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소년은 배 밑창의 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구석에 맞춤한 공간이 있었다. 몸을 한껏 웅크린 후 가져온 옷가지를 이불 삼아 덮었다. …… 네 성씨가 무어냐. 그는 머뭇거렸다. 다 알겠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사람들이 그저 장쇠라 부른다고, 소년은 말했다. 부모는 어디에 갔느냐고 그가 또 물어왔다. 소년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임오년의 군란이었는지 아니면 동학의 난이었는지 모르나 아비는 그중 하나에 휩쓸려 죽었다고 했고, 어미는 아비가 죽자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는 성도 받지 못한 채 보부상에게 덜미를 채여 자라났다.보부상은 그에게 장쇠라는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서울에 다다랐을 때, 소년은 보부상이 잠든 틈을 타 달아났다.


닻이 올라갔다. 갑판 위에는 마지막으로 제물포를 보려는 사람들로 계단까지 북적거렸다.


그들이 떠나온 나라는 물에 떨어진 잉크방울처럼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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