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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너머, 더 깊은
마숙현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와인을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보면 어느새 와인 한 잔이 간절해질 것이다.
저자, 마숙현은 헤이리예술마을 건설 초창기 싱크탱크 멤버로 참여했으며, 헤이리마을이 형성된 후에는 회원위원장, 뉴프로젝트위원장, 브랜딩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헤이리에 살면서 와인샵 운영과 더불어 헤이리에서 가장 오래된 파스타 레스토랑 ‘식물감각’을 17년째 경영하고 있다. 날마다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고 시시때때로 멀리달리기를 실천하는 삶을 사랑하고 있다.
La Brancaia IL BLU 2005
단순하고 독특한,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다크블루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라 브란카이아 일 블루 2005년'.
저자가 경험했던 맛의 느낌을 빌리자면,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아닌 직선을 추구하는 남성적인 골격을 지닌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같은 남성미가 느껴질 정도로.
"블랙베리와 블랙체리의 과일 향이 허브, 제비꽃, 커피 향과 어우러져 스모키하게 흩어지는 풀 바디한 긴 여운은 지중해 바닷가로 나를 데려가서 추억에 발 묶인 사람처럼 서성이게 합니다."
'라 브란카이아 일 블루 2005년'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연상케 한다는데 여기에 진한 향의 치즈 한 접시만 준비하면 여자 주인공 아오이와 남자 주인공 준세이의 기적 같은 재회를 와인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Bibi Graetz SOFFOCONE di Bincigliata 2016, Toscana
영화보단 소설이 더 매혹적이라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섹스와 낭만적 사랑의 욕구를 거리낌없이 나타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지침서로 읽히고 있다.
갑자기 키스의 성질이 바뀌었다. 더 이상 달콤하기만 한, 숭배하고 찬탄하는 키스가 아니라 육욕적이고 깊고 탐식하는 키스였다. 그의 혀가 내 입에 침범해서는 주지 않고 빼앗아갔다. 필사적인 욕구의 격렬함을 지닌 키스였다. 욕망이 핏속을 줄달음치며 가는 길마다 근육과 힘줄을 다 깨우자, 나는 경계심으로 전율했다.
사랑을 부르는 와인으로 불리는 '소포코네 디 빈칠리아타'는 와인 생산자 비비 그라츠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소포코네 SOFFOCONE는 토스카나 지방의 사투리로 '오럴섹스'를 의미하는데, 검은 체리와 자두, 담배, 감초, 가죽 향이 깊이를 주면서 벨벳 같은 부드러움으로 이상향의 세계에서나 느낄 수 있을법한 이국적 향미를 준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와인을 마신 후 끈적거리고 달콤한 포르노그래피같은 마시멜로를 뜨거운 에스프레소와 함께하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 같다고 덧붙인다.
DICHTERTRAUM Mosel Riesling Sekt Brut
지나가는 길손이여, 여기서부터는 자유다.
대문호이자 정치가인 괴테는 프랑스혁명 격동기에 바이마르 공국의 일원으로 프랑스에 종군했었다.
프랑스 군대는 유럽 모든 귀족이 이끈 연합 군주정 군대와 맞서 승리했고 이는 유럽 귀족계급의 몰락을 재촉하게 되었는데 이 때 괴테는 선언했다고 전해진다.
오늘 이곳에서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괴테의 이야기를 시인의 꿈(Dichtertraum)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와인 에티켓에 담았는데, 균형잡힌 당도와 산도가 와인에서 그대로 느껴진다고 한다.
와인을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라니!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보면 어느새 와인 한 잔 곁들여지고 싶은 밤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음악을 들으며 그 길을 지나갈 때 그 때의 기억부터 감정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게 된다.
이후, 잊고 있다가 문득 그 음악을 들을 때면 당시 걸었던 길을 떠올리며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도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향기 또한 마찬가지다.
즉, 청각, 후각을 통해 기억 연상을 잘하는 편이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고 분위기에 한 두잔 마시긴 했지만 술에 입을 안 댄지가 어언 2년이 흘러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첫 와인의 맛은 기억한다.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살짝 산미있는 과일향이 맴돌았던 와인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였기에 어린 시절부터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게 많아 (끝맺임을 내지 못했지만) 적어놓은 소설부터 드라마까지 끄적여놓은 것이 꽤 많이 있다.
그 중 써놓았던 드라마 대본 하나를 새롭게 고쳐 웹소설로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언젠가 드라마를 한 번 써보고 싶긴 하다.
분야별로 좋아하는 특정 작가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장르물의 대가인 김은희 작가님의 굉장히 좋아한다.
유퀴즈온더블록에서 김은희 작가님이 나온 영상 하나를 봤는데, 그 때 장항준 감독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소주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새 와인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와인에 흘러 장항준 감독이 나온 영상 하나를 더 봤었다.
와인에 한 번 푹 맛들리고 나니, 왜 지식인들이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하고자 한 포인트가 이것인데, 괜히 TMI가 난무했던 것 같다. 하핫;)
아무튼, 와인의 1도 잘 모르는 와알못이긴 했으나 와인 맛을 보고선 맥주보단 와인을 즐겨 마시긴 했다.
마트 와인도 맛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 마트에 가면 꼭 한두 병씩 담곤 했는데 이후 팩와인의 편리성과 맛에 길들여져 팩와인만 마시게 되었다.
사실, 와인에 대한 내용만 담겨있을 줄 알고 딱딱한 느낌이겠구나 싶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저자는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본 느낌을 받았는데 즉, 아는 것이 많으신 분인 듯하다.
일반적인 와인 애호가는 아니라고 했지만 와인을 통해 듣는 인생 이야기는 충분히 매료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아픔과 고통 그리고 이별, 죽음을 보며 느낀 것은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그로 인해 가치관이 조금은 달라졌다.
과거도, 미래도 결국은 현재이기에 지금의 행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에피큐리언인 저자의 책은 와인과 함께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가볍게 읽기에도 좋으니 평일보다는 주말에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삶은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 그 삶이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남루할수록,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