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우즈베키스탄의 '개새끼' (강병태)

[강병태 칼럼] 우즈베키스탄의 '개새끼'
정세 격동 바탕은 강대국 패권 다툼
지정학적 큰 틀에서 보는 안목 절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유혈사태 속에 영국언론의 ‘개새끼’ 논평에 눈길이 갔다. 쌍스러운 말이 거슬리겠으나, 루스벨트 대통령을 인용한 이 논평은 서구언론의 시각을 대표한다.
루스벨트는 니카라과의 악명 높은 우익독재자 소모자를 지원하는 데 대한 비난을 “그가 개새끼(son of a bitch)라도 우리 개새끼”라고 일축, 강대국의 국익중심 외교를 ‘개새끼주의’(Sonofabitchism)라고 일컫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전략적 이해 때문에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의 독재를 용인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러시아 중국과의 영향력 경쟁과 관련, 이미 카리모프 정권과 노골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사실이다.

둘째는 안디잔 지역의 소요사태가 민중시위에 끼어 든 정체불명 무장세력의 교도소와 정부기관 공격으로 악화한 사실이다. 이를 간과한 채 사태를 독재와 민주의 대결로 보는 것은 이 지역 정세가 격동하는 근본이 강대국의 석유패권 다툼이란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우즈벡에 군사기지를 확보한 미국의 영향력은 러시아 중국의 반격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이 지역의 미국세력 확장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조직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지난해 6월 우즈벡에서 열린 것은 상징적이다.

여기서 러시아는 우즈벡과 전략적 동반관계를 맺었고 중국은 15억 달러 원조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미국에 기울던 전략적 균형을 반전시키고, 우즈벡 석유가 중국에 공급되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의 의도에 타격을 주었다는 평가다.

이런 변화의 중대성은 그 다음달 미국과 유럽이 우즈벡 인권상황을 이유로 경제원조를 동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체제 변혁을 꺼리는 카리모프 정권 붕괴를 통해 영향력 회복을 노린다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러시아 중국 일본은 지역 중심국 우즈벡까지 미국이 장악하면 전략적 다극화가 무산될 것을 우려, 카리모프를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배경과 사태 자체 의혹에 비춰 볼 때, 카리모프를 ‘개새끼’로 규정하고 미국의 ‘개새끼주의’를 비난하는 시각은 사태를 제대로 보는 데 오히려 방해된다. 후진사회의 모순과 외세 다툼이 뒤얽힌 혼돈을 통치자 개인의 독재성을 부각시키는 상투적 시각을 좇아 헤아리는 것은 무모하다.

옛 소련체제를 승계한 카리모프 정권이 독재적이고 족벌지배 폐해가 큰 것은 사실이다. 또 잡다한 부족으로 갈린 사회에서 지역 계층간 격차가 확대되면서 갈등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카리모프가 우즈벡의 이익을 해치는 ‘개새끼’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그는 소련붕괴 직후의 경제적 추락에서 일찍 벗어나 성장을 이뤘고, 전략적 요충 지위를 활용하는 능력도 과시하고 있다.

독재자를 변호하려는 게 아니다. 우즈벡이든 어디든 외세 다툼이 노골적인 나라의 정치적 격동은 언제나 지정학적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을 휩쓴 현란한 상징색깔의 시민혁명을 지레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자세로는 강대국들이 21세기 전략적 판도를 놓고 맞부딪치는 중앙아시아의 격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즈벡 정부가 안디잔의 무장소요를 촉발한 배후세력을 아프간의 탈레반이라고 규정한 것은 흥미롭다. 자취도 없이 사라진 탈레반을 지목한 것은 미국이 최근 확산된 아프간의 반미 유혈시위를 탈레반이 부활한 탓으로 선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거 없지만 편리한 핑계다.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을 끌어대면 어떤 과오도 가릴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혼돈 속에서 진짜 ‘개새끼’가 누군지는 그야말로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다만 강대국의 피비린내 나는 탐욕을 외면한 채 민주와 인권을 떠드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