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의 말
저자 이어령
세계사
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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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린애들처럼 기쁜 일이 생기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려고들 한다. 재물이나 사랑을 얻은 자리에서는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믿고 있다. 훔친 물건은 그 현장에서 멀리 떠나야만 완전한 자기 소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대체로 뜻밖의 기쁜 일이 닥쳐왔을 때는 그것을 훔친 물건이나 혹은 다시 빼앗기고 말 물건처럼 여긴다.
우리는 그만큼 기쁨에 익숙해 있지 않다. 그러나 슬픔은 대개가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어느 곳에 돈이 떨어져 있다면 길이 멀어도 주우러 가면서, 제 발밑에 있는 일거리는 발길로 차버리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 눈을 뜨라! 행복의 열쇠는 어디에나 떨어져 있다.
…… '행복'이란 말은 '모험'의 뜻을 상실했고 '동경'의 뜻을 상실했고 '영원'의 뜻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곳의 행복만 찾아다니다가 행복이란 말까지 상실해버린 것 같다.
아담을 파멸시킨 이브의 손, 삼손의 머리를 깎은 델릴라의 칼, 유왕을 망친 '포사'의 웃음, 최고의 사랑은 최악의 파멸이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감정이 아니라 실은 자기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감사하는 행위, 그것은 벽에다 던지는 공처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만용이 비겁보다 못한 것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쇼이기 때문이다. 비겁한 자 가운데는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이 섞여 있지만, 만용을 부리는 자는 예외 없이 자신에게 불성실한 자이다.
'한'은 '뉘우칠 한'이라고도 있듯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향한 마음이며, 자기 내부에 쌓여가는 정감입니다.
늙어갈수록 감수성이 무디어진다. 감수성은 젊음만이 지닐 수 있는 월계관이다. 그래서 감수성에는 미숙한 떫은맛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손바닥에 찍힌 못 자국을 가지고 있다. 옆구리에 창 자국을 가지고 있다. 비록 예수의 것보다 작고 희미할망정,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고통의 상흔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누구나 마구간에 태어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은 괴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편안한 삶, 살쪄가는 삶, 부유한 삶을 원한다면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의 추위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평생 동안 한 번도 앓아본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너희들을 키우기 위해서 아빠는 외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대로 외치지 못했다. 욕망이 있어 뛰고 싶어도 뛰지를 못했다.
너희들이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면 아들이여, 다만 나는 너희들이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다.
울타리를 지키다가, 부엌에서 끓는 찌개 냄비를 지키다가, 해마다 자라나는 너희들 바지를 장만하려다가 넓은 그 세계와 꿈도 이상도 진실도 조금씩 잃어버리고 말았다.
책상에 앉아 책장만을 넘기며 그 긴 세월을 넘겨왔을 뿐이다.
아들이여, 아버지의 검은 머리에, 하나둘씩 새치가 생겨나는 것을 보았느냐. 잠시 분노하다가 비굴하게 웃어버리는 아버지의 그 입술을 본 적이 있느냐. 주먹을 쥐다가도 바둑알을 잡듯 그렇게 힘없이 펴지는 손가락을 보았느냐.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실제로 활자가 찍히고 손에 들어 펴볼 수도 있고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둘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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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할망정 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자음과 모음을 갈라내 그 무게와 빛을 식별할 줄 아는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평생을 두고 빌고 빌어도 다 이루지 못할 소망,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해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스스로' 속에 진짜 '나'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숨을 쉰다. 잠을 잘 때에도 눈과 귀는 감기고 닫히지만 코만은 멈추지 않고 숨을 쉰다. 늘 깨어 있는 것이 코이다. 숨통을 막으면 자기는 없어진다.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만 인간은 순수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순수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쑥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잠든 것을 일깨운다는 것이며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에 다가서도록 하는 것이며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모험 저인이 하나의 신개지를 열면 다음엔 군대의 정복자들이 그 새로운 땅을 길들이고 마지막엔 상인들이 황금을 긁어 온다. 서양은 이런 공식으로 세계 앞에 군림해왔다. 신대륙 발견이란 어디까지나 서양 사람 중심으로 생각한 말이지 미 대륙에서 살고 있던 아메리칸인디언들에겐 '발견'이 아니라 '침입'이었다. 결코 물속에 파묻혀 있던 대륙을 끌어내온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녁노을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물과 불은 분명히 상극한다.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 물은 하강하고 불은 거꾸로 상승한다.
그런데 물의 영혼은 반대로 김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불의 영혼은 재가 되어 거꾸로 땅속에 묻힌다.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고 갈등하던 물불이 조왕님이 계신 부엌에 들어오면 놀라운 조화의 힘으로 밥을 짓고 국과 찌개를 끓인다.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은 지구온난화라는 재앙을 일으켰지만, 불과 물이 같이 있으면 이와는 다른 현상이 벌어진다.
상극은 상생으로 변해 날것도 아니요, 탄 것도 아닌 맛있는 문명의 밥상이 차려진다.
온 국민이 다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군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나치, 공산주의 등 망해버린 나라의 공통 특징은 국민의 눈을 멀게 한 데 있다. 개방의 시대는 시장의 개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방은 개안으로 모든 사람이 눈을 뜨고 밝은 세상을 보는 데 있다.
구르지 않고 손에 잡기도 편한 것이라면 원과 사각형의 중간, 여섯 모난 연필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섯 모로 된 연필이 제일 많습니다. 둥글게 살면 원만하다고 하지만 자기주장이 없고 자기주장만 하면 모가 나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듭니다. 네모난 연필도 아닙니다. 둥근 연필도 아닙니다. 여섯 모난 연필로 나의 인생을 써가십시오.
여러분들은 물이냐 불이냐가 아니라, 물과 불 사이에 둔 솥처럼 상극하는 두 가치를 하나의 인터페이스로서 아름답게 갈등과 대립을 막아주는, 조화하는, 솥과 같은 존재. 인터페이스로서의 ‘나’가 되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