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장막‘은 장막도 아니고 철로 돼있지도 않다.
그것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칠한 나무 방책인데, 꼭 이발소간판 같다. 그 장막안에 석달 동안 머무르고서, 나는철의 장막이 정말로 철의장막이기를 바라는 건 일반 상식이 모자란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십이 년 동안집요하게 선전을 해대면, 그로 인해 생겨난 신념이 모든철학 체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24시간 매일 저널리즘 문학에 매달리면 상식적인 생각이 극단적으로 무너지고, 그래서 우리는 은유나 암시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 P9

동베를린으로 들어갈수록, 정치 체제의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브란덴부르크문을 사이에 둔 양쪽의 정신 구조가 반대임을 알게 된다. - P31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시간을 죽이러 영화관에 갔다가 미친 사람들의 영화, 그러니까 밑도 끝도 없이 오로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려고 줄거리를 구성한 영화를 만난 것 같았다. 새로운 세상, 즉 혁명의 완전한 중심에서 모든 것이 낡고추레하며 노쇠한 듯 보이는 건 적어도 꽤 당황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 P39

"아무것도 안 줘도 괜찮아요.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하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만장일치의 반란에 놀라서 나는 최근 선거에서 정부에 우호적으로 투표한사람이 92퍼센트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P53

노동자들은 잘살지만, 정치의식이 없다. 절대적으로정부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정부가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고 있다고 말하는데도 왜 고작 옷 한 벌 살 정도의 월급을 받으려고 죽도록 일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P56

두 독일 모두 항의하지 않는다. 자신들이전쟁에서 졌고 지금은 현실을 모르는 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그건바로 독일의 통일이고 외국 군대의 철수다. - P58

 상점은 동독과 마찬가지로 형편없다. 그러나 서점은예외다. 그곳은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화려하며 깨끗하고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바르샤바는 책으로 가득하고,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싸다.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잭 런던이다.  - P106

나는 거리에서 그 많은 사람이 뭘 하는지 이해할 수가없었다. 폴란드에서 실업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검증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가게 진열장을 보면서인생을 보낸다. 국영 백화점은 새로운 물건을 권하지만,
오래돼 보이고 값도 매우 비싸다. 사람들은 백화점이 문을 열기 전부터문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가장 사진을 잘받는 바르샤바 백화점의 빽빽한 인파와 뒤섞여 몇 시간을보내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렸던 나는 사람들이 백화점을 돌아보고 빈손으로 나온다고 자신 있게 말할수 있다. 밖에서 물건을 사기엔 돈이 충분치 않다고 깨닫는 것 역시 쇼핑의 한 방법인 것 같다. - P107

그들은 덕지덕지기워졌지만, 찢어지거나 망가지지는 않았다. 설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반항 정신으로 가난과 맞서고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건 적어도 동독에서는 선명하게보이지 않는다. 낡은 옷과 닳은 신발 속에서 폴란드 사람들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기품과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 P109

이렇게 바르샤바 건축은 일관성 있게 진행되었지만,
우발적 사고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궁전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선물이자 모스크바 교육부를 충실하게 복제한 건물이다. 폴란드 사람들에게는 러시아 사람들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랬다간 욕을 퍼붓기 때문이다. 그래서그들은 아마도 그 건물을 폭파하고말것이다.  - P110

"두 수업중 그 어떤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폴란드의 경험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 P127

외국인들은 환상을 품고 오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현실을, 여기서의 삶이 매 순간 드라마와 같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힘듭니다."  - P128

계급의 소멸은 가장 인상적인 흔적이다.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 모두 같은 수준으로 낡고 형편없이 재단된 옷을 입고, 조악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 서두르지 않고, 서로 밀치지도 않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느긋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얼빠지고 착하며 건전한 마을 사람들과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조그만 마을이 엄청난 크기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영국 대표단원은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이후 나는 돋보기 너머에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모스크바 사람들과 대화할때, 그러니까 그들을 개인으로 접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한가롭고 느릿느릿한 군중이 전혀 공통점이 없는남자와 여자와 아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168

거대함에 의미를 부여하고 수많은 군중을 조직하는행위는 소비에트연방의 매우 중요한 심리적 측면으로 보인다. 우리는 결국 엄청난 규모와 양에 적응하게 된다. - P172

매릴린 먼로에 대해 농담하고, 그런 재치 있는 농담이 다른 의미로 이해될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매릴린 먼로가 누구인지 아는 소비에트 사람들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 P182

스탈린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 P208

인류가 벌인 이 거대한 모험에는 국가전체의 노력이필요했고, 그 비용은 한 세대 전체가 지급해야만 했다. 우선 혁명 기간의 일과 속에서, 그 후 전쟁 속에서, 마지막으로 재건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 P215

소비에트 연방의 열원자핵 무기와 우주 로켓,
기계화된 농업, 그리고 환상적인 변환 시설을 이용해 사막을 농경지로 바꿀 거대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신발을 신고 제대로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 사십 년을 보낸 결과이다. 그러니까 가장 지독한 금욕 생활로 거의 반세기를 희생한 결과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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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7-17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이런 책도 썼군요. 별5주셨는데 재미있나요?ㅋ

바람돌이 2022-07-17 21:24   좋아요 0 | URL
잘 써서 좋은 책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호불호가 갈릴거라는 생각은 드는데 저에게는 좋았습니다. ^^ 책장은 쉽게 넘어갑니다.

yamoo 2022-07-17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마르케스가 이런 책도!! 근데, 별5!! 음~~~ 리스트에 넣어야 되것습니다~~ㅎ

바람돌이 2022-07-18 22:05   좋아요 0 | URL
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

레삭매냐 2022-07-19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어려서 이원복 아자씨의
<시관이와 병호>를 보고서 철의 장막
에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을 했더랬답니다.

나중에 통일 된 다음에 베를린에 가보
았는데, 당시의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는.

바람돌이 2022-07-19 17:03   좋아요 1 | URL
지금은 없는 곳에 대한 여행기인 셈이지요.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

페크pek0501 2022-07-20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놨었어요. 동유럽이라니 급관심이 생기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