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상은 유럽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던 시기에 태동되었다.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자본주의는 생산의 중심을 가정에서 공공장소로 옮기고 남성의 노동력만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여성들은 생산활동에서 배제도니 채 가사만을 전담하게 되었고 특히 새로 생성되기 시작한 부르주아 여성들은 어떠한 노동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 윌스톤크래프트는 '여성옹호론'에서 18세기 부르주아 여성들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덕목이 사실상 가부장적 사회의 요구와 훈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성의 행복이라는 개념도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줄 것을 주장하였다.
19세기에 들어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뿐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경제적 기회도 똑같이 제공할 것을 주장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과 줄리엣 테일러는 그들의 합리성에 개념에 근거하여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즉, 인간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추구한다는 도덕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자아 실현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든, 없든 간에 여성에게도 모든 가능성을 갖게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나의 고립된 사상이었던 페미니즘은 20세기에 들어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60-1970년대는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특히 서구에서 여성의 지위에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여성의 행복이나 진정한 해방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유명한 베티프리단의 '여성의 신비'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슈퍼우면이 되기를 요구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백인여성을 대상으로하여 국한되었다는 점과 성적차이를 전적으로 환경적인 것으로 돌리고 동시에 남성적인 가치에 대해 우월성을 부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또한 성별을 구별하는 페미니즘보다 성별에 중립적인 인본주의를 도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제도적이고 법적인 성차별을 점진적으로 폐지해 나감으로써 여성의 법적 지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의식개혁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는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을 자본주의 제도에서의 계급적 착취구조로 설명한다. 여성을 하나의 종속적 계급으로 보고 지배계급인 남성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여성을 가정에서 공적 산업으로 재투입시키고 육아를 사회화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그 분석의 대상이 노동에 제한되어 있고, 여성억압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또한 여성해방의 선결 조건인 자본주의 체제의 타파와 변혁운동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이 현실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문제가 단지 성에 의한 지배가 아닌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임을 환기시키고, 여성의 생산활동, 가족과 사회내 위치, 결혼제도가 역사적으로 변화되어야함을 강조하여 현재의 여성을 억압해 온 제도와 관행의 변화에 대해 환기시켜 주었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어서 등장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뿐 아니라 가부장제의 성차별에서도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 급진주의에서 말하는 가부장제와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체제가 상호결합되어 성차별적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상호결합하여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가가 주요 관심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논의가 여성의 압박을 자본에 의한 것으로만 들리고 남성들에 대한 여성의 압박에 의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비판하였다.
이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세가지의 주장으로 요약된다. 첫째, 일원론으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상호결합해서 하나의 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둘째, 이원론으로 가부장제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경제구조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독자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셋째, 다원론으로 여성 억압은 생산, 노동, 성, 가족 등 각 영역에서 여성억압의 기제들이 다르게 작동되어진다고 본다. 여성이 처한 특수한 상황의 문제를 생산적 작업, 재생산, 성관계, 자녀양육으로 보고 이것들의 변황벗이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성별분업 철폐 투쟁과 계급관계를 폐지하는 투쟁 간의 구조적 연결이 체계화되지 못한채 열거되고만 있어, 여성억압을 가중시키고, 무엇이 여성운동의 선결과제인지 혼란을 주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억압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술, 생태, 출산과 어머니의 역할, 성차와 성 활동들에 대해여 논하고 여성의 예술, 종교, 과학, 시, 문학, 노래, 춤, 활동 등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여성의 억압을 가장 근본적인 인간 억압이라고 보고 그것을 어떤 형태의 불평등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급진적 페미니즘은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틀 태에 끼워놓기 식으로 문제를 풀어낸다고 비판하면서, 현재의 체제 자체를 여성의 입장에서 정면도전하고 전체적으로 바꿔보겠다는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성억압은 단지 법률제도상의 차별이나 계급억압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지배집단이 여성이라는 집단을 지배하는 권력구조로 인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남녀 간의 신체적인 차이가 성불평 등의 핵심요인으로 보았다. 따라서 초기에는 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해방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는데, 여성해방의 목표를 출산을 둘러싼 남녀간의 성차가 존재하는 않는 사회로 보고 이성애를 거부하고 동성애를 옹호하였다. 대표적으로 케이트 밀레트는 양성을 주장하였다. 메리 데일리, 매키넌 등은 동성애를 주장하였다.
이와는 다르게 후기 급진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였다. 즉, 여성적 가치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여 여성문화를 남성문화의 대안적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드리안 리치, 메리 오브리엔은 출산, 양육경험, 모성역할이 여성을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보호하는 감각을 갖게 하며 창조성과 직관력, 감각을 지니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단지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립구도로 풀어냈으나 실제로 여성억압의 양상은 성 이외의 계급, 민족차별 등이 혼합되어 보다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함께 이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규정하는데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강간, 가정 내 폭력, 포르노 등의 성문제를 본격적으로 폭로하고 가시화하였고, 성차별 문제를 여성운동 내로 끌어들여 실천활동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이 페미니즘에 도입되면서 여성해방에 관한 논의는 더욱 차원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들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구조적 접근보다는 개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서 찾으려 하였다. 즉, 여성성이 어떠한 심리 기제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내면화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치중한 것이다. 대표적인 연구자로 초드로우와 디너슈타인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여성과 남성이 다른 심성을 갖는 근원은 여성의 체험(삶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으로 양육의 부모 공동부담을 주장하면서 남성과 여성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다름에서 시작해서 여성문제에 접근하였다.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개인의 심리구조에서 찾으려 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남성과 여성간의 인성차이에 돌려 버렸다는데 비판을 받는다. 그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족구조, 사회제도 등에서의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문제를 보는 영역과 실천적 전략의 범위를 넓혀 보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고, 남녀 간의 성차이를 단지 사회화 과정에서 찾기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개인 심리 속에서 각인되어진 보다 뿌리깊은 곳에서 문체를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가장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단일한 요소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구조화된 것으로 설명하는 접근을 비판하고 여성이라는 범주가 남성과 대비되는 이원화된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해체'를 강조한다. 여성의 보편적 특성은 없으며, 지위 경제조건, 정치상황,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맥락에서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이론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중화가 어렵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여성성, 여성범주의 해체 전략이 종국에 가서는 여성집단을 부정하게 될 때 여성문제 해결의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에코페미니즘(생태 페미니즘)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태여성론으로, 자연생태계와 인간을 하나로 보고,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또한 지금까지 남성중심·서구중심·이성중심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뒤바꾸려는 실천지침이기도 하다.
이것은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위기가 동일한 억압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남성이 곧 문명이고, 여성이 자연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남성과 인간문명을 타도 대상이 아닌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문명은을 처음부터 하나였다고 보고, 이들의 어울림과 균형을 통해 모든 생명체의 통합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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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알렉스 캘리니코스 - 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청강연 내용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남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그 투쟁의 규모와 용맹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투쟁이 일어난 이곳에서 연설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또한 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돼있는 분들에게 연대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인권상을 받은 나라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 때문에 수감돼 있다니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한이 기쁜 일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한국인 민족주의를 고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한은 오늘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에 서방 세계인 유럽과 미국에서 남한은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전진하는 경제로,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하는 모범 사례로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IMF 위기 전개 이후인 지난 2년간 남한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체제의 모순들을 대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남한이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한다는 것이 참말일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1990년대의 풍조는, 특히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이 판을 쳤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동구권이 무너진 이래로 득의 만만한 주장은, 서방식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의기양양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인 중심인 미국에서 월가의 주식 시장이 1990년대 동안 전례없는 호황을 누려 왔다는 사실 덕분에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의기양양은 지난 주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사람이 표현했습니다. 그린스펀은 월가의 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입니다. 지난 주 '새 천 년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인들이 자유 시장에서 발휘하는 생산 능력에 대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증거를 우리가 지난 10년가 미국에서 목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린스펀은 지난해에는 더 나아간 말도 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미국 경제가 역사를 넘어, 그 동안 자신의 성장에 가해져 온 모든 전통적 제약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포스터모더니즘이 갑자기 월가에 자리잡기라도 한 양 매우 보수적인 중앙은행 총재가 '역사를 넘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린스펀의 시각, 즉 신자유주의자의 시각에서 보면 아시아 경제의 추락과 IMF위기는 영미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삼 년 전에 남한 같은 경제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정실 자본주의;'즉 재벌과 국가 관료들 사이의 부패한 연계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IMF위기는 남한 같은 경제들을 좀더 자유시장 방향으로 구조조정할 기회이자 또한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이런 나라들의 값싼 생산적 자산을 사들일 기회인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과정에 저항하는 것은 구제 불능의 반동입니다. 경제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각 국민 국가가 자신의 경제를 통제하던 지나간 과거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묘사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우리가 세계적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을 제시하는 방식 치고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화의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사이의 불모의 논쟁을 피하려면 칼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모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변증법적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즉,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규정하는 모순들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예컨대<공산주의 선언>에서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원동력, 즉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사회관계들에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형성하고 부르주아지가 생산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며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했을 때 그는 앤써니 기든스와 여타 세계화론자들을 150년이나 앞질렀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본래부터의 결함들을 파악했습니다. 즉, 노동착취에 바탕을 둔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위기로 나아가는 본래부터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증법적 시각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드릭 제임슨이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그는<공산주의 선언>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인 동시에 최악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으로까지 인식 수준을 어떻게든 높여야 한다." 자본주의는 원리상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어지간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는 지점까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착취, 부당함, 환경파괴, 위기와 전쟁으로 나아가는 경향 따위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악의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시각이 새 천 년에 들어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최상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먼저 세계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의 전력을 살펴봅시다. IMF와 세계은행이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 정책들을 전세계에 강요하기 시작한 지 대략 10-15년이 됐습니다. 해마다 UN이 발행하는 <인간 개발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고서가 서술하는 빈곤과 불평등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 중 최부유층 5분의 1의 소득과 최빈곤층 5분의 1의 소득 격차는 1960년 30대 1에서 1990년대 60대 1로 벌어졌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승리한 1990년대에 불평등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1997년에 그 비율은 74대 1로 올랐습니다. 1994년과 1998년 사이에만도 세계 최상위 200대 갑부는 재산이 갑절 이상 늘어났습니다. 4천4백억달러에서 1조 4백2십억 달러로 말입니다. 그들 가운데 단지 세 사람, 즉 빌게이츠와 월마트 회장 월튼과 브루나이국왕의 재산이 세계 최빈국 36개국의 소득 합친 것만 합니다. 서구의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안에서도 똑같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만 들면, 1973년과 1993년 사이에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실질 임금은 하락했습니다. 1997년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1985년보다 낮았고 최고 수준이었던 1978년 보다는 한참 낮았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처지에서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더 빈곤해질 것이라고 충분한 증거도 없이 우겨댔다는 비판에 맞서 마르크스를 변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부국인 미국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지난 25년간 더 가난해졌음을 봅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빈곤화라고 부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긋지긋하고 증대하는 불평등의 세계에 직면해 불확실성과 다원성을 창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 같은 것은 제게 그저 경박하고 엉뚱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시각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이러한 현실을 다루어야 합니다. 
 

세계경제 위기


이러한 현실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장기간에 걸쳐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선진 자본주의의 세 주요 지역을 봅시다. 유렵대륙은 1990년대 동안 경제가 지지부진했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동안 악성 디플레 위기를 겪었는데,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로 어떤 주요 경제도 겪은 적이 없는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 있는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의 유일한 객관적 근거는 지난 이삼 년가 경제가 비교적 급성장한 미국입니다. 하지만 이 성장은 월 가 주식 시장 호황에 결정적으로 의존한 것입니다.  

이 호황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서양식 정실 자본주의의 사례라는 것입니다. 1년 전, 금융시장에 거액의 투기를 한 롱텀 캐피틀 매니지먼트(LTCM)라는 투기성단기자금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투기 금액이 하도 거액이어서 그 회사의 붕괴는 서구 금융 체제를 파멸시킬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LTCM을 구하러 개입했습니다. 그 투기성 단기자금 회사의 대표이사가 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고위 임원이었다는 사실과 월 가 은행들이 그 회사를 투기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실자본주의가 아시아의 현상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하라고 하십시오. 세계 모든 곳에서 자본가들은 서로 속이고 또 서로 뒤를 돌보아 줍니다.  

미국 주식시장 호황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계급 사람들은 사치 소비재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식시장에 돈을 투자했고, 주각가 올랐고, 더 부유해졌다고 느꼈고, 그래서 돈을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에, 또 실제로 세계 경제에 유리한 일인데, 왜냐하면 소비 증대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가가 계속해서 급상승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가는 결국 주식을 발행한 기업들의 이윤에 근거하므로 궁극적으로 주가는 이윤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현시기 경제 위기를 일으킨 것은 바로 주요 경제들의 이윤율, 즉 투자수익률의 대폭 하락이었습니다. 근래에 미국의 이윤이 회복된 것은 주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식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한 덕분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윤율은 현시기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70년대 초보다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식 시장이 근저의 비교적 낮은 이윤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월 가 주쇼螢 시장은 추락할 것입니다. 비록 이 일이 정확시 언제 일어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에 IMF는 그들이 "월 가의 중대한 조정국면"이라고 부른 증시 대폭락의 가능성이 지난 한 해 동안 급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식 시장 추락의 충격은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미칠 것입니다.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지난해 아시아의 경제추락과 금융 공황을 겪는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소비 지출은 나머지 세계로부터 미국의 수입을 흡수하는 데 일조했고, 그럼으로써 다른 경제들을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 경제학자 말마따나 미국은 세계 전체를 위한 최후 수단으로서 소비자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월 가가 추락한다면 이 과정은 역전될 것입니다. 자기의 주가가 떨어진 중간계급 가구들은 가난해졌다고 느끼고는 돈을 덜 쓸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와 십중팔구 세계 경제를 경기 후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 이래로 세계 경제가 겪는 네 번째 세계적 불황이 될 것입니다. 단지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의기양양의 분위기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 경기 후퇴라는 전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결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의 해결책


지금까지 저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의기양양이 합리적 근거가 없음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잘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지금 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최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전통은 자본주의를 개혁하고자 한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남한에서 이 전통은 지금 민주노동당이라는 형태로 계승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2차세계대전 이래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케인즈적 국가 개입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 해왔습니다. 바탕에 깔린 생각은 시장이 스스로는 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시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생각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이른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가 미국 같은 나라의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사회적인 버전(변형)을 대표한다는 생각과 결부되곤 합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원천에 대한 피상적인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문제가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불합리함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시장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선구적 분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근원은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그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은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기업은 각각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키려고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윤 추구적 투장 행위들의 종합적인 효과는 체제 전체의 세계적인, 즉 일반적인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자본가가 행하는 합리적 행위인 개별 이윤 증대 노력은 세계적으로 비합리적인 효과인 전반적 이윤율의 저하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이윤율저하 경향이야말로 자본주의가 흔히 겪곤 하는 위기의 숨은 원인인 것입니다. 이 위기는 실수나 우연 또는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한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작용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제가 논의하고 있는 전략의 수립자인 케인즈 자신은 실제로 이러한 현실을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 개념은 이윤율과 얼추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그가 '투자의 다소 포괄적인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달리 말해, 그는 사회가 자본가들한테서 투자에 대한 통제력을 압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의 생산적 자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지배력을 그들로부터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혁명을 뜻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케인즈 분석의 논리에 두려움을 느껴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들은 차라리 자본주의를 조절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처 방식의 난점들은 독일의 최근 경험이 보여주었습니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경제적 중심입니다. 1년 전, 독일은 연방 선거를 통해 16년간의 우파 지배가 끝났습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인 '적록연정' 이 성립됐습니다. 적록정부의 선출은 이전 우파 정부가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거부을 뜻했습니다. 이것은 정부에서 라퐁텡이 한 역할에 반영됐습니다. 사회민주당 당수인 라퐁텐은 새 정부의 재무장관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사회민주당내 좌파계 인사이고, 골수 케인즈주의자이며, <세계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책의 지은이입니다. 재무장관에 임명되자마자 그는 유럽 중앙은행에 반대하는 공세를 폈습니다. 그는 경기 부양과 대량실업 완화를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빈곤층에서 부유층으로 조세 부담을 이동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 대기업들은 무지무지하게 격노했습니다. 매스 미디어는 라퐁텐을 악마처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선도적인 우파 신문은 1면톱으로 상단에 크게 라퐁텐 사진을 싣고는 헤드라인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이 사람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가?" 독일의 손꼽히는 기업들은 라퐁텐의 세법개정안이 실행된다면 본사를 독일 밖으로 옮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일단의 손꼽히는 산업체와 은행 경영자들이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드에게 압력을 넣는 공작을 했습니다. 올해 3월초에 그들의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라퐁텐은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패퇴에 이어 적록 정부의 급속한 우경화가 뒤따랐습니다. 라퐁텐이 사임한지 겨우 몇 주 안에 나토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독일 외무장관은 요슈카 피셔라는 사람인데, 그는 녹색당 당수로, 전에 혁명가였고 노련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토의 발칸 전쟁을 앞장서서 옹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몇 주 안에 슈뢰더는 일연의 신자유주의적 삭감 정책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일괄 정책들의 골자는 부유층에게는 법인세를 삭감하고 빈곤층에게는 연금을 삭감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퐁텐 사건은 두가지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그 사건은 자기네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순전한 자본의 권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라퐁텐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고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선거로 뽑히지 않은 기업인들에 의해 직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국민이 투표하지만 기업가들이 결정합니다.  

둘째, 라퐁텐 사건은 자본이 자신의 활동에 대한 국민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신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전체적인 시야를 갖고 이 두 번째 요점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의 정도를 크게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국적 자본들을 마치 영화<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외계 우주선처럼 그립니다. 그 외계 우주선은 지구 위의 허공을 떠돌아 다니면서 파괴적인 광선을 아래로 세차게 퍼붓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본은 국가적 정박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자기네 국민 국가의 후원에 계속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1년 전에 금융 시장이 심각한 공황에 사로잡혔을 때 상황을 진정시켰던 것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EDUXK 중앙은행들이라는 형태의 국가였던 것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여타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대폭 인하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심시켰습니다. 자유로이 움직이는 금융 시장조차 국가의 후원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한 세대 동안 자본주의는 더욱 세계적으로 통합됐습니다. 이것은 수입억 달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금융시장 차원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제조업 제품 수출이 미래를 결정하는 대부분의 경제의 국제 무역 차원에도 들어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갈수록 다국적 기업에 의해 국경을 가로질러 조직되고 있는 생산의 차원에도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자신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국민 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씬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각에서 보면 라퐁텐 사건은 본때를 한번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좌파의 선택


라퐁텐 케인스주의의 실패는 좌파에게 두가지 선택을 남겨 놓습니다. 첫번째 선택은 항복입니다. 이른바 제 3의 길이 이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제 3의 길 찬양자라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가 말하는 제 3의 길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제 3의 길 원조들인 빌 글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말하는 제 3의 길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꽤 어렵습니다. 제 3의 길은 국가 통제주의와 신자유주의 모두의 대안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국가 통제주의나 신자유주의 모두가 좋지 않으므로 그것들의 대안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 3의 길은 그러한 대안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외관상의 반대 이면에서 실천상으로 제 3의 길은 신자유주의적 의제를 받아들립니다. 발칸 전쟁 직후에 두 명의 지도적인 제 3의 길 유럽인들인 토니 블레어와 게르하르트슈뢰더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정책들은 일단의 신자유주의적 계획안들로서 이른바 유연 노동 시장, 사람들한테서 각종 복지 혜택들을 뺏어가는 것을 뜻하는 사회보장 ‘계혁’따위였습니다. 그러니 제 3의 길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항복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강연 앞부분에서 제가 예증한 지긋지긋한 불평등의 증대를 고려한다면 이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혁명적 사회주의입니다. 즉, 자본주의를 개혁 또는 조절하려 하지 말고 완전히 없애고 사회주의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즉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을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그토록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널리 퍼져 있는 생각, 특히 서구의 통념은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옛 소련과 동유럽이 이른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가 죽은 사상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89년 동유럽 혁명이 ‘역사의 종말’을 뜻한다고 주장한 바도 바로 이것을 가리켰습니다. 미래는 그저 끝없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이 주장은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과 동유럽 또는 북한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 개인의 관점이 아니라, 제가 당원으로 있는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전세계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속한 자매단체들의 관점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단지 하나의 마르크스주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여러 마르크스주의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이어 나아갈지를 규정하려는 서로 경쟁하는 시도들입니다. 특히 스탈린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전통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에 주창해서 레닌과 볼셰비키 그리고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지속시킨 전통입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


그것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 근거로서 유물론적 역사 이론과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단지 지적인 도구 또는 특정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변혁의 정치적 프로젝트(계획)입니다. 그 계획의 핵심은 사회주의에 대한 특정 개념입니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로써 정의됩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써만 이룰 수 있습니다. 당도, 의원도, 노동조합 지도자도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변화는 대중의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의 개념이 이렇다면 옛 소련 동지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와 정반대의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 권력은 아래로부터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력은 사회의 맨 꼭대기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셋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포함됩니다. 오늘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부심이 충만해 고개를 반듯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소련에서 맨 처음으로 관료가 떠올랐을 때부터 레온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스탈린에게 도전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스탈린이 몹쓸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관료 권력이라는 전체 사회 체제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스탈린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결정적인 발전은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가 1940년대 말에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썼을 때였습니다. 클리프는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기는커녕 단지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 말로 ‘노멘클라투라’라는 관료가 노동자 계급을 집합적으로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 체제와 서방식 자본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하나, 즉 지배계급이 편제되는 방식입니다. 서방에서는 사기업을 통해서, 동구권에서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1989년과 1991년의 격변, 즉 소련 등의 붕괴는 특정한 모양을 띠게 됩니다. 1989년과 1991년을 좌파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부활하는 반혁명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낙후한 사회주의에서 현대적 자본주의로 진일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어느 것도 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 형태의 자본주의에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옆걸음질친 것이었습니다. 관료적 국가 자본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말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 줍니다.  

러시아인 자신들이 ‘노멘클라투라’자본주의에 대해 얘기합니다. 바꿔 말해, 옛 관료 지배계급이 민간 자본주의 기업가로 변신함으로써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과두’에 대해 얘기합니다. 과두는 러시아 경제와 러시아 정치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 제왕들을 말합니다. 이 과두는 옛 스탈린주의 관료 출신이었던 덕분에 기업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주민 대중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자칭 민주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출신은 옛 노멘클라투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한 엘리트 집단에서 다른 엘리트 집단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자신이 과거의 혁명들은 그저 한 소수파에서 다른 소수파에게로 권력을 이전시켰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란 거대 다수를 위한 거대 다수의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변혁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 자신의 투쟁과 삶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저를 이 강연의 첫 부분으로 도로 데려갑니다.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논의하는 것은 옳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최대 비판자였습니다. <자본>에서 그가 한 분석은 여전히 오늘날 세계 경제 모순들을 이해하는 최상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사회변혁의 주체를 규명하지도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에 직면해 절망하기가 쉽습니다.‘초국적 자본이 얼마나 강력한가’, ‘그들이 케인즈주의자인 라퐁텐을 어떻게 쉽게 제거했는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세계 자본과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세계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노동자 계급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임금 노동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착취당하는 조건하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축적과정의 확산 덕분에 노동자 계급은 전세계 인구의 다수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노동자 계급이 여전히 사회변혁의 결정적 주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 
 

이런 맥락에서 저는 계급 문제를 다루는 잘못된 방법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정체성 정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별개인 다원적 이해관계와 투쟁으로 사회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계급의 충돌같은 중심적인 충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껏해야 그 정치는 상이한 사회운동들을 불러 모은 연합체를 건설하려 애씁니다. 정체성 정치는 현대 사회의 현실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왜 마르크스가 자본-노동 관계가 사회 변혁에 그리도 핵심적이라고 주장했는지 정체성 정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유일하게 또는 가장 억압당하는 사회 집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자본주의 생산에서 그들이 착취당한다는 사실 덕분에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집단적으로 마비시키고 심지어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래에 일어난 비교적 부분적이고 제한된 변화에서조차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왜 남한은 근래에 부분적·제한적 정치 자유화를 겪었습니까?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로 1987년의 반란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학생 운동으로 시작돼 산업의 대중 파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둘째로 1997년 1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중 파업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계급은 정치 체제의 변화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계급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잘못된 방식은 ‘자율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에 대해 저는 단지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율주의’는 안토니오 네그리나 질 들뢰즈 같은 일부 유럽 좌파 철학자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자율주의는 자본 노동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권력 관계로 환원시킵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왜 착취가 일어나는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입니까? 단지 그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매우 흔히 자본가들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착취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다른 요인들, 특히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이 축척하고 착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리는 방식을 포함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생산에서의 착취과정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에 관한 이론이라는 더 큰 틀 안에 자리 매김해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출발점에서 출발해,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 다음에 이러한 권력 관계를 사회 전체로 적용합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으로 됩니다. 학생도 착취당하고, 주부도 착취당하고, 실업자도 착취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착취 개념을 희석시켜 마침내 그 개념은 더 이상 아무런 명확한 경제적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자율주의자들은 착취에 맞서는 대중의 자생적 반란에 특권적 의의를 부여합니다. 물론 자생적 반란은 아주 좋은 것이고 사실 굉장히 멋진 것이죠. 하지만 흔히 자율주의자들은 자생적 반란의 구호를 이용해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적개심을 정당화 합니다. 물론 노동조합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조합은 보통 보수적 노동 지도자들이 득세합니다. 노동 조합은 개량주의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노동조합니 노동자 계급대중, 즉 조직이 가장 잘 돼 있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함께 만나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노동자 계급 다수의 능동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노동자들이 있는 곳, 노동조합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율주의는 단순히 이론상으로 큰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적용된 바 있는 유럽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빚은 잘못된 정치 전략으로 끝납니다. 
 

맺음말


저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중요한 정치 쟁점들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 변혁에서 노동자 계급 대중이 하는 중심적 역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근래에는 이 계급, 노동자 계급이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주요한 투쟁을 치렀습니다. 앞에서 저는 1997년 1월 남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예들도 있습니다. 1995년 11∼12월 프랑스 공공부문 대중 파업은 프랑스 지배계급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려다 실패한 주된 경험입니다. 저는 21세기는 자본과 노동이 이제 진짜로 세계적인 규모로 위대한 대결을 계속할 세기라고 믿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과제는 이 투쟁과 연계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21세기에 위대한 미래를 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문 : http://www.reltih.com.ne.kr/reading/alex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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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고싶다 > 네그리, <제국> 中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

인상깊은 부분이라 생각되어 페이퍼로 남긴다. 혹시 푸코의 철학에 생소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몇 마디 앞에 써 두겠다. 레비-스트로스의 계보를 이어가는 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연의 법칙에 용해시키는 세계관 위에서 작업하게 된다. 흔히 구조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미셸 푸코도 그러하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 등의 그의 저작에서 인간을 사회-문화적인 구조의 생산물로 본다. 이를테면 근대인은 근대적 위계 질서 하에서 그들의 생활 양식(아비투스)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베르그송 등 실존주의자들의 사상과는 달리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철학이다. 네그리가 지적하고 있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네그리의 말대로 푸코는 <성의 역사> 이후 반인본주의적인 인본주의를 역설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찬찬히 뜯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푸코와 스피노자를 연계해서 알아두면 좋겠다. 스피노자는 익히 알려진대로 범신론자이다. 돌멩이나 시냇물을 인간과 굳이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스피노자의 철학 속에서는 우주 만물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윤리학은 자연의 윤리학, 바로 우주의 에티카이다. 스피노자도 인간을 자연 법칙에 용해시켰다. 그의 철학에서 내재성이란, 개념, 언어, 이념 등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들 속에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쓰인 용어이다. 외부에서 부과된 어떤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글의 흐름에서 내재성과 초월성은 반대로 쓰이는 개념이다.

[  성의 역사에 관한 미셸 푸코의 마지막 저작들은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활성화했던 동일한 혁명적 충동을 다시 한번 살려낸다. 윤리적인 자기에의 배려는 자기 창조의 구성 권력으로 재등장한다. 우리에게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깨닫게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저자, 자신의 전생애 동안 반인본주의의 기치를 들었던 사상가가 어떻게 마침내 인본주의 전통의 이러한 중심 교리들을 옹호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푸코가 자신과 모순되거나 자신의 초기 입장을 뒤집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담론의 지속성에 매우 집착했다. 오히려 푸코는 자신의 마지막 저작에서 역설적이고 긴급한 질문을 던진다. 즉,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혹은 반인본주의적인(혹은 탈인간적인)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두 개의 뚜렷한 인본주의 관념 간의 용어상의 혼동에서 생긴 외관상의 역설일 뿐이다. 1960년대의 푸코와 알튀세르에게 매우 중요한 기획이었던 반인본주의는 스피노자가 300년 전에 싸웠던 전투와 효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이해를 제국 속의 제국[고립된 영토]이라고 비난했다. 달리 말하자면, 스피노자는 전체로서 자연의 법칙과는 다른 인간 본성에 관한 어떤 법칙도 허용하기를 거부했다. 도나 하러웨이는 인간, 동물, 기계 사이에 우리가 설정하는 장벽들을 무너뜨리자고 주장하면서, 우리 시대에 스피노자의 기획을 수행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려 한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정확히 <인간>의 죽음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인본주의는 우리가 쿠사노에서부터 마르실리우스까지 앞에서 개괄한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혁명 정신과 충돌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 이러한 반인본주의는 직접적으로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세속화 기획을, 보다 정확히는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내재성의 구도의 발견을 뒤따른다. 두 기획들은 초월성에 대한 공격에 근거해 있다. 자연을 넘어선 권력을 신에게 부여하는 종교적인 사상과, 자연을 넘어선 그 동일한 권력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근대의 "세속적인" 사상 사이에 엄밀한 지속성이 있다. 신의 초월성은 간단히 <인간>으로 이전된다. <인간> 이전의 신처럼,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이러한 <인간>은 내재성의 철학에서 자리를 갖지 못한다. 신처럼, 이러한 초월적인 <인간> 모습도 재빨리 사회적 위계와 지배를 부과하는 데에 이른다. 그렇다면 모든 초월성에 대한 거부로 인식되는 반인본주의를 결코 활력의 부정과, 즉 근대적 전통의 혁명적 흐름을 고무하는 창조적인 생활력에 대한 부정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초월성에 대한 거부는 이러한 내재적 권력, 아나키적인 철학 기반, 즉 "신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푸코의 마지막 저작들에서의 인본주의를 모순적인 것으로, 심지어 그가 20년 전에 주장한 <인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조차 보지 말아야 한다. 일단 우리가 우리의 탈인간적 신체와 정신을 인식한다면, 일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유인원과 사이보그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는 활력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자연을 활성화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현실화하듯이 우리를 활성화하는 창조적 역능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본주의이다. 즉, 푸코가 "자기에 대한 자기의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 즉 자기 자신과 우리의 세계를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지속적인 구성 기획이다.  ]  

인간에게 순수한 금맥과도 같은 자유로운 의지가 없다고 해서 맥빠지신 분들, 기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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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성은 왜 ‘광기’를 몰아냈는가


△ 이진경 서울산업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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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기 문화밖으로 떠밀린 뒤 문화의 중심인 비극의식 상실”

  • 푸코 ‘광기의 역사’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빈번하게 광기가 등장한다. 악마적 힘에 사로잡힌 맥베스 부인의 광기, 질투에 눈 먼 오델로의 광기, 낙담한 리어왕의 광기, 그리고 모르는 게 좋았을 진실을 본 햄릿의 광기 등등. 대부분 광기는 비극적 경험으로 다루어진다. 그것은 ‘정상인’들을, 혹은 그들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란 점에서 저 멀리 떼어두고픈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세상의 어떤 비밀을 담고 있거나 비밀을 엿본데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왕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본 햄릿이 미쳐가듯이.

    그러나 반대로 희극적인 광기들도 있다. 리어왕의 어릿광대, 좀더 강하게는 소설과 세상을 하나의 연속체로 경험하는 돈키호테의 광기. 혹은 성직자들의 추한 비밀을 들추어내는 에라스무스의 ‘우신’(광인을 뜻하는 독일어 ‘Narr’는 바보란 뜻도 포함한다). 이들은 풍자를 통해서든, 아니면 풍자에 의해서든 가벼운 웃음을 수반하는 광기들이다.

    아마도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모습은 서구의 르네상스인들이 경험했던 광기의 두 형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어느 경우든 광인들이 갇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수용소라는 유형의 공간에도, 혹은 침묵이라는 무형의 공간에도. 오히려 이 시기 광인은 ‘이동공간의 포로’였다. ‘바보들의 배’를 타고 물 위를 순례하든, 아니면 어딘가 모를 곳에서 와서 모를 곳으로 가는, 혹은 말을 타고 방랑을 하는 이동이 광인들을 다루는 일반적 방식이었다.

    푸코가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17~18세기에 이르면 이들은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직역하면 ‘종합병원’이라고 불러야 할 구빈원이 대대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광인들은 이제 부랑자, 빈민, 범죄자 등등과 더불어 감금된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시립병원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게 되지만, 대부분은 도덕적인 죄악을 뒤집어쓰고 왕의 봉인장이나 치안감독관의 요청, 혹은 친척이나 이웃사람 등의 공모에 의해 갇히게 된다. 광기는 세상의 비밀이 아니라 인간 안에 존재하는 어떤 동물성과 연결되었고, 그것은 같은 인간의 수치를 야기하는 추문이 되었다. 하지만 은폐되어야 할 그것은 거꾸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전시되기도 했다. 마치 동물처럼, 혹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야기하는 추문처럼.

    18세기 말을 지나면서 감금된 자들의 대대적인 석방이 행해졌다. 물론 광인과 죄인들은 여전히 갇혀 있어야 했다. 광인과 함께 갇히는 ‘이중의 처벌’을 비난하는 죄인들로부터 광인은 분리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광기는 이제 이성 아닌 무엇이 아니라, 이제 막 이성의 문턱에 도달한, 그래서 한시바삐 인간이 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하지만 ‘인간’의 이름으로 행해진 진단이나 치료는 광기의 비밀을 알려는 어떤 의도와도 무관하게, 다만 광인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정상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관찰과 조처들의 집합이 된다. 고문이나 처벌 등을 통해서 그나마 행해지던 광기와의 대화는 끝나고, 보상과 처벌의 체제 안에서 광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알아서 정상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는 조련의 기술이 그것을 대신하게 된다.


    △  광기에 대한 이성의 횡포를 폭로한 <광기의 역사>는 자신과 다른 것을 타자화하여 물리치는 제국주의의 모습에 대한 폭로이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세계교회회의(WCC)가 인도에서 연 제4회 세계사회포럼 기간에 벌어진 제국주의 반대 시위 장면. 비누 알렉스 촬영.

    침묵의 ‘고고학’

    이로써 광기는 절대적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의사가 광인을 대신해서 광기에 대해, 광인에 대해 말한다. 광인 역시 말하지만 그 말은 들리지 않는다. <터미네이터 2>의 시작 부분에서 정신병원에서 갇힌 사라 코너는 미래세계의 진실에 대해 말하지만, 그리고 또 다른 터미네이터가 올테니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 말은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과대망상’이라고 불리는, 광기의 한 증상일 뿐인 것이다. 이성의 담지자만이, 의사나 간호사만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광기를 서술하는 모든 말들은 이제 정신의학의 용어들을 빌어야 한다. 그 용어들로 자신을 말하려 하는 한, 이미 그것은 의학적 이성이 대신 말하는 광기, 그 이성 안의 광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광기는 이제 자신을 표현할 언어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절대적 침묵 속에 갇힌 광기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 침묵 속에서 광기를 ‘발굴’하는 것,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가 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자신의 작업을 그는 ‘침묵의 고고학’이라고 명명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대립물을 침묵 속에 가두고 ‘타자화’하는(쉽게 말하면, 배제하고 억압하는) 이성의 권력이 드러난다. 이성은 논리적 자명성을 통해 설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타자를 때론 수용소 안에, 때론 병원 안에, 혹은 거대한 침묵 속에 가두고 억압함으로써 작동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푸코는 광기란 이성이라는 절대적 타당성의 바깥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다르게 다루어지고 다른 관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말했던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 다른 보편성을 주장하는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이른바 ‘이성의 보편성’을 그것의 '타자‘와의 상이한 관계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형식으로 다루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푸코는 광기에 대한 4가지 상이한 ’의식‘이 어떻게 상이한 배치를 만들면서 상이한 역사를 직조하는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란, 이성이 그 타자와 다른 관계 속으로, 다른 배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란 점에서, 미래의 시제를 갖는 희망의 이름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광기의 역사>가 광기에 대한 무책임한 예찬이라는 오랜된 비난은, 두께만큼이나 두터운 이 저작의 치밀한 진지함을 날려 보내기엔 너무 무력하고 거친 것이다.

    물론 광기의 소리를 전하는 푸코 자신의 언어는 이성의 언어가 아닌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성의 언어를 통하지 않는, 광기의 언어 자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데리다의 반론으로 인해 유명해진 이 논란은, 이성과 광기의 대립이 역사적이라는 푸코의 주장과 역사 ‘이전의’ 어떤 근본적인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데리다의 주장으로 소급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방대한 자료들을 뒤져서 ‘발굴’해낸 광기의 역사를 꿰뚫어 뒤집기엔 데리다의 비판은 너무도 얇고 너무도 ‘철학적’이다.

    비서구인에게 더 영향력

    이 책이 출판되던 당시 이미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정신의학의 치료법이나 거기서의 의사-환자 관계 등을 비판하는 ‘반정신의학 운동’이 실존주의 철학과 손을 잡고 진행되고 있었다. 이 책이 이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영향은 정신의학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탐색한 이성과 광기의 관계는, 자신의 외부자를 정상성의 영역에서 배제하여 억압하고, 그렇게 배제되거나 억압된 타자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자명성을 ‘입증’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기 따로 미친 놈들이 없다면 이성은 자신의 정상성을 대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흔히 ‘동일자와 타자’라는 말로 표현한다. 가령 서구문화를 ‘문명’이란 이름으로 동일화해야 할 모델로 만들고, 다른 문화를 ‘미개’나 ‘야만’이란 이름으로 타자화하는 근대의 역사 전체에 대해 우리는 ‘동일자와 타자’라는 푸코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이성이 광기를 대신해서 광기에 대해 말하고 광인은 그 말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관계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다른 종류의 역사를, ‘대행자’들에 의해 지워지고 묻혀버린 역사를 새로이 쓰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제국적 침략과 나란히 진행된 동양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서구가 동양에 대해 대신 말하고, 동양은 그들 동양학자에게서 자신들에 대해, 자신의 역사에 대해 배워야 했던 관계가 그것이다. 즉 우리가 아는 동양은 이미 서구인이 대신 말해준 동양인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이미 서구인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이 식민주의의 역사를, 혹은 현재진행형의 식민주의를 다시 보고 다시 쓰게 하는데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음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구인보다는 비서구인에게 푸코가 좀더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서평자 추천 도서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나남 펴냄(2003), 3만8000원

    (1970년 출간된 책의 완역본)

    광기의 역사

    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펴냄(1999), 1만2000원

    (푸코 자신이 3분의 1로 축약한 영역본의 번역)

    광기의 역사 30년 후

    자크 데리다 등 지음, 박정자 옮김

    시각과언어 펴냄(1997), 9000원

    (<광기의 역사> 출간 30돌 기념 심포지엄 발표논문 모음)

    50자 서평

    ◇ 문성환(36·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먼지 쌓인 창고 속 고문서들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을까. 이제는 정신의 질병이 돼버린 광기의, 광기에 의한, 근대 이성의 야심찬 타자(他者) 만들기 프로젝트 보고서.”

    ◇ 이강룡(31·웹칼럼니스트 ‘리드미 파일’(readme.or.kr) 운영)

    “<광기의 역사>는 광기를 억압하는 이성의 횡포에 대해 이야기한다.…여행하려고 배에 오른 사람들이 보기에 멀어져 가는 것은 배가 아니라 육지라네.”

    ◇ 조형준(41·세계문학 편집위원)

    “권력은 총구와 주먹과 음습한 선글라스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질리도록 정치하게 보여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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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우즈베키스탄의 '개새끼' (강병태)

    [강병태 칼럼] 우즈베키스탄의 '개새끼'
    정세 격동 바탕은 강대국 패권 다툼
    지정학적 큰 틀에서 보는 안목 절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유혈사태 속에 영국언론의 ‘개새끼’ 논평에 눈길이 갔다. 쌍스러운 말이 거슬리겠으나, 루스벨트 대통령을 인용한 이 논평은 서구언론의 시각을 대표한다.
    루스벨트는 니카라과의 악명 높은 우익독재자 소모자를 지원하는 데 대한 비난을 “그가 개새끼(son of a bitch)라도 우리 개새끼”라고 일축, 강대국의 국익중심 외교를 ‘개새끼주의’(Sonofabitchism)라고 일컫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전략적 이해 때문에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의 독재를 용인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러시아 중국과의 영향력 경쟁과 관련, 이미 카리모프 정권과 노골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사실이다.

    둘째는 안디잔 지역의 소요사태가 민중시위에 끼어 든 정체불명 무장세력의 교도소와 정부기관 공격으로 악화한 사실이다. 이를 간과한 채 사태를 독재와 민주의 대결로 보는 것은 이 지역 정세가 격동하는 근본이 강대국의 석유패권 다툼이란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우즈벡에 군사기지를 확보한 미국의 영향력은 러시아 중국의 반격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이 지역의 미국세력 확장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조직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지난해 6월 우즈벡에서 열린 것은 상징적이다.

    여기서 러시아는 우즈벡과 전략적 동반관계를 맺었고 중국은 15억 달러 원조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미국에 기울던 전략적 균형을 반전시키고, 우즈벡 석유가 중국에 공급되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의 의도에 타격을 주었다는 평가다.

    이런 변화의 중대성은 그 다음달 미국과 유럽이 우즈벡 인권상황을 이유로 경제원조를 동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체제 변혁을 꺼리는 카리모프 정권 붕괴를 통해 영향력 회복을 노린다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러시아 중국 일본은 지역 중심국 우즈벡까지 미국이 장악하면 전략적 다극화가 무산될 것을 우려, 카리모프를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배경과 사태 자체 의혹에 비춰 볼 때, 카리모프를 ‘개새끼’로 규정하고 미국의 ‘개새끼주의’를 비난하는 시각은 사태를 제대로 보는 데 오히려 방해된다. 후진사회의 모순과 외세 다툼이 뒤얽힌 혼돈을 통치자 개인의 독재성을 부각시키는 상투적 시각을 좇아 헤아리는 것은 무모하다.

    옛 소련체제를 승계한 카리모프 정권이 독재적이고 족벌지배 폐해가 큰 것은 사실이다. 또 잡다한 부족으로 갈린 사회에서 지역 계층간 격차가 확대되면서 갈등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카리모프가 우즈벡의 이익을 해치는 ‘개새끼’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는 소련붕괴 직후의 경제적 추락에서 일찍 벗어나 성장을 이뤘고, 전략적 요충 지위를 활용하는 능력도 과시하고 있다.

    독재자를 변호하려는 게 아니다. 우즈벡이든 어디든 외세 다툼이 노골적인 나라의 정치적 격동은 언제나 지정학적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을 휩쓴 현란한 상징색깔의 시민혁명을 지레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자세로는 강대국들이 21세기 전략적 판도를 놓고 맞부딪치는 중앙아시아의 격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즈벡 정부가 안디잔의 무장소요를 촉발한 배후세력을 아프간의 탈레반이라고 규정한 것은 흥미롭다. 자취도 없이 사라진 탈레반을 지목한 것은 미국이 최근 확산된 아프간의 반미 유혈시위를 탈레반이 부활한 탓으로 선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거 없지만 편리한 핑계다.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을 끌어대면 어떤 과오도 가릴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혼돈 속에서 진짜 ‘개새끼’가 누군지는 그야말로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다만 강대국의 피비린내 나는 탐욕을 외면한 채 민주와 인권을 떠드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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