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10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비만큼 아팠던 날.어르신도 아니고, 아직 어린데
비오는 날이면 아픈 곳이 쿡쿡 쑤신다는 의미를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
2019.9.9
부슬부슬 내리는 비처럼 내 두 뺨 위에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개를 돌리며 삼키기도 많이 삼켰지만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않은 채 두 팔을 벌렸다따뜻한 품에 꼭 안겨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곧 만나', '또 만나'는
결국 다시 만난다는 뜻이니깐.
2019.9.8
설렘의 기간이 지속되면 때론 무덤덤해지는 것 같다.
이것도 챙겨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챙겨야 할 것 같고
이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이라는 것을.
혼자 여행도, 배낭여행도, 모든 게 처음이던 날. 운동화를 신고, 백팩을 메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고, 햇빛을 쬐고, 바람을 들이마시던 날을 기억한다.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일, 나는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을 붙들었다. 그래서 그리도 많이 울컥하고, 그리도 많이 벌렁거렸나 보다. 어느 날 문득 미친 듯이 숨을 쉬고 싶은 날이 찾아온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길 바란다. 여행은, 그 ‘누군가’가 ‘나’로 바뀌는 마법 같은 일이다. 우리의 행복한 하루는, 기적에 가까우니까.
출장 갔을 때 느낀 건데 사람들이 항상 잘 웃어서 참 예뻐 보였어. 웃으며 말 건네는 그곳이라면 영어 두려움증도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싶었다.
작은 것 하나 모두 혼자서 이것저것 부딪쳐보며 체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처음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래서 제일 소중한 기억. 조금씩 배낭여행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드디어 나의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스위스 걷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을 걸을 때면 주체하지 못할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고, 춤을 추고, 점핑을 하며 온 몸으로 소리를 지른다. 행복감은 전율처럼 내 몸을 뒤흔들어놓았다. 알프스의 풍경을 걸을 생각을 하니 멀미가 날 지경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던 그날 밤으로부터 정확히 7개월 만에 그토록 걷고 싶던 대자연을 향한 걸음을 내딛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여행길 위에서 많은 날 혼자 끼니를 해결하면서 "같이 밥 먹자"며 내어준 숟가락은 매일 먹어야 하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한 끼가 아니었다. 밥 한 끼의 시간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받을 줄 아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밥 한번 먹자"는 이내 곧 사라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밥 먹자"며 조건 없이 내어준 그 시간은 어깨에 놓인 수많은 짐을 잠시 내려놓고 한 숨 쉬어 가라는 마음까지 데워주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때부터였다. 이상하리만큼 밥이 넘어갈 때마다 목구멍에 뜨거움의 기운이 차오른다. 여행길 위의 밥 한 그릇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혼의 수프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행복하다. 아침에 눈뜰 수 있어서 행복하고, 날씨가 좋아서 행복하고, 빗소리에 행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행복하고, 더운 날의 맥주 한 잔도 행복하다. 음식이 맛있어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가족이 건강하고 큰 걱정이 없는 것도 행복하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도 행복하다.
내 안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기 위해, 또 사람들의 외로움에 다가가기 위해 나는 연기를 하고 책을 읽는다.
책장을 넘기며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남다른 호기심으로 일찌감치 ‘퇴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토토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어른들처럼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에 같은 내용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맛본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그때 뭘 안다고 끌어안고 있었을까.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뜻밖에 찾아온 흥미로운 여행과도 같다.
배우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도망칠까 방황하던 시기에 내가 계속 연기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내 일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내가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처럼 멋있게 표현할 능력은 없지만 내 나름의 방식대로 삶 속에서 잔잔하고 따뜻한 멜로를 그려나가고 있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시를 읽는 소녀의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부디 함께 그려가는 우리의 멜로가 해피엔딩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