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병자호란 - 하 - 격변하는 동아시아, 길 잃은 조선 만화 병자호란
정재홍 지음, 한명기 원작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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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만화 병자호란 하』

 

 

 

 

 

『하나, 책과 마주하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란 없다.

그렇다. 역사는 단순히 학창시절의 암기과목에 불과하면 안 된다. 제대로 알고 이해하며 상기해야 한다.

다행히(?) 나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좋아해서 지금도 꾸준히 역사분야의 도서를 읽고있다.

학창시절에도 국사와 세계사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아홉살어린 막내동생의 시험기간에 세계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문득 생각나 이름을 말했더니 어쩜! 막내동생도 그 선생님께 수업을 받고있었다. 그 후 남동생이랑 세계사 선생님이 이야기하다 선생님이 동생에게 형제자매가 있냐고 물었단다. 그래서 내 이름을 말했더니 날 아직도 기억해주고 계셨다. 9년이나 지났지만 '세계사 수업 열심히 듣던 학생'으로 기억해주고 계셔서 너무 좋았다.

암튼 역사 분야는 꼭 읽어주는 것이 좋다.

지금은 출간되었지만 창비출판사에서 『만화 병자호란 하』 가제본을 받아 먼저 읽을 수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을 알기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상권을 먼저 읽어야 하권을 빠르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병자호란, 굴욕적인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17세기 초에 만주에서는 여진족이 통일되어 후금이 세워졌는데 당시 중국을 차지하던 명나라가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후금의 기세가 대단해지자 명나라는 조선에 형제관계를 요구하며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당시 조선의 왕은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섣불리 명나라를 돕다 훗날 후금에게 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강홍립 장군에게 지시를 내렸다.

강홍립 장군은 광해군의 속뜻을 알아채고 명나라를 도와주는 척 하다 후금에게 투항하는 탁월한 중립외교 덕택에 후금의 침입을 안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영창대군을 유배보낸 후 죽음에 이르게 해 결국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광해군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인조가 왕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조반정'이다. 인조는 '배금친명' 정책을 취하며 명나라 군대를 지원해주자 후금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인조 때 '이괄의 난'이 벌어졌었는데 후금은 이를 구실 삼아 형제관계를 요구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이것이 '정묘호란'이다.후금의 기세에 인조는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후 청나라의 태종이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조선에 12만 대군을 데리고 쳐들어왔는데 이를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당시 조정은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대립하였는데 척화파는 끝까지 싸우자는 의견이었고 주화파는 일단 화약을 맺고 훗날을 기약하자는 의견이었다.

척화파의 주장이 우세한 가운데 청나라의 군대가 한양 근처까지 쳐들어왔고 왕실 가족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고 인조도 뒤따라 가려했으나 청나라의 군대에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왕실 가족들이 모두 인질로 잡혔다는 소식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나라에 항복하기로 결정하고 한겨울에 삼전도에 있는 청나라의 태종에게 향했다. 결국 인조는 3배 9고두를 함으로써 항복의 표시를 나타냈다.

3배 9고두란 상복을 입은 채 3번 큰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는 것으로 인조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가 되었고 정말 많은 배상금을 내고 수십만 명의 백성을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게 되었다.

 

후우,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이렇게 쓰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조선의 왕이였던 인조께서는 정말 그 의미 그대로 '인'이 맞았는지.

물론 광해군이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일을 일으켰다하지만 차라리 정책만큼은 인조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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