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과 분량에 꼬챙이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와 아버지의 일본인으로서 가지기 힘든 역사 의식과 특유의 담백하면서 간명한 문체에 무장해제 되어가는 중이다. 역시 하루키구나 싶은 감탄이 나온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로 이런 글은 하루키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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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10-27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평에 읽고 싶어졌어요..사소설류나 사적 얘기는 손이 잘 안가던데...블랑카님은 제가 믿는 서재친구이니까.ㅎㅎ

blanca 2020-10-27 21:39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전 하루키의 팬이라 사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

scott 2020-10-27 1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00에세이 최고상을 받았데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데 아베이후 스가가 어찌 할지 모르겠네요.
아버지-소년 하루키-고양이 이러 연결고리로 아버지의 청년-중년-노년 한남자의 일대기를 담백한 문체로 써내려간 하루키 대단한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70세가 되니(전업작가로 40년의 세월) 연필만 쥐면 글이 술술 써진다고 하더군요. 이정도에 경지에 올라갈때까지 오로지 글만 쓰며 (작가 본업에 충실) 조급해 하지 않고 세계적인 작가에 반열을 차근 차근 밟고 올라가 하루키라서 인지 다음작품을 항상 기대하게 되네요. ^.^

blanca 2020-10-27 21:42   좋아요 1 | URL
우아, 이런 내용이 일본 교과서에 실린다고요? 가능할지... 나이가 젊을 때는 용감한 발언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노년이 되어 게다가 우익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일본에서 역사적 실책을 용감하게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드물잖아요. 게다가 하루키가 그런다는 게. 어디 하나 허투루 쓴 문장이 없어요. 에세이인데도 이 글은 그 누구도 쓸 수 없다, 반드시 하루키여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 정도더라고요. 사실 제 꿈이 쿨럭 하루키를 만나는 겁니다. ^^;;;

테레사 2020-10-29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하루키 만나시길! 저도 잘 몰랐는데 언젠가..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얘기한 걸 신문에서 읽은 후, 하루키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저는 다른 작품은 모르겠고, 토니타키타니가 들어있는 단편집, 렉싱턴(ㅋ)의 유령이라는 단편집을 참 잘 읽었어요. 가끔 그 책을 생각하곤 해요. 그리고 채소의 기분...을 좋아하고...여자없는 남자...라는 단편집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ㅎㅎ 역시 저는 하루키의 단편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blanca 2020-10-28 10:43   좋아요 0 | URL
헉, 테레사님, 저 도서관에서 <렉싱턴의 유령> 빌려 보려다 책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말았거든요. 저도 그 단편 궁금했는데. 꼭 읽어봐야겠네요. 하루키 단편 참 좋죠. 에세이도 좋고요. ㅋㅋ 하루키가 독자와 얼굴을 보는 걸 극도로 싫어한대요. ㅋㅋ 그래서 방한도 성사 못 시켰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가 끝나지 않는한 요원한 일이죠.
 
짝 없는 여자들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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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19세기의 '짝 없는 여자들'에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하며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세기를 가로질러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기회의 장에서 똑같은 존엄의 틀을 가지고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가? 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아직도 모니카, 버지니아, 앨리스의 삶은 여전히 어디에선가 반복되고 있다. 한때 거리의 여자와 결혼 생활을 하기도 했고 극빈곤층의 삶을 경험하기도 했던 작가 조지 기싱의 통찰력은 경이롭다.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들을 전면으로 내세워 그들의 시선, 입장에서 경험하는 남성적 폭력과 사회의 편견을 이렇게 섬세하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뛰어난 핍진성은 조지 기싱이 작중 여성 인물들을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이미 존재하였던 그녀들을 단지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짝 없는 여자들>에서의 여성 인물들은 모두 실존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이야기는 중산층이었던 매든 가의 딸들인, 앨리스, 버지니아, 모니카가 의사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보수적이지만 여성 인권의 태동기에 있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저마다의 삶의 행로를 개척하며 겪는 고난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특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용모를 타고난 막내 빅토리아는 우연히 거리에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부유한 위도우선을 만나 도망치듯 결혼을 택하며 고난을 겪게 된다. 위도우선은 아름답고 어린 아내를 믿지 못하고 의처증에 시달리며 실제 모니카는 정신적인 외도에 빠지게 된다. 


매든 가의 딸들을 정신적으로 교화시키고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여성의 경제적 자립, 독립적 삶을 설파하는 메리와 로더도 인상적이다. 특히 로더는 독신주의였지만 함께 살며 신조를 공유했던 메리의 사촌 바풋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심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조지 기싱의 혜안이 드러난다. 페미니즘의 선봉에 선 여인이 남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옴쭉달싹 못하게 될 때의 상황을 중층적으로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상대를 독점하고 때로는 상대에 복종해야 하는 그 복합적이고 어려운 관계망에서 자신이 어린 소녀들 앞에서 독립적이고 고귀한 선구자적 삶의 원형이 되어야 한다는 부책감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특히나 그 사랑의 연적이 자신이 아끼던 모니카라고 오해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힘든 결혼생활로 괴로워하는 어린 여성을 헛된 질투로 미워해야 했던 로더가 결국 모니카와 화해하고 소통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스물두 살의 유부녀 앞에서 서른두 살의 독신녀는 그녀가 비참한 결혼생활로 삶 그 자체를 방기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경제적 빈곤에서 도망치고자 섣불리 무모한 결혼을 감행했던 모니카의 슬픈 최후의 아릿한 여운이 길다.


조지 기싱은 이들 여성의 삶에 나타나는 남성들의 형상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때 방탕했지만 페미니스트 로더에 빠지는 바풋이 끝내 걸어갈 수 없었던 길, 아름답고 어린 모니카에 미친듯이 빠지게 되는 고지식한 재력가 위도우선, 유부녀 모니카에게 반하지만 끝내 비겁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미남자 베비스 중 어느 하나도 전적인 나쁜 남자의 향기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조지 기싱의 여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저마다의 설득력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최소한 여자들은.-내셔널 리뷰"

이 인용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남자들도 그렇다. 모든 인물에 그 어떤 거부감 없이 깊이 공감하고 이입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그들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고 가만히 돌아보게 될 것이다. 과연 이것이 그것인가? 이 질문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읽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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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26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덕분에 몰랐던 책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저도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말씀하신 그런 결혼 혹은 연애 앞의 갈등에 대해 소설로 읽을 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blanca 2020-10-26 17:26   좋아요 0 | URL
조지 기싱 또 올해의 발견인데요. 개인적인 삶도 드라마틱하고. 이게 막 너무 재미있고 그런 건 아닌데 인물들이 어찌나 생생한지. 계속 울컥울컥해요.
 
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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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단순히 제목에 이끌렸다. 상상력에 의거하여 작가가 세운 가상의 제국에 제대로 동화되지 않으면 SF는 몰입하기가 어렵다. <유년기의 끝>에는 묘한 이야기의 견인력과 흡인력이 있다. SF에 별로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쉽게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유명세가 이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기의 끝>은 '오버로드'라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내려와 인간들을 연구하고 지배하다 결국 개별성이 제거된 거대한 집단정신 에너지 군체가 되어 심우주로 뻗어나가는 인간들의 진화 작업을 마무리한 후 떠나는 이야기다. 결국 이것은 인류의 멸망이기도 하고 지구라는 행성의 절멸의 이야기이자 인간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는 스토리다.


오버로드 입장에서 인간은 자신들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서로를 공격하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종족이다. 그들은 인간을 구원함과 동시에 자신들 또한 '오버마인드'의 지배를 받는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지만 그 모든 시도와 질문의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클라크는 거대하고 심오한 질문들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한계는 보이지만 이 지구라는 행성과 지금이라는 시간의 차원을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망하는 식견을 제공해준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지평을 넓힌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집착하고 추구하고 경쟁하는 것들이 과연 우주적 차원에서 가지는 가치나 의미는 무엇일까. 위에서 내려다 본 인간사는 볼품없고 미시적인 낭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서 C. 클라크의 질문은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지점까지 천착해서 내려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여기와 저기, 모든 시공간의 경계는 어그러지고 그러고 나도 남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탐사가 가지는 심오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러나 단순히 외계 생명체와 인간과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 또 그 위에 '오버마인드'의 존재를 가정한 것 등은 이분법적인 식민지배관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을 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버로드'가 지구라는 행성에 돌아와 행했던 지배 행위가 가지는 의미도 모호하다. 두 개의 대전과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 등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모든 걸 은유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각은 이 이야기를 지나치게 평면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야기가 가지는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계한 우주의 배경과 시공간에 대한 촘촘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수많은 우주 공상 영화와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토양 역할을 하게 된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대단히 시각적이라 눈앞에 거대한 우주 정거장의 환시를 보여주는 차원의 것이다. 


"별들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이 메시지는 <유년기의 끝>의 핵심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 이야기에 흠뻑 몰입하는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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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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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겪고 어떤 느낌을 가질 때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다. 혹시 나만 이런 느낌을 갖는 건 아닐까? 나는 비정상일까? 아웃사이더인가? 그러다 어느 순간 지극히 정상적이고 세상에 속해 있다는 잠시의 환각이 지나가는 시기가 있긴 하다. 사람들을 만나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고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무난히 수행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받고 그러면서 시간이 간다. 그러나 다시 이러한 고독과 고립의 순간은 반드시 돌아온다. 침잠과 우울의 시간이 온다. 해결되지 못했던 질문들 또한 다시 회귀한다. 그런 상태를 오고가며 삶이 간다.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는 탁월하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이 명확한 그녀의 언어로 제대로 기술된다. 내가 미처 표현 못했던 어두운 심연을 해체하고 너무 찰나로 지나가 차마 포착하기 힘들었던 단상들을 단정하게 채집하여 다시 돌려준다. 누구나 그녀의 글을 읽고 이 한때 엄청난 알콜 중독자였던 거식증이 있었던 명민한 작가의 얘기에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일 수밖에 없는 챕터를 만나게 된다.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p.48


수줍음을 잘 타고 상류증 가정에서 자라 높은 기대치를 받고 자란 우등생 소녀는 삼십 대의 반려견을 키우며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곱씹는 작가로 자라난다. 부모를 연달아 잃게 된 상실의 체험 또한 절절하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 중독에서 헤어나온 자의 성찰은 용기 있고 심오하다. 어떤 종류의 중독이든 그것은 결국 고통을 정면으로 맞는 그 감각을 마비시켜 그것을 유예시킴으로써 결국 적절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통찰은 놀랍다. 술이든 담배든 약물이든 결국 그것은 당면한 고통을 회피하는 몸짓과 닿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특히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챕터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들킨 듯 호소력이 있었다. 요 근래 나는 약해진 부모님을 느끼며 적잖은 걱정과 안타까움과 어떤 부담을 느끼며 남몰래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캐럴라인 냅은 바로 이 시기가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지점이라고 명쾌하게 진단한다.


나와 같은 입장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것이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p.119

그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당신은 겁난다"고 그녀는 겁을 준다. 맞다. "당신은 기분이 나빠진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라는 얘기는 왜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삶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들이민다. 우리는 반대의 신화를 믿으며 성장해서 그것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푸념한다. 왜 갈수록 더 힘들지? 그렇다면 갈수록 더 쉬워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다. 왜 삶은 갈수록 더 쉬워져야 하는가? 어려워지는 것, 간단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지도교수와의 일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의 설득력은 농밀하다. 암암리에 권력을 통해 그녀에게 성추행을 저지르는 교수를 그 현장에서 거부할 수 없었던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단죄했던 수많은 비슷한 상황에서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웅변한다. 바로 거부하고 왜 뛰어나오지 않았는가? 그것은 어떤 힘의 역학 구도 안에서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거부하지 못하고 그 교수의 역겨운 행동들을 지나갔던 과거를 통해 이 미묘한 성폭력의 복잡다단한 대응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문제의 그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실체에 다가선다.


우리 문화는 육체적인 측면이 아닌 측면에서도 자신에게 만족하는 여자아이, 자신을 한 온전한 인간으로서 본질적으로 귀한 존재라고 느끼는 여자아이를 길러내는 데 능하지 못하다.

p.250


<명랑한 은둔자>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글들이 많지만 이것을 읽는다고 절대 우울해지지는 않을 책이다. 캐럴라인 냅에게는 어떤 결기, 용기, 진실성이 가지는 역동성이 절로 전염되는 마력이 글 전체에 포진하고 있으니까. 지금 아픈 사람도 특히나 중독에 빠져 자신 앞에 높인 고통을 차마 직시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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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9-17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블랑까님의 별 다섯이라니_ 갈등하고 있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음주에 지르려구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지르고 싶지만_ 인용구도 가슴 깊이 닿아요.

blanca 2020-09-17 13:41   좋아요 0 | URL
수연님도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이 작가는 <드링킹>이 최고라고 하던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단명이슬퍼요.

잘잘라 2020-09-1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 님 서재만 오면 주문할 일이 생겨요. (주문하고 싶어서 재빨리 달려왔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주문 중독자로서 이 책은 반드시 꼭 강력하게! 빨리 주문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lanca 2020-09-17 13:41   좋아요 0 | URL
잘잘라님 ㅋㅋ 저는 여기서 선포합니다. 시월달 책 주문은 없다고. 이렇게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2020-09-17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9-17 17: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전에 드링킹 앞에 조금 읽고 포기했거든요. 저는 읽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 글을 보니 캐럴라인 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으로 시작해야겠어요. 저 역시 부모님과 저 사이의 은혜로운 시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이 제일 와닿네요, 블랑카님.

blanca 2020-09-17 18:0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저도 솔직히 알코올 중독 내용이 주인 <드링킹> 읽을 자신은 없어요. 분량도 그렇고요. 두 권 사이에서 갈등하다 신간을 택한 거예요. 아, ‘부모님 은혜의 시기‘는 진짜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읽다 일어났다니까요. 요즘 드는 많은 생각들을 이미 냅이 다 먼저 겪고 훨씬 정확하고 정교하게 표현해놓았더라고요.

단발머리 2020-09-22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은혜의 시기‘ 너무 공감되네요. 저의 생각과 불안을 글로 만나기가 두려울 정도에요. 아까 오후에도 친구랑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래도, 용기내서 함 읽어볼까요? @@

blanca 2020-09-23 08:54   좋아요 0 | URL
에세이라는 게 흔히 작가가 좀 비대화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자기의 특수성을 표현하려다 보면 갇히는 한계인 것 같은데 이 작가는 아주 독특하게 자기를 표현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공감을 얻어내는 힘이 있어요. 이건 내 생각인데! 이런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흰 도시 이야기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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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병, 전염병은 인간 관계의 역학마저 변질시킨다. 사소한 접촉, 마스크의 착용 여부, 모임의 취소, 강행을 둘러싸고 코로나는 사람 간의 교류의 성격까지 변화시키기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이제는 민폐이자 나라의 방역에 협조하지 않는 풍경으로 비친다. 몇 개월 안이면 바이러스가 사라지거나 적어도 치료약이나 백신의 개발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 될 거라 여겼던 기대들은 이제 벌써 육개월이 훌쩍 넘어가 학습된 무기력으로 치닫고 있다. 사람을 믿고 사람과 접촉하고 맛있는 것들을 나누던 시간들이 점점 낯설게 멀게 느껴진다.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는 코로나 이전에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를 마치 예고하는 것 같은 소설이다. 피부가 하얗게 말라붙는 '다기조'라는 전염병에 점령된 L시의 공무원 이동휘의 이야기는 이 전염병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유린하는지에 대한 탐사다. 아이를 잃고 세상에 대한 감각을 잃고 사람 간의 접촉과 애정을 잃어버린다. 


"새로운 병이 나타났다는 것은 새 시대가 출현했다는 것과 한 뜻이요."

-p.36


카뮈의 <페스트>에서 봉쇄되었던 도시 오랑의 시민들이 느꼈던 절망은 L시의 그것과도 닮았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이나 기대를 잃어버리고 전염병으로 무너지는 삶에 적응하게 된다.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진다. 그 병에 싸워 이겨보려는 의지조차 없다. 그런 의지는 반역적이고 반동으로 치부되어 모래마을이라는 대치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동휘는 그 두 공간의 경계에 서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도시의 운명과는 별개의 고유한 개인이 존재한다-바로 나 이동휘 말이다!-는 허황된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L시야 어떻게 되든 내가 지킬 수 있는 고유의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p.112


<흰 도시 이야기>는 이동휘가 이러한 개인의 고유성을 도시의 운명에 맞서 과연 지켜낼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그는 L시에서 나와 모래마을로 가고 모래마을에서는 또  L시를 그리워하는 그 복잡한 모순 안에서 방황하지만 끝내 패배하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아이와 잃어버린 기억들을 들쑤시는 그 고통과 연약함을 회복하려 애쓴다. 고통스러운 진실보다는 편안한 거짓과 허구를 택하는 다수 가운데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동인을 아이로 잡고 있지만 과연 이동휘라는 인물의 성향과 일관성이 있는지가 좀 모호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싸우고 어떤 사람들은 굴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견디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이 삶을 견디지 못하는가. -p.245


우리가 잘 견뎌내고 다시 예전의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책에도 그러한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고 희망할 수 없는 나날들을 일상으로 꾸역꾸역 이어나가는야  하는 것이 모두에게 힘겹다. 우리는 견뎌야 할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KF94를 끼고 언덕을 오르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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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29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는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것.
말하자면 우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거지요.
다시는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살까 봐 진지하게 생각하면 심각해져요.
모든 걸 잊는 잠 자는 밤이 요즘은 좋으네요. ^^

blanca 2020-08-30 09:00   좋아요 1 | URL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결국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올 거라는 걸 믿고 어려운 시간들을 잘 통과해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