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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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은 방현희 작가의 단편 일곱 편을 엮은 단편집입니다. 제목과는 달리 모든 소설의 배경이 서울은 아닙니다. 중국, 영국, 일본을 배경으로 하거나, 서울 혹은 대한민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타국에서 온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거나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집의 제목이 '로스트 인 서울'인 것에 대해 곰곰 생각해봅니다. 서울에 와서 길을 잃고, 또 서울에서 길을 잃어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은 그 곳에서도 길을 잃습니다. 서울과 상관 없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대로 그들이 살고 있는 '그들의 서울'에서 또 길을 잃고 맙니다.

 

첫번째 단편은 표제작인 '로스트 인 서울'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렉안나와 그렉안나의 무력한 애인은 이 소설집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에 굉장히 부합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렉안나는 먼 우즈베키스탄에서 서울까지 왔지만 결국은 길을 잃고 말고, 그녀가 길을 잃으니 그녀를 통해 길을 찾은 듯했던 무력한 애인 역시 그녀도 잃고 또 길도 잃습니다. 먼 타국이든,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든,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사람들이 쉽게 조난 당하고 그렇지만 쉽게 구조받지 못하고 적지 않게 사라지는 그런 도시입니다. 이 작품 안에서는 그렉안나나 그 애인과 대척점에 있는 가해자처럼 보이는 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방식이나 다른 원인이나 다른 경로일 수는 있겠으나 그 역시 그 곳에서 아직 구조되지 못한 조난자이기 때문에 그렉안나를 그런 방식으로밖에는 곁에 두지 못했던 겁니다.

 

두번째 단편은 '세컨드 라이프'입니다. 아내와 중국으로 여행간 남편이 그곳에서 자신의 또 다른 인생을 보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인생을 보지 못하는 아내가 아무리 증언해도, 남편은 아내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내의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형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사랑에 대한 아련한 감정이, 낯선 땅에서 또 다른 인생을 보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북경에서의 삶이 그의 두번째 삶인 걸까요, 아내가 증언하는 아내와의 시간이 두번째 삶인 걸까요.

 

세번째 단편은 '탈옥'입니다. 주가조작으로 감옥 신세를 지게 된 주인공이 또 다른 작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탈옥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실패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왠지 스포일러 같지만, 주인공이 탈옥에 성공한다면 아마 이 작품은 현대소설의 범주에 쉽게 들지 못하겠죠. 현대의 소설들은 대부분, 성공담이기보다는 실패담이고, 설사 그것이 성공담이라 해도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든지, '그리하여 결국 그는 탈옥에 성공하여 자유를 되찾았습니다'와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은 탈옥을 위해 떼어내도 상관 없는 장기를 하나하나 떼어낸다는 나름대로는 완벽한 계획을 세웁니다. 수술할 때 빠져나가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계획을 꿰뚫어보는 인물이 존재합니다. 빅브라더인 셈이죠.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언제나 탈출에 필패하고 만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하는 것 같아 서글픕니다.

 

네번째 단편은 '그 남자의 손목시계'입니다. 나의 엄마를 늘 때리는 남자, 그걸 보고도 그저 그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자신의 비겁함을 자꾸만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거북한 남자, 그 남자가 애지중지 모으는 손목시계와, 그 손목시계의 출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남자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몰래 뒤를 밟는 나는, 엄마가 맞는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 피해있는 나에서 결국 한치도 나가지 못합니다. 이 남자는 왠지 그렉안나와 강의 폭력적인 정사를 비밀 공간에 숨어 훔쳐보고 듣던 그 남자와 같은 인물로 읽힙니다.

 

다섯번째 단편은 '후쿠오카 스토리-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입니다. 후쿠오카에서 외롭게 공부하던 시절 만났던 네 명의 연인들은 이제 서울에 삽니다. 그러다 작은 보트를 타고 다시 그들의 기원으로 들어가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선장은 무슨 일인지 기절해 쓰러져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바닥에는 구멍까지 납니다. 그 위기의 순간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쌓여있었던 불만을 쏟아냅니다. 결국 그들은 죽지 않고 목숨을 구하지만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리적인 목숨은 붙어있지만, 그들의 관계, 그 관계 속의 한 명 한 명, 그리고 후쿠오카 시절에서 시작해 다시 후쿠오카로 가서 끝나는 그 8년이라는 시간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여섯번째 단편은 '로라, 네 이름은 미조'입니다. 서울이 싫어 머나먼 영국으로 시집갔지만, 그 곳은 또다른 서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랜 해외생활 후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은 아직도 그러네 어쩌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보면 그 곳 역시 같습니다. 한국에 사는 미조와 영국에 사는 로라는 그저 사는 곳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만 옮겼을 뿐입니다. 엄격한 남편에게 '그곳의 룰'을 따를 것을 끊임없이 종용받던 로라는, 언젠가부터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기 시작합니다. 소화해낼 수 없는 문화를 소화하는 것보다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을 소화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졌을까요. 그렇게라도 다 소화해내고 싶었던 걸까요.

 

일곱번째 단편은 '퍼펙트 블루-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입니다. 원래의 피부색에서 흰색으로, 그리고 다시 파란색으로 바뀐 후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번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이클 잭슨이 분명한 인물이 등장하고, 연예인이 된 후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게 된 M이 등장하고, 그 M을 흉내내다 그 M으로 보이게 된 M2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일곱번째 단편에서, 앞 여섯편을 읽으면서 일관적으로 느꼈던 거의 모든 것들을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헤쳐놓고 보면 방현희 작가의 단편들은 굉장히 모던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단편들 속에서 그것이 자연스럽고 모던하고 치밀하게 잘 드러났느냐 하면, 저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알레고리들이 너무나 직접적이고 일차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렉안나와 강의 이야기도 너무 상투적입니다. 물론, 인테리어 일을 하는 주인공과의 만남이나 그를 통해 마련된 벽과 벽 사이의 비밀공간의 설정이 이 상투성을 조금이나 희석시켜주긴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등장인물을 보여주는 방식 때문인지 '사랑과 전쟁'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퍼펙트 블루도 그렇습니다. 직접적으로 전 세계인이 다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또 '프로포폴'이니 하는 사실들을 실제로 거론하는 것이 뭐랄까, 아마추어처럼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비슷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정에 치중한다는 느낌인데, 그 설정마저도 너무 익숙한 모티프여서,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사고는 굉장히 현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서사나 플롯은 전근대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 점들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요즘 서평을 쓰면서, 또 소설을 공부하면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소설은 누가 봐도 좋은 소설이고, 또 누가 봐도 좋아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겠지만, 몇몇 손꼽는 작품들을 제외하면 모든 것은 다 취향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을 다른 독자는 읽어낼 수 있고, 나는 좋지 못하다고 느끼는 방식을 다른 사람은 좋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고 있는 이 서평들이 이 소설집이 좋은 소설집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기준은 전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와 비슷한 취향이나 관점을 가진 독자들은 저와 비슷한 감상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의 기준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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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제너레이션 -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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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책의 등장인물입니다. 좀비 불신론자죠. 산통 깨졌나요? 죄송합니다. 낚이셨나요? 그것도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는 좀비 불신론자입니다. 놀래키는 영화를 싫어해서, 시체인 줄 알았던 좀비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안 보이는 데서 좀비가 갑자기 나타나는 좀비 영화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괜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계속 "에이, 좀비가 어딨어?! 그거 다 상상의 산물이지!"하고 좀비 존재를 불신하고 있다가, 언젠가 정말 좀비가 나타나면 속수무책으로 꼼짝없이 당하고 나도 좀비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안 믿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나름대로 몇 가지는 기억하려고 애 쓰며 읽게 되더군요. 안 믿긴 안 믿는데, 혹시 모르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비극은 사실 어느 정도 예고되는 경향이 있어서 '미리 준비하고 대비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를 남기니까요.

좀비 제너레이션은 그런 책입니다. 그러니까, 좀비 불신론자이던 한 카페의 사장인 주인공이 어떻게 좀비 제너레이션으로 편입돼 좀비들에게 감염되지 않고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하고 매뉴얼까지 쓰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죠. 좀비가 나타났을 때의 징후나 대피장소, 이동수단, 무기 등에 대한 매뉴얼이 함께 제시됩니다. 이러한 매뉴얼들은 서사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제시되기 때문에 겹치는 내용들이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실제로 겪은 후에 주인공이 다른 이들을 위해 남기는 매뉴얼인 셈이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면 이 책은 쉽게 읽힙니다. 좀비를 믿지 않던 자가 어떻게 좀비를 만나 그를 물리치고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다루는 모티프는 여타 액션영화에서도 흔히 보아온 모티프이기 때문에 친숙합니다. 이러한 친숙함은 독서의 속도를 높이고, 대충 빤한 결말을 예상하는 와중에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읽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그러니까 나도 결국은 좀비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고 훗날 '나는 다 알고 미리 준비했지'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미 좀비의 존재 자체를 좀 더 친숙하게 여기는 서양과는 다른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반영해서 쓴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좀비를 피해 대피하는 경로는 상수-합정 구간이라 읽으면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서 좀 더 실감이 난달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여진 역사 속 좀비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들은 어디까지 믿어야하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고도 다소 아쉬웠던 점은 오타나 비문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일일이 다 체크를 해뒀는데 이것도 한 번 정리를 해야겠지요), 그리고 소재 자체는 그렇게 뻔하지 않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너무 뻔했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책을 빨리 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꼼꼼하게 교정과 교열이 이뤄졌으면 좋겠고요, 좀비 소재가 이미 현대인들에게는 충분히 익숙한 만큼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습니다. 다음 번에는 말이죠. (아직 좀비 서비이벌 가이드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 책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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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 그리폰 북스 9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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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책들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 나왔던 비슷한 책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평가되는 책들 말입니다. 예를 들면 입센의 [인형의 집]이 나왔을 때 문학 속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제시로 주목받았고 지금까지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습니다.


앨프리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 역시 SF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읽은 건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그 전부터 익히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기 전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내게는 별로 대단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과 대단한 작품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흔히 고전으로 손꼽는 작품들을 읽을 때 이런 부담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면 저는 이미 등장 당시 파문을 일으키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고전들 이후의 작품들도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문학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 이전의 작품들만 읽다가 그 중요한 작품을 읽었다면 저 역시 똑같이 놀라고 감탄하고 충격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고전과 최근 작품들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고 있고, 또 처음부터 그런 문학사적 의미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읽는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왔을 때는 굉장히 신선했겠지만 지금 봐서는 크게 놀랍지 않은 작품들(하지만 그런 측면을 떠나 지금도 여전히 훌륭하고 감동적인 작품들)을 읽을 때, 이 작품이 왜 중요하고 왜 그 당시에 새로웠는지를 알아보기 힘든 그런 고전들을 읽기 전에는 늘 긴장이 됩니다.


[타이거! 타이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소설의 팬들 사이에 이 작품은 거의 성경 수준으로 모셔지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작품을 읽을 때 그 정도의 감동과 경탄을 경험하길 기대하고 또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가 그렇듯 이 사람들은 다른 시대를 동경했다.

p.11


초반에 읽은 이 문장은 제게도 기대감을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었습니다. 걸리버 포일이 우주에서 조난당했다는 설정도, (지금은 꽤 익숙한 모티프이긴 하지만),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전개된 이야기도 모두 흥미로웠습니다. 우주에서 조난 당한 평범한 남자 걸리버 포일이 자신을 구할 수 있었지만 외면하고 가버린 '보가'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면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오직 복수를 위해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다양한 상상력의 소설을 읽어보고 영화도 보고 한 저로서는 이 모든 게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다 읽고 나서 우와! 하면서 찬양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프리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는 매력적입니다. 정신감응이동이라고 불리는 '존트'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앨프리드 베스터라지요. '존트'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뭐가 폭발하는 거지?"

"폭발?"
"터지는 소리 말이야. 꽤 멀리서 들려오는 걸."
"우울한 존트야."
"뭐라고?"
"우울한 존트. 이따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하는 누군가가 이 동굴에 한목숨 바친 거지. 거칠고 울적한 그 어딘가로 가는 거야."
"제길."
"맞아. 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있는 곳을 몰라.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우울한 존트를 하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들이 산맥 속에서 폭발하는 소리를 우리가 듣게 되는 거야. 쾅! 우울한 존트야."

p.102


이 문단은 꼭 미래의 우주의 미래의 감옥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저에게도 공감대를 불러 일으킵니다. 마치 이 작품 속 미래인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존트하듯이 저도 작품을 통해서 지금에서 미래로 또 미래에서 지금으로 존트가 가능한 기분이랄까요. 이런 게 바로 문학의 힘이겠지요. 


이 문단이 좋아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는 '존트'가 '존나 트래블'의 약자냐고 물었습니다. 재미있는 연상입니다. 그리고 꽤 설득력도 있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습니다. 복수라는 삶의 이유를 찾은 후로 다른 사람이 된 걸리버 포일이 능력을 키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책략을 쓰고 위험한 상황을 빠져나가고 사랑하게 된 여인이 결국은 적이고 그 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는 줄거리는 그 자체로 재미를 줍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60년이 지난 작품이라서 그럴까요? 이렇게 다층적이고 능동적인 걸리버 포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놓고도 결국 결말부분에 가서는 좀 시시하게 그를 교화시켜서 착하게 마무리지었던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그 이전의 작품들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들은 앨프리드 베스터가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크게 감탄하지만요. 


쓰다 보니 결국 [타이거! 타이거!]는 의미 있는 작품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바람직하고 평면적이었다면 걸리버 포일은 그야말로 입체적인 인물이니까요. 이 작품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걸리버 포일이라는 인물이기 때문에 인물이 입체적이라는 것은 이야기 또한 입체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SF소설이다보니 단지 강렬한 복수심을 품었다고 해서 평범했던 사람이 이렇게 강하고 다양한 능력을 갖춘 대단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베스터가 살고 있던 그 사회보다 훨씬 나중에 도래할 사회였으니까 그래서 모든 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가가 만들어낸 사회 속의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니까 말입니다. 


이 작품이 문학사에서 가지는 중요한 의미에 대한 논의에 의견을 보태고 끼고 싶다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오히려 더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점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 작품만의 매력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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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마실 - 커피향을 따라 세상 모든 카페골목을 거닐다
심재범 지음 / 이지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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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도 바리스타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비행기 안에 바리스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은 아시아나항공의 심재범 바리스타가 썼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항공사의 바리스타이다보니 여러나라의 다양한 카페를 방문해서 쓴 책입니다.


제목은 [카페 마실]이고 부제는 '커피향을 따라 세상 모든 카페골목을 거닐다'입니다. 제목만 보면 각국의 분위기 좋고 커피향도 좋은 커피숍을 소개한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비슷한 기획의 책이 굉장히 많고, 사실 이런 글들은 블로그에도 잘 소개된 경우가 많아서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책은 제 예상을 빗겨갔습니다.


우선, '마실'이라는 제목이나 부제가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카페들은 '바리스타'라는 전문가의 관점에서 써졌습니다. 좋은 원두를 수입하고 잘 로스팅하고 또 잘 드립하는 카페나 바리스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문용어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관점도 보다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바리스타가 동선이 어떤지, 어떤 로스팅 기계를 쓰는지, 어떤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는지, 어떤 잔을 쓰는지 하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 중간중간에 나름대로의 감상과 개인적인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께는 정말 죄송하게도 그런 글들에는 큰 울림이 없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갔는데 길을 헤맸다든가, 정말 피곤했고 몸이 안 좋았지만 카페를 찾아갔다든가, 유명한 바리스타가 있는 유명한 카페를 찾아가서 어떠한 서비스나 대접을 받았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너무 아무런 감흥 없이 반복적으로 나열돼 있습니다. 카페 한 군데 한 군데를 찾아갔던 기억에 대해서 쓴 부분은 솔직히 말하면 학생이 방학 때 쓴 일기 같았습니다. 그것도 기억 나지 않는 일이나 느낌이나 인상에 대해서 억지로 떠올려서 쓴 듯했습니다. 


사진도 그렇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찍은 사진은 그 이국적인 분위기만으로도 매력을 풍기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 나라의 커피숍에서 찍은 사진들은 충분히 그 자체만으로도 이목을 끌고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바리스타의 입장에서 본인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찍은 듯한 사진 위주였습니다. 기계나 컵이나 원두 등이 클로즈업된 사진이 많았습니다. 전경이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성의 없게 느껴지는 흔들린 사진이나 구도 등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한 사진도 많아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그 지역, 그 카페, 특정 사람만의 고유한 인상이나 그 때의 기분이나 작가만의 인생관이나 뭐 그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잘 드러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여러모로 많이 남았습니다. 차라리 제목이나 부제에서 이 책이 어떠한 성격인지를 잘 드러냈다면 그런 실망이 줄었을 지도 모릅니다. '각국의 유명한 바리스타와 카페 정보'라는 부제가 훨씬 어울립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렇게 다양한 나라를 다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첫 번째 장은 유럽인데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카페가 대부분이고, 커피로는 알아준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카페는 다섯 군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장인 미국에서는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정도, 마지막 장인 일본에서도 도쿄의 카페들이 주입니다.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카페골목을 거닐다'라는 부제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책에 대해 아쉽다고 지적한 많은 부분들이 어쩌면 제목이나 표지에서 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바리스타이거나 바리스타가 되고자 하는 분들은 재미있게 읽었을 지도 모릅니다. 근데 또 바리스타가 보기에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책이 어정쩡하다고 해야할까요. 여행이나 커피나 예쁜 카페를 좋아하는 일반인에게는 큰 감흥이나 꼭 가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하고, 바리스타와 같은 관련 업계 종사자나 전문가에게는 이 책이 아니면 얻기 힘든 정보를 얻거나 이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전문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저는 바리스타까지는 아니지만, 여행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보면서 '아 여기 가고 정말 싶다'라는 강렬한 유혹을 느낀 곳이 별로 없습니다. 출판사와 작가님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아쉬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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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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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잘 안 납니다. 예전엔 이런 소설을 굉장히 재미있어 했었던 것 같긴 한데, 굉장히 재미있어 했었던 게 이런 소설이 맞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이런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를 먼저 말해야겠죠.


일단은 굉장히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너무 매력적이다보니 비현실적입니다. 미스터리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나요? 암튼, 그런데 그 주변 인물들도 다 그렇습니다. 너무 완벽하고 모든 걸 알고 있고 늘 한 발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좀 재미가 없습니다. 너무 완벽한 인물들만 등장하면 오히려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뻔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달까요. 솔직히 말하면 모든 걸 작가가 쓴대로 예측하고 그러지는 못하지만 막상 흘러간 이야기를 돌아보면 뻔하게 느껴진달까요.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왕국]은 전형적인 일본의 장르물의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완벽하고 매력적인 주인공들 역시 일본 장르소설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이나 묘사 방식 역시 그렇습니다.

뜻하지 않은 이유로 어둠의 세계에 들어선 유리카와 그녀를 조종하는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야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기자키와 갑자기 나타난 것 치고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너무 깊이 유리카의 인생에 관여하고 있고 또 야다와도 여러가지로 얽힌 관계는 미스터리를 구성하기 위한 가장 전통적인 요소입니다. 거기다 갑자기 나타나 기자키의 존재에 대해서 경고를 던지는 남자의 등장은 작품에 서스펜스를 더하고, 유리카가 거의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지만 죽고 마는 쇼타의 존재는 드라마를 강화하지만 역시 너무 전통적인 방식이라 통속적입니다.

[왕국]과 짝꿍이라는 [쓰리]를 읽어보지 못한 영향일까요. 물론 작가는 [왕국]과 [쓰리]는 짝꿍이지만 둘 중 무엇을 먼저 읽어도 되고, 다만 하나를 읽고 나머지 하나를 읽으면 더 재미가 있게끔 썼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를 읽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하나의 재미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 듯 싶습니다. 

분명히 이런 전형적인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을 겁니다. 실제로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유수의 상을 받았고 다양한 언론으로부터 찬사도 받았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랐고 많이 읽히고 있는 작가니까요. 다만 저는 너무 완벽하기만한 주인공보다는 어딘가 모자라는 것이 있어 인간적인 주인공에게 끌리고, 계속해서 허를 찌르는 데에만 집중하는 이야기보다는 반전의 묘미는 좀 떨어져도 인생의 묘미가 엿보이는 이야기가 좋을 뿐입니다.

이 서평의 도입부에서 이 책이 마치 별로 재미 없었다는 듯 시작한 것 같기도 한데 사실은 단숨에 읽었습니다. 재미는 분명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계속해서 주인공은 궁지에 몰리기 때문에 과연 상황은 어떻게 흘러갈지, 무슨 일이 생기고 우리의 주인공은 그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부라는 점에 기인해서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유리카는 매춘부가 아닙니다.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충분히 이용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매춘의 단계까지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공감이 덜 갑니다. 드라마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제 아무리 악한이라도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데, 유리카나 야다나 기자키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쓰고 보니 계속해서 반복이네요.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이 작품은 유리카의 성적 매력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과 성에 대한 묘사가 적지 않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도 남자작가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주의해서 읽으면 또다른 읽는 재미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여자작가라면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을 것 같은 남성중심의 묘사가 많고 강합니다. 그런 특징에 대해 남성중심적 시각이네 어쩌네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다만 그런 점을 인지하고 읽어보면 분명한 차이가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읽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라고 생각해준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작년에 읽은 오기 오가스와 사이 가담의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라는 책을 읽은 후에야 이러한 차이를 비로소 인지할 수 있게 됐거든요. 

[왕국]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 굉장히 허망한 곳입니다. 그 왕국의 주인이고 지배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조차 사실은 그 왕국에 제대로 속해있지 못하고 전혀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달성했다고 해도 당신은 허망함을 느낄 뿐이야."
"넌 아무것도 모르는군."
기자키가 돌연 웃는다. 
"그때는 허망함을 즐기면 되잖아.......그것이 이 세계의 대답이야."

말로는 허망함을 즐긴다고 하지만, 그래서 굉장히 쿨하고 시크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허망함을 즐기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것을 즐기거나 행복한 것을 즐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현대의 유행어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피할 수 없으니까 즐기(려고 노력해보)는 거지, 어쩔 수 없으니까 즐기(려고 애써보)는 거지, 그게 정말 즐거워서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허망함은 처음부터 추구하거나 이루고자 했던 목표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그저 어떤 것을 이뤘는데 뒤따라오는 것이 허망함이라면 그것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좋게 봐준 겁니다.

실제로 인생은 허망합니다. 허망할 때가 있습니다. 허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소설 속의 삶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또 달라서, 우리는 전혀 완벽하지 않고 한 치 앞도 모르고 유리카처럼 모든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도 못해서, 그러니까 앞서 제가 단점으로 언급했던 이 소설의 비현실성 덕분에, 그래도 오히려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다 쓰고 보니 그렇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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