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삼성 앞에 다녀왔습니다.

시사저널 파업이 벌써 1년이 되었는데도, 변한 것이 없어서 답답한 심정으로 다녀왔습니다.

정동에 있는 시사저널 본사에서 시사저널 기자들은 기자증과 회사에서 받은 상패를 반납하는 행사를 갖고 성명서 낭독과 경과보고 등을 했습니다.

삼성으로 이동해서 성명서를 읽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대표하는 독자로 삼성 앞에 섰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말을 정리했는데, 결국 횡설수설하고 만 것 같습니다.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독자이고 안일한 독자라서 시사모에서도 '안일'이라고 불립니다.
지금부터 제가 안일한 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기막힌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의 언론환경을 저는 '언론자유의 양극화'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주요 일간지에서 지방지에 이르기까지 요즘 언론자유를 부르짖지 않는 언론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1년째 싸우고 있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언론자유'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습니다.
언론은 약자를 대변하고 강자에게 저항하고 감시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매일 보도되는 언론자유는 강자와 강자의 세 싸움에 다름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외치는 언론자유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는 언론자유의 과잉이자, 언론자유의 빈곤이자, 언론자유의 왜곡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점에 시사저널 싸움이 대표성을 갖는 이유는
자본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대결전은
언론이 자본, 아니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지
반대로 삼성이 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은 저와 같은 독자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언론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매우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시장에서 토마토와 사과를 다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토마토만 먹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즉, '읽을 권리'가 무참히 살해당할지도 모릅니다.
독자는 '읽을 권리'를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사저널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기자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언론의 정의 같은 것은 모른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무척 상식적인 말입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1년간 상식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싸움에서 무너진다면 우리는 상식이 없는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상식이 없는 시대에 사는 독자들은 '안일한 독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무거워져 가는 '상식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덜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 '안일한 독자'라는 허명을 벗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연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평출처(경향신문 장도리) : http://news.khan.co.kr/kh_cartoon/khan_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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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와 적립금 분리가 고객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게 정말 그래서 그럴까 하는 의심이 요즘 자꾸 든다.
가뜩이나 책 사기도 어려워진 환경인데, 콧물 받아먹듯 마일리지를 받아 쓰다가는 책 파산이라도 할 것 같다.

최근 구매 내역을 보면 내가 78,120원의 책을 사는 동안 2,140원의 마일리지가 생겼다.
책에 따라 마일리지가 다르겠지만,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분리하고 나서 마일리지의 활용도가 극히 부진해졌다. 예전에는 그래도 몇 권 사면 적립금으로 전환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노라 삼수갑산이다.
아~ 옛날이여어~~~


로쟈
에밀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1/1 가격 : 29,750 원
마일리지 : 900원 (3%)

파란여우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1/1 가격 : 11,250 원
마일리지 : 340원 (3%)

 


melory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1/1 가격 : 7,500 원
마일리지 : 230원 (3%)

 

 


夢猫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1/1 가격 : 6,400 원
마일리지 : 200원 (3%)

 


젊은 느티나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1/1 가격 : 6,000 원
마일리지 : 60원 (1%)

파란여우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1/1 가격 : 6,000 원
마일리지 : 180원 (3%)

배혜경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1/1 가격 : 5,600 원
마일리지 : 60원 (1%)

raneenrajah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1/1 가격 : 5,620 원
마일리지 : 170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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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마일리지가 10,000원이 넘어야하니 힘겹습니다. 그냥 세월아 네월아 놔두다가 어느 순간 쌓이면 그때 써먹곤 하죠.
 

얼마 전에 아주 비통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것은 언론노조의 비리 사건입니다.


언론노조 비리 관련기사(경향신문 1면 top)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4271831461&code=940705



시사저널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의 정신을 허공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사건이었습니다.

언론에 왜 '정신'이라는 헌사가 붙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에 대해 용감하게 대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헌사를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언론' 자체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추상적인 개념은 저 위대한 철인과 같이 불멸의 생명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한낱 실바람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현실세계에서 물리적으로 보존하는 사람들이 '언론노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이 현실세계에서 물리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시사저널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 언론을 나날이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분들이 있기에 언론과 언론정신이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커다란 주축이 안일했습니다.
그들이 안일한 이유는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도덕성과 투명성에 대한 무지입니다.
문제를 없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찾아내어 하나씩 제거할 수는 있습니다.
보도된 사실을 추론해 보면, 언론노조는 문제를 찾아내는 데 대한 의지조차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동종업계에 대한 이야기도 하나 합시다.
이 사태가 발생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이에 대한 성명은 고사하고 의견조차 없다는 데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는 시사저널 기사삭제에 버금가는 커다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사저널 투쟁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시사저널의 입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겨레21의 고경태 전 편집장이 '고발당한 칼럼'에서 '동종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신경이 쓰였습니다.
언론은 거대권력 청와대뿐만 아니라 거대기업 삼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종언론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종업계 관습법'을 적용하는 거 아닌가요?
시사저널이 언론노조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이번에 발생한 비리와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으며,
'동종업계'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동종업계 관습법'의 정체가 무엇인지 심히 의심이 갑니다.
독자로서 저는 사실 그것의 명확한 의미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조차 궁금합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여 명쾌한 지적을 해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성명은 당사자가 제시하는 것이라면,
언론의 독자로서 저는 이 문제의 당사자라 생각하고 이와 같은 성명을 게재합니다.
경향신문 등 이 사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매체의 기사가 제게는 성명으로 읽힙니다
시사저널이 당사자인지는 시사저널의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
언론의 정신을 바로세우려고 거리로 나선 현재의 시사저널은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성찰과 물음은 정당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非,反 조중동 對 조중동'의 대립뿐만 아니라
건강한 언론환경을 위해서 언론의 펜을 좀더 깊숙하고 위험한 곳까지 겨눠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펜의 강적이 과연 '돈'인지 '펜'인지를 판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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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4-3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에 더이상 놀라지 않는 걸 보면 저도 한국에 너무 오래 산 모양입니다...

승주나무 2007-04-3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가지 마세요.. 로쟈 니임~~
 

동양사상 시리즈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는데, 여태껏 사서를 정리하지 못했네요. 애초에는 한 달에 하나씩 다루려고 했는데, 무리했나 봅니다.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의 저항이 만만치 않네요. 이번 회부터는 '사회화'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만약 고전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면 현재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전에는 항상 그에 어울리는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혹시 시리즈를 기다리신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있네요. 아래는 지난 시리즈의 목록입니다. 링크를 걸었으니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동양사상1]<논어> 정제된 인생의 철학적 시, 혹은 시적 철학

[동양사상2]<맹자>난세에 지성인으로 산다는 것

 

 

모든 學은 大學이라야 한다

- 총기난사사건과 관련하여

 

1. 사설

 

나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을 문화가 저지른 살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총기 허용에 대해서 대학은 '불행하지만 미국에서 총기 금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이 學에 대한 심각한 왜곡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미국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으로 파견된 미군과 비교될 때가 종종 있다. 미군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엽기적인 성폭행(60대 할머니를 성폭행하는 등)이나 폭력으로 매스컴에 이름을 알리며, 한국인 유학생들은 방황하는 문화상이나 그 안에서 배태된 '마약 문제', '각종 폭력 문제'에 연루됨으로써 미국인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그에 대한 결정판이 이번 총기 난사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이 사건은 한국에 더 책임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교육 문화가 이번 사건의 진범이라고 생각한다. 범인은 으레 볼 수 있는 유학생 부적응자로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아 미국 유학길로 내몰렸으리라 생각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10만에 가까운 유학생이다. 이들 중에 더러는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잠재적 부적응자가 자꾸 늘어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런 대목이다. 

 


미 이민세관국(ICE)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를 기준으로 미국 유학생 감시시스템(SEVIS)에 등록된 한국인은 9만3728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에 있는 전체 외국인 유학생 63만998명 가운데 14.9%를 차지, 출신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인도(7만6708명), 중국(6만850명), 일본(4만5820명), 대만(3만3651명) 등의 순이었다.

- 美 한국유학생 10만시대···송금도 44억弗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번 사건에서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부분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미국에 유학보내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부모/학생의 경우는 미국 유학이 바람직한 진로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명문사학이라고 일컫는 이름 있는 대학과 교육 당국은 빠져나가는 유학생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내 글의 전매특허인 '사설'은 부담 없고 잘 읽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총기 난사사건과 같은 침통한 사건을 당하여 사설의 방향이 쏠린 듯한 인상을 받는다. 논어와 맹자에 대한 서평을 힘들게 쓰고 나서 대학과 중용은 빨리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과목의 분량을 합쳐야 논어만큼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두 달이라는 공백기를 보내고 말았다. 그보다 나를 더 괴롭힌 것은 내가 정한 룰 때문이다. 대학을 쓰기에 앞서 나는 두 달간 '대학'만을 청취했다. 그래서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특히 관료주의처럼 체계가 딱 잡혀 있어서 극적 분위기도 나지 않기 때문에 대학을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때문에 이 글을 쓰고 나서 얼른 대학에서 빠져 나와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2. 왜곡된 學과 大學에 대한 오해

 

學에 대한 왜곡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완전히 절단된 제국주의 시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는 제대로 된 學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진정한 독립국이 되지 못했으며, 광복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최근 새삼 깨달았다. 굴욕적인 FTA 협상과정과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 처참히 농락당한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난사 사건을 목격하면서부터 나는 주권 없는 국가의 국민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일본에게 지배당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리의 것을 철저히 버리고, 서구의 문물에 경도된다. 전통문화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일제 시대를 중심으로 일제 이전 문화와 일제 이후 문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가 되고 말았다. 學이라는 말 자체에는 '두 사람'이 전제되어 있다. 즉 혼자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전수를 통해 연명하는 것이다. 교육과 학습은 매우 근원적인 문제이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학문의 끈이 놓아진다는 것은 아틀라스가 지구를 들다 말고 도망쳐 버린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상호적인 學이 개인적인 學으로 분리와 변질을 거듭하였고, 성찰이자 목적으로의 學이 도구의 學으로 전락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앎의 學이 헤게모니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 매우 결정적 타격을 안겼으며 이것이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난사사건은 물론 미국 유학 1위와 함께 문제아 한인 유학생들을 낳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學뿐만 아니라 부모의 자식들 또한 헤게모니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선택에 의한 미국행이었다면 최소한의 책임이 있었을진대, 자의와는 무관하게 내몰렸다면 그 책임은 내몬 자 즉 한국사회가 져야 하는 것이다.

이제 대학으로 돌아오자. 대학은 예기의 편명으로서의 위치와 사서로서의 위치를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먼저 사서로서의 위치는 소학과 대학이라는 교육의 두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삼대(하은주)가 융성할 때는 그 법도가 사뭇 잘 갖춰져 있었다. 때문에 왕궁이 있는 서울에서부터 일개 향촌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이 없는 곳이 없었다. 여덟 살이 되면 왕의 공자로부터 서민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으로 들어가서 청소하고 어른을 모시고 집안에서와 밖에서 해야 하는 행동지침과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점괘 보기 등 기본적인 교양을 가르쳤다. 그리고 열다섯이 되면 역시 천자의 자제나 대신의 자제, 그리고 서민의 자제 중 뛰어난 자를 가려 모두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도를 심층적으로 익혔으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크고 작은 과목들이 적절히 분류되고 완성되었다.

- 대학 서문(주자)

 

그러니까 소학은 플라톤이 주창한 지,덕,체 중에 체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소학을 '초중등 과정'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천지자연의 형이상학적 이치를 초중등이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풀어놓았고, 성찰의 근원이 되는 '행동의 표본'들을 축적하는 시기가 소학의 시기인 것이다.

이것은 송대(宋代) 이후의 관점이므로 대학의 본래 취지와 다를 수 있다. 대학은 원래 예기(禮記)라는 경서의 한 편명이었다. 여기서의 대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예기를 확인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이 글에서는 '學'에 관한 이야기로 갈음하려 한다. 한중일은 '배움'이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우리나라는 '공부(工夫)'라고 하고, 일본은 '면강(勉强)', 중국은 그냥 '學'이라고 한다. 공부는 불교 용어인 듯하다.  ‘공부(工夫)’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 또는 수행에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본분에 힘을 다하는 것이란 뜻이다. 공부(功夫)라고도 하며, 주로 선종에서 많이 쓰며, 선수행에 힘쓰는 것을 말한다. '면강(勉强)'은 원래 중용에 나온 구절로서 '면강이행지(勉强而行之, 고된 노력 끝에 실천할 수 있다)'의 의미이지만, 일본에서는 '산고와 같이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는 노력'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學이라는 일반명사를 쓰고 있다. 13억 중국인의 교과서인 논어의 가장 첫머리의 제목이 '학이(學而)'라는 말에서도 보듯 중국인들은 배움에 대해 별다른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환경일 수도 있지만, 공부에 대해서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고 미화하는 부분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수명사가 될 때, 그것은 자칫 특권의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 들끓고 있는 향학렬이나 식자층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 등을 종합해 볼 때 學은 보편성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분극복을 위한 주무기로 완전히 전락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양극화를 가장 고착화시키는 것이 바로 '학력 세습'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근한 예로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역시 일반명사로서의 學이 아니라 신분상승이나 신분유지,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도구적 특수명사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大'의 쓰임이다. 이 글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大人과 巨人이다. 거인은 외양이 큰 사람을 의미하며 대인은 내면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즉 대인은 외양과 무관한 그 사람의 본질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大國과 强國은 어떤가. 강국은 미국처럼 깡패같이 힘만 센 나라를 지칭한다.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있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모든 나라를 감화할 수 있는 나라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오해하는 말 중에 고학력자와 대학자가 있다. 고학력자는 가방끈이 긴 자를 말하는데, 이것 역시 대학자와 구분이 된다.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그가 비록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기꺼이 그에게 '學'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겠다'(논어)라는 공자의 말과 같이 대학자는 가방끈과 상관 없이 많은 사람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대학은 '대인의 학문'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된다. 결국 대학이라는 말 속에는 人이 감추어져 있으며 강력한 휴머니즘을 함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大學의 체계와 특징

 

대학은 한 마디로 삼강령 팔조목으로 규정된다. 즉 천성적으로 품부받은 선한 덕망을 확충시키는 데 있으며(在明明德), 이를 통해 만백성에게 혜택이 골고루 나눠지도록 하여 나날이 거듭나도록 만들며(在新民 또는 在親民이며 함께 해석함),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지극한 선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게 하는 데 있다(在止於至善)

이를 실천하는 방법론으로 배움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데 그것을 팔조목이라고 한다. 즉 온세계의 지도자가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국정에 앞서 가정을 잘 다독여야 하며, 온가족이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교양을 이뤄야만 한다. 이것이 행위의 준칙이다. 이어서 인식의 준칙이 나온다. 교양이 온몸에 충일하려면 마음공부를 바르게 해야 하는데(正心), 마음공부는 한치의 태만함도 없이 지극하고 전일한 성실함에서 나온다(誠意) 마음을 집중시켜 전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지의 안개가 걷혀야 한다.(致知) 지식의 최고 경지는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과 동화되는 데 있다.(格物)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이 역순으로 반복되는 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순환의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상향식도 아니고 하양식도 아니며 상호 쌍방향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음양이론의 발현을 대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장구들은 삼강령 팔조목의 주석에 해당한다.

 

대학에서 재미있는 것은 지식의 한계를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한계란 지식의 유한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식의 한계가 결정되는 순간 행동과 실천의 기반이 생긴다. 유학의 지식은 어디까지나 행위를 위한 지식이기 때문에 고도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지양하고 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문자에 대한 독점현상이 강하지 않았다. 주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대학의 가르침은 몸소 행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 역시 일반시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상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유학이 보편성을 갖게 된 데는 이러한 연유가 있다.

앞서는 '차등애'에 대해서 다뤘지만, '차등' 역시 유학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것은 대학에서도 드러난다. 사람마다 기질의 차이가 있고 저마다 잘하는 것이 있듯이 氣는 단일하지 않다.이는 중용에서 더욱 명확하게 그려지는 데, 학과과정을 통해 학문수준이 높아지는 단계라는 것이 동양에서는 의미가 없다. 결국 스스로 깨달은 바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수학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일종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개념이 여기서 등장하는 데 이른바 '활연관통론(豁然貫通論)'이 그것이다. 남보다 몇 배나 더 노력했지만, 깨달은 바는 남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나 그 반대의 상황을 동양은 매우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일반적인 기준보다 자기 스스로의 기준에 더 신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한계를 단정짓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굴레에 갇힌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굴레'로 단정짓기보다는 '잠재성'으로 인정한다. 만약 그가 굴레를 벗고 일어선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번번이 소개되는데, 자발적 학습이 뿌리를 이룬 동양의 내면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인 것이다.

 

 

4.  大學의 이상적 모델과 몇 가지 경고

 

앞서 대학이 휴머니즘을 함의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유학의 지향점이기도 한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완성되는 정신이 바로 '심광체반(心廣體반, 반은 살질 반)'이다. 즉 덕이 온몸에 충일해 그 반반한 빛이 외양에 자연스레 드러나는 인간형을 말한다. 일관된 인식과 실천을 보이는 지행합일의 인간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 유학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몸소 완성한 자는 진정한 군자라 할 수 있다.

중용으로 치자면 중용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군자라 할 수 있지만, 공자조차도 그런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고백한 바 있다. 때문에 대학은 군자가 진정한 군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피해야 할 점을 설파하고 있는데, 이 역시 대학에서 백미로 치는 문장이다.

 

1. 마음에 노여움이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며, 마음에 한줄기 두려움이 있어도 바름을 얻지 못하고, 따로이 즐기거나 좋아하는 바에 집착하면 역시 바름을 얻지 못하며, 따로 근심하거나 찔리는 바가 있어도 역시 바름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하면 살펴도 보이지 않고,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2. 사람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따로 아끼고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편파적이기 마련이며, 미워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자가 있으면 역시 그에게는 편파적이기 마련이며, 두려워하거나 그 이름에 압도당하는 자가 있어도 역시 편파적이게 되며, 오만하거나 소홀히 다루는 자에 대해서도 편파적이게 된다.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는 경우와 미워하지만 그의 장점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몹시 드물다.

- 대학 전문 7,8장

 

1은 '바름'을 방해하는 내적 요소이며, 2는 관계를 방해하는 외적 요소이다. 이것은 팔조목의 유기적인 순환을 몸소 갖추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이다. 내가 바르게 살고자 하여도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 이유는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당위만 있지 방법론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참여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결국 '불참정부'가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성찰에는 끝이 없으며 '다가감'과 '햇볕과 같은 성의'가 있어야 도달할 수 있다.

 

5. '대학' 텍스트

 

교수신문이 펴낸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에서는 김학주씨의 텍스트(서울대학교출판부)와 함께 박완식씨의 대학(여강출판사)을 소개하고 있다. 두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아 코멘트할 것은 없으나 교수신문의 평에 의하면 김학주씨의 텍스트는 정확하고 매끄러운 원문 번역과 상세한 해석으로 일반인에게 매우 접근도가 높다고 평하고 있다. 김학주씨는 온갖 동양고전을 다 역주한 분이지만, 나 같이 '천착형'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역주가라 생각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견이다. 노자와 장자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박완식씨의 텍스트는 대학의 선구적 주석가인 주자의 주장을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거기다 주자 이외의 설을 첨가해 주자를 보완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내가 접한 텍스트는 전통문화연구회의 성백효본이지만, 원문 텍스트 이외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이동환 씨의 『중용,대학』과 남회근 할아버지의 『남회근 선생의 알기 쉬운 대학 강의』를 언급하고 싶다. 이동환 씨의 텍스트는 자구 해석과 용어는 고지식하고 어렵지만 '천착형'에게는 다소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텍스트이다. 이것도 남명서당에서 교수님의 추천을 받은 텍스트라는 점을 밝힌다. 남회근 할아버지의 텍스트는 주자의 주석에 반해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책값이 비싸고 두꺼운 만큼 일상의 예시와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곁들이고 있으므로, '다양한 담론'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텍스트라 생각한다.

 

      

 

 

 

 

 

6. 大學의 사회학

 

이번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대학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1. 이번 살인은 방황하는 청년이 아니라 문화가 저지른 살인이다.

2. 이것은 學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된 참극이다.

3. 미국의 수정헌법이 아니더라도 총기사용에 대한 금지는 불가능하다.

4. 협력사회, 협력문화의 힘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국무회의에 상정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지금도 국무회의를 하고 있지만 '한낱 택시운전사의 자살'이라는 오늘날의 국무회의는 대체 어느 나라의 국무회의인지 부끄러울 지경이다. 조선이 살인사건에 대한 국무회의를 한 것은 사건의 희소성도 희소성이지만,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에 대한 당국의 유기적인 협력이 주 의제라 할 수 있다.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엽기적인 살인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테러는 일어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분위기이며, 그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사회분위기 자체에 대해서 완전히 무방비하다는 데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학력신장을 위주로 한 교육 병폐는 그대로라고 진단했다.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어요. 대학을 가기 위해 전부를 걸었고 나머지는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죠. ‘학력신장’ 앞에 ‘인성교육’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
그는 학교교육에서 인성도, 학력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겉보기에는 두 마리 토끼 같지만 사실은 ‘한 마리’라고 했다. 학생들의 인간관계를 우선적으로 회복시켜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집중력이 생겨야 학력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 강석준 교장 “인성과 학력은 한마리 토끼”

 

 

"집안을 화목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바로잡지 못하므로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서도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라는 말처럼 대학은 한 가정과 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절대적이다. "일가가 仁을 이루면 국가에 인덕이 넘쳐나지만 한 사람이 탐욕스러운 마음을 먹으면 국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난다"는 말 역시 유의할 대목이다. 가수 김흥국은 4년째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데, 평소 보이던 이미지와는 달리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매우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김흥국 관련기사)이것이 우리 가정의 현주소다. 살인자 조승희 역시 방황하는 1.5세대 이민가족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두 가족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증거이다.

미국이 총기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대학에서 이치로 증명하고 있다.

 

순임금이 천하의 사람들을 仁으로 이끌자 백성들이 이에 화답하였고, 폭군 걸주가 천하 사람들을 포악함으로 이끌자 백성들 역시 이에 화답하였다. 걸주의 백성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약 순임금의 인덕으로 이끌려 한다면 백성들은 극심하게 저항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군자는 자신이 갖춘 것만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자신이 완전무결한 후에야 남의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다.

- 대학, 9장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컬럼바인'이라는 다큐에는 '폭력의 미국 역사'가 잘 그려져 있다. NRA(전민총기협회)로 대표되는 대규모 로비 그룹은 헌법에 총기 소유를 명문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총기에 대한 여론을 압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대 행정부는 물론 언론까지 가세하여 전미에 공포분위기를 심어놓음으로써 무기 소비와 무기 개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디트로이트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캐나다 도시 윈저에는 3년간 총기 살인이 1건 발생했는데, 그것 역시 디트로이트에서 건너온 미국인의 소행이라 한다.

미국의 이야기는 그만 하자. 지면을 거기에 쓸 이유는 없다. 대학을 포함한 유학은 일상적인 수준의 언어 활용에도 불구하고 거론하는 사상의 외연이 광범위하다. 하늘과 땅은 물론 한 국가, 한 가정, 한 사람, 그리고 한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마음의 움직임 등에 대해서 속속들이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용에서 아주 거침없이 펼쳐진다.

대학이 총기 난사 사건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1인으로 시작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왜곡된 學을 바로 세우는 것도 포함된다. 동양의 성어에 호리지차천리지말(毫釐之差千里之末)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우 터럭만큼 조그마한 차이가 천리가 넘는 차이를 만든다는 말이다.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대학의 지론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에 표현된 협력문화와 국가의 운명에 관한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한 사람의 신하가 있는데 이는 매우 단정하면서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맑고 깨끗해서 온몸에 관용이 넘쳐난다. 만약 자기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그는 마치 자신이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뻐하며, 지혜로운 뜻을 가진 사람이 보이면 마음 속으로 그를 신뢰하여 단지 입으로만 찬사를 늘어놓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더욱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다. 이것이 바로 자손과 국민을 보존하는 사고방식이니 매우 커다란 이익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질시하고 큰 뜻을 가진 사람의 메시지를 끝내 무시하여 그를 좌절시키고 만다. 이것은 자손과 국민을 재앙에 빠뜨리는 일이니 그 자체가 커다란 재앙이 아닐 수 없다.

- 대학,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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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7-04-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잘 몰랐네요. 세상에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군요^^;
 

신문 문체가 쉽지만은 않군요. 원고료 2,000원 받은 기념으로 기사 한번 송고해보았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 하신 분 있을른지요^^

 

 

 

파일구리 결제, 당신은 알고 결제하는 것인가?

- '번거로움 없는' 4,400원의 비밀
   오승주(dajak97)   
ㅇ씨 순간 바보되다

파일구리를 사용하는 ㅇ씨는 결제금액 중 가장 저렴한 정기권을 구매하였다. 3개월 이상 구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3개월을 사용해보기로 하였다. 가끔 필요한 자료를 다운받기도 하고 잠시 잊고 있는 사이에 약속된 날짜가 지났다. 그런데 자신의 휴대폰으로 월 사용액 4,400원이 결제되었다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궁금해서 사이트 검을 한 결과 3개월 이후부터는 본인의 동의 없이 자동으로 결제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 결제된 후에는 결제를 취소할 수 없고, 다음달 결제일의 취소만 가능하다. 1개월권(5,500원)보다 저렴하게 구매했던 것이 실수였다. o씨는 순간 바보가 되었다.


공포의 이용약관 17조 3항

"본 유료서비스의 이용 요금에 변경이 필요할 경우 변경의 효력발생일 이전 20일부터 사이트에 고시함으로 이용 요금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유료이용자가 변경된 이용요금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경우, 당사 또는 유료이용자는 이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당사가 유료이용자에게 변경되는 내용을 적시하여 "이용자가 본 공지일로부터 20일이내에 변경된 이용요금에 대한 부동의 의사를 표명하지 아니한 때에는 변경된 이용요금의 적용을 받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라는 취지의 공시를 하였음에도 이용자가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변경된 요금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요즘 약관에 대한 민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복잡한 민원에서부터 곳곳에 숨어있는 독소조항을 확인하는 것은 순전히 고객의 책임으로 '처리'되기 일쑤다. 눈치 빠른 고객은 약관의 조항을 확인하고 불이익을 피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고객은 영락없이 상술에 당해야만 한다. 회사의 안내글을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한번 구입하면 매달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아이템입니다.
따라서 매번 결제하는 번거로움 없이 파일구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결제금액은 부가세10%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제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회사'의 관점인지 '사용자'의 관점인지 그 취지가 사뭇 궁금하다. 고객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자신의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데, 결제 전에 한번이라도 확인을 해주는 게 더 고맙지 않을까.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당연히 서비스가 중지될 테고, 서비스를 계속 받기 위해서는 확인 절차를 통해서 고객은 얼마든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의 매출 감소는 예상할 수 있겠다. 만약 결제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결제를 하지 않는 고객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고객들에게 이런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자동으로 월 4,400원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근시안적인 서비스 정신

LG의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이천에서 가진 계열사 CEO들이 참여하는 정기 행사인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 “첫째도, 둘째도 고객중심 경영”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아직도 단기 실적에 연연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남아있다”며 “고객 만족 추구가 기업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방안임에도 아직도 기업중심적 사고로 경영에 임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2006.8.27일자> '이용자 중심주의'는 글로벌 시장의 대세이다. 인터넷 서비스는 이용자 중심주의에 한발 다가선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도 '말로만 떠드는 고객중심'에서 '행동하는 고객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그렇게 바뀌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서비스의 궁극적 목표가 '한번 왔던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것'이라면 고객이 받는 불만은 기업 존립에 치명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파일구리가 사는 법은 간단하다. 고객들에게 사전에 약관의 내용과 자동결제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표시해야 하며, 서비스 종료일에는 고객에게 선택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결제된 내용을 취소할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 말이 해당 기업에게는 손실이 된다고?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당장 푼돈은 손해보겠지만, 기업을 근본적으로 쇄신시키는 경영 전략이다.
한달에 4,400원씩 '게눈 감추듯' 빼먹는 사이에 고객들은 이미 더 나은 서비스 기업을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파일구리가 충성 고객의 고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같이 지켜볼 일이다.


서비스 후진국에서 소비자가 사는 법

불량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피해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 악덕기업은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치밀한 묘수로 고객들의 주머니를 강탈하고 있다.
파일구리 자동결제 사건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서비스 약관에는 우리가 모르는, 하지만 몰라서는 안 되는 사항들이 숨겨져 있다. 예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동의함' 버튼을 클릭하는 것은, 아무 생각없이 FTA 비준안에 서명하는 것과 같이 대책없는 피해를 야기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같은 서비스 후진국에서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약관은 반드시 읽어볼 것. 그 중에서도 '요금'이나 '서비스/콘텐츠'와 관련된 조항은 면밀히 뜯어볼 것.
2. 결제를 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은 없는지 꼼꼼이 살펴볼 것. 예컨대 파일구리의 경우 본인 동의 없이 자동 결제를 한다는 내용이 없나 살펴볼 것.
3.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하기에 앞서 인터넷 등을 통해 이용자들의 여론을 수렴할 것. 비교적 단위가 큰 잡지나 학습 콘텐츠의 경우 피해 사례가 있을 수 있으므로 검색은 필수!
4. 피해를 입었을 경우 당황하지 말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우체국을 이용한 '내용증명'의 요령에 대해서도 숙지할 것


기업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기에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너무나 오래 노출되었다. 고객이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기업의 횡포에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확인' 또 '확인'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제2의 피해자가 언제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불합리를 고치기 위해 연대하고 요구해야 한다. 함정에 빠졌다면 당신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다음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거기서 끊어야 한다. 우리는 소비자 연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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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2007-04-1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파일구리는 아니고 다른 곳인데..번호변경 했더니 결제안되서 자동으로 취소되었더라구요..암튼 결제할 땐 항상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승주나무 2007-04-1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eⓔ 님//처음 뵙습니다. 아뒤가 특이하군요. 인터넷 서비스에 '지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인터넷도 이제 감시의 눈을 더 강화해야죠

마늘빵 2007-04-1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승주나무님 이런 것도 하세요? ^^ 학부시절에 한겨레랑 동아, 중앙에서 몇개월 활동했었어요. 지금은 여력도 없고 열정도 없슴다. 승주나무님 홧팅.

승주나무 2007-04-1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프 님//할아버지 같이 왜 기래요? '~시절에', '지금은~' 듣기 민망하군요. 그럼 저 같은 사람은 어찌 살라고?ㅠㅠ 제가 아프 님의 열정을 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드리죠^^

하이드 2007-04-1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처음에 결제할때 '자동결제'라고 분명히 커다랗게 명시 되어 있는데, 못 보고 결제하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같은데요 -_-a '파일구리' 에 대해서는(제가 생각하는 그 싸이트가 맞다면) 딱히 자동결제 하고 있지 않지만, 월스트릿 저널이라던가, 이뮤직이라던가 오더블닷컴audible.com 에서는 자동결제를 하고 있는데. no offence 저 같은 소비자도 있다구요. ^^ 미국에선(이라고 얘기하는건 재수없으려나) 일반화된 결제 방법이지요. 더 저렴하게 번거로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승주나무 2007-04-1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이드 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좀 확대해석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부터는 '들이대고보는' 습관을 좀 고쳐야겠어요.. 암튼 의견 감사합니다.

antitheme 2007-04-1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디 신문기사 퍼오셨나 했어요.

승주나무 2007-04-1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titheme 님//오랜만입니다. 이 기사 채택되지 않았어요. 좀더 정진하라는 말 같네요. 요즘은 왜 이리 좌절모드인지 ㅠㅠ

오사마 2008-10-22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저도 피해자네요.. 모르고 있었음...
전 결제할때 파일구리 포인트Plus 아이템 이라고만 쓰여있고 자동결제라는 말 없었는데.. 벌써 2만2천원 피해봄.. 감사합니다. 오늘 취소해야지 원...
승주나무님 건필하세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