기준이며, 이는 형 집행 시기의 결정 요인이 된다.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안식을 얻은 자일수록 빨리 처형당하고 마는 것이다.-184쪽

"신부님, 고백 성사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 꿇은 사형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제단 위의 십자가를 등지고 엄숙한 어투로 말했다.
"당신의 평생에 걸친 죄, 전능하신 하느님을 거역한 것을 회개합니까?"
"네."
"나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
그 신의 말씀을 듣고 난고는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160번이 범한 죄를 신은 용서했으나 인간은 용서하지 않는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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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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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에 아줌마가, 너무 많이 울면 중이염 걸리니까 참으라고 했어."-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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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그간의 간격을 생각해보면 최근 김연수 작가의 신보 발간 간격은 상당히 짧아졌다. [원더보이] 이후에도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과 또 다시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거의 연달아 나왔으니까.

 

그래서인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은 후 쓰는 글이긴 하지만 최근작들 전부를 한꺼번에 생각해보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올해 나온 책 세 권은 내게 출간된 날짜 순서대로 점점 나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건지, 다음 작품을 애타게 기다렸다가 읽는 반가움이 모자라서 그런 건지, 자꾸 읽으니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 작품들을 읽은 후의 마음들을 돌아보면 최근 작품들은 뭔가 김연수 작가가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동시에 오랜 팬인 나에게서는 조금 멀어져 간 기분이다. 순전히,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김연수 작가만이 갖고 있던 신선함이 다소 바래고 독자를 감상적으로 만드는 기술이 주로 발휘된 것 같다. (이런 말을 쓰는 것조차 왠지 마음이 아프다. 김연수 작가는 이 글을 보지도 않겠지만 죄송하기도 하고 TT)

 

최근 보고 읽은 영화나 소설은 대체로, 장르적인 성격을 기본적으로 띠고 있었다.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일종의 미스터리 장르 기법은 기본적으로 관객이나 독자를 놀라게 만들고 충격을 주는 반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늘 반전이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듣게 되고 또 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반전이 없는 소설이나 영화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재미도 줄 수 없게 된 걸까. 물론 기막힌 반전이 곁들여지고, 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으면서 발견하는 즐거움이 큰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범죄 관련 미드를 즐겨 본다. 하지만 모든 소설과 모든 영화와 모든 드라마가 다 그렇게 반전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사실이나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도 좋고,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하듯이 그저 아무 것도 명확해지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좋은 글들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다르고 멋진 시각, 나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생각한 사람들의 시선들인 것 같다.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한 이야기보다 내가 그 책이나 글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고 어렴풋이 알았으나 그저 어렴풋했던 것들을 시나브로 알게 하는 이야기가 나는 좋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양어머니의 죽음 이후 한국으로 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카밀라의 이야기다. 초반에 등장하는 이런 설정을 보면서, 잘못하면 뭔가 신파나 통속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소재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절로 됐지만 김연수 작가는 뭔가 다르게 풀었을 거라는 기대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끝까지 놓지 않았지만, 결국 아빠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빠가 아니고, 또 저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 고민하게 하고 놀라게 하다가 예상치 못했을 사람을 등장시키는 것이 식상했다.

 

카밀라 생모의 내레이션 부분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와 너무 비슷한 느낌이었다. 세상에 더 이상 완벽히 새로운 것은 없으며 세상의 엄마들 마음이 다 비슷하다고 해도 그랬다.

 

그럼에도 김연수만의 장기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래도 이 책을 읽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나의 실망이 이렇게까지 표출되는 것 같긴 하다. 책을 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래 부분을 발췌해 SNS에 올리고, 또 그 아래와 같은 감상을 썼었다.

 

네게서 연락이 끊어지고 나서, 그리고 더 이상 내게 연락하지 않은 뒤로,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너의 부재나 침묵이 아니라, 너에게 그런 위로의 말을, 너를 위로하는 행동을, 그렇다고 말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껴안고 입 맞추는 그 모든 인간적인 위로들을 해줄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었어. 마음속으로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일 따위는 추모비 앞에선 정치가들에게나 어울리지, 이별을 당한 남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읺는 일이라는 걸 이젠 알겠네. 어느 틈엔가 나는 너를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증오하는 사람이 됐지.

_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그렇다고 말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김연수가 내게 대단한 작가인 이유는 바로 이런 문장에 있다. 내게 인간관계에 대한 설명은 딱 이 한 줄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말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

그렇다고 말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다 읽은 후에는 또 이런 글을 썼었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다소 교조적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좀 통속적인 느낌이다.
처음 책을 펴들 때의 반가움, 책 속 정수 같은 몇몇 문장이나 문단을 뛰어넘는 작품으로서의 감동이 아쉽다.
작가님, 이젠 좀 천천히 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ㅠㅠ
라고, 나 정도의 충실한 팬이라면 감히 말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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