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타이거! 그리폰 북스 9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전설적인 책들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 나왔던 비슷한 책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평가되는 책들 말입니다. 예를 들면 입센의 [인형의 집]이 나왔을 때 문학 속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제시로 주목받았고 지금까지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습니다.


앨프리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 역시 SF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읽은 건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그 전부터 익히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기 전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내게는 별로 대단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과 대단한 작품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흔히 고전으로 손꼽는 작품들을 읽을 때 이런 부담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면 저는 이미 등장 당시 파문을 일으키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고전들 이후의 작품들도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문학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 이전의 작품들만 읽다가 그 중요한 작품을 읽었다면 저 역시 똑같이 놀라고 감탄하고 충격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고전과 최근 작품들을 왔다갔다 하면서 읽고 있고, 또 처음부터 그런 문학사적 의미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읽는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왔을 때는 굉장히 신선했겠지만 지금 봐서는 크게 놀랍지 않은 작품들(하지만 그런 측면을 떠나 지금도 여전히 훌륭하고 감동적인 작품들)을 읽을 때, 이 작품이 왜 중요하고 왜 그 당시에 새로웠는지를 알아보기 힘든 그런 고전들을 읽기 전에는 늘 긴장이 됩니다.


[타이거! 타이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SF소설의 팬들 사이에 이 작품은 거의 성경 수준으로 모셔지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작품을 읽을 때 그 정도의 감동과 경탄을 경험하길 기대하고 또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가 그렇듯 이 사람들은 다른 시대를 동경했다.

p.11


초반에 읽은 이 문장은 제게도 기대감을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었습니다. 걸리버 포일이 우주에서 조난당했다는 설정도, (지금은 꽤 익숙한 모티프이긴 하지만),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전개된 이야기도 모두 흥미로웠습니다. 우주에서 조난 당한 평범한 남자 걸리버 포일이 자신을 구할 수 있었지만 외면하고 가버린 '보가'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면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오직 복수를 위해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다양한 상상력의 소설을 읽어보고 영화도 보고 한 저로서는 이 모든 게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다 읽고 나서 우와! 하면서 찬양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프리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는 매력적입니다. 정신감응이동이라고 불리는 '존트'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앨프리드 베스터라지요. '존트'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뭐가 폭발하는 거지?"

"폭발?"
"터지는 소리 말이야. 꽤 멀리서 들려오는 걸."
"우울한 존트야."
"뭐라고?"
"우울한 존트. 이따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하는 누군가가 이 동굴에 한목숨 바친 거지. 거칠고 울적한 그 어딘가로 가는 거야."
"제길."
"맞아. 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있는 곳을 몰라.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우울한 존트를 하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들이 산맥 속에서 폭발하는 소리를 우리가 듣게 되는 거야. 쾅! 우울한 존트야."

p.102


이 문단은 꼭 미래의 우주의 미래의 감옥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저에게도 공감대를 불러 일으킵니다. 마치 이 작품 속 미래인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존트하듯이 저도 작품을 통해서 지금에서 미래로 또 미래에서 지금으로 존트가 가능한 기분이랄까요. 이런 게 바로 문학의 힘이겠지요. 


이 문단이 좋아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는 '존트'가 '존나 트래블'의 약자냐고 물었습니다. 재미있는 연상입니다. 그리고 꽤 설득력도 있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습니다. 복수라는 삶의 이유를 찾은 후로 다른 사람이 된 걸리버 포일이 능력을 키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책략을 쓰고 위험한 상황을 빠져나가고 사랑하게 된 여인이 결국은 적이고 그 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는 줄거리는 그 자체로 재미를 줍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60년이 지난 작품이라서 그럴까요? 이렇게 다층적이고 능동적인 걸리버 포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놓고도 결국 결말부분에 가서는 좀 시시하게 그를 교화시켜서 착하게 마무리지었던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그 이전의 작품들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들은 앨프리드 베스터가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크게 감탄하지만요. 


쓰다 보니 결국 [타이거! 타이거!]는 의미 있는 작품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바람직하고 평면적이었다면 걸리버 포일은 그야말로 입체적인 인물이니까요. 이 작품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은 걸리버 포일이라는 인물이기 때문에 인물이 입체적이라는 것은 이야기 또한 입체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SF소설이다보니 단지 강렬한 복수심을 품었다고 해서 평범했던 사람이 이렇게 강하고 다양한 능력을 갖춘 대단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베스터가 살고 있던 그 사회보다 훨씬 나중에 도래할 사회였으니까 그래서 모든 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가가 만들어낸 사회 속의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니까 말입니다. 


이 작품이 문학사에서 가지는 중요한 의미에 대한 논의에 의견을 보태고 끼고 싶다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오히려 더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점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 작품만의 매력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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