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민지 지음, 임현성 그림 / 뜰boo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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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용기를 내본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한 번 이상의 용기를 낸 적이 무조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작건 크건 간에 말이다.


작가, 민지는 오랜 기간 편집자 생활을 하며, 동화와 동시, 글을 써왔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경계성 성격장애로 인해 말 못할 아픈 기억들을 담아 두고 있었지만, 이번을 기회로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을 펼치게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정신질환 환자들이 마음속에 응어리 졌던 말들을 풀어내며 조금 더 당당히 세상과 마주보게 되길 바라고 있다.



우울증, 불안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 과거와는 달리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신적으로 큰 피로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여 생긴 지금 사람들의 병인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 또한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의 저자는 친구와 함께 스무 살이 된 선배들과 함께 어울려 놀다가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이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 모든 시간이 송두리째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야 꺼내보는 이야기라고 덧붙이며 아마 저자와 친구를 범했던 당시 스무 살이었던 선배들의 시간은 잘 흐르고 있을 것이라며 덧붙인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지만 저자의 손목은 줄 그은 흔적들이 선명하다고 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자가 어느정도 단단해짐이 느껴져서 조금은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담담히 써내려져간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 저자의 마음을 전부 혹은 일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용기'라는 한 면만 보고 말해보면, 이러한 고백이 저자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용기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다.

사실, 나는 '아프다, 힘들다.'라는 말을 내뱉는 게 너무나 싫다.

나 자신이 약해보이고 약점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어렸을 때는 아프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참는 게 유일하다고 생각해 참고 참았다.

어느선가부터 아픔으로 인해 못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그 때 용기를 내 말했었다.

아프다고, 정말 아프다고.

어렸을 때부터 참는 게 단련이 되었는지 보통 사람들이 아프다고,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수준이면 나는 절대 아프다고 말하진 않는다.

내가 아프다고 말한다면 쓰러질 것 같은, 그 이상으로 아플 때만 내뱉는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 지인들을 아픈 시기에 볼 때면 매번 아프다고 말하는 것 같아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혹은 핑계처러머 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쓰러질 것 같이 정말 아플 때만 아프다고 내뱉는다. 나만의 규칙이랄까.

사실, 고백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용기가 나질 않아 털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며 작고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나 우울증인가봐.', '나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라는 생각 혹은 말을 하며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우울감과 불안감은 느끼며 살고 있지만 그 정도의 우울증은 '휴식' 혹은 '즐거움'을 통해 치유할 수 있지만 약까지 복용해야 할 정도에 이르면 그것이야말로 (의학적으로) '우울증', '불안증'을 겪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신병원은 우리에게 있어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정신질환자들을 가둬놓고 강제로 약을 복용시키며 치료하는 곳이라 생각되기에 어느 순간 치유할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허나 단순히 휴식 혹은 즐거움에 치유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정도라면 스스로 '정신의학과'에 가보는 것이 맞다.

정신의학과, 지금의 명칭이다. 요새는 꼭 약으로만 처방해주는 것이 아닌 상담 위주로도 치유해주는 곳이기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경영이 아닌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심리학으로 학사편입을 준비해 대학원까지 끝낼까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파서 잠시 '보류'해두었지만 '하나의 책장'이 책 리뷰만 가득한 곳이 아닌 쉼터 나아가 약국같은 곳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 꼭 이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 글 또한 이미 작성한 서평인데 다시금 읽어보니 크게 수정할 것도 없거니와 당시 책을 읽고나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그대로 올려본다.

두 눈을 통해 보는 것, 두 귀를 통해 듣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해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중년도 아니고,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해 조금의 감사함이라도 가지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잃고나면 그 소중함에 대해 얼마나 절절하게 생각하게 되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두 귀로 듣고, 푸른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을 두 눈으로 바라볼 때, 가끔씩 나는 기본적인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심리학과 관련된 전공책부터 국내/외 에세이들을 나름 꽤 많이 접해봤는데 여러 특징 중 한 가지만 살짝 꼽자면 '조금의 감사함'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 뿐더러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별 거 아닌 오늘의 일상에 감사함을 단 하나라도 되새겨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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