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저자 이호

웅진지식하우스

2024-12-23

인문학 > 인문 에세이





아침 9시, 지하 부검실에 들어선다. 어제 늦은 오후 갑작스럽게 부검이 잡힌 40대 남성의 시신이 부검 테이블에 누워 있다. '갑작스럽게'라고 표현했지만 적절치 못한 것 같다. 어떤 죽음인들 갑작스럽지 않을까. 부검 시작에 앞서 담당 경찰관과 검시관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듣는다. 이번 시신은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됐고, 한시라도 빨리 사인을 밝혀야 해 부검팀원들과 서둘러 준비를 시작한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경위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의 애달픈 사연을 굽이굽이 알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가 자신의 몸을 통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은 이제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보여줄 기회는 마지막 단 한 번뿐이 남지 않았기에 더욱 절실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침상에 누운 그들을 내려다봐줄 의사가 되어주는 것, 법정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밝혀줄 증언자가 되는 것, 그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다.



법의학자는 의사이자 고인의 대변자이며, 철저한 과학적 증거로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랬듯 모든 법의학자는 직업 선택의 십계를 따른 사람들이다. 월급이 적은 곳,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황무지 같은 곳,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으로 기꺼이 걸어온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한 사람들,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을 택한 사람들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박종철 열사의 사인이 고문 치사였음을 목숨을 걸고 밝힌 사람도 사실은 법의학자 황적준 선생님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권력과 자본에 양심을 속이려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기에 안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정당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은 바로 그 당사자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불의의 사고나 혹은 범죄로 누군가가 사망했다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의 부주의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가 부주의했기 때문에, 혹은 그 옆의 누군가가 부도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뿐, 완전하고 주의 깊은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나는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불안을 다스릴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얼마나 위험에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금 이르거나 느리거나 방법이 다를 뿐 인간이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지?'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의 답을 찾으려고 평생을 바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부조리의 답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의미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것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다.



통상 하나의 사건으로 3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라고 한다. 화재, 폭발, 붕괴, 추락, 침몰, 자연재해 등의 원인으로 수십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들을 말한다.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흔히 구조대원, 의료진, 소방, 경찰, 군인 등이 현장에 뛰어드는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또 한 축의 인력이 바로 법의학자다. 시신을 찾고 해당 시신의 신원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재나 폭발, 건물 붕괴,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는 시신의 외형이 훼손된 경우가 많아 육안으로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기에 법의학자의 역할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법의학자는 평시에는 '사인(死因)을 찾는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사람을 찾는 사람'이 된다. 정식 법의학자가 되기 전 경험을 쌓기 위한 파견 근무 형식이었지만, 그렇게 삼풍백화점은 나의 첫 법의학 현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법의학자로 일하며 어림잡아 4천여 건의 부검을 진행했다. 화재로 사망한 사람, 물 속에서 부패된 사람,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사람, 다투다 칼에 찔려 죽은 사람, 너무 많이 맞아서 숨진 사람…. 갖가지 이유로 허망하게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참혹한 손상들은 내게 전혀 트라우마가 아니다. 진짜 트라우마는,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나의 트라우마는, 오히려 몸 어디에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던 시신이다. 30여 년간 시체를 보아온 나조차도 충격에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그날의 시신들, 가장 깨끗했던 299구의 시신들이다. 세월호에서 인양된 시신들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모든 희생자가 빠짐없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만 보더라도 비난의 화살이 한 개인을 향했다. 처음에는 배를 몰았던 이준석 선장에게로 비난이 집중되었고, 수사가 진행되면서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회장에게 과녁이 옮겨갔다. 마치 이준석 선장만 아니었다면, 유병언 회장만 없었더라면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듯이 상황이 흘러갔다. 물론 그들에게는 명백한 잘못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참사 원인의 전부일까? 건강한 사회라면 유병언 같은 사람이 100명쯤 있다 해도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혹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수백 명의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결과에는 이르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더욱 탄탄히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단 하나의 요건으로 구멍이 뻥 뚤리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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