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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32살, 헬레나 로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부와 명성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마냥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니 죽기 전엔 쓰려고 미뤄두었던 마지막 소설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지난 4년간, 비밀로 간직해 온 그녀가 쓰고 싶어 하는 그날의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 앨러산드라 토레는 뉴욕 타임스, USA 투데이, 월스트리트 저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녀의 출세작 『블라인드폴디드 이노센스(Blindfolded Innocence)』는 아마존 전자책만으로 출간되어 전자책 순위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주요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며 작가로 데뷔하였다.
2017년, 그녀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할리우드 더트(Hollywood Dirt)』는 장편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토레의 소설은 지금까지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30여 개국에 출간되었다.
그녀는 또한 작가 커뮤니티이자 온라인 학교인 「앨러산드라 토레 잉크」를 설립하였고 20,0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비 출판을 장려하는 앨러산드라는 대학, 컨벤션, 작가 단체 등에서 연설과 강연을 한다.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다양한 글쓰기 프로젝트에 매일 몇 시간을 할애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핀터레스트에서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나는 죽고 있다
'나'에게 작은 레몬만 한 종양이 생겼다.
주치의가 구구절절 설명한 바에 의하면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_'말기' 그리고 '석 달'
나는 슬퍼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야 하지만 친구는 물론 가족도 없는 '나'였다.
나는 기다려 왔다
어쩌면 탈출구가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4년을 기다려왔다.
지난 4년 동안 회피해온 그 진실을 말이다.
내가 그를 만났던 그 밤에는 퍼넬 케이크 냄새와 담배 연기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가 미소 짓는데 내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허리가 곧게 펴진다. 심장이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세게 뛰었다.
그 같은 남자는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눈으로 계속 나를 쫓거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나에게 더 많은 걸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비웃지 않았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나의 세계가 변한다.
잔잔한 내 삶에 파도처럼 밀려왔던 사이먼, 그는 진정 사랑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나, 헬레나는 이제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케이트에게 은퇴란 말을 꺼내자 서른 두 살에 누가 은퇴하는 사람이 있냐며 규칙 4번을 어긴 채 개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상 헬레나가 은퇴하게 되면 케이트에게는 밥줄 자체가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새 책을 쓸 거예요. 편집은 트리샤 프리전이 맡아주면 좋겠어요."
출판계에서 핫한 스타 에디터인 트리샤 프리전에게 헬레나의 원고를 맡길 순 없었던 케이트는 최대한 마지막 보루로 남겨놨던 친절한 목소리까지 장착한 채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케이트에게 헬레나는 무뚝뚝 그 자체여서 두통과도 같은 존재였다.
처음엔 까다로운 고객이 될 줄 상상도 못 했으니깐.
헬레나의 조기 은퇴 선언으로 케이트는 헬레나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바로 헬레나의 모습이었다.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 은퇴에 대한 얘기요."
"나를 직접 봤으니 이제 답이 됐어요?"
그랬다. 헬레나 로스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세 달 남았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3개월이 남았고, 3백 페이지는 수월하게 넘을 써야 할 책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셈을 해본다. 40일 간 초고를 쓰고, 40일 간 퇴고를 하고, 남은 열흘은 병가로 자유롭게 보내는 것. 그러려면 하루에 여덟 페이지, 그러니까 2천 단어를 써야 한다.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석 달 중 열흘 휴가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다. 그리고 하루에 2천 단어는 너무 벅차다. 특히나 책 한 권 쓰는데 보통 1년씩 걸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글은 써야 했던 헬레나.
그녀에겐 대필 작가가 필요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은 기술을 갖춘 사람, 나의 글 스타일을 아는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내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을 사람. 자신의 감정을 모두 내려놓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정답에 도달하기까지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정답은 나의 뇌 언저리에서 서성이다가 불쑥 들어온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여자에게 부탁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곰곰히 생각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바로 마르카 반틀리였다.
여차저차하여 드디어 마주하게 된 마르카 반틀리, 순간 그녀 스스로 미쳤나 싶을 정도였다.
"마크 포춘이라고 하오. 마르카 반틀리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마크 또한 헬레나를 자신과 비슷한 연배로 생각해 희끗희끗한 머리에 안경을 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작디 작은 여자가 내뿜는 분노를 보고있자니, 분노가 사람이라면 그것을 헬레나 노스라 생각할 정도였다.
단순히 돈이 걸려 대필을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족 이야기지만 책의 시작은 그전부터예요. 사랑 이야기요.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거요."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아요."
"비극이에요. 결국 아내는 그 둘을 잃고 말아요."
남겨진 시간에 글을 쓰겠다는 헬레나의 말에 마크가 자리에 일어서자 헬레나는 금액을 더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크는 돈 때문이 아니라며 자신에게 열아홉 살의 매기라는 딸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좋으시겠네요. 내 딸의 이름은 베서니예요. 3주 전에 케이크에 초 열 개를 꽂았어야 했는데. …… 그게 내 책과 무슨 상관이죠?"
"나라면 우리 딸이 인생의 마지막 몇 달을 썰렁한 집에 틀어박혀 나 같은 사람이랑 글이나 쓰고 있게 하지 않을 거요."
그러자 헬레나는 이내 입을 열게 된다.
"책은 내 남편과 딸에 대한 거예요. 둘 다 죽었어요. 나는 죽어가고 있고요. 그쪽이 앞으로 세 달 동안의 내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유감이에요. 하지만 나에게는 이게 중요해요. 그들의 이야기……. 나에게 중요한 건 이거 하나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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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힌트를 던져주지 않아 그 비밀이 궁금해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초반에 마크에게 입을 연 순간, 남편과 딸의 죽음에 분명히 개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진실을 마주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 혼자 내버려두고 작업실에 있었을 때도 정신병원에서 행복하게 글을 쓰고 있었을 때도, 내 화를 못 이겨 접시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을 때도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나에게는 아이가 필요하다. 나에겐 필요하다…… 필요하다…….
그렇다. 헬레나는 분명 딸을 사랑했다.
그리고 마크 또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헬레나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남편 사이먼과 딸 베서니의 죽음, 그 내용의 실체는 뒷부분에서 밝혀진다.
뒷부분 내용을 적고 싶어도 결말이 오픈될 수밖에 없어 말할 순 없지만, 살짝 말하자면 사이먼에게 문제가 있다.
마지막 장을 덮기도 전에, 이미 헬레나의 마음이 십분 이해갔다.
읽고있는 독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게 남편과 아이가 죽고 4년 후에 눈을 감게 된 헬레나는 딸 옆에 안치되었다.
직접 고른 묘비에는 '미안합니다'라고 적혀져 있는데 에필로그임에도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진실의 문을 열었기에, 이제 헬레나의 완벽한 거짓말은 무너지고 말았다.
헬레나가 가지고 있던 그 진실은 책에서 확인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