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동물들 우화와 우리 전통 구전 설화가 엮여 책장도 잘 넘어가지만 멈추어 서서 한 번씩 생각에 잠기게 할 만큼 진지한 동화다. 진실이란 어렵고 복잡한 성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간명하고 맑은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더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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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7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분명 성적 지향은 다른데 내가 느꼈던, 내가 그리워했던, 내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 모든 감정들과 느낌들을 환기하는 작가의 능력은 여전하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고 쓸 수 없는 것들을 툭툭 내던지는데 거칠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신기했다. 재미있고 특별한 데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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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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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번역 출간되기 이전 이미 몇몇 기사에서는 40년 전 이미 신종 코로나를 예견한 추리 소설이라는 얘기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 일치하거나 노스트라다무스적 예언은 아니라는 갑론을박도 함께였다. 딘 쿤츠는 비교적 우리나라에서는 지명도가 낮지만 전세계적으로 5억부 이상을 판매한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티븐 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라는데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원서는 절판되었고 번역본도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금세 번역되어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이 작품은 전직 무용수이자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쇼의 제작자인 티나라는 젊은 여성이 아들 대니를 잃고 그 상실을 딛고 자신의 삶을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의 도정에서 출발한다. 서스펜스 작가는 자신의 플롯을 밀고 나가려는 성급한 욕망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단순화하려 하지 않는다. 성공한 제작자로서의 커리어에 매진하려는 아내를 못마땅해하는 남편의 저열한 마음의 묘사도 사실적이다. 티나는 남편을 잃고 다음으로 아들을 잃는다. 떠나간 아들은 그녀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듯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그녀는 마침내 변호사인 연인 마이클과 함께 그 메시지의 성격과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상정된 악은 놀랍게도 국가다.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강대국들은 생화학 무기개발 경쟁에 물러나지 않으려 각축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온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등판한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가 실수로 유출되는 과정에 티나의 아들이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참가한 캠프의 사고가 연결된다. 국가의 거대하고 은밀한 프로젝트에 개인의 삶은 소모품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것은 더 큰 비극으로 연결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극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일어는 일어나는 일들에 마치 하나의 평행우주를 예견한 것같다. 아이를 다시 품에 안은 어머니의 눈빛과 만나는 아이의 눈빛은 그 전의 해맑고 순진한 빛을 잃었다. 삶의 어두운 이면을 보아버린 아이는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딘 쿤츠의 예지력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빛난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어쩌면 그 진실은 끝내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추정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각종 불투명한 상황은 그것만으로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러번의 예견과 그 예견에 제대로 대응하고 준비하지 못한 모습이 그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로 파괴하기 위해서 과학과 의학의 진보를 이용한다. 그것은 애국심도 대의도 아니다. 단지 파괴다. 딘 쿤츠는 거기에 바로 이 깊은 어둠의 심연이 있다고 봤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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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중년의 내가 인정하기에는 조금 안타깝지만 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느끼는 감성이, 쓸 수 있는 얘기가 있다. 어딘가 한 구석은 열려 있고, 날것의 경험은 겉돌지 않고, 소통과 교감에 대한 기대를 속단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타는 간절함이 서려 있는 이야기가 있다. 김연수가 그랬던 시간에 만든 이야기들을 신형철 평론가가 갈무리하던 시간을 기억한다. 쓰고 해석하고 느끼고 마무리하는 둘의 궁합은 정말이지 최고여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이야기가 너무 좋은데 그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며 내가 놓친 것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평론가의 마무리까지가 소설가의 작품의 연장선상인듯한 느낌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상기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잊어버린 감각이 되돌아오고 이젠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느낌들을 다시 맛보았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일곱 작품과 짝꿍처럼 곁들여 있는 신진 평론가들의 평론도 다 함께 마저 읽어버렸다. 물론 내가 충분히 젊었을 때 한창 젊었던 소설가와 비슷한 평론가의 평론을 읽으며 느꼈던 그 시간의 감동의 진폭과 결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감동을 충분히 기억해 낼 만큼 좋았다. 


강화길의 <음복>은 아직 제사문화가 남아 있고 곧 화자 같은 올케를 맞이하게 될 지 모를 지금 나의 상황을 곱씹어보게 했다. 비판없이 전승되는 가부장 제도의 집약인 '제사'에서 그것을 주도하는 남성들의 역할과 그들을 보조하고도 자신이 한번도 본 적조차 없는 상대 배우자의 조상에게 절조차 나가서 할 수 없는 여성들의 희생과 그 틈의 긴장, 감정의 소진이 신세대 며느리의 시선 앞에 생생하게 정경화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고 골치아픈 모든 문제들로부터 보호되는 남편을 사랑하는 '나'의 모순은 결국 이 젠더의 구조화가 미치는 여성들 간의 갈등, 암투로 교묘히 왜곡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대목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고 비판 없이 그러한 가족적 전통 서사를 받아들였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은행의 계약직이었다 늦깍이 대학생이 된 화자가 여성 강사와 만나 교감하고 오해하고 어긋나며 역설적로 그녀가 걸어간 길을 답습하게 되는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최은영 특유의 큰 서사 없이도 삶의 어떤 그리운 정경을 불어내는 재주와 그것에서 확장되는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만나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화자의 자문에 깊이 공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똑똑하고 당차던 그녀들이 사라져간 길을 다시 꾹꾹 눌러 밟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의 질량감을 길어올리는 작품이었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은 허구의 소설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커밍아웃과 애인과의 동거 생활에 대한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에세이 같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으면서 삶의 행간의 의미를 끌어올리는 작가의 능력은 그의 성정체성을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나 화자의 책을 읽고 난 어머니가 사투리로 "니 진짜로 그애랑 그런 생활을 했나?"라고 묻는 대목에서는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막상 심각한 장면인데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에 찍힌 방점은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기대치와는 완전히 대치되는 '그런'이 비극적인 신파로 전락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 김봉곤 작가의 생에 대한 활달한 긍정과 씩씩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자체의 생동감이 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결론은 타협, 수긍인데 이야기는 침잠하지 않고 왜 이리 유쾌하게 역동적인지 나도 그의 '그런 생활'을 어느새 인정하고 이해해버린 듯한 느낌.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어느 구석인가 테드창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가 있다. 우리의 집단화된 구조화된 사고체계를 격자로 실체화하고 그 안팎을 넘나드는 화자와 이단아 같은 친구의 관계망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어느새 우리 안에 고착화된 외부에서 주어지는 어떤 고정 관념, 계승되는 각종 제도와 교육에 관련한 그 경직된 틀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여지없이 상큼하고 창의적이었다. 결이 아직 촘촘하지 못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시간과 함께 충분히 숙성할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 작품.


장류진의 <연수>는 내가 삼십 대 중반이 넘어 중년의 여성 강사에게 받았던 운전연수를 떠올리게 해서 반가웠다. 모든 것에서 엄친딸인 화자가 운전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그녀를 교묘하게 자극하고 결국 독립시키려는 강사의 모습이 유사 모녀 관계를 연상시키며 어떤 현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는 아들을 키워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평범한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어떤 상실감감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가 살아오며 체득한 사회적 제도망에서 자신들이 낳고 키워낸 자식이 일탈할 때 부모로서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삶에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참신한 작품이라 읽고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반적으로 모두의 작품이 건드리는 사회적 통념과 경직화된 구조의 공고함은 어떤 유연함을 사고의 전환을, 도약을 향해 약진하는 느낌이다. 서사는 참신하고 문장은 구어적이고 결론은 열려 있다는 공통점에 기대어 오랜만에 모든 단편에 집중해서 즐거움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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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해 최근에 다들 좋다고 하던데 블랑카님도 별다섯을 주셨네요. 거침없이 저도 지르겠습니다.

blanca 2020-04-10 14:39   좋아요 0 | URL
일단 다락방님, 재미있어요. 보통 단편들은 인내심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하나 같이 그냥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읽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또 가볍지도 않고요. 그저 ‘인정‘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책값도 착하고요. 표지도 예쁘고 이러고 보니 완전 영업 중이네요. ^^

moonnight 2020-04-10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저도 헐레벌떡;; 보관함에 던져넣습니다. 일단 재미있다니♡ 얼른 읽고 싶어요. blanca님^^

blanca 2020-04-11 13:25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공감하는 대목이 분명 있어요. 제 기억에 사변적이고 추상적이고 한창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난무했던 시간도 분명 있었어요. 심지어 소설을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요. 그런데 이제 뭔가 꿈틀꿈틀 이야기들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랄까요. 이 정도의 작가들이 계속 나와준다면 이야기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 너무 극찬을 하고 나니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데 괜히 부담스러워지네요. ^^ 저는 정말 좋았어요.

감은빛 2020-04-10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 읽으며 저도 안타깝단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 책 찜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20-04-11 13:2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중년은 정말 영 나와는 먼 친정 엄마한테나 쓰는 용어인 줄. 하지만 현실은 이젠 완연한 중년이죠. 후회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추천합니다.

유부만두 2020-04-2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는 중이에요. 실은 블랑카 님께서 빼놓으신 단편에 분노했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읽고 있는데 줄어드는 남은 쪽들이 아쉽네요. 블랑카 님 감상이 어떤 면에선 더 제 맘에 가깝고요. ^^

blanca 2020-04-21 20:40   좋아요 1 | URL
혹시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좀 잘 안 읽히긴 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야기였어요. 전반적으로 아주 가벼운 이야기들은 없었고 너무 무겁고자 했던 이야기도 없어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아요.
 
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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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아나토미> 하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메디컬 드라마를 떠올리게 되지 사실 동명의 위대한 해부학의 고전을 쓰고 요절한 저자 헨리 그레이와 삽화를 그린 같은 이름의 헨리 카터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경학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만년을 함께 한 빌 헤이스 또한 자기만의 전문적인 관심사 분야를 파고들어 꾸준히 글쓰기를 한 작가로 이 <해부학자>를 통하여 그는 이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두 명의 발굴되지 않은 삶의 궤적을 자신이 직접 참가한 해부학 수업의 과정과 함께 엮어 그려 나간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인 헨리 그레이는 문자로 된 사적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아 그의 삶을 직접 추적하는 데에는 적잖은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천재 해부학자 외과의사는 삼십 대에 천연두로 요절하여 자신의 책이 중쇄를 거듭하며 의대생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임을 예감하지 못한다. 그레이를 묵묵히 보좌하며 막대한 양의 정밀한 삽화를 그리며 책의 완성에 기여한 헨리 반 다이크 카터는 상대적으로 나름대로 성실하게 그날의 일상들을 기록한 일기를 남김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레이의 드러나지 않았던 그간의 행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카터는 그레이에게 어떤 경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그레이의 추진력과 카터의 무식할 만큼 집요한 성실성으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짝 천재성을 드러내었던 그레이의 삶이 전염병으로 일순간 너무가 허무하게 중단된 반면 카터는 비교적 노년까지 남아 자신들의 역작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는 모습과 또 그것에 따른 열매를 맛보게 된다. 


저자 빌 헤이스는 원래는 헨리 그레이의 전기를 쓰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젊은 학생들과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해부학 개론" 수업을 듣고 해부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두 헨리가 탐구하고 천착하며 써 낸 해부학 교과서 뿐만 아니라 그 둘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도 점점 더욱 깊어짐을 느끼며 이야기는 좀 더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되며 더욱 다채로워진다.  많지 않은 자료를 재구성하여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두 젊은 해부학자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며 그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난 사랑과 작별, 상실의 이야기를 슬며시 끼워넣는 손길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그들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은 공백은 그래서 저자 빌 헤이스 자신의 삶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p.359



해부학자의 삶의 동행자였던 빌 헤이스의 연인은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게 헌정되고 이 책을 통하여 그는 다음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면 헨리 그레이와 헨리 카터는 나란히 저자의 삶에 나름의 힘을 행사한 셈이다. 사람의 몸을 해부하여 신체를 알고 거기에 생기는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그것의 올바른 가이드 라인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다시피 하여 만들어 낸 길이 남을 명저, 그것들이 어찌하지 못하는 결국 맞이하고야 마는 상실과 죽음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책이다.  학생들에게 적절한 해부학 교과서를 남겨주고자 했던 어쩌면 그 평범했던 의도가 두 젊은이의 열정과 성실성과 만나 맺어낸 우연한 눈부신 성취의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고 진실성 있게 복원하고자 했던 저자의 지난한 노력의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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