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리즈 완간을 기다리는 맛

  시리즈 소설을 시작할 때는 일단 분량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이 시리즈 역시 21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분량이 장난 아니다. 하지만 좋은 건 이제 시작이다. 이제 막 5권이 출간 되었고 앞으로 21권까지 출간될 예정이란다. 5권이면 딱 좋다. 1권은 감질나고 2-3권도 뭔가 섭섭하다. 하지만 5권 정도면 일단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폭 빠지기에 딱 좋은 권수다. 나머지는 기다리는 즐거움이다. 이 시리즈 망하지 말고 그저 때 맞춰 잘 나와 달라고 나에게 이렇게 뽐뿌 글도 쓰게 만들 만큼 이 시리즈 재밌다. 


2.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이 장난 아니다.

  주인공은 영국 웨일즈 지방과 딱 붙어있는 잉글랜드 지역의 수도원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사인 캐드펠이다.  1권의 사건은 1137년부터 시작된다. 중세 한 가운데다. 지금은 수도원에서 허브를 기르고 온갖 채소를 기르는데 열정을 다 바치는 캐드펠 수사는 젊은 시절 1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고, 짐작컨대 온갖 세상풍파를 다 겪다가 이 수도원에 안착하게 된 사람이다. 인생사 경험의 폭이 넓어서일까? 이 분 보통 수사와는 생각의 폭이 다르다.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에서는 수도원 사람들의 유골에 대한 갈망 저변에 깔려있는 속물근성을 한 눈에 파악하며 자기 나름의 옳음의 기준을 보여준다.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이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의 행위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것을 따라가는 재미도 못지않다. 또한 성녀의 유골을 둘러싼 웨일즈 지방의 주민과 수도원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는 요절복통 시원한 카타르시스까지...... 그 은밀한 해결에 나도 동참한듯한 느낌은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이다. 

  2권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캐드펠 수사는 반역으로 처형 당한 94명의 시체에 더해 진 단 한 구의 시체를 놓치지 않으며 억울한 죽음을 파헤친다. 혼란스런 전쟁터 한 가운데서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지만 단 하나의 억울한 죽음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수사의 본분이라는 듯말이다. 그는 종교의 열정을 가장하는 것을 비웃고, 종교에서 말하는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양심과 선량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한다. 12세기 중세 한 가운데서 이런 인물이 있었을까 싶지만 사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뭐가 그렇게 다를까


3. 여성 등장 인물들의 매력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초반부에 성녀의 유골을 가지고 있는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회의를 하는 주체는 지주와 자유민인 자작농 남자들이다. 여성과 농노들은 한켠에 자기들끼리 우두커니 모여있는 장면 묘사다. 그래 이 시대가 그렇지하면서 실망하려다가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절로 평범한 사람들과 여성들의 활약에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중세의 이야기지만 중세의 의식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절대로 중세적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쟁취해내는 인물들이다. 사건의 해결은 캐드펠 수사가 주인공이고, 여자 주인공들이 보조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데 캐드펠 수사를 보조적 인물로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 삶의 선택이 온전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또는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는 살아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신분의 굴레나 닥쳐온 위기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들이 톡톡히 제 몫을 해내는 것이다. 심지어 2권에서는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같은 여성으로서의 연대를 실천하는 조연 여성까지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준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또 어떤 여성들이 이 멋진 이야기를 같이 가꾸어줄까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4. 중세의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는 즐거움

  서양의 중세에 대한 나의 지식은 정말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보는 정리되고 박제된 것들이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살아 숨쉬었을 것인가?

  1권에서는 웨일즈 귀더린 지방이라는 시골 사람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수도원 수사들의 허영과 자만, 탐욕, 기만에 대비되어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 싶고 방해받고 싶어지는 중세 작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자신들의 작은 행복을 지키고 싶어하며, 그럼에도 자신들을 이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을 터놓고 함께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그들이 눈동자에 왠지 동참하고 싶어진다. 아 그리고 수사의 삶보다는 사랑을 찾은 존 수사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중세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보라고 강권하고 싶다.

  2권에서는 귀족들의 왕이 다툼에 휘말린 슈루즈베리 지역을 배경으로 하면서 당시 툭하면 벌어지던 영지전이나 왕위 분쟁에서 온갖 계층이 살아남기 위해 이전투구하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또한 마지막 범인의 증거를 결투라는 지극히 중세적인 방식으로 찾고자 하는 모습도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이 시리즈를 모두 읽고 나면 멀고 먼 서양 중세의 삶이 내 안에 지극히 풍부한 모습으로 와 있지 않을까? 


어쨌든 결론은 이 시리즈 너무 너무 강추다. 

다들 한 번 읽어 보세요. 

캐드펠 수사의 매력에 푹 빠질테요. 


남은 시리즈는 요기

덧붙여 표지 너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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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10-06 23: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재밌단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너무 옛날 배경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솔깃하게 써 주시니 한번 읽어봐?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만간 도전해 보겠습니당

바람돌이 2024-10-07 09:05   좋아요 3 | URL
우리 주인공 캐퍼펠 수사님이 지극히 온전하고 현대적인 생각의 소유자인지라 괴리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중세 배경은 오히려 소설에 맛깔난 배경이 되어주더라구요.재밌어요. ^^

다락방 2024-10-07 0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표지가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관심밖의 작품이었거든요. ㅋㅋ 처음엔 소설인줄도 몰랐어요. 하하. 그런데 바람돌이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일단 한 번 읽어볼까요? 후훗.

바람돌이 2024-10-07 09:07   좋아요 2 | URL
표지는 호불호가 갈리는 표지라고 생각합니다. 취향을 많이 탈 듯.... 저는 저 눈알이 너무 맘에 들었걸랑요. ㅎㅎ
하지만 소설은 왠만하면 대부분 맘에 드실거라고 생각해요. 후반부로 가면 추리 부분은 좀 예측 가능한데 중요한건 추리라기 보다는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 재밌어요. ^^

coolcat329 2024-10-07 14: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표지 참 좋던데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네요. 캐드펠 수사 참 괜찮죠? ㅎㅎ

바람돌이 2024-10-07 15:42   좋아요 2 | URL
표지가 호불호가 갈릴거 같아요. 저 눈동자들 밤에 보면 좀 으시시... ㅎㅎ
하지만 책 내용은 진짜 좋고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도 진짜 맘에 들어요

감은빛 2024-10-08 0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21권이라니. 근데 정말 표지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것 같아요. 저는 좀 별로입니다. 중세 시대 추리소설이라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4-10-08 13:54   좋아요 2 | URL
지금은 5권까지 나왔습니다. 앞으로 계속 기다리는 맛이... ㅎㅎ
처음엔 저 표지 좀 부담스러운데 자꾸 볼수록 끌려요. 정말이라니까요 ㅎㅎ

transient-guest 2024-10-08 2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절판됐다가 지금 나오기 전의 판본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고 역사적인 배경과 묘사, 추리, 종교 등등 정말 잘 만든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판본이 나온 걸 보고 다시 사야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즐독하세요!!

바람돌이 2024-10-08 23:04   좋아요 3 | URL
오우 앞서가시는 transient-guest님. 저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중세 이야기고 저 표지가 맘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좋네요. 근데 생각보다 읽는 분이 많지 않은거 같아서 같이 읽고 싶어서 막 쓴 글이에요. ㅎㅎ

아영엄마 2024-10-12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드펠 수사 시리즈라.. 어쩐지 읽어본 듯하다 싶어 구매 목록 훓어보니 저도 예전 판본으로 몇 권 사다 중단했던 시리즈더군요. 이젠 내용도 가물가물, 책이 꽂혀 있는 위치도 가물가물(이중으로 꽂혀서 뒤에 자리한 책들은 손도 못 타고 잊혀져 가는 중..ㅜㅜ) 새 판본 글 보니 추리소설 애서가였던 그 분 생각이 절로 납니다. 무척 반기셨을텐데.. 바람돌이님네 아이들도 많이 자랐겠네요. 전 막내가 벌써 고1이라 또 수험생 학부모 모드 시작입니다. 요즘은 책도 많이 안 읽게 되니 미쓰다 신조나 미미 여사 신간 나올 때나 구입하는 정도..알라딘 서재에 발걸음을 끊은지 오래된 이가 반가운 닉네임이 눈에 들어와 생존 신고 및 안부 삼아 몇자 남기고 가요.^^

바람돌이 2024-10-12 21:50   좋아요 0 | URL
아영엄마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너무 반가워서 소리 질러요. ^^
막내가 벌써 고1이라니... 위의 따님들은 이제 직장인이겠어요. 저희집 애들도 대학생이구요. 애들 참 잘크죠. 저는 추리소설 읽을 때마다 물만두님 생각나요. 그분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읽고 길잡이역할을 해줬을텐데 말이지하면서요. 그리운 이름이에요. 아영엄마님도 늘 그리운 이름이랍니다. 이렇게 오랫만에 들러주셔서 얼나마 좋은지 모르겠네요. 자주 자주 뵈어요.

다락방 2024-10-23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저 이거 1권 유골.. 읽고 있는데 이 작가 글 왜이렇게 잘 쓰나요? 너무 좋아요! 읽다 말고 친구한테도 선물주려고 합니다. 으하하하하.

바람돌이 2024-10-23 08:02   좋아요 0 | URL
맞죠. 근데 결말 가면 더 근사해요. 저는 지금 3권 수도사의 두건 시작했어요. ^^

다락방 2024-10-23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땡투 또 드립니다 ㅋㅋ

바람돌이 2024-10-23 09: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네요. 드디어 제가 부자가 될지도...^^
 
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아르누보 예술을 이끈 선구자의 생애와 작품
로잘린드 오르미스턴 지음, 김경애 옮김 / 씨네21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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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만 좋다. 무하의 그림들이 모라비아지역과 슬라브의 전통을 반영했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아무리 봐도 안 나온다. 도판으로 나온 그림들에 무엇이 그려졌는지가 그 많은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는데 나도 눈 있거든요. 도판 보면 그게 뭔지는 안다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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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10-06 2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도 눈 있거든요ㅎㅎㅎ 웃픕니다 ㅜㅜ 글에 실속이 없군요..

바람돌이 2024-10-06 22:43   좋아요 3 | URL
도판은 참 좋습니다. ㅎㅎ
근데 사실 저는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가 궁금했는데 그건 또 없어요. ㅠ.ㅠ 도판의 도판을 위한 책입니다. ㅎㅎ
 

주말 동안 클레어 키건의 소설 3권을 모두 읽었다. 

모두 분량이 적은 책인지라 부담없이 읽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부담없지는 않다.


이 작가는 집요할 정도로 세밀한 풍경과 정황 묘사로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면서도 대화라든지 등장 인물의 생각에서는 과감할 정도로 간결한 묘사로 일관한다.

그래서 키건의 글을 읽는 독자는 소설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녀가 이끄는대로 아일랜드의 가난하고 척박한 들판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무엇이 당신을 그리로 이끄는거지?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면 당신은 좀 괜찮아질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 이들은 내가 손 내밀어야 할 그 누군가구나

큰 위로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위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거니까.....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라고 그렇게 물어보고싶다.


한 권의 소설이 독자를 자기 얘기로 온전히 끌어갈 수 있다면 좋은 소설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내게는 그랬다. 



2007년에 출간된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첫 번째 단편집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작가는 1999년에 첫 단편집으로 윌리엄 트레버 상을 받았단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단편 <작별 선물>을 읽으면서 윌리엄 트레버를 떠올렸다. 

윌리엄 트레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를 소녀의 끔찍하게 억눌린 감정만큼 꾹꾹 눌러가며 쓴 이야기, 마지막 순간 공항의 화장실에 숨어 든 소녀의 곁에 나는 가만히 앉아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이제 울어도 돼, 맘껏 울어도 돼

그리고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가방을 다시 들여다보던 그 순간부터 공항 화장실 칸막이에 안전하게 들어가 문을 잠글 때까지의 소녀의 하루를 다시 따라가며 소녀가 얼마나 강인하게 버텨냈는가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지독하게도 가부장적이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마찬가지다.

표제작 <푸른 들판을 걷다>의 사제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제여,  그냥 계속 들판이나 걸으세요. 당신이 한번도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케이트는 당신을 버렸답니다. 당신에게 그녀는 결혼하는 신부로 불릴 뿐이지만, 이제 그녀는 다른 곳에서 자기 이름 케이트를 찾을거랍니다. 당신은 한 번도 진지하게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준적이 없었으니까요. 혼자 괴로운척 해봤자 우리 독자들은 다 안답니다. 당신 속에는 자신 밖에 없음을.....


<검은 말>에서 떠난 아내가 돌아와서 자신을 용서해주기를 기다리는 브래디.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 아내와 자식의 어떤 감정도 인정하지 않는, 돈을 절어 가족을 부양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디건.

<물가 가까이>에서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데려간 아내에게 1시간을 주었다가, 1시간이 지나자 그대로 아내를 버려두고 차를 출발시켜 버리는 주인공의 할아버지.

가부장제에 흠뻑 빠져있는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여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또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형식으로 자신의 배신을 폭로해버리는 식으로, 또는 자신이 가고자 했던 그 어딘가로 떠나는 것으로 여자들은 다른 삶으로 조용히 빠져 나간다.

이야기 밖으로 나간 그녀들이 어떻게 살아갔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녀들의 손을 잡고 응원해주고싶다.

괜찮아. 여기보다 나쁠 수는 없어. 

빛나는 미래가 아니어도 괜찮아. 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찾고, 당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가난한 집에 또 동생이 태어났다.

어린 소녀를 보살필 여력이 없던 엄마는 소녀를 잠시동안 친척 집에 맡긴다.

소녀는 친척 집에서 처음으로 보살핌을 경험한다.

소녀가 맡겨진 집에서 마신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한 맛이다.

그 물의 맛을 소녀는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30쪽)로 표현하며 6잔이나 마신다.

그 6잔만큼 소녀는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다.


무심하고 거친 아빠가 살기 힘들어서라고 치부해버려도 될까?

아니다. 친척집이라고 해서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한 것은 아니다.

소녀가 맡겨진 친척집의 부부는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그들의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이 그들을 뒤엎는다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무심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 책의 압권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이제 보살핌을 받는다는게 무엇인지 알게 된 소녀는 친척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아저씨의 등 뒤로 다가오는 아빠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아저씨를 부른다. "아빠"

누구를 가족으로 여기는가는 혈연에 있지 않다.




읽은 3개의 작품 중에서 나는 이 소설이 가장 좋았다. 

왜 좋았을까 생각해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나와서인듯하다.

주인공 펄롱은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사랑한다. 

아내와 5명의 딸들에게 배려하는 남편이자 아빠다.

미혼모였던 펄롱의 어머니를 내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계속 일하게 해준 미시즈 윌슨은 어린 펄롱을 함께 보살펴주기도 한다. 펄롱은 덕분에 어린 시절을 보살핌과 배려속에 클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간직할 줄 아는 펄롱이 좋았다.

우리의 일상은 사실은 너무 너무 사소한 매일로 채워져있다.

또한 그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도 한걸음 떨어져 보면 너무 사소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함이 바로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세상을 뒤집고 혁명을 일으키고,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떤 극적인 사건일테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지켜가는 것은 그곳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소하고 사소한 작은 행동들이다.

석탄 배달을 갔던 수녀원에서 석탄 창고에 갇혀있던 어린 소녀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

나의 어린 딸들이 받아야 할 보살핌을 마땅히 그 어린 소녀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건 이런 펄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떤 과장도 없이 그저 펄롱의 하루와 생각들과 고민들을 묵묵히 따라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나는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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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09-23 0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푸른 들판을 걷다>는 아직 안 읽었어요.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펄롱 멋졌어요!!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다른 이에게 베풀 줄 아는 멋진 사람이죠. 세상에 펄롱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4-09-25 21:16   좋아요 3 | URL
작가의 초기작이라 그런지 단편마다 호불호가 갈릴거 같아요. 제일 첫번째 작품 작별인사가 강렬했어요.
저한테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제일 좋았고 그 다음 맡겨진 소녀,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른 들판을 걷다예요. ㅎㅎ
펄롱 같은 사람들이 우리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사람이어야 할텐데 말이죠.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서 늘 부끄럽네요.

레삭매냐 2024-09-23 10: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서 두 번이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다 다르더라구요.

절반 정도 읽고 나서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 마저 다 읽어야지 싶습
니다.

참 영화로도 나온 모양이더라구요.

바람돌이 2024-09-25 21:17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덕분에 영화도 알게 되었는데 저는 책으로 본걸 영화로 보는건 늘 별로더라구요. 영화로 본걸 책으로 보는건 좋아요. 그러고보니 영화 먼저 볼걸싶네요. ㅎㅎ

독서괭 2024-09-23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한권도 못읽은 작가~~ 바람돌이님도 다른 분들도 다 좋다하시니 언젠가 읽어야죠!!

바람돌이 2024-09-25 21:18   좋아요 3 | URL
이 작가 호불호가 갈릴거 같아요.
저는 취향이었습니다.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들을 좋아한다면 맞을거 같아요.

희선 2024-09-24 0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레어 키건 소설은 다 좋아하는 듯하네요 세계 사람도... 한번 보면 다른 것도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군요 세권 이어서 보셔서 좋으셨을 것 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할 듯합니다 클레어 키건 소설 더는 볼 게 없어서...


희선

바람돌이 2024-09-25 21:19   좋아요 1 | URL
다 좋아하나요? 저는 읽으면서 저는 좋은데 취향은 꽤 타지 싶엇는데요. 세권 다 분량이 얼마 안돼서 다 합쳐도 보통 책 1권 분량입니다.
이렇게 나온 책을 클리어하고 나면 또 기다리는 맛이 있더라구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의 책을 늘 기다리듯이 말이죠. ^^

공쟝쟝 2024-09-26 1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책만 읽었습니다. 저 역시 펄롱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혹은 그가 내린 결론들이) 오랜시간부터 축적되어온 약간의 용감한 친절임이 좋았고, 그가 그걸 가만히 기억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어요.
 
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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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오! 윌리엄>에서 루시는 윌리엄을 최초로 가져본 집으로 표현한다.

루시에게 윌리엄은 물리적인 집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심리적인 집이었다.

한 번도 돌아갈 집을 가져보지 못한 루시에게 윌리엄은 처음으로 쉴 곳으로서의 또는 내 공간으로서의 집을 준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각인은 무섭다. 

이 책에서 윌리엄이 자신을 표현하는대로 윌리엄은 그야말로 개자식이다.

그럼에도 루시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저 최초의 각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루시의 자식들의 걱정대로 루시가 윌리엄에게 돌아가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루시가 윌리엄에게 돌아간 것을 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독자가 결국에는 루시의 선택을 그럴 수 있지라며 수긍하는 것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윌리엄이 세 번 째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루시를 살리기 위해 메인 주 바닷가로 데려갔을까?

그건 당연히 아닐테고 루시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을까?

아니겠지.

그는 팬데믹에서 루시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표현했지만 만약 그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충고 정도로 끝났을거고, 그는 세번 째 부인인 에스텔과 딸인 브리짓과 함께 메인주 바닷가로 갔을테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바닷가의 루시가 아니라 바닷가의 브리짓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냥 윌리엄은 계속 개자식이었을 테다. 


이 책은 또한 내게는 참으로 정신없이 지나왔던 팬데믹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서웠고, 불안했고, 그럼에도 나는 사실 그걸 제대로 느끼기에는 너무 바빴다.

처음 맞는 그 상황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기 위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했고,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했고, 적응해야 했다.

능력 부족으로 모자라는 것들을 채울 수 없어 절망해야 했다.


이제 루시의 생각들과 일상들을 읽으면서 아 그렇게 내 마음속의 불안들이 이런 모양이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다 다른지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우리는 어떤 본성을 타고나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를 이러저리 휘두른다.  - 56쪽


나의 의지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 내 일상을 내가 계획한대로 만들어갈 수 없었던,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에 휘둘리고 싶지만은 않았던 우리 모두의 시절일기로 이 책은 읽히기도 했다.

가족과 이웃과 그리고 모르는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그렇게 팬데믹을 지나왔다.

뉴욕에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건물에 살면서, 가끔 보도에 접이식 의자를 갖고 나와 앉아 있던 가난한 노파가 이제 식료품은 어떻게 구할까를 걱정하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은 것에 감사하지만 그 운좋음이 나의 능력이 아님을 아는 그 마음이 우리를 오늘 여기에 남아있게 하는게 아니겠는가?


글의 마지막쯤에서 루시는 그녀의 아이들을 임신했던 시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내가 크리시를 가졌을 때 내 커진 배를 내려다보며 그 위에 손을 얹고 이렇게 생각한 것을 떠올렸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내 소유가 아니야. 내 일은 네가 세상에 나오는걸 돕는 것이고, 너는 내 소유가 아니야.  -369쪽


살아간다는 건 언제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다.

자식조차도 그러하다.

그 중 누구도 내 뜻대로 휘두르거나 휘둘리거나 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자식조차도 그러하다.

루시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절이든 어떤 상황이든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가질 때와 지켜보아야 할 때는 구분하는건 어렵다.

메인주 바닷가 이웃으로 만난 밥에게 아내 몰래 담배 한가치를 피울 시간의 위로를 전할 때는 딱 그만큼의 관심이면 된다.

자기 길을 가는 자식이 걱정돼도 따듯한 포옹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마음도 그러하다.

그런 기다림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바닷가의 루시를 만나면서 드는 생각이다. 


사족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 리뷰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윌리엄이 사위의 외도를 알고 그 사위와 통화하다가 사위가 "아버님도 아내에게 똑같이 하지 않으셨나요. 베키가 말해주던데요"라는 말에 대한 답이다.


 "그래, 그랬지. 트레이. 내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나? 내가 개자식이었기 때문이야! 그게 내가 그랬던 이유였어. 이 빌어먹을 멍청한 놈." 그는 앉은 채 몸을 뒤로 기댔다가 다시 앞으로 숙였다. "개자식 클럽에 들어온 걸 환영하네. 개자식." 그러자 우리의 사위가 전화를 끊었다.


자신이 개자식임을 아는 윌리엄! 화이팅이다.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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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9-18 2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왠지 윌리엄이 이혼을 안 했더라도 루시를 피신시켜 주려고 했을거 같아요 물론 윌리엄 가족과 함께 바닷가는 아니겠지만 어디 다른 펜션이라도 소개해주지 않았을까? 해요ㅋㅋㅋㅋㅋ윌리엄 이혼 전에도 주기적으로 루시와 친하게 만났고 해서 그런지...암튼 루시와 결혼생활 중의 윌리엄은 개자식 맞습니다🤣

바람돌이 2024-09-19 21:52   좋아요 4 | URL
저도 윌리엄이 이혼을 안했더라도 루시를 피신시켜주려고 노력했을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게 좀 어정쩡한 포지션이 아니었을까 하는거죠. ㅎㅎ 그래도 루시와의 결혼생활에서 7년이나 루시의 친구와 바람핀건 진짜 개자식 맞죠. ㅎㅎ

꼬마요정 2024-09-19 00: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개자식들 나빠요!!!

바람돌이 2024-09-19 21:52   좋아요 4 | URL
저도 공감 팡팡입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4-09-19 08: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너무 좋네요. 바람돌이님 리뷰~~~ 우리 알라딘 스트라우트 풍년이라 전 너무 행복합니다.
전 책 읽었을 때 자세히는 리뷰를 못 썼거든요. 복잡한 심경이었구요 제 결론은 루시처럼 윌리엄을 안아주는 거였기 때문에... 암튼 그랬습니다.

전, 윌리엄이 세번째 부인의 런!으로 인해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루시를 피신, 최소한 그 곳으로 데려다 줬을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어머니 캐서린의 악몽으로 괴로울 때 윌리엄이 계속 루시를 생각하잖아요. 저는 윌리엄이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루시라고 생각해서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떻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자식 라인 좀 적어놓을까요?
1. 니노 <나의 눈부신 친구> 2. 윌리엄........ 일단 2번까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4-09-19 21:57   좋아요 4 | URL
윌리엄이 루시의 피신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을거라는건 저도 인정요. 하지만 윌리엄이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루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는 어쩌면 집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거든요. 어느 한 곳에 안주하는 것 자체에 불안을 느끼고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찿아야 불안에서 벗어나는 사람? 하여튼 제 느낌은 그랬어요.

나의 눈부신 친구는 언제나 저의 읽고싶은 책 1순위인데 4권의 압박에 망설이기만 하네요. 언젠가는 읽겠죠. ㅎㅎ

독서괭 2024-09-19 22: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대화에 끼기 위해 루시 시리즈를 읽어야할까요!!

바람돌이 2024-09-19 22:34   좋아요 3 | URL
넵!!! ㅎㅎ
그치만 독서괭님은 안 읽어도 무한 대화가 가능하지 않나요? ^^

독서괭 2024-09-20 11:24   좋아요 3 | URL
아니욤.. 여기 끼기 위해 어제 루시시리즈 첫권을 주문했습니다!! ㅋㅋ

바람돌이 2024-09-22 21:37   좋아요 2 | URL
오 독서괭님의 아름다운 리뷰를 기다리면 되겠군요. ^^

희선 2024-09-20 0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자기 물건처럼 여기는 사람 많기도 하죠 루시는 그게 아니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네요 모든 부모가 그런다면 좋을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4-09-22 21:38   좋아요 3 | URL
그래서 루시가 좋은거 같아요. 비틀거리다가도 항상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이 참 닮고싶은....
그런데 전 윌리엄과 합치는건 별로예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9-20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님이 뽑아 주신 마지막 문단이 참 좋네요. 통쾌해요.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보통은 이럴 때 할 말을 잃기 쉬운데. ˝개자식 클럽에 들어온 걸 환영하네. 개자식.˝ - 오! 이런 능란한 말솜씨는 우리를 즐겁게 만들죠.ㅋㅋ^^

바람돌이 2024-09-22 21:39   좋아요 2 | URL
저 대목 읽다가 저 뻥 터졌어요. 아 진짜 통쾌하긴 한데...
근데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개자식들은 본인이 개자식이란걸 모른다는거겠죠.
멀쩡한 사람들만 부끄러움을 알죠.

레삭매냐 2024-09-23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 여사의 캐리턱 생성력
은 정말.

올리브 키터리지 그리고 루시 바턴
까지.

스트라우트 유니버스 정도 될까요.

바람돌이 2024-09-25 21:21   좋아요 2 | URL
진짜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에요. 이젠 올리브할머니나 루시 바턴이 마치 아는 사람같다니까요? 미국의 메인주 바닷가에 가면 왠지 그들을 만날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에요. 훌륭한 소설의 요건 중에서 스트라우트 여사는 캐릭터 만드는데 진짜 비범하다고 느낍니다.
 

이번 명절에는 알아서 제사를 없애준 친정어머니에게 감사여행이랄까 동생네 가족과 친정 부모님 모시고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멀리 사는 남동생네는 이번 명절은 그냥 쉬겠단다. 그래라, 우리 끼리도 신난다. 

숙소가 딱 남원과 함양의 경계인지라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 갔다하는 일정이다. 

가기 전에는 함양 상림에 꽃이 예쁘게 피었던데 산책도 하자, 실상사도 가고 지리산 둘레길 산책도 하자 하면서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은 낮 기온 35도.

아 정말 이 추석 무렵에 이 날씨 실화냐 하면서 함양 상림은 패스하고 근처 맛집 가서 쇠고기 버섯 전골 진짜 맛나게 먹고, 구경은 전부 드라이브 하다가 예쁜 카페 보이면 커피 마시고 그리고는 숙소 가서 또 밥 먹고. 

밖에만 나가면 에어컨 있는 곳은 어디냐 했다는.....


그래도 오랫만에 나들이 온  지리산은 어딜 가나 아름다웠다. 

오도재 길은 일부러 드라이브 코스로 만들어 놓은 듯 아름다웠지만 이 사진을 찍는 잠시 동안도 미치도록 덥고 습했다. 





오랫만에 온 실상사. 그 실상사 앞 장승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우뚝 서있다.

차량으로 진입하다보면 놓치기 쉬운데 이 곳을 간다면 가장 먼저 찾아서 인사해주고 싶은 장승이다. 

다듬어 지지 않았지만 그 표정하나만큼은 어떤 고뇌를 안고 방문하더라도 일단 그 마음부터 풀어주는 그런 표정이다.






절 터의 규모에 비해서 남아있는 건물은 작고 아담하다. 

건물이 작으니 탑도 그리 크지 않고 그저 단정하고 소담하다는 표현이 맞아 보인다. 

그럼에도 사진 각도에 따라서는 아득해보이기도 하니 이건 사진의 사기일까 아니면 눈이 미처 보지 못한 공간의 깊이를 카메라가 찾아가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숙소로 가는 길에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함양 덕전리 마애불이라는데  이 산골 동네에서 보기 힘든 보물이다. 

어 저기 한번 들러보자 해서 간 마애불은 이 동네에서 보기 힘든 정돈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불상의 아름다움을 보기에 급급한 우리와 달리 엄마는 항상 불심 가득한 절을 올린다.




숙소 민박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연봉들 그리고 벼가 익어가는 다랑이논의 풍경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워.






그리고 다음날 집에 오는 길에 오랫만에 들린 천은사는 아니고 천은사앞 카페

카페 이름도 천은사에서...

뷰가 멋진 이곳에서 뷰를 바라보는 자리를 차지하고 커피 한잔씩. 

커피 맛은 별로였지만 뷰값으로 퉁친다.



저런 풍경을 보고 커피를 마신다면 조용히 멍때린다거나, 아니면 우아하게 책을 읽는다거나 해야 하는데....

현실은 저기 앞에 놓인 나의 티라미수 케익을 남편이가 진짜 아주 얇게 한쪽만 남기고는 몽땅 지 입에 다 넣는 바람에 열받아서 욕했다는.....

잠시 뒤 남편이가 온전한 케익을 재빠르게 다시 사와서 분노는 잠재워졌다.

누가 뭐래도 내꺼 왕창 뺏어먹는건 용서가 안된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돌아온 현실은 추석 이틀동안 안동권시 장손집 며느라기 신세였다. 

친정어머니는 알아서 제사도 다 없애주시는데 울 시댁은 언제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러면 명절에 시부모님도 모시고 여행 갈 수 있는데말이다. ㅎㅎ


다들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모쪽록 많이 먹고 많이 즐겁고 일은 쬐끔만 하는 그런 명절이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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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9-18 0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플 보다가 댓글 달려고 노트북 열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정 어머니의 결단에 온 가족 행복한 여행 되셨네요. 와~~~ 너무 멋져요!
저는 지리산, 정확히는 지리산 근처에 15년 전에 가본듯 해요. 그 때도 기차 타고 가서 근처의 풍광은 많이 보지 못했구요.
바람돌이님 사진 기막히게 좋네요! 실상사 탑이랑 하늘이랑 구름이 아주 고급진 엽서 속 사진처럼 예쁘게 어우러져 있네요.
물론 저의 최애는 천은사앞 카페, 천은사에서의 커피 사진 되겠습니다.
시댁에도 이 행복한 바람이 불어 바람돌이님 여행 2번 뛰시는 즐거운 명절 곧 오기를 바래봅니다.
전 많이 먹고 일은 쬐금했으나 멋진 풍광 없는 추석이었습니다^^

바람돌이 2024-09-18 21:22   좋아요 3 | URL
제사가 없으니 진짜 맘도 편하고 자유롭게 휴일 계획을 짤 수 있어 좋네요. 휴일이 같으니 여동생네랑 같이 휴가계획 짜기도 좋고요.
제가 좋았던것만 사진 올렸는데 사실 숙소가 불편해서 죽는줄 알았어요. 밥만 맛있었던 숙소. ㅠ.ㅠ
여동생한테 내년 숙소는 제가 찾는다고 했어요. 그래도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밤에는 자유롭게 달 보면서 온가족이 맥주를 기울이던 순간들도 좋았네요.
시댁 제사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매년 달 보며 기원하렵니다. ^^

새파랑 2024-09-18 1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추석은 역대급으로 더운거 같습니다. 지금 9월 맞나요? ㅋ 풍경은 너무 예쁜데 정말 더우셨을거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4-09-18 21:23   좋아요 3 | URL
진짜 엄청 더웠어요. 그래서 차 밖으로 나간 시간이 얼마 안된다는..... 숙소에 에어컨이 없는것도 기함했는데 다행히 지대가 높아서인지 밤에는 그리 덥지 않았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4-09-19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잘 지내셨나요? 너무 반가워요^^
추석 때 지리산 가셨군요. 사진들이 전부 예술입니다. 제가 찍으면 절대 저렇게 이쁘고 분위기 있게 나오지 않아요ㅠㅠ
천은사 까페 가보고 싶다.. 하다가 커피 맛 별로에서 힝~ 아쉽다... 하게 되네요.
저희 집은 차례를 그냥 절에 올려서 집에서는 할 거 없답니다. 대신 시아버지 혼자시라 같이 점심 먹고, 친정 부모님이랑 간식 및 저녁 먹고 끝이네요. 연휴가 긴 줄 알았는데 벌써 끝났어요ㅠㅠ

바람돌이 2024-09-19 21:59   좋아요 3 | URL
많이 찍으면 그 중에 한 두개는 건질만한게 나옵니다. ㅎㅎ 천은사카페 빵도 별로고 커피도 별로였어요. 하지만 뷰는 예술이라 그 맛에 천은사 들르면 아마 다시 가볼듯해요. ㅎㅎ

추석 연휴를 진짜 연휴답게 보내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연휴끝나고 쉬지도 못하고 오늘 출근했더니 진짝 떡실신할거 같애요. 날은 또 어찌나 더운지..... 내일 하루만 버티면 다시 휴일이라 그거 믿고 버팁니다. ㅎㅎ

희선 2024-09-20 0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집은 아직 제사를 없어지지 않았군요 그런 거 안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듯합니다 시간이 더 가면 그런 날이 오겠지요 친정 어머님하고 여행가셔서 좋으셨겠습니다 더운 날이지만...


희선

바람돌이 2024-09-22 21:32   좋아요 2 | URL
요즘은 점점 제사를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는 집이 늘어나는거 같아요. 오랫동안 제사에 시달리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부러울뿐이고요. ㅎㅎ 오늘은 처음으로 날씨가 가을날씨다워졌습니다. 저 여행할 때 진짜 더웠거든요.
희선님 계신 곳도 가을 바람 솔솔하길요. ^^

페크pek0501 2024-09-20 16: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멋지게 사시는군요. 명절에 여행을 가시게 된 것, 축하합니다. 점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날씨가 한여름이었죠. 저도 너무 더워서 날씨만이라도 선선하면 좋을 텐데 하면서 추석 연휴를 보냈어요.
여행을 하다 보면 알죠. 날씨, 라는 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죠. 올려 주신 사진으로 제 눈이 호강하고 갑니다.^^

바람돌이 2024-09-22 21:34   좋아요 3 | URL
엄밀하게 말하면 명전 전이죠. 명절에는 시댁에서 열심히 제사 준비하고 손님맞고요. ㅎㅎ
여행은 진짜 날씨가 여행의 질을 반 이상 차지하는거 같아요. 그래서 항상 날씨요정아 내게 와라 합니다. 하지만 그게 항상 오지는 않더라구요. ㅎㅎ
오늘은 진짜 처음으로 가을 바람이 불었어요. 페크님 계신곳도 가을바람 솔솔 불길요.

세실 2024-09-21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은사에서 카페뷰 넘 좋은데요. 멍 때리기 최적의 장소네요. 가고 싶어라!
티라미수는 양보 못하죠. 남편분 센스 있으시네요.
시댁도 언젠가? ㅎㅎ

바람돌이 2024-09-22 21:36   좋아요 2 | URL
진짜 카페뷰가 멍때리기 좋은데 현실은 대가족과 수다떨기였습니다. 언젠가 평일에 남편이랑 둘이 가서 멍 한번 때려보고 올게요. ㅎㅎ 남편은 센스있는게 아니라 항상 제걸 물어보지도 않고 덥석덥석 먹어치우다 욕듣는 노센스입니다. ㅎㅎ 시댁제사요? 시부모님 + 시삼촌 계신 동안은 불가능입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09-23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애불상을 보니...

오래 전에 답사 다니던 시절
생각이 나네요.

가을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바람돌이 2024-09-25 21:22   좋아요 3 | URL
예전에는 진짜 각잡고 답사다니는 팀들 많았죠. ㅎㅎ 저는 이제 왠만한 곳은 다 가본듯해서 그냥 지나다 어 저기 팻말 있네 아니면 어 저기 오랫만에 한 번 더 가볼까 뭐 이러고 갑니다. 이번 마애불은 저도 처음 보는거라 우와 남쪽에서 이런 마애불 보기 힘든데 하면서 좋았어요.

감은빛 2024-09-27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도 올해부터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어머니께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저도 조금 죄책감을 덜어내고 부산에 안 내려갔어요.
매년 여름 휴가를 부산으로 가기 때문에 추석은 점점 안 가게 되더라구요.
일년에 겨우 두 번 밖에 없는 명절이지만, 그 명절에 부산으로 가는 것이
또 너무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잖아요.
기차표는 없고, 도로는 주차장이고, 어디든 사람으로 넘쳐나는 그 지옥 같은 시간에
왜 사서 고생을 해야 하나 싶더라구요.
명절이 아닐 때 좀 더 여유있게 부산을 다녀오겠다고 말씀도 드리고 실천도 하고 있어요.

가끔 바람돌이님께서 올려주시는 사진들 너무 좋아요.
이번에도 한 장 한 장 차분히 보았습니다. 너무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