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수잔 손택 지음, 배정희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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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얘기하며 여성의 재능을 꽃피울 조건을 이야기했다.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시대를 앞서갔다. 20세기의 수잔 손택이라면 버지니아 울프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손택의 앨리스는 20세기에 맞는 질곡과 굴레를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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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1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라는 글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9-15 12:45   좋아요 0 | URL
수잔 손택은 정말 뛰어난 저술가인데 제가 가진 기대에 비해서 이 책은 좀 많이 헷갈렸습니다.
지금? 왜?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는 방식으로?
저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사진에 관하여도 읽어봐야겟네요.
 

 한반도의 고인돌은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실현 가능한 모든 형식이 공존할 정도로 고유양식도 없으며, 1인 1기로 조성되어 합장 흔적 역시 거의 없다. 심지어 무덤이 아닌 단순한 기념물로 세워진 것들도 있다. 요컨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반도의 고인돌이다. - P13

정신적으로 성숙한 공동체만 죽음을 묵상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 많은 실용적 기념물을 만들 수 있다. 즉 한반도 고인돌 사회는 묵상하고 기념하는 정신공동체였고, 평등하고 협업하는 경제공동체였다. - P17

새 모양 토기와 배 모양 토기가 혼을 실어 피안의 세계로 보내는 도구였다면, 집 모양 토기는영혼의 영원한 안식처로써 껴묻었을 것이다. 고상형 집토기들은 모두무덤에서 발굴한 껴묻거리였다. 부장용 집토기들은 상징적 건축물이다. 고상 건물은 만들기 어렵고, 난방과 취사를 해결할 수 없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공간을 조성할 곳도 없다. 하지만 가장 귀하고 안전한 집이기에 귀중품 창고나 제사 의례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무덤에 껴묻을 최고의 집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고상형 집토기일 수밖에 없다. - P39

하늘을 향한 가야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무덤의 위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낮은 평지에 무덤을 둔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마을 앞의 높은구릉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높은 아크로폴리스에신전을, 낮은 네크로폴리스에 무덤을 조성했다. 그러나 가야의 아크로폴리스는 곧 네크로폴리스였다. 존귀한 영혼은 높은 곳에 묻혀 높은집에서 살며 높은 그릇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상의 낮은것들이 일상이라면 높은 것들은 존귀한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 P39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안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미륵사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추정했는데,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록되어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사태적덕의 따님인 사택왕후가선한 인연으로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639년 정월 29일사리를 봉안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즉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아니라 백제의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 P50

현재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장육전 내부에는화엄경을 새겨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는데, 화엄석경은 임진왜란때 불타 지금은 1만 9,000여 조각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 매의 돌판에 총 55만여 자를 새긴 대규모 경관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있는 5칸 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른바 장육전은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 P68

몸체의 목조 기둥들은 무거운 지붕 무게 때문에 길이가 줄어들게된다. 특히 모퉁이에 지붕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모퉁이 기둥은 안쪽 기둥보다 조금 더 줄어든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네 모퉁이 기둥을 조금 높게 하는 ‘귀솟음‘이라는 건축 기법이 발전했다. 경사진 지붕은 아래 기둥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쏠림‘이라 하여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인다. 중국 송나라 때 출간된 건축 기술서 『영조법식』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준수치를 계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건축은 기계적인 중국식 기술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우선하여 유연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즉창작자로서 목수의 판단과 안목이 건축의 격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 P92

이러한 세부 기법들의 개발은 물리적 변형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시각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었다. 지붕 처마를 수평으로 맞추면 처마 선이 처져 불안해 보이므로 아예 추녀 부분을 들어 올린다. 지붕 끝의 추녀가 무게 때문에처지더라도 수평선보다 올라가 있어 안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배흘림하면 원통형 기둥보다 더 견고해 보인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무수히 많다. 직선이 휘어지면 곡선이 되지만, 곡선은 휘어도 곡선이다. 귀솟음도 안쏠림도 배흘림도 물리적 변형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수평, 수직,
직선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형되더라도 여전히 솟은 채로 쏠린 채로,
배흘린 채로 안정되어 있다. - P92

 텅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지붕 위로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있다. 누각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 강, 사람의 천지인 경관을 수직으로 나눈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고,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자리다.  - P159

자연을 선택해 인공적환경으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수법을 ‘차경‘이라 한다.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경 수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법이었다. 건축물은 자연을담아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림이 죽는다. 건물이 화려하면 자연이 초라해진다.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밖에 없는 매우 간단한 건물이며, 화려한 단청도 장식도 일절 없다. 건물은 자연을학문을,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담기는 내용물이 건축의 실체다.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서원을 건축했다. - P160

곡운구곡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김수증의 이상이 응축된 소우주였고 시와 그림으로 추상화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그는 화음동 삼일정의 세 추녀에 각각 음양, 강유인의라고 썼다. "인간사는음양의 굴곡이 있으니 때로 단단하고 때로 유연해야 하나, 늘 어질고의로움은 잊지 말라"는 일생의 깨달음을 남긴 것이다. - P193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오히려 한옥 교회를 배척했다. 유교적 체제의 봉건적 모순에 질식했던 그들에게 전통이란 버려야 할 적폐있고 서구의 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또한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선교모국의 건축과 문화를 이식했던 것처럼 서양식 고딕 교회를 더 이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성공회는 토착 건축과 전통문화를 존중했다. 비록 그것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시대 성공회의 건축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P230

20세기 후반 유럽의 철학계는 2,500 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저구 사유의 전통을 부정하고 분해하는 디컨스트럭션, 즉 해체주의적 파고가 높았다. 해체적 사고는 이성과 남성과 직선 중심의 전통을 감성,
여성, 곡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다시 이분법적 서구 사상의 전동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크 데리다 등이 주창한해체적 사고는 달이성, 탈남성, 탈직선의 세계를 지향하여 다양하고자유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 P295

1990년 탈냉전 이후 지구촌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아래 급속한세계화가 진행되었다. 금융 자본은 세계화의 동력이며 디지털 기술은대단한 수단이었다. 건축의 소중한 가치였던 역사적 지역적 맥락이란세계화 속에서는 구태의 껍질이 되었다. 새로운 건축적 가치란 얼마나많은 자본을 투여하고, 얼마나 빨리 첨단 기술을 도입하느냐로 바뀌었다. DDP는 일시적으로 불시착한 외계의 우주선인가, 아니면 새롭게열린 영원한 우주인가? DDP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은 건축 시장의세계화 속에 혼재하는 혼란과 갈등이다. - P298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승효상은 자신의 사유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지식인 건축가이며, 10여 권의 깊이 있는 저서를 쓴 인문학자이다. - P309

사유원은 자연 속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묻고 고독을 공유하며 어울려 생각하는 건축적 장소다. 여기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앞서 실존적 생명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근원과 영혼을 맞닥뜨릴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한 건축이라면, 사유원은 태초로 돌아가 변치 않을 본질을 담은 건축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 P309

 그러나 삶과 일체화된 시간은 진동하는 추처럼 왕복적이다. 숨과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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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 매력적이면서 아버지와 남자형제들, 남편에게 참을성 있고 나긋나긋하고 고분고분하며 예민하고 배려할 줄 아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이기심과 공격성, 자신에 대한 관심과 모순되는 것이므로마찰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이기심과 공격성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성이 피어날 수 있는 필연적인 조건인데 말이다. - P12

나는 일평생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연극이며, 결론적으로는 상상력에 대한 연극이다. 정신적 김옥의 현실, 상상력의 승리 말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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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관측 결과를 종합해서 내린 결론에 따르면, 지구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미세하게 비틀거리면서 움직인다. 그래서 조금이지만 태양빛을 평소보다 많이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도 있고, 평소보다 조금 덜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도 있다. 지구가 스스로 도는 각도의 축을 예로 들자면 1년에 약 0.013도 정도의 아주 작은 각도로 살짝살짝 기울어진다는 사실이 측정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 정도의 미세한 기울어짐이 몇만 년 동안 쌓이면, 빛을 받는 각도가 꽤달라져 지구의 기후가 크게 바뀌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 P35

그러나 로마인들은 예외였다. 고대 로마 제국 사람들은 이미 수천 년 전 옛날에 상당히 실용적인 콘크리트 기술을개발해 냈다. 로마인들은 베수비오 화산 인근에서 발견되는 포촐라나 pozzolana라는 자갈을 알고 있었다. 화산 때문에생긴 이 독특한 자갈을 가루로 만들어석회석 가루와 함께 가공하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견고해지는 콘크리트 재료가 된다. 바로 이 사실을 발견한 고대 로마인들은 건물에 콘크리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갔고, 차차 여러 가지 다양한 건축물을 지을 때 콘크리트를 널리 활용했다. 판테온을 지을 때에도 고대 로마인들은 바로 포촐라나를 이용하는 고대 로마식 콘크리트로 그토록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튼튼하게 짓는 데 성공했다. - P92

이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하잘것없는 돌멩이에 적용되는 규칙과천상의 행성들에 적용되는 규칙이 같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행성들의움직임을 계산할 때는, 행성들이 아주 커다란 돌덩이와 다를 바 없다치고 계산한다. 단지 금성과 토성이 천상의 신령일 리가 없다고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금성과 토성이 그저 돌덩어리일 뿐이라고 보고계산해야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현대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믿었던 토성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인 수소와 헬륨의 덩어리일 뿐이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믿었던 금성은 길바닥의 흙부스러기나 매한가지인 성분으로 된 거대한 바윗덩어리일뿐이다. 그렇지만 몇백 년 앞선 송나라, 소송의 시대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P147

 과자 포장을 할 때 질소 기체를 주입하는 이유도, 그것을 집어넣어도 내용물을 변질시키는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학반응을 잘일으키는 만큼 질소가 자기들끼리 너무 끈끈하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다른 물질과는 화학반응을 일으킬 새가 없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다. - P168

에디슨과 그가 차린 회사의 직원들이 남긴 진정한 공적은 전구라는기구를 누구나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를 보급하고 전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사업을 일으킨 데 있다.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집집마다 공급할수 있는 발전소를 건설했으며, 그 발전소가 뉴욕 시내 곳곳에 전기를공급해 줄 수 있도록 전기선을 설치하고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해서공사를 진행했다. 전구 생산에 도움을 주는, 전구에서 공기를 빼내는펌프 같은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고, 전구를 설치하고 연결하기 위한부품들도 개발했다(심지어 에디슨의 회사에서는 전기 요금을 매기기 위한계량기도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밤에도 전기를이용해 도시를 온통 밝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썼다. 빛이 우리 삶에 중요한 만큼, 도시 곳곳에 전선을 잔뜩 연결해 전기를 계속 공급하는 다른 시대, 다른 도시 풍경을 창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그들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 - P257

참호는 길게 이어지면서 굉장히 거대한 규모로 완성되었다. 심지어참호 안을 걸어서 유럽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갈 수도 있을 거라는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참호를 영어로 ‘트렌치rench‘라고 하는데, 참호속 병사들이 입었던 코트와 비슷한 옷이 영국의 버버리 같은 회사를통해 ‘트렌치코트‘라는 이름으로 널리 팔리기 시작한 것도,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전투가 워낙 오랫동안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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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홍지혜 지음 / 혜화1117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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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만들어진 달항아리와 함께 그린듯 앉아있는 노년의 여성은 영국인 도예가 루시 리이다. 

1935년 예술가이자 미술공예운동가이자였던  영국인 버나드 리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장아찌를 담던 항아리 하나를 사서 영국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이 항아리의 영어 이름은 처음에 pickle jar   ^^)

한동안 이 조선 백자 달항아리는 그의 친구집에 있다가 버나드 리치의 동료이자 제자이자 마음의 연인쯤이었던 것 같은 여성, 사진속의 루시 리에게 넘겨진다.

"우리의 추억을 담아 한국 항아리를 간직해 달라."라는 편지글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루시 리가 작고한 이후 두명의 상속자를 잠깐 거치고 지금은 영국박물관에 기증되어 한국관의 대표얼굴로 전시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달항아리를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분위기라는데 저자는 이런 바람이 어디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이 달항아리가 영국으로 건너오던 시절, 영국인들은 조선과 어떤 관계였고, 조선문화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을까 이런 것들을 추적해보기로 결심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의 추적은 조선의 개항이후 일본인과 서구인들, 특히 영국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과정, 그들이 조선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 그리고 제국주의와의 연관, 그 속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을 추적하며 한국 문화가 일본과 서구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어 지는지를 추적한다. 


일찍이 유럽인들의 관심을 먼저 끈 것은 중국문화와 일본 문화였다.

18세기 '시누아즈리(중국 열풍)'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중국산 비단옷을 차려입고, 중국산 도자기 찻잔에 중국산 차를 마시는 문화 애프터눈 티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부의 상징으로 여기게 했다. 청화백자를 모방한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가 만들어지고, 영국산 도자기 회사가 아예 이름을 '본차이나'로 짓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또한 익히 알다시피 일본열풍, 자포니즘 역시 도자기와 우키요에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여기서 조선의 문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종의 틈새문화의 느낌으로 등장한다. 


때마침 이 시기에는 철도와 증기선의 발달로 여행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륙횡단이 손쉬워졌고, 많은 영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거치는 길에 조선을 들리고, 조선의 유물들을 수집해 간다. 

초기에 이들이 많이 수집해간 품목은 의외로 호랑이 가죽이다. 일본인과 함께 열성적으로 호랑이 가죽을 수집해가던 이들은 나중에는 아예 호랑이 사냥여행을 실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때부터 조선의 호랑이들의 멸종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후 수집품목이 조선의 도자기로 확대되는데 사실상 초기에 영국인들은 일본 도자기와 조선의 도자기를 구별할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일본에서 대량생산한 싸구려 도자기가 한국 도자기인양 팔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후 보다 전문적인 브로커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인들과 영국인들의 취향은 고려청자쪽으로 고정되어 나간다.

주로 개경 근처의 무덤을 도굴해서 찾아낸 고려청자들이었는데 이 역시 당시의 영국인들의 구매품들을 보면 고려청자와 중국의 대량생산품들이 섞여있는 경우가 많아 골동품을 둘러싼 사기행각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유럽내에서도 송나라 원나라 시기의 청자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고려청자의 가격도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이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연민의 감정으로 조선을 바라보며 조선의 문화를 자기 나름대로 사랑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는 청자가 아닌 백자에 주목하며 조선의 처연한 비애미를 얘기한다. 이후에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감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긴 하지만 어쨌든 이 시기 컬렉터들이 조선의 백자를 주목하게 한 공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버나드 리치 역시 한국 방문 중 야나기 무네요시와 동행한 것으로 보아 그의 저 달항아리 구입 역시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당시 영국에서 버나드 리치가 주도했던 스튜디오 포트리의 활동 - 대규모의 공장화된 공예품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공예를 추구한 -과 맞물리면서 조선의 달항아리와 백자가 영국 내에서 재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조선의 백자는 더 이상 작은 틈새시장에 머물지 않고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장 역시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조선 백자의 세계시장 진입경로를 다루면서 당대 조선 내에서는 골동품 시장의 형성과정, 거래방법, 관련 업종과 사람들 등을 두로 찾아내고 서술하면서 20세기 전반의 한국사회 생활사의 여러 장면들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문화면에서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일본의 하위문화로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잘 보여주고 있어 식민주의의 미시사를 잘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역사를 더 풍성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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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9-09 0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저 항아리에 장아찌를 담았군요 항아리는 음식을 담으려고 만드는 것일 텐데, 지금 저 항아리는 그저 보기만 할 듯하네요 항아리한테 좋을지... 다른 나라에서 호랑이 사냥여행을 오기도 했군요 옛날엔 호랑이가 많아서 잡기도 했다지만, 많은 사람이 와서 잡으면 살기 힘들겠지요

바람돌이 님 명절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9-12 16:38   좋아요 2 | URL
저 항아리 잘 보면 좀 많이 찌그러져 있고요. 색깔도 많이 변했고, 보관상태도 그렇게 최고는 아니에요.
진짜 실생활에 장아찌 담아 먹던 그릇이라는거죠. 어떻게 보면 달항아리 입장에서는 호사라고 할까요? ㅎㅎ
일본인들이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호랑이 사냥을 많이 햇다네요. 그러면서 자신들과 친교를 맺고 싶은 나라들의 유력인사들에게 호랑이 사냥여행을 권하기도 했구요. 그중에는 성사는 안됏지만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있답니다. ^^

호우 2022-09-09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 항아리 하나에서 시작된 궁금증이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로 펼쳐지는 과정이 흥미롭네요. 일본은 참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네요.

바람돌이 2022-09-12 16:41   좋아요 2 | URL
어떤 작은 계기나 궁금증 하나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호기심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책을 쓰는거겠지요. 저처럼 아 궁금하네 하고 마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요. ^^
일본의 35년 지배가 우리에게 남기고간 식민잔재가 어찌나 많은지 놀랄 때 가끔 생각하는게 100년에서 200여년까지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어떨까를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파랑 2022-09-09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없던데 저런 이유가? ㅋ 역시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9-12 16:42   좋아요 1 | URL
저때는 주로 일본이 놀이로 호랑이 사냥을 햇고요. 일제시대 들어가면 대대적인 호랑이 소탕작전을 벌였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씨가 마르게 된다는.....

책읽는나무 2022-09-09 1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 항아리 백자가 요즘 재조명 받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 맞나??)가 구입해서 가격이 엄청 뛰었고, 사람들이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는데 bts의 Rm이 달 항아리를 구입해서 가격이 또 뛰었다 그러고...RM이 앉아서 달항아리 살포시 포옹하는 사진을 봤는데 달 항아리 크기가 저 정도였던 듯 한데 색감은 조금 다른 듯도 하네요?
영국인 루시 리 여사와 달 항아리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느낌이네요. RM이 달 항아리 안고 행복해 하던 사진은 그냥 부럽다! 하면서 봤는데 이 사진은 좀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듯 합니다.
달 항아리나 고려청자나 아름답긴 합니다. 그러니 그네들 눈에는 오죽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도굴은???ㅜㅜ
호랭이들도ㅜㅜ

바람돌이 2022-09-12 16:46   좋아요 2 | URL
달항아리가 딱 보고 와 진짜 명품이다 하는게 잘 없어요. 이미 그런건 국보 보물로 지정돼서 박물관에 다 들어가 있고요. ㅎㅎ 저 달항아리가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까 아래 위를 따로 만들어서 붙이는데 그러다보니 딱 들어맞는 호선이 잘 안나오고 다들 약간씩 찌글어진 느낌이랄까? ㅎㅎ

저 사진은 저도 굉장히 감동적이랄까? 저분이 어쩌면 진짜 저 항아리를 아낀 것 같은, 그래서 저렇게 뭔가 너무 잘 어울리는 사진이 나온건 아닐까 싶더라구요. ^^
저 시절에 도굴해서 물건 갖다 파는건 거의 다 한국인이었습니다. 물론 그걸 사주는 일본인이나 서양인들이 있으니까 도굴이 많이 된거긴 하겟지만요. ^^

mini74 2022-09-09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안에 달이 뜨는 느낌일거 같아요. 그래서 달항아리를 그린 분들이 많은걸까요. 벽에 걸어두면 둥실~ 달 하나 떠 있는 ㅎㅎ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바람돌이님 ~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

바람돌이 2022-09-12 16:47   좋아요 2 | URL
달항아리라는 이름도 김환기화백이 지었대요. 이름 너무 잘 지었죠. 그냥 백자 항아리보다 달항아리라니까 뭔가 좀 근사하잖아요. ^^ 미니님도 추석 즐겁게 잘 보내셨기를 바라요. 음.... 저는 추석 싫어해요. 출근할 때도 나 그냥 출근할래 했어요. ㅎㅎ

coolcat329 2022-09-09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항아리가 있었군요.
절제미가 느껴져 아무리봐도 질리지 않을 거 같아요. 오 둥근 달 같아요.

바람돌이 2022-09-12 16:48   좋아요 1 | URL
집에 하나 있으면 아끼고 쓰다듬고 안아주면서 사랑해줄것 같아요.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이랄까? ^^
그래서 김환기 화백이 이 항아리를 보고 달항아리라고 이름지어줬다죠. ^^

scott 2022-10-07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상 추카 합니다

달항아리 보러
바람돌이님
10월 서울 나들이 한 번 더!^^

바람돌이 2022-10-07 21:1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도 이달상 축하드려요.
제가 아는 가장 멋진 달항아리는 리움미술관에 있는데 당분간 리움미술관 방문 계획은 없어서요. ㅎㅎ
10월에는 지난번 못간 비비안 마이어를.... 이거 티켓팅도 해놔서 10월에 가야해요.
아 근데 성수동 교통 가기 진짜 불편하더라구요. ㅎㅎ

새파랑 2022-10-07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요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많이 불더라구요 ^^

바람돌이 2022-10-07 21:2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새파랑님의 소세키 사랑 빨리 저도 같이 동참하고 싶은데 말이죠. ㅎㅎ
오늘은 처음으로 춥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바람의 온도가 많이 낮아졌어요.
이런 계절에 감기 조심하세요. ^^

thkang1001 2022-10-07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10-07 21: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님도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이번 연휴가 지나고 나면 크리스마스까지 주말 외에는 휴일이 없대요. ㅠ.ㅠ

모나리자 2022-10-07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2-10-07 21: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인지 바람이 많이 쌀쌀해요. 감기조심하세요. ^^

mini74 2022-10-07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항아리에 축하의 맘 꾹꾹 담아놓고 갑니다 ㅎㅎ 축하드려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2-10-07 21: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도 이달 당선 축하드려요.
저 달항아리에 가득찬 축하의 맘이라니 너무 과한걸요. ^^

그레이스 2022-10-07 21: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달항아리 용도를 모른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알아서 쓰는 건가봐요.
백자 달항아리 너무 멋지죠.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22-10-07 21:46   좋아요 2 | URL
아 저 달항아리는 실제 장아찌를 담던 걸 사간 것으로 보여요.
대부분의 달항아리들은 어쨌든 실제로 쓰였던거고, 다른 것들도 어쨋든 여러가지 용도로 알아서 썼을듯요. ㅎㅎ
축하 감사드려요. 그레이스님도 바닷가에서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저는 이번 달에는 꼭 마지막 남은 그후의 삶 읽으려구요. ^^

bookholic 2022-10-08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이달의 당산작 축하드립니다~~
가을 만끽하시는 연휴 되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2-10-08 21: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가을과 함께 당선작 리뷰의 모짜르트의 음악도 함께 하는 즐거운 연휴 되세요. ^^

2022-10-08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8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8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8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10-09 0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달이 컸어요 달력 보니 내일이 보름이군요 어느새 그렇게 되다니...


희선

바람돌이 2022-10-09 19:13   좋아요 1 | URL
진짜 어제는 달이 커서 예쁘더라구요. 희선님도 축하드리고요. 내일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요. ^^

거리의화가 2022-10-10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늦었지만 당선 축하 인사 전하러 왔어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진 구도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항아리 사이즈가 엄청나보입니다^^; 영국은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영국박물관까지 가게 된 연유가 흥미롭네요. 시작은 역시 중국과 일본 자기와 구별이 되지 않았을 걸로 짐작했습니다. 영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요런 미시사가 저는 거시사를 공부할 때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재미와 빈 구석을 메꾸어주어 좋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10-10 21: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정도면 달항아리 중에서도 굉장히 큰 사이즈 맞습니다. 그래서 책에 보면 저걸 운반하는 과정도 굉장히 상세히 들어가 나오더라구요.
이런 미시사는 말씀하신대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더 실감나게 느껴져서 읽는 맛이 있죠. 이런 연구들이 더 많아져서 우리 역사가 더 풍부해지길 항상 소망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