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제너레이션 -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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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책의 등장인물입니다. 좀비 불신론자죠. 산통 깨졌나요? 죄송합니다. 낚이셨나요? 그것도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는 좀비 불신론자입니다. 놀래키는 영화를 싫어해서, 시체인 줄 알았던 좀비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안 보이는 데서 좀비가 갑자기 나타나는 좀비 영화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괜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계속 "에이, 좀비가 어딨어?! 그거 다 상상의 산물이지!"하고 좀비 존재를 불신하고 있다가, 언젠가 정말 좀비가 나타나면 속수무책으로 꼼짝없이 당하고 나도 좀비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안 믿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나름대로 몇 가지는 기억하려고 애 쓰며 읽게 되더군요. 안 믿긴 안 믿는데, 혹시 모르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비극은 사실 어느 정도 예고되는 경향이 있어서 '미리 준비하고 대비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를 남기니까요.

좀비 제너레이션은 그런 책입니다. 그러니까, 좀비 불신론자이던 한 카페의 사장인 주인공이 어떻게 좀비 제너레이션으로 편입돼 좀비들에게 감염되지 않고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하고 매뉴얼까지 쓰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죠. 좀비가 나타났을 때의 징후나 대피장소, 이동수단, 무기 등에 대한 매뉴얼이 함께 제시됩니다. 이러한 매뉴얼들은 서사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제시되기 때문에 겹치는 내용들이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실제로 겪은 후에 주인공이 다른 이들을 위해 남기는 매뉴얼인 셈이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면 이 책은 쉽게 읽힙니다. 좀비를 믿지 않던 자가 어떻게 좀비를 만나 그를 물리치고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다루는 모티프는 여타 액션영화에서도 흔히 보아온 모티프이기 때문에 친숙합니다. 이러한 친숙함은 독서의 속도를 높이고, 대충 빤한 결말을 예상하는 와중에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읽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그러니까 나도 결국은 좀비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고 훗날 '나는 다 알고 미리 준비했지'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미 좀비의 존재 자체를 좀 더 친숙하게 여기는 서양과는 다른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반영해서 쓴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좀비를 피해 대피하는 경로는 상수-합정 구간이라 읽으면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서 좀 더 실감이 난달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여진 역사 속 좀비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들은 어디까지 믿어야하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고도 다소 아쉬웠던 점은 오타나 비문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일일이 다 체크를 해뒀는데 이것도 한 번 정리를 해야겠지요), 그리고 소재 자체는 그렇게 뻔하지 않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너무 뻔했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책을 빨리 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꼼꼼하게 교정과 교열이 이뤄졌으면 좋겠고요, 좀비 소재가 이미 현대인들에게는 충분히 익숙한 만큼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습니다. 다음 번에는 말이죠. (아직 좀비 서비이벌 가이드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 책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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