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사인> 고재열 기자의 <독설닷컴>에서 298세대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298세대란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 298이란 숫자는 386-88=298 이런 식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저도 298로서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제보했는데, <독설닷컴>에 올려 주셨더군요.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298세대론'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어제는 블로거뉴스에서
'인기 이슈'로도 선정되었네요. 

'너무나 잘난' 386세대와 
'너무나 불쌍한' 88만원 세대 사이에서  
존재가 없었던 298세대. 

1990년대의 기억에 대한 '복기'에 이어
1990년대에 대한 문화론적 해석이 이어집니다.

제가 발제를 했어야 하는데, 못해서 찜찜했는데
'승주나무'님이 좋은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298세대론' 관련 글 :
2008/12/11 - [298세대 아이콘 100] - ‘298세대’는 우리 시대의 '빠진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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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모 활동을 할 때의 오승주님 모습. 지지발언 중.




(글 - 승주나무, 블로그 ‘승주나무의 면모 : jagong.sisain.co.kr') 



독설닷컴에서 우리 세대의 이름을 298세대라고 부른 데 대해서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고 싶다. 298세대란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중간층인 1970년대생과 1990년대 학번을 말한다. 나는 1978년생이면서 1997학번이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빠진 고리'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드러내 주는 문제점과 가능성에 대해서 동시에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나의 블로그(승주나무의 면모)에 글을 싣기보다는 독설닷컴에 이 글을 기고한다.


나는 박정희가 죽은 이듬해에 태어났고,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 시절 동안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공부했던 동아전과의 부록에는 역대 역사의 위인들이 연도별로 나열됐는데 맨 마지막 인물은 항상 '전두환'이었다. 반공의 세월이었기 때문에 '똘이장군'이나 각종 반공 어린이책이 엄청나게 많이 보급(?)됐다. 6.25때 목숨을 걸고 싸웠던 10전사니 20전사니 하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였다. KBS에서는 <전우>라는 프로그램이, MBC에서는 <3840 유격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김일성의 목을 따는 것이었다. 김일성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었다. 심지어 김일성의 목을 따고 몸 안에 수류탄을 던져서 터뜨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그 당시 298 어린이들의 반공사상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298세대는 현대사적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해방공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태지의 등장으로 '문화'라는 것이 '자유'의 날개를 얻게 되었을 때였다.


아침이슬 류의 저항 문화나 민중가요는 태생적으로 저항적이기 때문에 의식화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서태지는 '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기득권에 저항하기 때문에 통쾌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일반 생활인, 중고등학생들이 '감수성'으로 단번에 이뤄낸 촛불의 쾌거를 이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298세대는 민중가요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때는 대학 내에서 '사과학습'(사회과학학습)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좋은 가수들도 참 많았다. 김광석, 이승철, 부활, 015B 등등.. 이들의 노래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불려지고 있지만, 그 이후의 가수들은 제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다. 그것은 문화가 자본에 완전히 흡수되면서 자본주의 사이클 안에서만 문화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마지막 세대가 바로 298세대다. 298세대는 교육에 있어서도 해방공간이었다.


그 때도 과외나 사교육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창시절 공부에 별 관심이 없어서 상고를 나왔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서 지방국립대 4년제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작용한 점이기도 하지만, 사교육 과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던 시대가 바로 298세대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으로 돌아오자면, 사과학습을 통해서 박노해, 백무산을 알았고 문학동아리였던 까닭에 기형도, 마르께스, 백석, 김수영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좀더 아카데믹한 선배층에 의해서 세계철학사와 동양철학, 김유정, 도스또옙스끼 등을 알게 되었다. 298세대에서부터 토익열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대학에서 토익 점수로 졸업을 허락하는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스펙에 목숨을 걸면서 교양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정말 대학생 다운 대학생으로 살 수 있었다.


세계의 지성들이 가장 돌아가고 싶어하는 시절은 바로 '대학2년생'이라고 한다. 학문과 지성의 요람이며 사회적 인간으로 태어나는 시절이 바로 대학2년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2년생 로망에 빠져 대학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다닐 적에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대학문화'라는 것을 향유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바로 다음 후배들부터 대학문화라는 것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1,2년 사이에 전통적인 동아리가 날아가 버렸고, 학내에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권력을 획득할 정도로 '운동권'이란 말 자체가 금기어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 총학생회 선거에서 '뉴라이트'라는 말이 금기어가 되고 있는 것처럼.

 



학과는 '학부제'로 빠르게 체질변화를 이루면서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무너졌다. 학부제는 철저히 관리자들의 효율성을 위한 제도였지, 향유자들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 일어일문학과, 중어중문학과를 묶어서 '동양어학부'로, 사학과, 사회학과, 철학과 등을 묶어서 '사회과학부'로, 경제학과 경영학과를 묶어서 '경제경영학부'가 되었다. 그나마 공과대에서는 학과 몇 개를 기계적으로 붙인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계공학과, 에너지공학과, 생산공학과를 합쳐서 '기계에너지생산공학부'로 만들었다.



'산학'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학과에서 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하고 투자하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기업이 커리큘럼을 짜는 방식의 수업이 새로운 학문방식이라는 미명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도들은 하나하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과도 같은데, 그것이 함께 터지면서 현재의 대학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차마 농구골대에 KT&G라는 로고를 붙이지는 못했고, 야식을 제공한다며 기업의 스폰서를 노골적으로 제시하지도 않았고, 총학생회가 기업의 스폰서를 타서 행사를 운영하는 등의 행동은 감히 할 수 없었다.


결국 대학문화라는 것이 사망하게 된 것은 298세대에 이르러서였으며, 298세대는 대학문화 사망 현장의 조문객이 되었다. 당시에도 298세대 사이에서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것은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된 현실을 자조하는 단어였다. 지금은 고등학교 4학년에서부터 고등학교 7학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서 아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묶어서 '고등대학교'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의식'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학내에 붙어 있던 여러 가지 현수막들을 보는 것이 피곤했다. '독재정권 물러나라', '민중의 적 김영삼은 사죄하라' 같은 선언적인 어휘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작은누나는 나와 2살 터울로 대학 시절 '과격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작은 누나와 나의 변천 과정을 보면 386과 298 사이의 변곡점을 드러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도에는 중앙성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서울로 따지면 명동성당과 같이 투쟁의 산실이 되는 공간이었다. 작은누나는 경찰에 의해서 중앙성당에 고립되기도 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학생운동과 관련해서 가족들과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누나와 같은 학교에 입학했을 때 'OO 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수 년 동안 나를 학생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학생회에 들어가지 않고 '아카데믹'한 생활을 즐겼다. 지금 나의 사랑스런 작은누나는 생활인이 되었고 나는 열렬한 투쟁가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을 온 시사모(시사인 창간독자)들에게 시사인 창간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상복을 입고) 그들이 질겁을 했다. 요즘에는 머릿속에 '언소주'만 가득 들어 있어서 언소주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걱정을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사회적인 것에 몰입하게 되었을까. 중용의 구절처럼 "내가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일단 보았다면 외면할 수 없다"로 설명할 수 있을까. 너무 개인화되고 개별해법으로 가려는 분들도 걱정이지만, 저처럼 너무 사회성이 강성한 것도 우려될 만한 점이 아닌지 모르겠다.

- 알라딘에 쓴 페이퍼(2mm짜리 하늘이 열리다)




아카데믹하고 얌전한 청년이었던 나는 이 시대에 가장 적극적인 투쟁가 중에 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것은 선배들의 손에 따라, 혹은 시대의 부당함에 맞서 즉물적으로 반응한 것과는 달리 사유를 통해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386은 왜 변절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 철학자 김상봉 선생의 간담회에서 나는 386들이 왜 적극적인 투쟁가에서 세속적인 생활인으로 변절했는가를 물었다. 그 때 김상봉 선생은 '즉물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386이 주도한 민주화 투쟁은 스스로의 결론에 의해서 도달한 지점이 아니라 독재정권의 횡포에 즉물적으로 반응한 조건반사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선배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맹자가 말한 '피일시 차일시'일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사회이건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제주에서는 4.3이라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다행히 4.3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선배들의 반응을 보고 환멸감을 느꼈다. "특별법 통과됐으면 다 끝난 거 아냐?"이것을 386의 말로 환원하면 "민주화가 됐으니 이제 다 끝난 거 아냐?"가 된다.


현대사에서 단군신화보다 강력한 신화는 바로 4.19, 5.18, 민주화투쟁 신화이다. 그것을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298세대로서 가지는 비판의식이다. 그들은 성숙한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나는 최소한 위험을 무릅쓰고 <시사IN>을 창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언론소비자들의 주권을 살리기 위해서 언론운동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의 결론을 통해 도달한 성숙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386은 88만원 세대를 보면서 마치 인생을 헛 살거나 인생이라는 말조차 모른다는 식으로 매도하여 사사건건 대립하고 이해의 틀을 만들기가 어렵겠지만, 298은 이들의 특징들을 모두 갖춘 세대라는 의미에서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298이 우리들의 '빠진 고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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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12-1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의 또래 승주나무님 ^^*
우리 세대야 말로 재미있는 투쟁을 만들 수 있는 세대
감각있는 운동을 만들 수 있는 세대라고 자부해 봅니다.
몇명 안남아 있지만 히히

승주나무 2008-12-12 12:12   좋아요 0 | URL
정말 옳은 말씀이신 것 같아요. 386, 298, 88 중에서 298이 감수성 있는 운동을 하는 데 적임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전우는 박정희 시대 때 작품입니다.나시찬 씨가 1979년에 사망했는데요.다른 작품과 혼동하신 것은 아닌지요?

드팀전 2008-12-15 08:16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린 시절에 본 기억이 나는데요...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84년에 종방한 거로 되어있네요. 아버지가 좋아하셨지요. 토요일 저녁무렵에 하던 '컴뱃' 하던 미국드라마 <전투>와 함께..<전투>는 두세번 재방영된걸로 기억합니다.

우리드라마 <전우>는 특히 노래를 들으니 그 드라마를 봤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나네요. 별 셋(원래는 별 넷이었는데 한 사람이 죽었지요.)의 노래를 저도 따라했거든요. 우리는 가..안...다. 하느을 도 흐른다...

<전우>가 두 번이 있었더군요.
하나는 70년대 했던 노이에자이트님이 말하는 나시찬 소대장을 중심으로 한 전우...
그리고 83-84년까지 했던 전우...요즘말로 하면 일종의 시즌2입니다. (제가 더 잘 기억하는 것도 이것인 듯 하구요.) 둘 다 같은 음악을 썻구요. 대신 선임하사 강민호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갑니다.
당시 어린이들이 그 노래를 불렀다면 숫자적으로 그들은 386 후반 세대나 296초반 세대에 더 가깝겠지요.^^ (여기서 이런 숫자적 세대개념이 흔들리는군요.^^ 박쥐세대들이 있다보니..)

승주나무님이 80년생이면 시즌2라 하더라고 4살 때 기억인데..음...아이들이 뽀로로를 기억할 수 있긴 할테니..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저 역시 나시찬씨 때는 어땟는지 잘 기억나지 않네요. 볼 수 있는 나이기는 햇을텐데..

승주나무 2008-12-15 09:52   좋아요 0 | URL
네.. 박정희 시절에 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저도 이 프로를 봤는데, 아마 재방인 줄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거의 후반부를 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상이 매우 깊었죠^^

당시 전쟁 관련 프로그램이 엄청 많았던 것 같아요. 캠페인처럼 정기적으로 하던 프로그램도 있었고요. 암튼 제가 봤던 프로그램은 <전우>가 확실합니다^^

2008-12-15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5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1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나시찬 씨 사망 이후 전우가 또 있었나요? 음...그랬군요.나시찬이 나오는 전우는 70년대 초반 태어난 사람들도 많이 봤지요.그걸로 나이 알아맞추기는 좀 힘들걸요.학교도 안간 어린이에서 청소년들도 다 봤으니까요.역시 전우하면 나시찬이죠.칼러 테레비 시대의 전우라...어쩐지 실감이 잘 안나네요.하하하...근데 296세대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승주나무 2008-12-15 15:45   좋아요 0 | URL
296은 298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사람을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전우>와 <3840유격대>의 시대에는 전쟁, 국군의 분위기가 전 사회를 휩쓸었고 동심도 휩쓸었던 것 같습니다. <전우>에 버금가는 프로그램이 TV를 도배했기 때문이죠. 굳이 <전우>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프로그램입니다^^

드팀전 2008-12-15 17:41   좋아요 0 | URL
전 노이에님의 나이를 알았습니다. 저 보다는 많고 제 아버지보다는 적은..^^

승주나무 2008-12-15 18:21   좋아요 0 | URL
그러면 노이에 님은 저보다는 많고 제 아버지보다도 적겠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효리 누나도 저처럼 박정희 시대에 태어났어요.저는 흑백 테레비 마지막 세대...이쁜 여자는 무조건 누나라고 하니 오해는 마시구요.
그리고 우리 화끈하게 놀죠.나이 같은 것은 내던져 버리구요.저는 10대들하고도 어울려서 너나들이 합니다.이거 해보면 되게 재밌어요.그래서 그들이 저를 좋아하지요.아...그리고 아버지보다 나이가 적다 하니 제가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전부 나보다 많고 아버지보다 어린 사람 아닌가요...으하하하하..그리고 대중매체에 대한 추억 가지고 제 나이 짐작하지 마세요.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일제시대 노래도 많이 알 뿐 만아니라 최신댄스곡도 많이 아니까요.

승주나무 2008-12-16 14: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볼 때는 드팀전 님이 노이에 님을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일종의 애정표현으로 제게는 이해되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1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표현...설마요...알라딘에서도 연애공간이 생겼나요? 으하하하....

드팀전 2008-12-17 19:19   좋아요 0 | URL
푸훗...노이에님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데 좋아할 수는 없지요.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저 이야기는 매번 하시더군요. 저도 10대하고 연애하지는 않습니다.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