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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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관점으로 중국사 훑어보기,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하나, 책과 마주하다』

 

한 나라의 문화·역사를 엿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장소, PLACE이며 그 외 또 다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음식, FOOD이다.

시중에 역사책은 많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식이란 소재로 중국의 역사를 쭉 훑어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겠는가!

 

춘추전국시대에 귤 한 상자만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만주의 귀족들이 푹 빠진 음식이 샥스핀이다?

양귀비가 죽기 전 먹은 음식이 호떡이다? 청나라 시절, 중국의 13억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이 바로 고구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실일까?

 

홍콩, 광저우와 항저우 등지에서 사는 중국인들은 새해 춘절이나 중추절 명절에 귤과 유자를 먹는데 심지어 유자 껍질을 우려낸 물로 세수를 한다고 한다.

왜 껍질을 우려낸 물로 세수를 하고 유자 분재를 선물하는 것일까? 알다시피 중국은 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황금을 닮은 유자와 귤이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에서이다.

춘추 시대 이전에는 귤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과일이어서 중국에서 또한 남쪽 나라에서 나오는 귀한 과일이었던 귤은 최상의 과일이었다.

또한,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만 자랐던 과일이라 드물고 귀했기에 귤은 천자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감귤천수(柑橘千樹)라는 말이 있다. 후손을 위해 1000그루의 귤나무를 심었다는 뜻인데 「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오나라 단양태수 이형이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귤나무 1000그루를 심어 남겼다고 한다. 당시 전란이 잦아 부자들은 재물을 뺏기고 목숨까지 잃었지만 이형의 후손들은 가진 재물이 없었기에 무사히 전쟁을 넘겼고 1000그루의 귤나무가 열매를 맺으면서 대대손손 부자로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대 중국에서 귤의 위상을 생각하면 귤나무 1000그루는 재벌 수준의 자산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당나라 무렵, 중국에서 호떡과 두부는 크게 퍼져 역사책이나 시문집을 보면 왕과 귀족부터 문인들까지 호떡 맛에 푹 빠졌음을 알 수 있다.

호떡과 두부가 당나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싶지만 당나라 때 실크로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호떡과 두부의 역사를 알면 중원과 서역의 관계뿐 아니라 음식 문화 교류의 역사 또한 알 수 있다.

양귀비 또한 예외없이 호떡을 좋아했는데 얼마나 좋아했으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움식 중 하나가 호떡이라고 한다.

안녹산과 반란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급하게 피란길에 오른 현종과 양귀비 일행이 배고파하자 시장에서 호떡을 구해왔다는데 호화롭게 생활한 왕과 귀비의 마지막 식사가 호떡이라 초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이야 호떡은 길거리 음식에 속하지만 당시 호떡은 길거리 음식이 아니였기에 시장에서 호떡을 구해왔다는 것은 당나라 상류층의 음식 문화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중국의 역사를 훑어보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다.

이 외에도 실크로드, 향신료 그리고 복숭아밭에서 도원결의를 한 이유 등 음식을 통한 시대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음식이 중국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중국사를 재미있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다면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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