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객원교수인 진 네베바는 좁은 사무실에서 광고를 보고 지원한 세 학생과 마주하고 있다.

퍼트리샤 허스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한 지원자였던 그녀를 조수로 택했다.

퍼트리샤 허스트에 대해서 알든 모르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깐.

그리고 우린 일명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통해 객원교수인 진 네베바의 입장에서, 조수인 비올렌의 입장에서, 당사자인 퍼트리샤의 입장에 빗대어 시간의 흐름을 타볼 것이다.


저자, 롤라 라퐁은 소설가이자 음악가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프랑스 소르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첫 번째 소설 「협상 불가능한 열벙」을 발표한 이후, 「나는 그것으로 위안받네」, 「우리는 폭풍을 예감하는 새들이다」, 「절대 웃지 않는 작은 공산주의자」, 공쿠르상 후보작 「전복시키다」 등 여러 작품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은 1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우에스트프랑스문학상, 쥘리메상, 베르시옹페미나상, 랑데르노상을 비롯한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자네는 분노하지 않는 이 세계에 더는 머무를 수 없어.

이 세계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오직 돈만이 오고 가지.

하지만 이 세계의 마음은 나뉘어 있어. _≪음모 La Conspiration≫




퍼트리샤 허스트의 납치


신원불명의 3인조에 의해 한 재벌가 딸이 납치되었다. 잡지 열 몇개, 텔레비전 방송국, 라디오 방송국 등 언론 제국을 이끌어가던 집안이었다.

함께 있던 약혼자를 내려치고 단 몇 초 만에 퍼트리샤를 납치했다.

이내 신원불명의 납치범들은 스스로를 SLA 소속이라 했으며 각 언론사에 성명서를 보냈지만 희한하게 몸값을 요구하진 않았다.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 사건을 바라보는 진 네베바와 비올렌의 관점


교수는 비올렌과 함께 퍼트리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교수는 비올렌에게 사진 여러 장을 꺼내 붙이라 했고 비올렌은 하나 하나 압정으로 고정시켜가며 붙였다.

퍼트리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사진들을 보면 어린 시절의 그녀는 지극히 평범했다.

공을 들고 있는 어린 퍼트리샤의 행복한 모습이 묻어난 사진에서 부족한 점을 하나 꼽자면 그녀의 치아뿐이었다.

또 다른 사진,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은 그녀는 긴 밤색 머리에서 수수한 아름다움과 살짝 무미건조한 부드러움이 풍겨났다.

또 다른 사진, 히피 유행은 따르되 나팔바지와 밤색 혁대, V자 모양의 옷깃 등 여느 대학생들의 유니폼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진, 드레스 입은 자매들에게 둘려싸여 찍은 그녀의 약혼식 사진이었다.

특이하다면, 콧수염이 있는 그의 약혼자는 퍼트리샤보다 나이가 많고 키가 컸으며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는 반면에 퍼트리샤는 허공을 응시하며 얌전하게 웃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고선 비올렌은 말한다. 퍼트리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내일은 더 요약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나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 비올렌이 앞으로 읽게 될 글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기를 바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 사진들은 틀림없이 허스트가가 고른 것이다, 퍼트리샤는 세계도 받았고 대학생이고 치어리더이고 약혼도 했다, 그러니 곧 우리의 딸이나 여동생, 혹은 그 누군가의 여자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퍼트리샤를 납치한다는 건 용서 못 할 폭력이다, 라는 식으로요.

진 네베바와 비올렌은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요약하는 것일까?




퍼트리샤인가, 타니아인가, 무엇이 진짜인 것일까


앞서, 퍼트리샤 납치 사건을 이어 말하자면 한 은행에서 강도 사건이 벌어졌는데 CCTV 분석 결과 의외의 인물을 포착한 것이었다. 바로 납치되었던 재벌가의 딸, 퍼트리샤였다.

그리고 몇 달 후, 납치범들과 퍼트리샤가 체포되었다. 퍼트리샤 또한 처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가족들과 변호사는 그녀가 세뇌당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알다시피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증거'와 '증인'이다.

변호인단은 퍼트리샤가 세뇌당했다는 것을 전문가에게 자문받고 싶어 알아봤지만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오히려 SLA의 여왕이었다."

결국 변호인단은 대학교수 진 네베바에게 무죄를 입증할 보고서를 청하게 되었고 교수는 비올렌과 함께 사건을 정리하고 요약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비올렌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몸값 요구가 없었느냐였다.

왜 그들은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일까?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라고 했을까?

이후 듣게 되는 녹음 테이프는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게 사실이다.

퍼트리샤가 직접 말한다.

"엄마, 아빠, 전 잘 있어요. …… 절 굶기는 사람도 없고, 때리거나 겁주는 사람도 없어요. …… SLA 대원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며 굉장히 불쾌해한답니다. 전 경찰이 오클랜드 집에 일제사격을 하며 공격했다는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났답니다. …… 이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아니에요. 그들은 정직하고 제게도 분명한 태도를 취했어요. …… 하지만 저는 잘 있어요! 저는 전쟁포로이고, 제네바협정에 따라 대우받고 있답니다. 요컨대 저는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재판을 받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제가 지금 이렇게 붙잡혀있는 건 우리 가족이 지배계급에 속해서 그런 거니 엄마, 아빠가 그 사실을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퍼트리샤는 자신을 타니아라고 지칭했으며 스스로 달라지고 성장했음을 주장했다.

비올렌은 교수에게 퍼트리샤가 퍼트리샤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다른 사건이 있었다. SLA가 한 스포츠용품점을 털기 위해 들어갔을 때 차 안에 퍼트리샤 혼자 남아 도망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가게 안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졌고 심지어 퍼트리샤가 차 안에서 경비원에게 총을 쏘면서 대원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일조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SLA 대원들과 함께 체포될 당시에도 오히려 안도와 환희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Stockholm Syndrome, 즉,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의미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패트리샤 허스트라는 인물을 찾아볼 수 있다.

실제 1974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인데 당시 좌익 과격파인 공생 해방군(Symbionese Liberation Army, SLA)에 의해 납치되었었다.

며칠 후, SLA는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가족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이 습격을 당했었는데 SLA의 짓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은행 CCTV에 허스트가 소총을 들고 은행 직원과 고객들을 당당한 태도로 협박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FBI가 이들의 근거지를 급습하여 조직원 일부를 사살하자 허스트는 타냐라는 이름을 걸고 부모 및 사회를 공격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왔다.

결국 FBI와의 총격전 끝에 드디어 허스트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웃긴 것은 바로 이 뒤부터다.

재판에 서게 된 허스트는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조직원들에게 세뇌당해 어쩔 수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드러난 것이 많았던 허스트에게 배심원들은 징역 35년형의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거대한 '부'를 지닌 부모 덕에 2년도 안 되어 가석방되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부'를 가진 자들은 모든 것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언론 제국을 거머쥐었던 부모의 빽이 없었다면 엄청난 변호인단의 변호를 받을 수도 없었을테고 무엇보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그녀를 가석방시켜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이다.

즉, 학대받은 이들이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뜻한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바로 '아동 학대'이다.

일부 아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도움을 구해 결국 그 가정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한다. 왜일까?

때린다 할지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세상과 연결지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매달리고 더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동뿐만 아니라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순간 학대에 스며들면서 가해자가 나쁘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고 단정짓기 때문이다.

실제 정신적 구속이 신체적 구속보다 그 파급력이 강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를 줄 지는 수치상으로 측정할 수 없다.


아, 그렇다면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가스라이팅과 스톡홀름 증후군은 동일하다고 봐야할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스스로 피해자가 의식하며 가해자에게 긍정적인 감정 이입을 통해 내뱉지만,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즉, 가스라이팅과 스톡홀름 증후군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한 배우 때문에 가스라이팅이 연일 뜨거운 감자로 오르고 있는데 기사에 나온 그 문자들이 사실이라면 가스라이팅의 적절한 예시로 볼 수 있겠다.

가스라이팅 하는 이들의 특징이 '"너를 위한 거야.",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야."'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 이는 당연히 교묘한 정서 학대로 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조작되어진 심리 속에서 행동을 조종당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 그리고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면 솔직히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이를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그 상황에 처하지 않는 게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마음 거리두기'라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봤던 대목이 떠오른다. 관계에 있어서 적정선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를 타니아로 지칭했지만 막상 재판에 서고나선 자신이 자신이 아니었다고 했던 패트리샤 허스트.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대로 감옥에서 몇 십 년이고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부모가 있었으니 수감 생활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가석방되고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된 것만 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책의 줄거리를 다 담을 순 없어 대부분 알고 있는 실화 내용을 기본 삼아 짤막하게 줄거리를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 비올렌의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을 읽을 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순간적으로 헷갈릴 수 있으니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1-04-15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표지가 강렬하네요! 스톡홀름 증후군과 가스라이팅의 차이점이 애매모호했는데 하나님께서 쉽고 명확히 설명해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었어요ㅎㅎ 아직 쌀쌀한 날씨 따뜻한 저녁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04-19 00:37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께 쉽게 이해가 되었다니 기쁘네요:) 낮에 해가 쨍쨍하긴 해도 꽤 쌀쌀한 것 같아요ㅎ 미세먼지도 너무 나쁘고요ㅠ 이번 주는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온도차는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다행히 미세먼지는 살짝 걷히는 것 같아요! 파이버님, 행복한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