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소녀와 부모님 그리고 동생이 사는 집에는 방이 하나 더 있다. 그러니깐 소녀 방, 동생 질의 방, 부모님 방 그리고 시체들의 방이 있다.
그 방에는 크고 작은 짐승들의 몸 여기저기를 볼 수 있다. 액자들이 걸려있는 벽에는 사냥총을 든 아버지가 자신감 넘치는 포즈를 취하며 죽은 동물들을 밝은 채 찍은 기념사진들이 쪼르륵 걸려있었다.
짐승들을 사냥하는 것을 삶의 전부라 생각한 소녀의 아버지는 TV와 위스키만이 사냥 외에 즐기는 삶의 열정이었고 그 외에는 없다.
이런 남자였기에, 소녀의 어머니는 항상 남편을 무서워했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 소녀는 커갈수록 자신과 동생을 어떻게 나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까지 생길 정도였다.
소녀와 동생은 친구같은 존재였다. 네 살 터울인 남매는 보통 남매와는 달랐다. 보통 남매들이면 소리지르고 싸우기도 한다지만 소녀는 어머니의 너그러움을 본받아 동생 질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젖니를 드러내고 웃는 질이 소녀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항상 인형을 만들어 주거나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질의 웃음이야말로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건이 터지게 된다.
아이들 모두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떠났고 질과 소녀만이 남게 되었다.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는 질에게 바닐라 딸기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이제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받을 차례였다.

노인은 내 아이스크림 위에 예쁜 회오리 크림을 얹어주려고 몸을 숙였다. …… 손은 얼굴에 바짝 붙였고, 사이펀은 그의 뺨에 맞닿아 있었다. 크림 산이 정상에 다다른 바로 그 순간, 손가락이 막 힘을 빼려고 한 바로 그 순간, 노인이 몸을 일으키려고 한 바로 그 순간, 사이펀이 폭발했다. 펑. 나는 그 소리를 기억한다.
그렇다. 노인의 얼굴이 사이펀 속으로 들어가면서 반쪽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었다.
소녀는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에 몰려온 사람들도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는 죽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질은 점점 달라졌다. 점점 아버지의 잔혹성을 닮아가게 되었고 순수했던, 친구같았던 예전의 질로 돌려놓고 싶었다.
또한, 오랫동안 사냥을 하지 못한 소녀의 아버지는 예민함이 극에 달했고 온갖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쏟아낼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질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어딘가에, 그 아이의 내면에, 내 동생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가끔은 그 애의 얼굴에서 희미한 빛과 어렴풋한 미소가, 눈에서 반짝이는 빛이 덧없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애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 삶의 흐름을 바꾸는 일에 매달렸다.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소녀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했다. 아이스크림 할아버지 사고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돌려놓고 싶어했다.
소녀는 읊조린다. '얼굴이 날아가 버린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박히기 전의 삶은 훨씬 아름다웠다.'라고.

 

소녀의 소원은 동생인 질의 미소를 되찾는 것이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않았다. 뭐랄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마음 한 켠이 쓰리고 씁쓸했다고나 할까.

소설 속 소녀는 열다섯 살에 아이스크림 할아버지가 눈앞에서 사고를 당한 것을 목격했다.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할 사건을 어린 아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힘들고 끔찍한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리 성숙한 어른이어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한데 어린 아이들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던 그 사고는 물론이고 평소 소녀의 아버지는 굉장히 난폭하였다.

대개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이를 보고 그대로 따라하며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유년 시절 같은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부모에게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지만 일부 부모는 그렇지 않는다. 종종 우리는 어린 자녀를 죽인 부모의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인간으로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나싶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절로 깊은 한숨이 내쉬어진다.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전부이다. 그 전부인 부모가 아무렇지 않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이는 결국 잊지 못하는, 평생의 상처이자 고통이 된다.

나쁜 의도가 아니어도 어린 시절에 내게 상처주었던 어른들의 말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전부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_일을 쓰는 여자 - 우리는 어떻게 더 인정받고, 전보다 덜 흔들리면서, 마음껏 성장할 수 있을까?
마셜 골드스미스.샐리 헬게슨 지음, 정태희.윤혜리 옮김 / 에이트포인트(EightPoint)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그런 말을 직접 귀로 들을 줄 몰랐다.
꽤 지난 일인데, 서로 일을 끝마치고 언니와 오랜만에 맥주잔을 부딪쳤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꽤 규모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언니는 연봉도 꽤 높아 벌써 6년째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그 때, 언니가 한숨을 포옥 내쉬기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점심을 먹던 중 결혼 이야기가 나와 직장 상사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ㅇㅇ씨는 결혼 늦게 할거지? 이런 말 하면 남녀차별이라 하겠지만 오해없이 들어줘. 아무래도 여자는 결혼하고 출산하면 복직하기 어렵고 복직한다해도 그 텀이 있으니 승진에서 제외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언니는 커리어우먼이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이 독신주의지만 설령 결혼을 한다해도 일은 계속 할거라면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언니에게 약 일 년 전부터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독신주의인 언니에게 결혼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멋진 오빠였다.
'그래도 5년 안에는 결혼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내비추며 결혼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언니가 막상 직장상사의 말을 듣고선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선 언니가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었다.
"근데 대한민국이 아니고서라도 전세계가 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여자가 등한시되는 건..."

물론, 남성위주의 문화가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분명 실재하고 있다.
여성들이 차츰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으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같이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어한다. 허나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나야 하는 것이 현실이며 그 과정 속에서 상처도 받는다.
그 때,  『내_일을 쓰는 여자』의 두 저자는 말한다.
그녀처럼 완벽을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쓰거나, 전문성을 드러내려고 편안한 의사소통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말할 때 긴장하거나, 세부 사항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의 성과를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알아주고 보상해주기를 바라며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당신이 성취한 일을 널리 알려줄 든든한 지원군을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회사에 충성심을 보여주고자 앞으로의 전체적인 커리어보다 지금 하는 일을 우선시할 수도 있다. 만약 이와 같은 행동으로 이미 손해를 보고 있다면, 혹은 앞으로 당신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자 할 때 이와 같은 행동이 걸림돌이 될 것 같다면, 이 책을 계속 읽어주기 바란다.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


I'm not going to limit myself just because people won't accept the fact that I can do something else. _Dolly Parton

대체로 남성이 생각하는 성공과 여성이 생각하는 성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이 생각하는 성공의 목표를 돈이나 지위로 생각한다면 여성은 이를 유일한 지표로 삼지 않고 그밖에 직장 생활의 만족도나 자신이 이 일을 함으로써 미치는 영향들을 목표로 세우기도 한다.
(물론 다수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이 부분에서 말하는 건 책 속에서 말하고 있는 과거 남녀가 생각하는 성공의 평균적인 지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여성이 꼭 돈과 지위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에 비해 적은 급료나 낮은 지위는 분노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봉과 지위과 높더라도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그 일을 그만두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이 부분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데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높은 지위와 연봉을 중요시하고 여성은 실질적인 업무 경험을 중요시한다고 나와 있다.
덧붙여, 남성들은 높은 지위와 연봉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일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여성들은 앞서 말했듯이 삶의 질이 떨어진다면 남성만큼 높은 지위와 연봉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하게 된다.
·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것을 방해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 내가 처한 환경에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 열심히 일하더라도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
외부적인 환경도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고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초반에 읽으면서도 혹시나 너무 여성중심적으로 의견이 피력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오산이었다.
오히려 지금 '일하는 여성'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었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곤 하는데 변화를 가로막는 자기합리화라던지 편견에 대응하는 자세 등을 책 속에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2장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들이 나오니 주목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겸손이 미덕이지만, 때에 따라서 겸손을 버려야 할 줄도 알아야 하며 어느 상황이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여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레이디식 사고에는 득되지 않는 단면도 있으니 이를 잘 캐치하여 버릴 부분은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저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여성들의 가장 큰 단점이 '자기비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자신 자신을 엄격하게 대하지 말라.'라는 원칙을 정해두고 시작한다고 한다.
누구탓, 사회탓, 세상탓 이전에 묶여 있는 생각과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싶다.
또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공동체 속에서 혼자 해내려 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힘들 때는 손 내밀기도 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 S. 여전히 널 사랑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
제니 한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써내려간 연애편지.
그저 간직하며 품고만 있었는데 그들에게 편지가 발송된다, 하나도 빠짐없이.

한국계 미국인인 라라 진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그간 좋아했던 네 명의 남자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주소까지 완벽하게 써놓은 편지지만 단순히 '간직하기용'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넣은 편지는 보내지지 않은 채 상자 속에 담아진다.
그런데 간직하기로만 한 편지가 편지봉투에 써져있는 주소로 몽땅 보내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네 명의 남자 중 조시는 언니의 전 남친이었는데 언니를 너무 사랑하는 라라 진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네 명의 남자 중 피터와 손을 잡게 된다.
피터는 라라 진의 편지들이 과거에 쓴 편지라 그 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다르다는 사실과 이 편지 모두가 어처구니없이 모두 발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마침 여자친구와 헤어진 피터는 전 여친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라라 진과 함께 계약연애를 하게 된다.
시작은 계약연애였지만 이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게 된 피터와 라라 진은 앞글자가 빠진 진짜 '연애'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전권이었던 『내가 사랑했던 모 든남자들에게』의 줄거리이다.
이어진 2권인 『P. S. 여전히 널 사랑해』는 편지를 보냈던 네 명의 남자 중 한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피터와도 단짝이었던 존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는데 라라 진이 편지를 보낸 남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편지를 받았던 존이 라라 진에게 답장을 보내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편지를 통해 자연스레 연락을 하게 된다.
그렇게 타임캡슐 개봉식을 하던 날, 그 둘은 재회하게 된다.
허나, 라라 진의 현 남자친구는 피터이다.
그 소식을 들은 존은 복잡한 감정을 내비추고 피터 또한 존을 탐탁치않아 한다.
한편, 피터의 전 여친이었던 제너비브는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피터와의 만남을 가지고 라라 진은 그 둘의 만남이 그저 싫기만 했다.
라라 진은 피터에게 솔직한 제 심경을 밝혔지만 피터는 제너비브의 가정사를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라라 진은 피터와 제너비브가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라라 진은 피터와 헤어지게 된다.
시작은 계약연애였고 우여곡절끝에 서로의 마음을 알고 진짜 연애를 시작하며 피터를 사랑했던 라라 진은 그와의 이별에 가슴아파한다.
라라 진과 피터의 이별 그리고 실연에 아파하는 라라 진에게 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과연 피터는 라라 진에게 제너비브의 오해도 풀고 라라 진에게 성큼 다가오려는 존을 비켜 세울 수 있을까?
과연 라라 진은 다가오는 존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피터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꽤 오랜 시간동안 자신에게 정신적으로도 의지해왔던 제너비브의 고민을 단숨에 거절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 때, 피터가 라라 진에게 얼버무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면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관계에서도 신뢰가 가장 중요한 법인데 특히 사랑에서 신뢰감에 금이 간다면 이전처럼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진심 어린 사랑이라면, 진심 어린 관계라면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드러내는 것도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 같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서로 다른 남녀가 각기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표현하는 것도 다르니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들도 종종 발생할 것이다.
이 때, 그 이후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상처받고, 상처주는 또한 삶의 일부라 할 수 있으니 상처를 주었을 때는 상처받은 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받았을 때는 (상처준 이에게 용서를 받았다면) 상처준 이에게 용서를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을 넘어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라 할 수 있으니깐.
또한, 이 책에 또다른 재미는 '아빠의 사랑 찾아주기 프로젝트'이다.
이혼한 옆집 아줌마와 아빠를 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커비(라라 진의 동생)의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단순히 라라와 피터의 사랑 이야기로만 둘러싸이지 않고 가족애(愛) 또한 엿볼 수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문득 드는 생각은 이랬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쫄깃쫄깃해지는 연애소설이 있다니! 읽는 내내, 주인공의 감정선에 따라 두근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1권은 넷플릭스를 먼저 보고 책을 먼저 봤지만, 2권은 넷플릭스로 영화를 먼저 보지 않고 책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넷플릭스에 나온 두번째 이야기의 후기에 따르면 아쉬운 장면들이 많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책으로 먼저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라라 진의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가 발송되지 않았더라면 피터와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다소 흠칫 놀랐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감정표현을 잘한다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감정표현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은 딱 후자이다.
감정표현에 서투른 나는 매일 쓰는 일기에 드러내기도 하고 종종 편지를 쓰기도 한다.
내게는 큰 상자 하나가 있는데 그 상자에는 수십개의 편지지와 편지봉투, 엽서가 가득하게 들어있다.
소장용이 아닌 내가 쓰기 때문에 사다놓은 것인데 평소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편지를 자주 쓰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없다면 편지지를 집어든다.
앞서 다소 흠칫 놀랐다는 이유는 나 또한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소는 몰라 편지봉투에 주소는 쓰지 않았지만 문득 영화를 보고선 편지만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확인해보았는데 내가 그 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거쳐간 지난 남자친구들에게도 사랑이 가득 담긴 연애편지를 자주 쓰곤 했었는데 앞으로 나타날 미래의 남자친구에게도 편지 한 통을 써봐야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면 지금 예쁜 편지지에 사랑 가득한 말을 담아 쓴 편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보는 건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분명 좋아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지금 꼭 듣고 싶었던 말이 있나요,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일명 벽돌책과 같은 묵직묵직한 책들도 재독하고 있는 반면에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단편 소설들도 많이 읽고 있다.
자정에 다다른 깊은 밤이 되는 그 순간부터 한두 시간은 나의 야간독서가 시작된다.
며칠 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재독하고선 유튜브에서 TED 영상을 보았는데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꽃을 한참 바라보며 문득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생을 드라마로 일컫는다면, 그 드라마의 주연은 당연히 나 자신인데 더 넓어진 영역에서 바라본다면 대부분 우리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나게 된다.
대개 드라마에서도 남녀 연기자가 주연을 맡고 나머지 수십 명의 연기자들은 조연에 맡는다.
그러기에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또한 주연의 몫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는 꼭 주연만을 고집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연만큼, 아니, 주연보다 중요한 것이 조연이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인 남녀 주인공을 더 빛나보이는 것이고 조연이 있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는 등 주연보다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잘 흘러갔으면 하고 항상 '주연'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호락호락하지 않아 어쩌면 우리를 더 힘들고 불안한 환경, 말그대로 구렁텅이 속에 떠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밀리고 떠밀려 밑바닥까지 갔어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만큼 스스로 강하고 굳건한 마음을 품고선 삶을 살아야 한다.

닿을 듯 하다 닿지 않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피할 수 없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 '삶'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즉,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날 수밖에 없다.
오밤중에 읽어서 그런지 괜스레 마음이 몰캉몰캉해져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누군가와 대면한 상태에서 위로받은 게 아니지만 책이라는 존재물이 마음을 알아줘서, 이해해줘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찾아올 인생무상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에겐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하루가 필요하다. 새털구름 떠다니는 하늘을 가만히 누워서 바라볼 하루가, 어느새 져버린 낙엽 쌓인 길을 혼자 걷는 시간이, 가슴에 책을 올려놓고 한참을 빠져들다 까무룩 잠드는 시간이, 낯선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몰래 듣는 날이 필요하다. 마치 내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잘 살려면 믿어야 한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한테 씩씩대는 대신, 타고난 것들이 없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대신, 지금 바로 이 자리, 이 시간,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토양이 되리라는 것을. 귀하지 않은 시간은 없고,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길이 보인다는 것을. 그걸 믿어야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다.
인생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자꾸 구석 자리로 밀어내도, 자리에 드러눕는 대신 “나 살아 있다”고 한 번 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저기 “나도 살아 있다”고 손 흔드는 동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의 손을 번쩍 잡아 “아니, 왜 아직 여기 있었느냐”며 이끌어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몸이 힘들다고 짜증이 화로 변하는 순간,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에 욱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순간,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당신과 나는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매일 어제의 우리와 이별하며 살다 결국 모두와 이별하게 될 존재라는 걸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더 넓은 마음으로,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 -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마흔 즈음부터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 ♡ 



 

 


『하나, 책과 마주하다』

기분 좋게 살고 싶다.

바스락 바스락, 나무에서 또로록 떨어진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리는 가을에 저자의 또다른 책인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를 읽었었다.
딱 2년 후, 따스한 햇살 아래 빼꼼 빼꼼 튀어나오는 새싹들이 보이는 봄에 『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를 읽게 되었다.

올해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온전하게 '봄'을 맞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신천지임을 숨기고선 활동을 하다 여러 사람에게 퍼뜨리는 실정이니 확산율이 낮아드는 추세에 접었다 할지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은은한 꽃향기를 뿜어내는 샛노란 프리지아가 가득한 꽃다발을 받으니 '봄'이 왔구나 싶었다.
식탁 위에 포장지를 풀어내 서너 단 정도의 프리식탁 위에 포장지를 풀어내 서너 단 정도의 프리지아를 화병 세 개에 나눠 담았다.
책상 위에, 피아노 위에,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집 안이 은은한 꽃향기로 가득 채워져 꼭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은 다르지만 이렇게 꽃향기를 맡으며 릴렉스하는 것도 소소한 행복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봄나들이 못한다 해도 내년에도, 후년에도 봄은 또 다시 오니깐.

저자가 자신이 이제 중년임을 깨닫고 그 일상 속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이다.
매번 똑같은 패턴의 일상을 반복하며 살던 저자는 삶의 변화를 주기로 결정한다. 특히,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기로 한다.

며칠 전, 선생님께 연락이 왔었다.
다가오는 봄에 선생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는데 개학도 미뤄진 상태에서 만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결국 두세 달 뒤로 미루었다.
매번 이렇게 안부를 묻는 대화에도 선생님께서는 내게 꼭 용기와 격려를 불어넣어주는 동시에 사랑하고 아끼고 있음을 항상 상기시켜 주신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신기한 게 있는데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선생님과 연락을 한 것인데 재작년에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를 읽을 때도 선생님과 연락을 했었다.
리뷰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쉬엄쉬엄 살고 있는 것 같다. ……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해주신 조언덕분인 것 같다.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했다.
"하나야, 너는 조금 천천히 걸어가도 된단다."

작년은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쓱싹쓱싹 지워버리고 싶은 한 해였는데 연말에 선생님께 연락이 왔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었다.
"하나야, 선생님은 네가 너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너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사람은 네 자신이고, 너에게 있어서 가장 사랑해 줄 사람 또한 네 자신이니깐."


저자 또한 지금과의 다른 삶을 시작하고 싶다면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조언한다.
솔직히 이러한 말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다.
대부분이 '당연한 것 아니야?'라는 말을 덧붙이며 지나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며 사는 삶은 누군가에게 쉬울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혹은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을 살고 있기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며 더 사랑해줄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