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식하다’고 합니다. 유식하다 무식하다는 제도교육 학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그런 무식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하여튼 광주는 25년이 되었고 다른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건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부하고 싶은 건 광주항쟁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광주항쟁을 제대로 모르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학술적인 책을 사볼 것까진 없고 여러분들 아마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갈 테니 시간을 조금만 헐어서 광주항쟁 관련한 사이트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은 5.18기념재단도 있고 여럿 있습니다.

광주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통해 이른바 ‘민주주의’의 뜻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광주 전의 민주화 운동은 반독재 운동, 즉 선거나 개인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었지요. 그러나 광주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좀 더 근본적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운동으로 바뀝니다.
그 동기는 미국입니다. 광주가 계엄군이 일시 퇴각하고 해방된 상태이던 80년 5월 24일 미국 항공모함 코럴씨 호가 부산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 우리를 구하러 오는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신군부의 쿠데타나 계엄군의 작전은 미국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진행되고 있었죠.
광주를 거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미국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데 이건 미국이라는 일개 나라에 대한 자각을 넘어 미국식 민주주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발전합니다. 80년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의 해방 광주의 모습은 바로 그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광주를 진압한 군사 파시즘은 더 강력한 공포정치에 들어갔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되살아났습니다. 80년대 중반이 채 되기 전에 한국의 사회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좇는 부분이 남아있었지만 그 성원의 대부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좇는 변혁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87년 6월 29일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는 계속 정착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80년대에 변혁운동을 했던 운동세력의 상당수가 변신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민주주의니 변혁이니 하는 건 다 지나간 일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80년대 말 무너지자 그들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절망감에 빠진 많은 청년들이 사회운동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운동 안 했던 사람에 비하면 백배 훌륭한 사람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활동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니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력을 사용해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불거지는 경우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입니다. 학생 시절의 신념은 슬그머니 뒤로 버리고 그 운동을 통해 얻은 제 명망을 사용해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느니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다 개소리고 그들은 결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10년 쯤 지나면 이 자리에서도 역시 그런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운동의 종목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바로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시민운동입니다. 활동가라면 한눈에도 체제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등포나 구로동에 구질구질한 사무실에서 구질구질한 옷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시내 한 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에 넥타이를 맨 활동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운동의 주제는 근본적인 것에서 시민의 일상과 관련한 것들, 다시 말해서 체제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체제 안의 문제들을 위주로 했고 시위나 싸움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의 각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안티조선운동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 정치개혁운동들과 결합하고 확산되면서 결국 정권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런 개혁운동들이 갖는 의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안티조선 운동의 초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제가 만들었던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는 일종의 좌우 합작이었지만 공동의 적은 조선일보라고 밝히고 있지요. 저는 개혁운동의 진보운동의 일부라는 사실과 기존의 진보운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잡아냈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그 운동이 갖는 반동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이 여전히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진보운동을 철지난 운동,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행태로 몰아붙이는 부분에 대해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하든 안 하든 개혁운동이 ‘오늘의 진보운동’을 자처하는 한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운동이 진보를 자처하면 한국사회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극우보수 대 개혁보수의 구도가 되고 진보는 아예 무대에서 밀려나버리는 것입니다.
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여'합리화'하는 운동입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나쁜 신문이 곤경에 처하고 비리 정치인이 잡혀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도 언론이나 정치란 바로 세상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이나 비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바로 그 언론이나 정치의 뿌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문제이고 계급적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건 이젠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절반은 비정규노동자고 그 비율은 늘어가는 중입니다. 농업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포기한 지 오래지요. 그런 문제들은 개혁운동에서 배제되고 촛불시위에서도 배제됩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언론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면 초인적으로 순진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 학교 안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래 맑스주의가 어떻고 좌파가 어떻고 말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도 모르게 개혁운동의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파시즘 상태에 있습니다. 새로운 파시즘, 군사파시즘이 아니라 자본의 파시즘이지요. 군사파시즘은 억압과 폭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의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본의 욕망을 심어서 스스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본의 매우 충성스런 백성들입니다. 얼마 전 고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와 관련한 반응들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은 고대나 고대학생들의 태도가 “밥그릇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신문에 보니까 그 발언을 두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적혀 있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밥그릇 때문”이라는 말은 속으론 인정하지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정한다는 뜻인데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라 그들은 진짜로 진심으로 이건희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이건희와 다른 건 이건희보다 돈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노동자 착취와 정경유착과 온갖 비리로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부자가 되어선 다시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재산을 제 자식에게 상속하는 사람이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인입니까?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의 위치추적을 하고 협박을 하는 회사가 세계적인 첨단 기업입니까? 지금 한국 사람들이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프랑스의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키를 타는 인간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 그런 인간에게 이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주려고 작전을 벌이고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학생들이 현실을 깨우쳐주었는데도 총장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보직교수들은 사퇴서를 내고 수천명의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탄핵하는 서명을 하고, 이게 대체 정신병원입니까 대학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건희라는 파렴치한 인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진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성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원수라 저런 놈 밑에서 일한다”고 부끄러워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그런 파렴치한 인간을 왕처럼 떠받들며 노조조차 없는 회사에서 ‘삼성맨’의 자부심에 젖어 삽니다. 참으로 무지한 그러나 돈은 많은 주인 아래서 배불리 먹여준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 머슴들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런 삼성맨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삼성맨이 못되어서 안달이 나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이건희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 모든 사람이 자본의 권력에 자발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탄압받고 억압받아도 정신만은 해방되어 있던 시절보다 스스로 정신을 내어준 시절은 더욱 끔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절보다 나은 음식을 먹고 자가용과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욕망이 인간을 억압하는 걸 넘어 우리 스스로 자본의 욕망에 젖어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오늘 부모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동무를 누르고 이길 것만을 가르치고 사랑이나 존경조차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엘리트가 된다 한들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박사학위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박사학위는 내가 아니라 돈에게 수여된 것입니다.
이건희가 돈이 없다면 누가 그를 존경할까요? 모든 사람이 그의 돈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건희 씨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프랑스에 가서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울타리 밖에선 다 보고 있는데 혼자 스키를 타는 사람이 과연 자의식을 가진 인간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신이 완전히 파탄 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건희라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대체 얼마나 추켜올렸으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5.18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부른 이유도 오늘이 5.18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묵념도 했지만 5월에 죽어간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광주는 처음엔 엘리트 지식인들, 대학생들이 주도했지만 마지막에 가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떠납니다. 계엄군과 협상을 해서 더 이상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 헛되게 죽지 말고 힘을 기르자,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주장하던 수습파들은 떠나고 무릎 꿇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항쟁파만 남습니다. 그 순간부터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광주 인민의 군대라고 해야 맞습니다. 항쟁파의 대부분은 평소에 인간 취급 못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인간으로서 품위가 목숨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 취급 못 받고 사는 세상,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처럼 살자. 결국 그들만이 인간의 품위를 간직했습니다.
지나간 일,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을 갖지 않는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 한 분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까지 끌어대면서 유시민 씨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현실 속에서 체 게바라나 김산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한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현실 속의 체 게바라나 김산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우리는 현실 속의 체 게베라나 김산엔 관심이 없거나 그들을 비웃곤 하지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다시는 만난 수 없는 늙은 어머니,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남은 애인, 제 목숨보다 귀한 새끼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처럼 죽고 나서 존경과 명예가 남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폭도요 빨갱이로 남는 것입니다. 남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언제까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총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매일 밤 인터넷에서 활동하지요? 지금 이 나라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먹고 나서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다들 사회평론가로 활동합니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사회평론가인 시절이지요. 그러나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이지만 그 대부분은 개혁이라는 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입니다. 체제는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이라고 부추기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들”로서 활동합니다. 오로지 체제가 제공하는 이슈에 매일 밤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들을 은폐하는 데 동원되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장 실현가능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임을 진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니 설사 내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신념을 버려선 안 됩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근대라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 결국 중세는 무너집니다. 우리의 암흑도 그렇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연세대 강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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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되세요!


오랜 외국생활 뒤 귀국하자마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속에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를 힐난하는 반어법의 어조가 담긴 것으로 이해했다. 그것이 나의 순전한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들을 때였다. 실제로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이 뒤집어질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천박한 사회라 할지라도 ‘배부른 돼지’를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소유’(당신이 사는 곳)가 ‘존재’(당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사회개혁’은 무엇보다 새로운 가치관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개혁세력이 진정한 개혁세력이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와 긴장하면서 공공성과 연대의식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관이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모색하고 제도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에서 말하는 능력이, 기존 사회귀족의 그것과 개혁세력의 그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른바 실용주의 노선은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아래 사회 구성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유재산 축적 노력에 공공성조차 개입하지 않게 하면서 기존 사회귀족의 물신주의 헤게모니에 더욱 귀의하도록 작용하고 있다.

고유 업무와 무관하므로 불법·탈법의 땅투기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것은 한 인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개혁’ 세력의 가치관에서 사회귀족의 가치관에 대한 긴장이 사라지고 없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적 감수성이 사라졌을 때, 개혁의 건강한 긴장은 유지될 수 없다. 가령 국가보안법 폐지에는 국민 과반수가 반대한다는 이유라도 있다면,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계속 표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학재단의 집요한 로비활동과 물량공세 가능성에 저항할 만한 개혁 담지자로서의 가치관이 없는 탓 아닌가?

지금까지 ‘해먹던 놈이 또 해먹는’ 역사의 반복에 그래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현실 이해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혁을 표방한 세력이 사회 상층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오늘 새로운 가치관 형성에 실패하고 실용주의를 내걸 때, ‘그놈이 그놈’인 현실은 그대로인 채, 4·30 재보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독재자의 현판은 물신주의와 함께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출발이 남과 달라서 수백억원대의 재산가인 홍석현씨가 탈세 전력에도 불구하고 ‘개혁’ 세력에게서 능력을 인정받고, 삼성의 ‘무노조’ 신화와 그 관철을 위한 각종 노동 탄압이 ‘개혁’세력에게 아무런 윤리적 부담도 주지 않는 현실이다. 그런 삼성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행위의 부당함을 지적한 학생들에게 ‘젊은이들의 열정’을 말할 수 있는 여유는, 인문정신을 파는 행위까지 마다지 않은 대학 당국의 비굴함에 대한 반응으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 ‘개혁’ 세력이 사회귀족의 가치관, 그리고 골프, 원정출산, 조기유학, 고액과외, 부동산, 주식투자를 통한 재산 증식의 문화와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보여주기는커녕 스스로 물신주의 가치관에 포섭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 세력에게서 ‘민중’이 사라졌을 때, 새로운 가치관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들보다 인문학을 돈 주고 판 대학 당국에 항의한 고대생들에게서 희망의 싹을 본다. 대신 대학당국의 인사들과 오히려 학생들을 꾸짖는 ‘점잖은’ 인사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말이 있다. 부자 되기 전에 “사람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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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다른 데로 퍼나르지 마십시요. <씨네21> 원고인데, 상황이 황당하게 돌아가서 여기에 먼저 올립니다. 잡지에 실린 글이 나오려면 이미 상황이 종료됐을 것 같아서.... 명예박사 소동. 우스운 코미디가 졸지에 공포물이 되고 있군요. 정치권력의 횡포가 사라진 곳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거대한 시장의 리바이어던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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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 수령님, 우리들의 수령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의 제목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건립과 현대철학의 상관관계.” 무슨 명분을 갖다 부쳐도,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는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4백억을 냈고, 고려대학교는 그 돈의 가공할 덩치를 기리기 위해 “명예”롭게 영수증을 떼어주었다. 이것은 “철학”적 사건이다. 한국 철학계에 일찍이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던가?

학생들은 학위에 전공표기가 잘못된 것을 문제 삼았다. 이건희 회장이 ‘명예’로나마 ‘박사’의 실력을 인정받는 분야는 ‘철학’이 아니라 노동탄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학생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봐도 이건희 회장은 철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노조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핸드폰 위치추적을 통해 감시하는 실력만은 ‘박사’의 학위가 무색할 정도로 탁월하다.

고대의 보직교수들이 일괄 사퇴서를 냈다. 웃지 못 할 코믹물은 여기서 괴기스런 호러물로 전환한다. 전직 대통령의 진입이 물리적으로 저지당했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사표. 그 귀중한 사표가 일개 기업 회장의 행사장 진입이 저지됐다고 총장 책상 위에 일괄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독신(瀆神)과 불경(不敬)이야말로 종교인의 가장 큰 죄. 보직 교수들의 일괄 사퇴는 모욕당하고 거역당한 신의 노여움을 달래는 거룩한 희생양 제의가 아니겠는가?

이번 사건은 종교적 경지에 달한 북조선 수령 문화의 자본주의적 버전이다.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가? 스키를 즐겨도 인간의 반열에 낄 수 없기에 레인을 통째로 임대하는 분이다. 외유라도 하실 참이면 교황의 행차를 무색할 정도의 예우가 조직된다. 색깔별로 차려 입은 유니폼 점퍼들의 무리 속에 회장님이 거룩하게 출현하시는 장면은 사이비 종교단체의 집회,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카드섹션을 연상케 한다.

북조선에서는 수령님이 인민을 먹여 살린다. 남조선에서는 삼성이 국민을 먹여 살린다. 인재 한 사람이 10만을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는가. 삼성에 인재 3000이 없겠는가? 곱하기 10하면 남조선 인민 전체를 여섯 번 먹여 살리고도 남음이 있다. 환웅은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신단수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지 않았던가. 회장님은 현대의 재림 환웅이시다. 박정희 덕에 먹고 살던 불쌍한 인민들은 이제 이건희 덕에 먹고 살고 있다.

대기업 없는 나라는 없으나, 그 나라에서 이렇게 서럽게 빌어먹고 사는 비루한 인민들도 없다. 대한민국은 삼성이 먹여 살린다. 하지만 그 삼성은, 실은 우리가 먹여 살리고 있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 거실의 텔레비전, 부엌의 전자 렌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삼성이여, 다음에 핸드폰 광고할 때에는 과감하게 이렇게 해 보라. “소비자 여러분, 너희들은 우리 덕에 먹고 삽니다.”

“400억을 받고도 모자라서.”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이다. 누가 삼성 계열 아니랄까봐. 언제 학생들이 돈 적게 줬다고 시위를 했던가? 바로 여기서 명예로 박사 학위 받은 이들의 철학이 드러난다. 삼성 철학의 상상력 밖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 가치는 인문정신을 담당하는 교수들이 앞장서서 지켰어야 한다. 그들이 방기한 그 일을, 학생들이 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교수들은 그 장한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벼르고 자빠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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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2 0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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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5-1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보누리에 올라온 글입니다. 예전에 올라왔는데, 퍼나르지 말라고 해서 좀 뜸을 들였다가 퍼왔어요. 이미 많이 퍼졌나보죠. ㅋ.. 영수증이란 말이 너무 웃겨서...
 

혈의 누


  

'혈의 누'란 '피눈물'이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듯이 이인직이 쓴 신소설이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된 영화는 제목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몇 군데 서툰 부분이 눈에 띄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의 형식적 특성 분석은 내 한계 밖의 일이고, 영화의 서사 구조 혹은 주제 의식에 대해서만 몇 마디 하자.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릴 게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승들이 묵시록에 나타난 방식에 따라 7일에 걸쳐 의문의 죽음을 당하듯이, 영화에서는 수도원처럼 고립된 섬에서 사람들이 5일에 걸쳐 강객주 일가가 처형당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차례로 죽어간다. 이 연쇄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관 원규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윌리엄 수사라 할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을 고쳐 쓰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가령 소설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영남 남인이 정조 대왕을 보필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이 소설의 모티브에는 박정희와 그를 밀어준 영남 지역의 관계가 슬쩍 겹쳐진다. 한 마디로 에코의 포스트모던 소설의 모티브를 들여다가 졸지에 전근대적인 박정희와 영남 지역주의 찬양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영화 혈의 누의 에코 고쳐 쓰기는 그것과 차원이 좀 다르다. 거기에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견줄 만한 예술적 성취가 있다. 영화에서는 강객주를 천주쟁이로 밀고한 다섯 명만이 아니라, 섬 주민 모두가 그의 살해에 가담한 범인으로 나타난다. 그뿐인가? 영화가 막판에 이를수록 관객들은 점점 불편해진다. 그의 살해에 섬 주민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가담했다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에코는 어디선가 '독자가 범인이 되는 추리소설'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사실 강객주에게 진 빚을 탕감 받을 수 있을까 하여 그의 부당한 죽음에 침묵하는 섬 주민들은 우리들 자신의 비루한 모습이다. 게다가 강객주 자신은 어떤가? "신분이 아니라 능력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던 그도 제 딸과 머슴의 교제만은 허용할 수 없었다. "나도 딸 가진 아버지야." 이 또한 우리의 이중성 아닌가.

주민들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다섯 번째 범인을 참혹하게 살해하려 한다. 그로써 행여 강객주의 원혼이 내린 저주를 씻을 수 있다는 듯이. "강객주여, 이 자의 피를 받으소서." 르네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 제의'. 하지만 이 잔혹한 제의에도 불구하고, 원혼은 주민들의 머리 위에 핏빛 비를 내린다. 아마도 그의 혈의 누, 처참하게 죽어가면서 흘린 피눈물이리라.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 고려대에서 있었던 사건을 생각했다. 몇 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 진입을 막았을 때, 대부분의 학생은 이를 통쾌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학생들이 왜 이번엔 저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알량한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호화 호텔을 방불케 하는 최신식 건물.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후원과 졸업 후 진로의 상관관계. 게다가 대기업 입사율은 그 자체로 학교의 서열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 아닌가.

덕분에 삼성이라는 기업의 횡포에 흘려야 했던 노동자들의 피눈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직 히틀러만이 실현할 수 있었던 '무노조 경영'에 명예철학박사 학위가 수여되는 것을 지켜보는 인문학 교수들의 참담한 자괴감. 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권력보다 더 막강한 것으로 드러난 거대자본의 위협 앞에서 느끼는 서민들의 공포감. 안암동의 섬 주민들은 이를 너그럽게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들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학생들의 몸싸움.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가로막힌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우회하듯이, 분노의 흐름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것을 피해 사소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학생들을 탓해서 무엇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맞고 처연히 서 있는 그들의 비루한 모습이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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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과 그의 친구 역사학자

유시민 씨가 “중도정당인 열우당은 한나라보다 민노당과의 거리가 훨씬 멀다”고 했단다.(원문은 이렇다. “열린우리당은 중도정당이라서 민노당과 정책 연합하기위해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한나라당과 연합하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폭보다 훨씬 크다.”) 아마도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 한 말 가운데 가장 정확한 말인 듯하다. 열우당의 노선과 정책으로 볼 때, 한나라보다 민노당이 훨씬 멀다는(민노당보다 한나라당이 훨씬 가깝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시민 씨의 말은 그의 정치 전략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유시민 씨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을 ‘수구기득권 세력’이라 놓고 열우당을 그와 대치하는 일종의 ‘운동 조직’이라 자임하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말하자면 유시민 씨는 열우당을은 지난 30여년 동안의 민주화운동과 진보운동의 현실적 결정체로 상정했다. 그러나 그런 전략은 이제 열우당의 ‘운동’이 더 나아갈 데가 없어짐으로써(그 운동이 가장 중요하게 천착해 온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은 공중파 방송사 두 개를 접수하고, 정치인들이 사과상자를 싣고 다니기 어렵게 됨으로써 운동적 활기는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 ‘치고 나가길 좋아하는’ 유시민 씨는 이제 ‘운동’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새로운 간판은 그 이름도 무난한 ‘중도’다. 물론 열우당이 ‘중도’정당이라는 건 그의 말에 근거해서 보더라도 순수한 뻥이다. 그도 사회과학을 전공했으니 동의하겠지만 한나라당은 극우 성향의 우파정당이고 민노당이 중도 성향의 좌파정당이다. 그런데 어떻게 ‘민노당보다 한라당에 훨씬 가까운’ 열우당이 ‘중도’인가. 자신의 이상주의자로서 이미지를 야금야금 파먹어가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가는 그를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편, 유시민의 ‘친구’이자 ‘진보적 소장 역사학자’인 한홍구 씨는 얼마 전 어느 시시주간지에 유시민이 25년 전에 얼마나 순정한 청년이었는지, 현재 유시민이 치르는 고난(!)이 노무현 씨의 대통령 당선 전과 얼마나 닮았는지 썼다. 한홍구 씨는 친구를 위해 역사학자로서 양식을 내팽개친다. 불과 몇십 년 전의 현실에 대해선 그토록 급진적인(한홍구 씨는 독립운동 이야기를 써도 꼭 ‘김산’ 정도는 쓴다. 그래서 그는 ‘진보적 소장 역사학자’다.) 그가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해 보이는 치졸하고 감상적인 태도는 정말이지 딱하다. ‘진보적 소장 역사학자’인 한홍구 씨에게 물어보자. 옛 김산을 찬미하는 당신은 왜 ‘지금 여기의 김산들’에 대해선 왜 아무런 관심이 없는가? 옛 김산의 숨통을 조이던 우파 정치인들을 경멸해마지 않는 당신은 왜 지금 여기의 김산의 숨통을 조이는 엘리트 우파 정치인은 그토록 싸고 도는가? 당신의 진보적 역사의식은 그저 지금 여기의 진보적 상상력을 생략하기 위한 장식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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