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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 1 ㅣ 밤과 낮 사이 1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평점 :
[밤과 낮 사이]는 영미권 장르소설 비평가와 편집자들이 선택한 단편 모음집입니다. 2권까지 있습니다. 1권에는 영화화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등으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를 비롯한 16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장르소설 콜렉션인 만큼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CSI와 같은 범죄미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줍니다. 전형적이 범죄소설이나 미스터리의 문법을 따른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대단한 반전이나 명확한 하나의 범죄사건이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도 있습니다.
반전의 매력으로 말하자면 첫 작품으로 실려 있는 패트리샤 애보트의 <그들 욕망의 도구>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진실에 대한 질문을 오빠에게 던질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상처를 품고 있었던 여동생의 오해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반전의 매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편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문학적인 측면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안겨줍니다.
또 다른 반전 작품들로는 마틴 에드워즈의 <책 제본가의 도제>, 피터 로빈슨의 <개 산책시키기>, 게리 필립스의 <킴 노박 효과> 등이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특성상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작품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소개하기는 그렇습니다. 다만 <책 제본가의 도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측면이 있습니다. <개 산책시키기>는 전형적인 범죄소설의 면모를 갖고 있고, <킴 노박 효과>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을 떠올리게합니다.
톰 피치릴리의 <밤과 낮 사이>나 낸시 피커드의 <심술생크스 여사 유감>, 조이스 캐롤 오츠의 <첫 남편>, 숀 셰코버의 <죽음과도 같은 잠>은 모두 어쩌다보니 마지막에는 누군가 죽게 되거나 죽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발적인 살인도 있고, 자기를 지키기 위한 살인도 있고, 보복성 살인도 있습니다. 쓰고 보니 이러한 3가지 형태의 살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인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이클 코넬리의 <아버지날>과 제레미아 힐리의 <모자 족인>은 수사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사건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면, 이 두 작품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가 등장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CSI와 같은 수사미드의 특징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익숙하게 범인을 쫓고, 그들의 증언에서 거짓말과 진실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묶어서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T.제퍼슨 파커의 <스킨헤드 센트럴>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범죄의 정도가 가볍고(?), 그 범죄의 위협을 받는 자들의 대처방법 역시 유합니다. 장르소설이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달까요.
또 샬레인 해리스의 <운이 좋아>는 유일하게 판타지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마법을 쓰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마법을 쓰긴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과 그 실적(?)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단편 안에 이런 소재의 작품을 밀도 있고 완성도 있게 풀어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소 유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교훈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있기도 하고요.
스콧 필립스의 <뱁스>는 큰 이야기의 중간의 있는 에피소드 같았습니다. 성장소설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듯 합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고 다 자라지 않은 주인공이 나오는 장편 소설 가운데, 뱁스라는 한 멋진 여성을 만나 겪은 짧은 사건에 대한 한 챕터 같은 작품입니다.
메건 애보트의 <즐거운 응원단>은 이 책의 16편의 작품 중 살인이나 강력범죄가 등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물론, 마약과 등등의 장르 소설로의 기본 요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어쨌든 직접적으로 살인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섬뜩한 작품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기를 쓰지 않고 죽이지 않고도 여자의 복수는 이렇게 살벌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빌 크라이더의 <교차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장르 소설이라 그런지, 실제로 많은 작품들이 특정 영화나 특정 장르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와 결국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결말까지, 특정 사건의 강렬함보다는 캐릭터와 분위기가 작품을 이끌어갑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 중 하나는 마지막으로 언급할 스티브 호큰스미스의 <악마의 땅>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르소설의 특성상 '이야기' 자체가 중심이어서 문장이 특별히 좋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는 작품들이 별로 없었습니다(다만, 번역에서 영어가 매끄럽게 우리말로 옮겨지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들이 꽤 있었고, 거기에서 오는 개성(?), 어색함(?)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화자의 캐릭터와 거기서 나오는 말투와 문체가 재미있었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영화가 조금씩은 유머를 갖고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제가, 결국은 또 여러 장르소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머러스한 문체의 이 작품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나봅니다. 재미는 웃김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아쉬웠던 점은, 앞서 잠깐 언급한 번역의 문제, 그리고 편집자님께서 작품들을 빨리 소개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셨나봅니다. 후반 작품들 중에는 마친 문장에 미처 마침표도 찍지 않고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채 다음 문장을 시작한 곳도 두어군데 있었습니다말하자면 이런 식이었죠. 또 작가소개 부분도 받은 상을 열거하는 것보다는 대표작품 위주로 소개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대표작품들 소개도 있었지만, 상받은 게 더 부각돼서 소개된 것 같은 인상이었거든요. 그리고 영문 제목에 'Beetween the Dark and the Daylight'라고 돼 있는데, 이건 정녕 의도된 바이기를 빌었습니다. 벌써 1, 2권이 하나의 콜렉션으로 많이 찍혀서 시중에 나왔을텐데 다른 데도 아니고 표지의 이런 오타는 좀 안타깝습니다. 1, 2권을 나란히 놓으면 1권에는 'Beetween the Dark'가 2권에는 'and the Daylight'가 써 있어서 비로소 전체 영문제목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이 16편의 작품들이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순서로 실리게 됐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각각의 색깔이 다양해서 사실 저에게 '그럼 너라면 어떤 순서로 실었을 것 같니?'라고 물어본다면 저도 입을 다물 것 같긴 합니다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된 일부 작가들은 한국에 작품이 번역되지 않은 경우도 꽤 많을 듯 합니다.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또 장르문학으로 각각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작가들의 대표 단편들이고요. 그래서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이렇게 단편적으로라도(? 단편소설이니까 :) 만나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이어서 읽게 될 2권에서는 또 어떤 작품들을 보게 될 지 기대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