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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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한줄』


천과 옷을 생산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세계 경제와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인류는 천을 만들어낸 덕택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사시대에 온대 지방에서는 옷감 짜는 일에 드는 시간이 도자기 굽는 일과 식량 구하는 일에 소요되는 시간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오늘날 우리가 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우리 조상들이 봤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천이 있었기에 인류는 추운 지방에 거주할 수 있었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천이 없었다면 인류는 일부 지역에서만 거주했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비단과 따뜻한 모직물이 비단길Silk Road과 같은 교역로를 통해 거래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에 사상과 기술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다.


실과 천을 생산하기 위한 정교한 수작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이 방적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들이 버는 돈은 산업혁명 직전까지 빈곤층 가구 가계소득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우리는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변동이 철이나 석탄과 관련이 있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직물도 변화의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신화와 전설에 직물과 옷감 짜기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옷감 짜는 일은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했다. 여자들이 대부분인 한 무리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몇 시간에 걸쳐 반복적인 노동을 한다면 이들은 자연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서로에게 들려주게 된다. 이야기 속에 실을 잣거나 옷감을 짜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며 그들이 타고난 솜씨와 재치를 가진 인물로 나오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실과 직물을 만드는 노동은 여자들의 일로 여겨졌다. 아마도 일의 성격상 실 기와 옷감 짜기가 아이 양육과 병행하기에 가장 쉬웠기 때문인 듯하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한쪽 눈을 감고도 실을 잣고 옷감을 짜냈다. 그리고 실 잣기와 옷감 짜기는 중간에 방해를 받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어 단어 text(글, 텍스트)와 textile(직물)은 같은 조상에게서 태어났다. 그 조상은 라틴어로 ‘직물을 짜다’를 뜻하는 texere. 비슷한 예로 라틴어로 ‘솜씨 좋게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 fabrica는 영어 단어 fabric(직물, 천)과 fabricate(위조하다, 제작하다)의 어원이다. 언어와 직물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언어와 직물은 원래부터 친한 사이니까.


양모는 잉글랜드 재정의 엔진이었다. 양모는 투기와 부당이득을 조장하고 대출 한도를 늘렸다. 또한 양모는 부를 전달하고, 가장 빈부격차를 확대했으며, 좁은 땅을 가진 젠트리gentry 계급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양모는 잉글랜드 왕국이 유럽 대륙 전반의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예컨대 양모를 사고팔면서 축적된 부가 없었다면 사자왕 리처드가 제3차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적인(혹은 돈이 많이 드는)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군인들이 유럽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오기 시작하던 1940년대 후반에는 청바지가 한층 전복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모든 사람이 교외에 정착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활이 당연시되던 경제적 번영과 체제 순응의 시대였지만, 중산층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살기를 원하지 않았던 거친 젊은이들의 반항은 사회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할리우드가 이들을 데님과 연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가 날마다 입고 사용하는 직물을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공장 노동자들 중에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거나 기사로 기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통 의사, 활동가, 기자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 또는 짧은 인용문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주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던져진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총보다 강한 실이라니! 실을 통해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많이들 들었듯이 총보다 강한 펜은 들었어도 실은 생소할 것이다.

허나 실, 나아가 의복의 변화가 곧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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