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사인> 고재열 기자의 <독설닷컴>에서 298세대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298세대란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 298이란 숫자는 386-88=298 이런 식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저도 298로서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제보했는데, <독설닷컴>에 올려 주셨더군요.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298세대론'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어제는 블로거뉴스에서
'인기 이슈'로도 선정되었네요. 

'너무나 잘난' 386세대와 
'너무나 불쌍한' 88만원 세대 사이에서  
존재가 없었던 298세대. 

1990년대의 기억에 대한 '복기'에 이어
1990년대에 대한 문화론적 해석이 이어집니다.

제가 발제를 했어야 하는데, 못해서 찜찜했는데
'승주나무'님이 좋은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298세대론' 관련 글 :
2008/12/11 - [298세대 아이콘 100] - ‘298세대’는 우리 시대의 '빠진 고리'다
2008/12/11 - [298세대 아이콘 100] - 30대 중반의 친구들 (298세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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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 [298세대 아이콘 100] -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중간의, 298세대를 아시나요?



시사모 활동을 할 때의 오승주님 모습. 지지발언 중.




(글 - 승주나무, 블로그 ‘승주나무의 면모 : jagong.sisain.co.kr') 



독설닷컴에서 우리 세대의 이름을 298세대라고 부른 데 대해서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고 싶다. 298세대란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중간층인 1970년대생과 1990년대 학번을 말한다. 나는 1978년생이면서 1997학번이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빠진 고리'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드러내 주는 문제점과 가능성에 대해서 동시에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나의 블로그(승주나무의 면모)에 글을 싣기보다는 독설닷컴에 이 글을 기고한다.


나는 박정희가 죽은 이듬해에 태어났고,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 시절 동안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공부했던 동아전과의 부록에는 역대 역사의 위인들이 연도별로 나열됐는데 맨 마지막 인물은 항상 '전두환'이었다. 반공의 세월이었기 때문에 '똘이장군'이나 각종 반공 어린이책이 엄청나게 많이 보급(?)됐다. 6.25때 목숨을 걸고 싸웠던 10전사니 20전사니 하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였다. KBS에서는 <전우>라는 프로그램이, MBC에서는 <3840 유격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김일성의 목을 따는 것이었다. 김일성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었다. 심지어 김일성의 목을 따고 몸 안에 수류탄을 던져서 터뜨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그 당시 298 어린이들의 반공사상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298세대는 현대사적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해방공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태지의 등장으로 '문화'라는 것이 '자유'의 날개를 얻게 되었을 때였다.


아침이슬 류의 저항 문화나 민중가요는 태생적으로 저항적이기 때문에 의식화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서태지는 '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기득권에 저항하기 때문에 통쾌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일반 생활인, 중고등학생들이 '감수성'으로 단번에 이뤄낸 촛불의 쾌거를 이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298세대는 민중가요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때는 대학 내에서 '사과학습'(사회과학학습)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좋은 가수들도 참 많았다. 김광석, 이승철, 부활, 015B 등등.. 이들의 노래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불려지고 있지만, 그 이후의 가수들은 제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다. 그것은 문화가 자본에 완전히 흡수되면서 자본주의 사이클 안에서만 문화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마지막 세대가 바로 298세대다. 298세대는 교육에 있어서도 해방공간이었다.


그 때도 과외나 사교육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창시절 공부에 별 관심이 없어서 상고를 나왔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서 지방국립대 4년제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작용한 점이기도 하지만, 사교육 과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던 시대가 바로 298세대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으로 돌아오자면, 사과학습을 통해서 박노해, 백무산을 알았고 문학동아리였던 까닭에 기형도, 마르께스, 백석, 김수영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좀더 아카데믹한 선배층에 의해서 세계철학사와 동양철학, 김유정, 도스또옙스끼 등을 알게 되었다. 298세대에서부터 토익열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대학에서 토익 점수로 졸업을 허락하는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스펙에 목숨을 걸면서 교양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정말 대학생 다운 대학생으로 살 수 있었다.


세계의 지성들이 가장 돌아가고 싶어하는 시절은 바로 '대학2년생'이라고 한다. 학문과 지성의 요람이며 사회적 인간으로 태어나는 시절이 바로 대학2년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2년생 로망에 빠져 대학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다닐 적에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대학문화'라는 것을 향유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바로 다음 후배들부터 대학문화라는 것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1,2년 사이에 전통적인 동아리가 날아가 버렸고, 학내에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권력을 획득할 정도로 '운동권'이란 말 자체가 금기어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 총학생회 선거에서 '뉴라이트'라는 말이 금기어가 되고 있는 것처럼.

 



학과는 '학부제'로 빠르게 체질변화를 이루면서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무너졌다. 학부제는 철저히 관리자들의 효율성을 위한 제도였지, 향유자들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 일어일문학과, 중어중문학과를 묶어서 '동양어학부'로, 사학과, 사회학과, 철학과 등을 묶어서 '사회과학부'로, 경제학과 경영학과를 묶어서 '경제경영학부'가 되었다. 그나마 공과대에서는 학과 몇 개를 기계적으로 붙인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계공학과, 에너지공학과, 생산공학과를 합쳐서 '기계에너지생산공학부'로 만들었다.



'산학'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학과에서 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투자하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기업이 커리큘럼을 짜는 방식의 수업이 새로운 학문방식이라는 미명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도들은 하나하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과도 같은데, 그것이 함께 터지면서 현재의 대학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차마 농구골대에 KT&G라는 로고를 붙이지는 못했고, 야식을 제공한다며 기업의 스폰서를 노골적으로 제시하지도 않았고, 총학생회가 기업의 스폰서를 타서 행사를 운영하는 등의 행동은 감히 할 수 없었다.


결국 대학문화라는 것이 사망하게 된 것은 298세대에 이르러서였으며, 298세대는 대학문화 사망 현장의 조문객이 되었다. 당시에도 298세대 사이에서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것은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된 현실을 자조하는 단어였다. 지금은 고등학교 4학년에서부터 고등학교 7학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서 아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묶어서 '고등대학교'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의식'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학내에 붙어 있던 여러 가지 현수막들을 보는 것이 피곤했다. '독재정권 물러나라', '민중의 적 김영삼은 사죄하라' 같은 선언적인 어휘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작은누나는 나와 2살 터울로 대학 시절 '과격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작은 누나와 나의 변천 과정을 보면 386과 298 사이의 변곡점을 드러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도에는 중앙성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서울로 따지면 명동성당과 같이 투쟁의 산실이 되는 공간이었다. 작은누나는 경찰에 의해서 중앙성당에 고립되기도 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학생운동과 관련해서 가족들과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누나와 같은 학교에 입학했을 때 'OO 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수 년 동안 나를 학생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학생회에 들어가지 않고 '아카데믹'한 생활을 즐겼다. 지금 나의 사랑스런 작은누나는 생활인이 되었고 나는 열렬한 투쟁가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을 온 시사모(시사인 창간독자)들에게 시사인 창간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상복을 입고) 그들이 질겁을 했다. 요즘에는 머릿속에 '언소주'만 가득 들어 있어서 언소주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걱정을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사회적인 것에 몰입하게 되었을까. 중용의 구절처럼 "내가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일단 보았다면 외면할 수 없다"로 설명할 수 있을까. 너무 개인화되고 개별해법으로 가려는 분들도 걱정이지만, 저처럼 너무 사회성이 강성한 것도 우려될 만한 점이 아닌지 모르겠다.

- 알라딘에 쓴 페이퍼(2mm짜리 하늘이 열리다)




아카데믹하고 얌전한 청년이었던 나는 이 시대에 가장 적극적인 투쟁가 중에 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것은 선배들의 손에 따라, 혹은 시대의 부당함에 맞서 즉물적으로 반응한 것과는 달리 사유를 통해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386은 왜 변절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 철학자 김상봉 선생의 간담회에서 나는 386들이 왜 적극적인 투쟁가에서 세속적인 생활인으로 변절했는가를 물었다. 그 때 김상봉 선생은 '즉물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386이 주도한 민주화 투쟁은 스스로의 결론에 의해서 도달한 지점이 아니라 독재정권의 횡포에 즉물적으로 반응한 조건반사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선배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맹자가 말한 '피일시 차일시'일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사회이건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제주에서는 4.3이라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다행히 4.3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선배들의 반응을 보고 환멸감을 느꼈다. "특별법 통과됐으면 다 끝난 거 아냐?"이것을 386의 말로 환원하면 "민주화가 됐으니 이제 다 끝난 거 아냐?"가 된다.


현대사에서 단군신화보다 강력한 신화는 바로 4.19, 5.18, 민주화투쟁 신화이다. 그것을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298세대로서 가지는 비판의식이다. 그들은 성숙한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나는 최소한 위험을 무릅쓰고 <시사IN>을 창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언론소비자들의 주권을 살리기 위해서 언론운동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의 결론을 통해 도달한 성숙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386은 88만원 세대를 보면서 마치 인생을 헛 살거나 인생이라는 말조차 모른다는 식으로 매도하여 사사건건 대립하고 이해의 틀을 만들기가 어렵겠지만, 298은 이들의 특징들을 모두 갖춘 세대라는 의미에서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298이 우리들의 '빠진 고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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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12-1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의 또래 승주나무님 ^^*
우리 세대야 말로 재미있는 투쟁을 만들 수 있는 세대
감각있는 운동을 만들 수 있는 세대라고 자부해 봅니다.
몇명 안남아 있지만 히히

승주나무 2008-12-12 12:12   좋아요 0 | URL
정말 옳은 말씀이신 것 같아요. 386, 298, 88 중에서 298이 감수성 있는 운동을 하는 데 적임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전우는 박정희 시대 때 작품입니다.나시찬 씨가 1979년에 사망했는데요.다른 작품과 혼동하신 것은 아닌지요?

드팀전 2008-12-15 08:16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린 시절에 본 기억이 나는데요...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84년에 종방한 거로 되어있네요. 아버지가 좋아하셨지요. 토요일 저녁무렵에 하던 '컴뱃' 하던 미국드라마 <전투>와 함께..<전투>는 두세번 재방영된걸로 기억합니다.

우리드라마 <전우>는 특히 노래를 들으니 그 드라마를 봤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나네요. 별 셋(원래는 별 넷이었는데 한 사람이 죽었지요.)의 노래를 저도 따라했거든요. 우리는 가..안...다. 하느을 도 흐른다...

<전우>가 두 번이 있었더군요.
하나는 70년대 했던 노이에자이트님이 말하는 나시찬 소대장을 중심으로 한 전우...
그리고 83-84년까지 했던 전우...요즘말로 하면 일종의 시즌2입니다. (제가 더 잘 기억하는 것도 이것인 듯 하구요.) 둘 다 같은 음악을 썻구요. 대신 선임하사 강민호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갑니다.
당시 어린이들이 그 노래를 불렀다면 숫자적으로 그들은 386 후반 세대나 296초반 세대에 더 가깝겠지요.^^ (여기서 이런 숫자적 세대개념이 흔들리는군요.^^ 박쥐세대들이 있다보니..)

승주나무님이 80년생이면 시즌2라 하더라고 4살 때 기억인데..음...아이들이 뽀로로를 기억할 수 있긴 할테니..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저 역시 나시찬씨 때는 어땟는지 잘 기억나지 않네요. 볼 수 있는 나이기는 햇을텐데..

승주나무 2008-12-15 09:52   좋아요 0 | URL
네.. 박정희 시절에 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저도 이 프로를 봤는데, 아마 재방인 줄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거의 후반부를 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상이 매우 깊었죠^^

당시 전쟁 관련 프로그램이 엄청 많았던 것 같아요. 캠페인처럼 정기적으로 하던 프로그램도 있었고요. 암튼 제가 봤던 프로그램은 <전우>가 확실합니다^^

2008-12-15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5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1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나시찬 씨 사망 이후 전우가 또 있었나요? 음...그랬군요.나시찬이 나오는 전우는 70년대 초반 태어난 사람들도 많이 봤지요.그걸로 나이 알아맞추기는 좀 힘들걸요.학교도 안간 어린이에서 청소년들도 다 봤으니까요.역시 전우하면 나시찬이죠.칼러 테레비 시대의 전우라...어쩐지 실감이 잘 안나네요.하하하...근데 296세대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승주나무 2008-12-15 15:45   좋아요 0 | URL
296은 298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사람을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전우>와 <3840유격대>의 시대에는 전쟁, 국군의 분위기가 전 사회를 휩쓸었고 동심도 휩쓸었던 것 같습니다. <전우>에 버금가는 프로그램이 TV를 도배했기 때문이죠. 굳이 <전우>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프로그램입니다^^

드팀전 2008-12-15 17:41   좋아요 0 | URL
전 노이에님의 나이를 알았습니다. 저 보다는 많고 제 아버지보다는 적은..^^

승주나무 2008-12-15 18:21   좋아요 0 | URL
그러면 노이에 님은 저보다는 많고 제 아버지보다도 적겠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효리 누나도 저처럼 박정희 시대에 태어났어요.저는 흑백 테레비 마지막 세대...이쁜 여자는 무조건 누나라고 하니 오해는 마시구요.
그리고 우리 화끈하게 놀죠.나이 같은 것은 내던져 버리구요.저는 10대들하고도 어울려서 너나들이 합니다.이거 해보면 되게 재밌어요.그래서 그들이 저를 좋아하지요.아...그리고 아버지보다 나이가 적다 하니 제가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전부 나보다 많고 아버지보다 어린 사람 아닌가요...으하하하하..그리고 대중매체에 대한 추억 가지고 제 나이 짐작하지 마세요.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일제시대 노래도 많이 알 뿐 만아니라 최신댄스곡도 많이 아니까요.

승주나무 2008-12-16 14: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볼 때는 드팀전 님이 노이에 님을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일종의 애정표현으로 제게는 이해되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표현...설마요...알라딘에서도 연애공간이 생겼나요? 으하하하....

드팀전 2008-12-17 19:19   좋아요 0 | URL
푸훗...노이에님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데 좋아할 수는 없지요.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저 이야기는 매번 하시더군요. 저도 10대하고 연애하지는 않습니다.정말로..
 



서른 살 생일날에 아빠가 되다

 '심장소리는 왜 이렇게 작은 거예요 ㅠㅠ 불안해요' 라고 하니까 '아기가 2mm밖에 안될 정도로 작은데 어떻게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요~ 정상이에요'

아내가 흥분된 어조로 전화를 해왔습니다. 11월 28일은 만으로 '서른'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 생일은 11월 29일이고, 제 아내는 저보다 이틀이 빠른데(11월 27일) 우리는 공평하게 11월 28일에 서로 생일을 챙겨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11월 28일, 우리 부부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은 '아기'였습니다.

결혼 3년 차인 우리 부부는 그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던 아기가 드디어 우리의 품에 사뿐히 내린 것이죠. 쬐끄만하지만 이목구비가 다 보입니다. 인석이 그래도 저처럼 머리가 좀 크네요. 심장도 보이고 심장박동도 명쾌하게 들립니다.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저는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픈 과거가 있어서 그런지 아기집도 오롯하게 만들어지고 맥박소리도 들린다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난황(아기 왼쪽에 달려 있는 조그만 것)이라는 것은 저도 난생 처음 알았는데 10달 동안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조금 더 컸겠지만, 2mm인 아기의 씨앗 역시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우주가 찾아왔습니다. 2mm짜리 하늘이 열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그날 저는 한 시민단체의 긴급회의라는 명분으로 아내와 약속했던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지 못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저를 붙잡는 회원님들의 만류를 정중히 거절하고 자정이 조금 넘어서 케익 하나를 사들고 아내를 찾았는데, "빌어먹을 녀석아!"하면서 욕을 하면 시원하겠는데 아무 말없이 있는 겁니다. 남편놈이 생일도 알까말까 하고 지 새끼가 내려앉았는데 밖으로만 나돌아다녀서 미울 만도 한데 한없이 순둥이 기질의 아내는 말 한마디 안 하더란 말이죠. ㅠㅠ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부모'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자식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자식사랑 때문에 아이의 앞길을 망치는 경우도 무수히 생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386 형님누나들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는데, 모든 부모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들의 '자식사랑'이 겉으로만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근본적이고 진정한 의미의 자식사랑이 아니라 '내 자식 챙기기'의 모양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신의 자식이 사랑스럽다면 제 자식만 챙길 것이 아니라 '자식 세대의 미래'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소식을 하나만 더 하자면 얼마 전 조양진 선생님을 만나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차피 우리 세대에 조선일보를 절멸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다음 세대에 기필코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터를 닦아놓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었지만 조양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당신 세대에서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조선일보를 보게 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이 조선일보를 끝내 절멸시키지 못했던 우리 세대의 숙원이다. 당신은 그것을 반복하려고 하는가?"

다음 세대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미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셈이죠. 저는 제 아이 앞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자식 기저귀 값이나 분유값 벌려고 '부당함'에게 슬쩍 슬쩍 말을 트고 어물쩍 손목을 잡고 하는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 배불리 먹인다면 아이는 겉으로는 뭐라 안 하겠지만,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경멸할 것입니다.

강만수 장관이 그린벨트를 완전히 해제하고 거기에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국회에 선 강만수 장관은 "후손들의 문제는 후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우리가 지금 그것까지 챙길 상황인가?"라고 하면서 그린벨트 해제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미래세대에게 참 부끄럽습니다.

저도 일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제 자식만이 아니라 미래의 자식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되도록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며, 민주주의나 여러 가지 가치들 역시 안전하게 계승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즉 '언로'를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은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언어폭력'이라고 할 정도로 혼탁해진 상황입니다. 저는 최소한 아이들이 '언어폭력'을 '상식'처럼 생각하는 사회의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우리의 부끄러운 유산입니다. 그것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집안일을 세심하게 돌보지 못해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 승주나무의 개인사를 말씀드리면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을 온 시사모(시사인 창간독자)들에게 시사인 창간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상복을 입고) 그들이 질겁을 했다더군요.
요즘에는 머릿속에 '언소주'만 가득 들어 있어서 언소주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걱정을 하십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회적인 것에 몰입하게 되었을까요. 중용의 구절처럼 "내가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일단 보았다면 외면할 수 없다"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너무 개인화되고 개별해법으로 가려는 분들도 걱정이지만, 저처럼 너무 사회성이 강성한 것도 우려될 만한 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좀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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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12-1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한지 벌써 3년이나....
이제 아버지가 되시네요.^^ 축하합니다 승주나무님.

승주나무 2008-12-10 23:22   좋아요 0 | URL
메피 님도 슬슬 소식이 들릴 때가 되지 않았나요? 감사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12-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신비합니다.
같은 서른인데 저를 많이 앞질러 가시네요 축하드립니다 ^^

승주나무 2008-12-10 23:23   좋아요 0 | URL
FTA반대휘모리 님~ 서른에 비해서 과정이 좀 빠른 듯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앞질러 가는 것은 아니지요. FTA반대휘모리 님의 축하댓글을 받으니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8-12-1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비인간적인 것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은 우려스러운데요 ^^
승주나무님은 절대 '혁명'하지 마세요.ㅋㅋ

아기 태명 잘 지으세요.

승주나무 2008-12-10 23:24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 정말 혁명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ㅋㅋ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걱정입니다.
감사합니다^^

Jade 2008-12-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승주나무님 완전 축하드려요! >.<

승주나무 2008-12-11 00:26   좋아요 0 | URL
제이드 님 완전 감사해요^^

무스탕 2008-12-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승주나무의 열매가 맺었네요 ^^
아가도 엄마도 건강,건강하게!!

승주나무 2008-12-12 12:12   좋아요 0 | URL
무스탕 님^^
아가도 엄마도 건강할 수 있도록 기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아기가 태어나겠군요.자상한 아버지와 남편이 되실 겁니다.

승주나무 2008-12-23 13: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상한 아버지와 자상한 남편은 둘 다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감은빛 2008-12-1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드디어 아빠가 되겠군요. 아이랑 함께 있다보면 힘들거나 속상할때도 많지만 그래도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육아와 관련하여 힘든일은 언제든지 상의하세요! ^^

승주나무 2008-12-23 13:16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선배 아빠 감은빛 님을 그대로 방치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열심히 스토커 하겠습니다 ㅎㅎ

강민아 2008-12-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승주야 축하해.. 이제야 알았네.. 난 고모되는거냐 ㅋㅋ

승주나무 2008-12-23 13:16   좋아요 0 | URL
뒤늦게 알았으니 다행이다.. 아이가 고모를(실은 고모의 선물을) 너무 보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구 ㅋㅋ

멜기세덱 2008-12-2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뭐야! 뭐야!!!
나한텐 얘기도 안 해주구....너무해요....ㅠㅠ;;
근뎅....ㅋㅋㅋ
추카추카!!!!알라뷰소머치베이비!!!!

마늘빵 2008-12-2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거 이제 봤어요!!! 아니 이럴수가. 축하해요!! ^^
 



▲ 11월 29일자 조선일보 기사. '증인폭행 피의자'라고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 데 대해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언소주에 대해서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해온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객관적인 '헤드'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이른바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관련한 재판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소동 사건이 벌어졌고, 이 사건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조선일보는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김용상 영장전담부장판사의 판시를 인용 ""계획적 범행으로 보이지 않고 심문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점 등에 비춰보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광고주 '협박'이라고 공공연히 보도해온 언어습관에서 한발 물러서 '압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이 산이 아닌가벼~'라는 판단을 재빨리 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 사건이 크게 부각된 11월 20일자 한겨레 신문의 기사를 보면

19일치 지면에서 조선은 사회면 4단 머리기사로 “조·중·동 광고중단 협박 공판 증언 나선 여행사 직원, 재판전 피고인측 방청객한테 폭행 당했다”고 크게 다뤘다. 동아도 같은 날 1면에 “광고주 협박 피해 증인 “피고인측이 폭행”이란 제목의 기사를 2단으로 배치한 데 이어 “수십 차례 협박 전화…살해 위협 느껴”라고 제목의 사회면 머리로 해설기사를 올렸다. 중앙도 2면 3단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 한겨레, 광고중단운동 단체 “조중동 보도는 소설”

뿐만 아니라 동아, 중앙, 세계일보는 사설에까지 이 내용을 다뤄서 이슈화를 시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영장실질심사에서 피의자와 피해자를 보았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피의자는 50대 후반의 노인이었고, 피해자는 180센티미터 80킬로미터의 건장한 30대 초반 청년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매우 재미있으니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뤄볼 예정입니다.

정말 재밌는 것은 조선일보 독자님들의 댓글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 두 개만 공개합니다. 나머지는 직접 보시기를^^

기각시킨 판사 누군가 끝까지 추적해서 실명에 &#50735;긴다음 사상검증을 철저히 하자  [2008.11.29 17:44:56]

무슨 영장기각이란 말인가, 불필요한 온정의 판단이 결국 서서히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존립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판사는 알아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원칙과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뻘개들의 준동을 단호하게 엄격히 처벌하지 않으면 제2의 광고중단운동 일어난다. 좌빠들이 무너뜨린 법치주의를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이 세워야 할것이다.  [2008.11.29 17:08:53]



▲ 11월 28일자 한겨레 기사.

정말 예상 외였던 것은 한겨레 신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여기에는 한겨레와 언소주의 관계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팩트'만을 생각했습니다.
기사에도 밝히고 있듯이 재판에 출석한 증인을 폭행한 혐의로 50대 회원에게 영장이 신청된 건이므로 당연히 '때린 혐의'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때린'이라고 그대로 끝내버려서, 독자로 하여금 50대 회원이 30대 증인을 진짜로 때렸다는 판단을 주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한겨레가 언소주 회원들에게 우호적으로 기사를 써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상식과 이성을 가진 신문으로서 기사의 단어선택, 그것도 가장 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헤드'를 이렇게 뽑을 정도라면 어떻게 '정론'이라는 수식어를 한겨레에 붙여줄 수 있을까요.

한겨레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아서 잠을 못 이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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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링크>

1. [현장] 언소주 재판 증인 폭행(?) 사건의 전모

2. 조선일보, 아무리 '보복성' 기사라지만...


3. [언소주]조중동에 정정보도 요구 공문을 보냈습니다.


4. 광고불매운동 재판정 소동 사건,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 사이"


경찰이 50대 언소주 회원을 연행하기까지의 과정

지난 18일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관련 공판에서 롯데관광 측 증인과 마찰을 빚었던 50대 회원이 오늘 경찰에 의해서 전격 연행되었습니다.
그 회원님과 함께 이었던 회원이 보내온 내용입니다.


"OOO님이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서초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서초경찰서 2층 지능팀으로  연행되었습니다

OOO님은 출국금지 통지서를 어제 가지고 오셨고 왜 그것이 발부되었는지에 대해

서초경찰서에 문의하자 형사 담당자가 전화할테니 OOO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형사가 로비에 와서 전화를 했고 저와 함께 나가서 이야기 하던 중

갑자기 체포영장을 보이며 협박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경찰이 이번에 언소주의 50대 회원을 체포하게 된 것은 11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관련 24인의 재판이 있었던 날에, 증인으로 출석 대기하고 있는 롯데관광의 증인과 시비가 붙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증인은 협박과 폭력을 받았다며 증언을 못하겠다고 증언거부를 했습니다. '폭행'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폭행의 당사자가 50대 여성회원과 50대 남성회원이었는데 그들은 180cm 이상의 건장한 30대 청년에게 폭행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협박을 일삼을 정도의 양식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조중동 광고주불매운동을 하는 언소주의 회원들은 검찰과 경찰, 조중동이 알고 있듯 범죄인집단이 아닙니다. 누가 우리 나라의 척박하고 가련한 언론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가며, 식구와 회사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언론소비자운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대로의 문제의식과 소신, 그리고 교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협박이 있었다면 이권다툼이나 뭔가 구린 것을 있는 재판이어야겠죠. 하지만 이번 재판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희귀한 불매운동에 대한 재판입니다. 불매운동은 선진국 어느 나라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성의 기회를 삼는 캠페인입니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언소주 회원들이 죄를 지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조중동이 정상적인 언론활동과 영업행위를 해야 합니다. 조중은 신문고시에 정해놓고 있는 법률을 밥 먹듯이 위반하면서 우리나라의 신문시장을 거의 학살하다시피 하고 있는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사기업'에 불과한데, 그들이 법의 정의를 운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요. 그래서 재판을 받는 24명의 언소주 회원들은 죄인이 아니기에 떳떳합니다. 오히려 조중동과 검찰이 죄인처럼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들은 재판 결과가 혹시라도 부정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판에 목숨걸고 있습니다. 때문에 10월 28일 2차 공판에서 조선일보 증인이 혹시라도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까봐 신문사항, 즉 예상문제지를 미리 짜맞추고 재판을 진행하다가 변호인에게 발각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왜 경찰은 '출두'가 아니라 '체포'를 택했나?

경찰의 행동에 모순이 있습니다.
만약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서 체포를 해야 했다면 11월 18일 당시나 그 다음날 현행범으로 체포를 했어야 합니다. 경찰이 당시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열흘 만에 '출두 요구'가 아닌 '체포'라는 형식을 쓴다는 것은 열흘 전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표적수사'나 '정치적 탄압'으로 의심을 살 만한 여지가 충분합니다.

'체포'라는 것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내릴 수 있는 조처입니다. 그리고 경찰은 사건 10일 후에 갑자기 50대 언소주 회원을 체포해야만 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갑자기' 판단을 내린 듯합니다.

경찰은 두 가지에 대해서 답변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체포라는 방식을 쓸 만큼 50대 회원의 행위가 중대했었나?
2. 만약 체포를 할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였다고 판단했다면 왜 10일이라는 시간을 흘러보냈나? 그것은 경찰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아무리 대한민국 사법제도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다고 해도,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재판정 소동 사건은 한 쪽은 폭력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쪽에서는 폭력행위나 협박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특정한 편의 주장만 수용해서 처벌을 하는 것은 
사법부가 사법부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위의 링크와 아래의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마이뉴스]조중동 광고불매 재판정 사건,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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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만 제대로 처리했으면...


▲ 반민특위 투서함. 1948년 국회를 통과한 반민법에 따라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를 검거하고 각지에 투서함을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으나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좌절되고 말았다. 사진은 반민특위 전라남도 조사부에 설치된 투서함에 투서하고 있는 시민들(1948년 10월)



예전에 독일 패망하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할 때 미국 애들이 전범 재판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처칠이 말했지.
"다 싸그리 끄집어내서 기관총으로 모조리 다 쳐 죽여 버리지.. 씨를 말려야 후환이 없는데."
역시 그 말이 맞았다. 이 염병할 놈의 나라
- 미네르바 글모음 2권, <17.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때 처칠이 말했지> 일부


미네르바의 말처럼 기관총으로 쳐 죽여버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민특위법'법만 제대로 시행되었더라면 오늘날 이 꼴을 보지는 않았을 텐데.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친일파 처단은 국민의 가장 뜨거운 열망이었다. 때문에 제헌국회가 열리자 마자 반민특위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미군정을 등에 업은 이승만 세력이 끈질기게 협박과 방해, 회유공작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10월 23일 국회의 승인을 받아 반민특위가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승만은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승인된 활동에 대해서 단번에 뒤집어버림으로써 나라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이승만이 제시한 근거는 아래와 같다.

"경찰을 체포하여 경찰의 동요를 일으킴은 치안의 혼란을 조장하는 것"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중에서

이것은 명분에 불과하고 이승만 식으로 풀어쓰면

"경찰을 체포하면 나(이승만)의 수족을 자르는 것이니 국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될 것"과 같다.


▲ 1949년 반민특위에 의해서 반민족행위자로 확인된 인사는 547명이었으나 이승만의 탄압으로 인해 이에 대한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후손들이 대대손손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친일파가 후쇼사 교과서로 현대사 강연한다면?


지난번에 나는 포스트(민주의식 '0점' 만드는 극우인사 고교 현대사 특강)에 현대사 특강에 나서는 사람들을 '극우'라고 표현했는데, "이 사람들이 친일파지 왜 극우냐? 자랑스런 '우파'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라며 엄청 욕을 먹었다. 욕을 좀 더 먹을 것을 각오하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역사 쪽을 본다면 진보학계는 학술적으로 민주화 이외에 대한민국의 성취를 인정하지 않은 난점이 있었다”는 이병천 강원대 교수의 발언처럼 우리가 현대사에 대해서 좀더 폭넓게 이해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옳다.

『국사』가 일본 제국주의를 어떻게 신화화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수하다. 『국사』는 ‘무자비’ ‘잔인무도’ ‘교활’ ‘광분’, 또는 ‘약탈’ ‘강탈’ ‘착취’ 등의 용어를 내키는 대로 쓰면서 일제의 악마성(민족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논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서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제는 민족사 발전을 저해한 절대 악으로, 그리고 민족 대단결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민족사적 과제로 유추된다. 물론 일제의 억압과 수탈은 사실이었으며, 또 민족 대단결도 대단히 긴요한 정치적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역사적 실재로서의 일본 제국주의를 지나치게 초역사화하여, 역사 과정의 모든 부정성을 모조리 일제 탓으로 돌리는 식의 역사 서술은 여러 가지 자가당착적인 역사 인식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 지수걸, 「‘민족’과 ‘근대’의 이중주」

지금까지의 역사 서술은 다소 피해의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제를 초역사화했던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제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

“해방 후에도 일제 때의 근대문명을 소중히 보존하고 발전시킨 우리는 일제가 제정한 모든 법률과 기구를 폐기함으로써 곧바로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 만 북한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 서울대 이영훈 교수(뉴라이트 현대사교과서 저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
- 고려대 한승조 전 명예교수, 일본 극우 대변지인 '정론(正論)'에 기고한 글

 
친일행위의 정의와 친일행위를 한 인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재인들이 친일행위와 친일파에 대해 죄과를 묻고 판결을 내릴만한 법적·도덕적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
- 복거일, 현대사특강 강사진


<뉴라이트 교과서 핵심 내용>

1. 본 정부도 인정하는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삭제하는 등 일제강점기 우리나라가 입은 피해상은 외면한 채 근대화라는 결과만을 부각
2. 일제 통치를 '강점' 대신 '합병'이라고 규정
3.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발간을 허용한 신문과 잡지 등으로 인해 "20년대 한국은 문화 민족운동의 르네상스기를 맞게 되었다"



<새역모 후쇼사 교과서 핵심 내용>

1. 임진왜란을 묘사할 때 한국에 군대를 보냈다고 두 군데서나 묘사하고 있음. 침략이 아닌양 보냈다는 식으로 서술. 
2.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강제연행이라든가 무단통치 이런 말도 쓰지 않았음
3.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강제연행이라든가 무단통치 이런 말도 쓰지 않음
4. 한국을 근대화 시켜줬다는 것을 4년 전 교과서 보다 훨씬 더 여러 가지 형태로 강조
5. 군국주의적인 것이 상당히 미화, 국가주의 강조, 예컨대 러일전쟁 같은 것은 2장으로 기술
6. 독도를 과거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을 실어서 묘사
7. 새역모가 만든 개정판 역사 교과서 검정 신청본에는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이 조선인들의 희망에서 비롯됐으며 1910년 일제의 조선병합을 조선인 중 일부가 수용했다고 기술
8.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이 조선인들의 희망에서 비롯됐으며 1910년 일제의 조선병합을 조선인 중 일부가 수용했다고 기술
9. 일제의 강제동원과 관련해 '징용·징병제가 확대 적용됐다'고만 돼 있을 뿐 조선인 강제연행 및 종군위안부 관련 내용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짐. 이는 '많은 조선인이 끌려갔다'고 기술돼 있는 현행본보다도 후퇴한 내용

다행히 뉴라이트교과서 이영훈 교수와 한승조 전 교수는 강사진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강사진은 대체로 뉴라이트 계열이기 때문에 후쇼사의 한국판 강좌가 될 위험성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번에 고등학교 현대사 특강의 강사로 초빙된 복거일은 위에서 발언한 내용처럼 친일 행위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며, 인간의 도덕적 결함을 확대 적용해서 어떤 극악한 행위도 처단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강의를 할 텐데, 그렇게 된다면 사실상 어떤 행위든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낼 위험이 있다. 삼성이 다 해먹지만 돈 잘 벌어 오니까 처벌 못 하고, 친일파가 잘못했지만 우리도 역시 잘못했으니까 처벌 못하고 사실상 처벌의 주체를 '신'으로 돌리는 엉터리 주장이라면 현대사 교과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 강좌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뉴라이트 계열이나 친일파 인사들이 충심으로 우러나오는 애정으로 고등학교에 가서 강좌를 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면 3억원을 받지 말고 자비를 들여서 직접 강의를 하라고 하라. 괜히 국민들이 낸 소중한 세금을 축내지 말고. 그래야 '쇼당'이 되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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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2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일본에서 새역모 교과서 채택률은 1%도 안 나왔는데 우리나라의 교과서 포럼이 주도한 근현대사 교과서는 이 상태로 가면 엄청난 세력이 될 것 같다는 거죠.일본인의 산케이 신문 구독률과 한국인의 조선일보 구독률을 비교해보면...정말 답이 안 나옵니다.우리나라 교과서에 종군위안부가 나온 것이 언제인가요? 제가 학교 다닐 땐 없었습니다.우스개 소리가 하나 있는데 1980년대 일로 기억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은 왜 청소년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안 넣느냐"고 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없었다는..

승주나무 2008-11-27 15:00   좋아요 0 | URL
우리 교과서에도 위안부 문제가 언급 안 됐다는 말씀은 정말 충격적이네요.

생각해 보니, '촛불 청소년'과 '친일극우 현대사 강좌'가 상대가 되는 게임일까요. 어제 박은봉 선생 강연 갔었는데, 자신의 책이 교과서의 내용과 달랐을 때 어린이들의 충격이 없을까 하여 설문조사를 해봤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거다'라고 대답했다더군요. 아이들의 의식수준을 무시하는 것은 좌든 우든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사실 우리 어른들보다 더 똑똑하고 직관적이란 사실을 모르구서요.

저도 청소년들에게 배울 게 많다고 봅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