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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
이정화 지음 / 달꽃 / 2020년 5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선반 한 켠에 새 책들이 잔뜩 쌓여있어 그 중 한 권을 꺼내들었다.
월말에 책결산을 하고나면 에세이가 서너권은 꼭 들어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다양한 직업군의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기에 에세이를 읽곤 한다.
그리하여 집어든 책이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이다.
서예와 관련된 에세이는 처음 접해보는 것 같다.
물론 간간히 붓펜을 사용하긴 하지만 벼루 위에 먹을 갈아 붓을 사용해 본 것은 중학교 때 이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책을 읽고선 창고로 달려가 화방용품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니 아쉽게도 벼루와 붓 뿐인지라 오랜만에 사용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이 서평을 끝으로 나는 서예용품에 눈을 돌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곤 어느새 이야기하겠지. 드디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고.)
인중 이정화, 저자는 갓 서른의 청년 서예가이다.
서예에 일찍이 눈을 뜬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었는데 서예가이신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의 이른 나이에 붓을 잡았다고 한다.
놀라웠던 게 저자의 이력이었는데 내놓라하는 드라마에서 서예 대필을 했다고 한다. 이를 테면 큰 화제가 되었던 「미스터 선샤인」.
그 일은 종이에 스며드는 먹물처럼 점점 커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없었던 일로 돌이킬 순 없어. 침착한 마음이 없다면, 한순간 다 망가져 버릴 수도 있어.
작은 붓이 침착함을 알게 해주었고 진하게 번진 먹물이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것이 저자의 삶이었다.
젓가락을 사용할 어린 시절, 저자는 아버지에게 작은 붓을 받게 된다.
벼루 위에 붓을 먹물 가득 묻혀 화선지 위에 글을 쓰려는 순간 잔뜩 스며든 붓에서 먹물이 뚝 뚝 떨어져 내렸다.
아무 글씨도 쓸 수 없었다. 그저 하이얀 화선지가 먹색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침착함을 배웠다.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니? 모두 다 자연인데. 아빠는 서예가 산이라면, 캘리그라피는 꽃이라고 생각해. 사실 너도 등산 가자는 말보다, 꽃 구경하러 가자는 말이 더 달콤하잖아? 같은 산 구경인데 말이야. 그렇게 차근히 산에 초대하다 보면 정상도 궁금해지고, 조금 더 깊은 산도 가려고 하겠지. 그런데, 미래의 가이드가 벌써 그렇게 자연을 가리면 쓰나."
대가의 생각은 역시 남다르다. 저자의 아버지께서 한 말의 일부이다. 그것 역시 자연이라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진즉 읽어 작성해놓은 서평 중 하나인 『90년대생이 온다』는 마무리를 못해 아직도 임시저장중인데 당시 그 서평을 쓰며 그런 생각을 했다.
90년대생인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즉, 아날로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였고 디지털의 시작을 함께 한 셈이다.
그러면서 들게 된 생각이 바로 아날로그의 모든 것들이 점점 희미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아쉬움이었다.
(후일 서평에서 더 자세하게 말할 예정이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서예였다.
요즘은 노트북, 아이패드 심지어 휴대폰으로 메모하고 기록하니 일일이 무겁게 다이어리나 노트를 들고 다니며 기록하는 것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이핑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니 굳이 펜을 들면서까지 기록하게 되지는 않는데 서예도 마찬가지로 점점 퇴보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취미 생활의 일화인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요새는 서예반도 있긴하지만 굳이 그런 취미 생활 외에는 전혀 쓸 일이 없다는 점이다.
책 속 곳곳에 새겨진 저자가 쓴 서예의 흔적들을 보니 예쁘다. 참 예쁘다. 어찌나 곧고 예쁜지 예쁘다는 말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이 흙을 바라보면 그해 가을날 만난 꽃과 나뭇잎이 내게 인사한다. 내가 그 나뭇잎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네가 저 꽃일 리가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니 너와 나는 하나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저 흙에서 만날 테니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할 수밖에. 그들과 하나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과연 나는 무엇이 될까?
작은, 한 줌에 불과할 지라도 그것이 모이고 모여 이내 삶이 되고 결국 역사가 될 터이니 '서예'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