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정 양장본) -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홍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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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샤프부터 다양한 펜이 있어도 책상옆에 자리하고 있는 연필들. 사각사각, 소리부터 그 느낌이 참 좋다. 그런 연필의 역사를 담고있는 책이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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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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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한줄』


천과 옷을 생산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세계 경제와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인류는 천을 만들어낸 덕택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사시대에 온대 지방에서는 옷감 짜는 일에 드는 시간이 도자기 굽는 일과 식량 구하는 일에 소요되는 시간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오늘날 우리가 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우리 조상들이 봤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천이 있었기에 인류는 추운 지방에 거주할 수 있었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천이 없었다면 인류는 일부 지역에서만 거주했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비단과 따뜻한 모직물이 비단길Silk Road과 같은 교역로를 통해 거래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에 사상과 기술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다.


실과 천을 생산하기 위한 정교한 수작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이 방적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들이 버는 돈은 산업혁명 직전까지 빈곤층 가구 가계소득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우리는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변동이 철이나 석탄과 관련이 있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직물도 변화의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신화와 전설에 직물과 옷감 짜기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옷감 짜는 일은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했다. 여자들이 대부분인 한 무리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몇 시간에 걸쳐 반복적인 노동을 한다면 이들은 자연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서로에게 들려주게 된다. 이야기 속에 실을 잣거나 옷감을 짜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며 그들이 타고난 솜씨와 재치를 가진 인물로 나오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실과 직물을 만드는 노동은 여자들의 일로 여겨졌다. 아마도 일의 성격상 실 기와 옷감 짜기가 아이 양육과 병행하기에 가장 쉬웠기 때문인 듯하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한쪽 눈을 감고도 실을 잣고 옷감을 짜냈다. 그리고 실 잣기와 옷감 짜기는 중간에 방해를 받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어 단어 text(글, 텍스트)와 textile(직물)은 같은 조상에게서 태어났다. 그 조상은 라틴어로 ‘직물을 짜다’를 뜻하는 texere. 비슷한 예로 라틴어로 ‘솜씨 좋게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 fabrica는 영어 단어 fabric(직물, 천)과 fabricate(위조하다, 제작하다)의 어원이다. 언어와 직물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언어와 직물은 원래부터 친한 사이니까.


양모는 잉글랜드 재정의 엔진이었다. 양모는 투기와 부당이득을 조장하고 대출 한도를 늘렸다. 또한 양모는 부를 전달하고, 가장 빈부격차를 확대했으며, 좁은 땅을 가진 젠트리gentry 계급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양모는 잉글랜드 왕국이 유럽 대륙 전반의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예컨대 양모를 사고팔면서 축적된 부가 없었다면 사자왕 리처드가 제3차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적인(혹은 돈이 많이 드는)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군인들이 유럽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오기 시작하던 1940년대 후반에는 청바지가 한층 전복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모든 사람이 교외에 정착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활이 당연시되던 경제적 번영과 체제 순응의 시대였지만, 중산층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살기를 원하지 않았던 거친 젊은이들의 반항은 사회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할리우드가 이들을 데님과 연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가 날마다 입고 사용하는 직물을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공장 노동자들 중에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거나 기사로 기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통 의사, 활동가, 기자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 또는 짧은 인용문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주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던져진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총보다 강한 실이라니! 실을 통해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많이들 들었듯이 총보다 강한 펜은 들었어도 실은 생소할 것이다.

허나 실, 나아가 의복의 변화가 곧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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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시작은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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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로맨스와 스릴러가 한데 모여 읽을 수록 몰입할 수밖에 없다.


첫사랑은 유난히 그 잔상이 오래 간다.

하나무라 도노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얼굴부터 헤어스타일, 서 있던 자세 심지어 밤바람에 나부끼는 옷의 주름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뇌리에 깊게 박힌 그녀가 바로 첫사랑이다.

도노는 철학 시간에 그림을 그리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첫사랑의 그녀였다.

10월 9일, 보름달이 뜨던 9년 전 그 날 밤, 마주했던 그녀는 오롯이 제 기억에만 존재했기에 그림으로 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강의가 끝나고 다른 학생들이 근래 일어난 엽기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도노만은 그림에 열중했다.

이전에 당시 피해자들은 모두 뒤에서 기습당하여 목을 물렸지만 죽지는 않았다.

공통적으로 심한 빈혈 증상이 나타났으며 또한 기억까지 모호하여 약물을 쓴 게 아니냐고 추정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노는 엽기 살인사건의 현장에 찾아가게 되고 우연히 그 자리에서 첫사랑의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만났다. 믿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기억 속 모습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실제로 나타났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궁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다.


그녀는 분명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9년 후의 모습이 아닌 9년 전의 그 모습이었기에.

그리고 그는 그녀와 함께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게 된다. '밤의 세계'로.


처음엔 '호러'인가 싶어 긴장했지만 (잔인한 부분은 없기에) 아무 걱정말고 몰입하며 읽어도 좋다.

보통 감상문을 쓸 때면 맨 앞줄에 책 속 키워드를 써놓곤 한다.

이 책에서의 키워드 몇 개만 추리자면 '사랑', '시간', '진실', '기억'이 주 키워드이다.

초반에는 '트와일라잇'과 같은 이야기 흐름일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고 '왔다 갔다'하는 부분이 꽤 크나큰 흥미 요소였다.

(막상 줄거리를 읊으면 결국은 결말까지도 나올 것 같기에) 중요한 부분 하나만 말하자면 도노가 그토록 그리며 그리워하던 첫사랑의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그녀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도 헌신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인상깊었던 포인트를 딱 하나만 꼽으라하면 바로 도노가 보여준 그녀에 대한 사랑을 말할 것 같다.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종족을 초월한, 그녀에 대한 헌신적인 그의 모습은 나까지도 충분히 설레게 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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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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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는 멈춰 섰다.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결코 늘 봐오던 그런 일상적인 시위가 아니었다. 여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불타고 있는 경찰차를 피해서 지하도를 이용해야 해야 했다. 지하도의 넓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래쪽에는 깨진 벽돌이나 최루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최루가스가 온통 지하도 안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뿌연 안개 색의 가스가 얼굴을 덮쳤고, 나를 포함하여 주변의 사람들은 연신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뒤엉켜 출구를 찾느라고 법석이었다. 나는 다른 출구를 찾아서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그야말로 내 꼴은 말이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을까 후회가 막심했다.


"고 선생, 어서 여길 나갑시다."

우리는 순천 가는 버스로 향했다. 막 버스에 올라타려는 순간,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네! 사람을 죽여!"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우리는 뒤를 돌아봤다. 그 젊은이가 땅에 쓰러졌고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에서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는 군인들 표정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군인 하나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노려봤다. 놀란 군중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군인이 소리쳤다.

"다들 비켜. 당장!"


도대체 어떤 정부가 이 할머니를 죽였을까?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할머니들이 죽었을까? 얼마나 많은 할머니들이 가족들을 기다리며 누워 있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할머니 앞에서 통곡을 했을까? 로빈은 할머니 옆의 작은 관으로 갔다. 우리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안내하던 의대생이 먼저 말했다.

"이 어린이도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부모를 찾고 있는데, 죽은 할머니와 이 어린이가 친척 사이인지는 모르겠어요."

시신은 얼굴만 남기고 천으로 둘려져 있었다. 충격을 받은 우리는 이 어린이의 관을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시신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


📢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학생,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도청을 끝까지 사수할 것입니다."


읽는 내내 괴로웠다.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책장 한켠이 역사와 관련된 책들만 가득할 정도로 역사를 좋아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이 무겁다.

이 책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 책장에 꽂힌지는 꽤 되었으나 읽고 덮기를 반복해 꽤 오랜 시간동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재산이 29만원이라는 인간이, 부유하게 살고 있고.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인간이, 건강하게 골프 치고.

그 인간의 모양새를 보면 정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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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멈춰 섰다.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결코 늘 봐오던 그런 일상적인 시위가 아니었다. 여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불타고 있는 경찰차를 피해서 지하도를 이용해야 해야 했다. 지하도의 넓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래쪽에는 깨진 벽돌이나 최루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최루가스가 온통 지하도 안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뿌연 안개 색의 가스가 얼굴을 덮쳤고, 나를 포함하여 주변의 사람들은 연신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뒤엉켜 출구를 찾느라고 법석이었다. 나는 다른 출구를 찾아서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그야말로 내 꼴은 말이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을까 후회가 막심했다.

"고 선생, 어서 여길 나갑시다."
우리는 순천 가는 버스로 향했다. 막 버스에 올라타려는 순간,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네! 사람을 죽여!"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우리는 뒤를 돌아봤다. 그 젊은이가 땅에 쓰러졌고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에서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는 군인들 표정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군인 하나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노려봤다. 놀란 군중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군인이 소리쳤다.
"다들 비켜. 당장!"

도대체 어떤 정부가 이 할머니를 죽였을까?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할머니들이 죽었을까? 얼마나 많은 할머니들이 가족들을 기다리며 누워 있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할머니 앞에서 통곡을 했을까? 로빈은 할머니 옆의 작은 관으로 갔다. 우리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안내하던 의대생이 먼저 말했다.
"이 어린이도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부모를 찾고 있는데, 죽은 할머니와 이 어린이가 친척 사이인지는 모르겠어요."
시신은 얼굴만 남기고 천으로 둘려져 있었다. 충격을 받은 우리는 이 어린이의 관을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시신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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