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가을이 왔는지도 모르게 가버리겠다 싶어 살짝 근교 나들이를 나갔다.


경주 외곽의 운곡서원은 은행나무로 유명한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나들이를 갔다. 서원이 앉은 자리가 예쁘지만 서원 자체는 새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 풍경에 녹아들지는 않는 모습. 오히려 주변의 부속 건물들이 예뻤다. 30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은행나무는 아직 노란 물이 다 들지 않았지만 세월의 깊이와 풍성함이 아름다웠다. 






  운곡서원은 신라 말 공산성전투에서 왕건을 도와 함께 싸웠던 권행을 모신 서원이다. 이 전투에 함께 했던 권행은 그 공으로 왕건으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 받았고, 안동 권씨의 시조가 되었다. 바로 우리 시댁이다. 내가 너네 집안은 나라 팔아먹고 고려에 붙었던 시조에서 시작했으면서 뭘 그리 명분과 절차를 따지냐고 욕할 때 자주 등장하는 분이다. ㅋㅋ 유학자도 아니고 무관에 가까웠던 호족출신이 왜 서원에 모셔지는지도 불분명한데 조선 후기 서원건립으로 재산을 빼돌리려 했던 지방 양반들의 부패와 관련되었을듯.... 그러니까 흥선 대원군때 철폐되는게 당연했을거고..... 그러니 서원은 현대에 와서 다시 건립되었고(왜 했는지 솔직이 이해는 안가지만...), 그래도 은행나무는 아름다웠을 뿐.....


경주 보문호로 이동하는 길에 오랫만에 장항리 절터에 들렀다. 가다가 남편이랑 아 맞다 이 길에 용장리 절터 있지 않나? 오랫만에 들릴까 이러면서 내비 설정하고 막 가는데 길이 좀 이상해, 뭔가 예상한 경로가 아니야 하다가 남편이 갑자기 아 용장리는 남산 중턱에 있는거고 우리가 갈려는 건 장항리잖아. 아 맞다 맞다 우리 둘다 치매인가 봐 이러면서 갔다는.... 어쨌든 찾아가기는 갔다.

국보인 탑이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찾는 이 없이 호젓하고(우리 밖에 없었다.) 그래도 옛날과 다르게 길은 정비가 돼서 산길을 기어서 가지는 않아도 되었다.




오랫만에 국민체조하는 사천왕도 보고....




보문호에 도착해 겨우 겨우 주차를 하고, 그냥 보문호 한바퀴 산책했다. 중간에 호텔 라한 들러 서점 경주산책도 둘러봤는데 이전과 달리 모든 책이 래핑이 되어 있어서 좀 씁슬했다. 주로 지나가는 이들이 들러 책을 얼마나 들춰보기만 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책의 물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비닐만 만지는 느낌이 좋지는 않았달까? 그래도 보문호의 가을 풍경은 아름다웠다.







11월 첫 주에 가족 모두 주말을 이용해서 서울 나들이도 다녀왔었는데, 거기서 만난 풍경들이 너무 좋았지만 언제 쓸꺼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25-11-1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주가 좋아서 이십팔년전에 신혼여행도 경주로 다녀온 사람이랍니다.^^ 이후로도 경주 여러번 갔는데 운곡서원은 한번도 안가봤네요. 말씀해주신대로 호족 출신 권행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도 새롭고요. 붉은 단풍도 아름답지만 노란 은행나무를 보면 눈이 부시지요. 가을에 노란 은행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도로를 달리노라면 마치 백제 무열왕 금제장식인가요? 그걸 보는 듯 했어요.
덕분에 방콕하고 있으면서 좋은 풍경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