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폴라북스의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충무공의 회사에서는 자기 개발비라는 명목으로 연간 일정금액을 지원해 주는데, 그 돈은 책 구입이라든가, 기타 등등의 항목으로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에 충무공의 계정을 만들어 두고 종종 충무공 계정으로 책을 구입한다. 얼마전 다락방의 꽃들도 그 돈으로 구입을 했다. 거 참, 회사에 제목을 제출하기는 참 거시기 한 책이었는데 말이다. 흠흠. (애들 동화책이나 학습지, 문제집은 못산다 또.)

그 폴라북스에서 다락방의 꽃들을 구입하면, 추첨으로 뭔가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던 모양이다. 내가 기억할 리는 없고. 여튼, 아이폰에 충무공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 놓은 걸 그대로 뒀던터라, 알라딘에 접속하니 공지가 떴다. 나 폴라북스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무려 열권의 책을 받게 되었단다, 올레~!

당첨자에게 이미 개별 공지가 갔을 거라길래, 충무공에게 물었더니 시크하게 대답해 주신다. 

'스팸인지 알았지.'

헐.


2. 해인이가 입학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초딩 둘을 둔 엄마~


3. 영동대교를 아시나요?


지난 여름에 귀국하여 작년 하반기 6개월동안, 나는 일주일에 사흘, 하루에 영동대교 두번 넘어다니는 여자였다. 다인의 영어학원 때문에. 헐헐.

그리고 올 3월부터 나는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영동대교 여섯번 넘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ㅠ.ㅠ


4. 식기세척기


나는 사람들을 불러서 밥 해 먹이는 것을 즐긴다. 예정되어 있던 손님이나 예정되어 있지 않은 손님이나 언제 어느 타임에 찾아와도 어떻게든 한상 차려서 먹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이 설거지라는 거지;;;;;;;;;;;;;;

내가 대학에 다닐때, 친정에는 무려 여덟명의 식구가 바글바글 모여 살았다. 결혼해서 애 낳은 언니가 육아 문제로 친정에 합가해 살 고 있을 때였다. 엄청난 설거지 양에, 엄마는 언니에게도 설거지를 할 것을 종용했지만, 언니는 엄마에게 그때 막 일반에게 퍼져 상용화되기 시작하던 식기 세척기를 사다 안겼다. 동양매직 거였다. 서너번 사용해 본 엄마는 곧 그 식기세척기를 마른 식재료 보관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훗날 분가하면서 그 식기세척기는 언니의 집으로 이사를 가 여전히 식재료 보관함으로 활동하셨다. 훗.

자카르타에 가기 직전 1년간 살았던 아파트에는 식기세척기가 빌트인으로 딸려있었다. 엄마의 본을 받아 당면 미역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잘 썼다. 음하하하하하하...

자카르타에서는 설거지를 해 주는 메이드가 있었고, 

귀국해서 한동안 설거지를 열심히 했는데, 책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손목이 나갔다(어디로?). 원래 갓난 애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손목이 나간다는데, 나는 애 키우는 내내 손목 통증을 겪은 적이 없었다. 무려 천기저귀를 써서 애들을 키웠음에도! 그러다 이 집에와서 책을 꽂다가 손목의 고질적인 통증을 겪게 된 것이다. ㅎㅎ 사서 일을 하고 있는 동서를 둔 언니의 표현에 의하면, 도서관 사서의 고질적인 직업병이라나. 

손목은 나을 듯 나을 듯 낫지 않았다. 쓰지 않으면 괜찮다가 좀 과한 설거지를 한 날이면 또 파스를 붙이고, 집안 손걸레질을 좀 거하게 한 날 또 파스를 찾았다. 아너스 물걸레 청소기를 샀고,

드디어 빌트인 된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 이거슨 신세계~!

도대체, 이 좋은 것을 나는 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가. 왜 얘를 식재료 보관함으로 전락시켰던 것인가. 식기 세척기가 중간에 고장나 사흘간 사용하지 못하던 동안, 충무공과 아이들은 나의 눈치를 봤다. 멘붕도 그런 멘붕이 또 있을까. 부엌이 엉망진창. 대체, 식기세척기가 없는 동안엔 밥을 어떻게 해 먹었던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 세탁기가 상용화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도 이랬겠지. 후후.


5. 그릇


나는 꽤 오랜 자취 생활 이후 결혼을 했기에 혼수 장만을 할 때 부엌살림을 따로 사지 않았다. 쓰던 그릇들을 그냥 이고 지고 가서 살림을 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한식기 10인조를 사주신게 전부였다. 짝도 안맞는 그릇들을 오래도 썼다. 

인도네시아에는 각종 도자기 회사의 공장이 있다. 덕분에 거기서는 몇몇 명품 브랜드의 그릇을 싸게 살 수 있었다. 로스트란트 몬아미나 스웨디시 그레이스, 웨지우드와 로얄알버트를 막컵으로 쓰는 이것이 리얼 럭셔뤼~! 그릇을 후질러서 친정이며 친구며 닥치는대로 나눠줬는데도 그릇은 많~이 남았다. 여전히 많~이. 더구나 내가 귀국하기 직전 인도네시아의 한국도자기 공장에서 창고 물품을 대 방출하는 세일을 했다. 내 한식기를 모두 바꾸는 것으로도 모자라, 언니의 한식기를 죄다 바꿔주었고, 엄마의 오래된 살림도 교체했다. 

남들은 김치냉장고를 넣는 자리에 그릇장을 짜넣었다. 엄마는 질색을 했지만, 10년 전 혼수로 샀던 양문형 디오스 냉장고를 자카르타에 버리고 한국와서 새로 양문형 냉장고를 샀는데, 외부는 똑같은데 내부가 광활하게 넓었다. 뭐가 끝도 없이 들어가는데 김치냉장고까지야 필요있나. 그릇장을 짜 넣어 그릇을 차곡차곡 챙겨넣었다. 

자카르타에서 컨테이너가 도착해, 짐을 정리해 넣을 때, 부엌일을 도와주러 오신 이삿짐 센터의 아주머니에게 제가 그릇이 좀 많아요. 했더니 네~ 건성으로 대답하시다가 나중에는 잔소리를 하시더라. 싸다고 이렇게 많이 사오면 어째요....;;;; 네네네. 그거 세 집으로 나눠 갈 그릇이었답니다. 

자카르타에서 짐이 오고 난 다음에 그릇을 죄다 풀어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뽁뽁이를 구입해 그릇을 포장해서 화물택배를 불러 열박스 넘는 그릇을 창원으로 보내고도, 추석에 내려갈 때 또 그릇을 둘둘 말아 여기저기 갖다 앵기고, 1월에 친정 식구들이 집들이겸 놀러와 또 한박스 분량의 그릇을 싸가지고 가고 그리고도 남아서 설에 또 시댁에 갈 그릇을 포장하고 있었더니 충무공이 묻더라. 도대체 그릇을 얼마나 사 온거냐고. 근엄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첩에게는 아직도 열두개의 그릇이 남아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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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3-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식기세척기를 미역과 파스타 면 등을 넣어놓는 용도로 사용 중이랍니다.

이사하시느라 고생하셨네요, 해외에서 오랫동안 사셨으니 큰 이사였겠어요. 그래도 귀국하신 것 축하드려요, 영동대교 6번씩 왔다갔다 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아 보이는데... ^^ 이사, 저도 책 때문에 엄두가 안나요, 정리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뭐라 하실까 싶어서요. ㅋㅋ

아시마 2015-03-09 14: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식기 세척기는 초기 진입장벽이 좀 높은 가전 같아요. 근데 써 보면 세탁기 없이는 못사는 것과 비슷하게 될지도 ㅎㅎ
저는 책... 이삿짐 센터 분들이 정리 하겠다는 거 못하게 했어요. 책이 좀 많았어야죠. 책장도 미처 못 산 상태였고요. 처음엔 넣을 수 있는데까진 넣어드리겠다 하던 분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책박스에 질려 그냥 서재 한가운데 책박스들 다 쌓아두고 그냥 가셨어요. 그거 혼자 정리 하느라 손목이 맛이 갔지요 ㅋ

붉은돼지 2015-03-0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당첨 축하드려요^^
저도 몇년 전에 이벤트에 당첨되어 타셴 화가시리즈 10권 받았는데 기분 좋드라구요ㅋㅋ 그 뒤론 감감 무소식 ㅠㅠ
 
홍차, 느리게 매혹되다
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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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있다. 일본에서 주로 쓰는 말인데, 한국어로 말을 하자면 일생에 단 한번의 만남 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정확히는 일본의 다도에서, 어떤 만남이든 일생의 단 한번 뿐인 기회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란다. 일본인들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 말을 주로 쓴다. 


나에게 차와의 일기일회는 1999년 12월, 아니면 2000년 1월쯤이다. 그 겨울의 첫폭설(첫눈이 아니다)이 내린 날이었다. 내 기억에 서울에 그런식의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건 그 겨울부터였다. 눈이 드문 고장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때까지 눈이란 드물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백설이 난분분(亂紛紛) 하던 그날 오후, 나는 선생님댁의 거실에 있었다. 넓고 잘 가꾸어진 정원에 고즈넉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선생님과 나는 재스민차를 마셨다. 기가막힌 맛이었다. 그날의 드문드문했던 대화도 기억나지만 더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재스민의 향기와 입술에 와 닿던 찻물의 온기다. 눈 내리는 날, 창밖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따스하고 안락한 거실에서 마시는 차라니. 지금 생각해도 꿈결같다. 일기일회.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 그리고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맛. 그 뒤 내가 마시는 모든 차는 그날의 오마쥬다.


거기서 시작한 나의 차 사랑은 처음엔 녹차였다. 5년간의 해외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니 없어져 버린 인사동 쌍계제다가 나의 단골 차가게였다. 그 겨울 이후 거기서 매년 햇차를 샀다. 곡우 이전에 따는 우전과 우전 다음에 나오는 작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였다. 쌍계차(화개차)는 같은 지리산에서 나는 보성차와는 맛이 달랐다. 좀 더 섬세한 맛이랄까. 


한국의 녹차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허브차로 넘어갔다. 온갖 허브를 두루 섭렵한 뒤 도착한 곳에 홍차가 있었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얼그레이, 다즐링.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홍차는 다즐링이다. 가향홍차중에는 유일하게 얼그레이만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남들이 술을 찾을 때 차를 찾았고, 남들이 맛있는 술을 찾아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며 마실 때 맛있는 차를 찾아 이것저것 품목을 바꿔가며 마셨다. 한때 나의 혈관에는 피대신 녹차와 커피, 홍차가 흘렀다.


당연히(나에게는 이게 당연한 일) 차와 커피에 대한 책도 섭렵했다. 괜찮은 책도 있고 그저그런 책도 있었다. 사실은, 그저그런 시시한 책이 더 많았다. 이 책도 차에 관련된 책들을 사 들일 때 함께 쓸려들어 온 책이었다. 시시한 몇몇 책들을 읽다가 이 책도 그저그렇겠거니 젖혀놓은 책인데, 아이허브 홍차 관련 검색을 하다 걸려든 한 블로그의 글이 인연이 되어 꺼내 읽었다. 그런데 호오- 이거 꽤 괜찮다. 


작가 최예선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잡지사 에디터로 일을 했다. 즉, 글 쓰기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용과 정보의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전문가의 책들은 얼마나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던가. 그 지루한 책들 속에서 이 책은 반짝반짝 빛이난다. 차에 대한 정보와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썩 잘 버무려서 재미있는 글을 썼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작가는 차와 예술을 잘 접목시켜 그저 그런 찻집 탐방기와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온다. 


작가의 차와의 일기일회는 어느해 여름 고창 선운사에서 였다. 무더운 한낮 선운사 문턱에 다다른 작가는 대웅전 옆의 자그마한 다실에서 차를 마신다. 그 무더운 날에 뜨거운 차를.


이 무더운 날에 뜨거운 차가 웬 말이냐 싶었지만, 뜨거운 물이 차를 만들어내는 2,3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짜증스런 마음도 서서히 풀어졌다.

.....

차를 마신 후에는 다음에 마실 사람을 위해 정갈하게 차 도구들을 헹구고 정돈해두었다. 뒷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심조심 걸어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어느덧 살며시 누그러져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발길에 힘이 생겼다. 

차가 주는 치유의 힘은 이런 것이리라. 사람을 좀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 그리하여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

p.30


아름다운 책이었다. 읽는 내내 그녀가 소개하는 홍차들을 맛보고 싶어졌다. 비록, 가향홍차는 별로고, 그녀가 무척 좋아한다는 시나몬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향신료중 하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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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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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무슨 이유로 코스트코에 가는 지(또는 가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코스트코가 나의 선택을 대행해주기 때문에 간다. 코스트코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화장실용 두루말이 티슈는 딱 두 종류, 탁상용 각티슈는 딱 한 종류, 키친 타올도 딱 두 종류 있다. 필요하면 고르는 과정은 생략한 채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그냥 집어들고 오면 된다. 고민의 과정이 생략되는 쇼핑은 심심한듯 하지만 코스트코는 그 외의 것으로 그 심심함을 채워준다. 일반마트에는 잘 없는 물건들, 게다가 갈 때마다 구성품목이 조금씩 바뀐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엔 있었던 커트러리 세트가 지금은 없는 식이다. 그러니까 매번, 코스트코가 이번엔 무슨 새로운 물건을 골라가지고 왔나,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마치, 친구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는 재미랄까.


내가 물건 고르는 걸 싫어하느냐고? 음, 싫어한다고도 좋아한다고도 말을 할 수 있겠다. 물건에 정을 잘 붙이는 나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까지가 힘들다. 올 여름 귀국을 해서, 각종 살림살이를 새로이 구비해야 할 것이 많았는데, 욕실의 비누갑이며 양치컵, 칫솔 홀더 등의 세트를 구매하는데 장장 3주가 걸렸고(안 가 본 온라인 쇼핑몰이 없다.), 집안에 놓아두고 쓸 쓰레기통을 고르는데는 닷새가 걸렸다. 이쯤되면 결정장애다. 그냥 목적에 맞는 적당한 물건을 사서 들여놓는 것을 잘하지를 못한다. 만약 그냥 샀다면 볼 때마다 고민을 한다. 내가 이거 잘 산 거 맞나? 더 좋은 물건이 있지 않았을까? 정이 붙지 않는 물건은 볼 때마다 미워지고, 미움에도 멀쩡한 물건을 버리지는 못하여 볼 때마다 괴롭다. (내가 이런 괴로움을 주변에 호소했더니 누구도 동조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랏멘?'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을 뿐. ㅠ.ㅠ)


그래서 웬만하면 집안에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 물건에 집착하는 성격이어서. 그럼 우리집이 콘도 수준으로 깨끗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는 않다. 물건은 굳이 내가 들여놓지 않아도 얼마든지 쌓인다. 5년간의 해외생활동안 언니는 우리에게 줄 물건을 집안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귀국과 동시에 대방출을 해 주었다. 대단히 감사하지만, 감사는 감사고 이렇게 난감할데가. 내 아이와 열살 가까이 차이나는 조카들의 물건을 내 아이를 생각해 소중히 보관해 준 그 마음은 감사하고, 모든 물건이 다 멀쩡하다. 특히 조카들이 쓰던 가방들만 열개가 넘게 왔는데, 이쯤되면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내내 가방을 사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내 마음에 딱 차게 드는 가방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태를 어찌하리요. 이쯤되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한 가방이 열개가 넘는데 또 가방을 사야하나? 사자니 멀쩡한 가방들을 쳐다보게되어 민망하고 안사자니 마음이 찝찝하고 ... 작은 놈 입학을 핑계로 하나 사? 큰놈도 입학때 가방 사 줬는데. 그래도 그땐 정말 가방이 없었잖아? 이렇게 멀쩡한 것들을 두고 또 사?


이 고민을 미친듯이 하고 있을 때 마침 이 책에 눈에 띄었다. 


화가이자 동화작가 선현경은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우일의 아내다. 이우일은 <콜렉터>를 쓴 사람이다. -한 웃기는 만화가의 즐거운 잉여수집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에 읽었는데(2014. 7. 30) 읽는 내내 야~ 이 사람 와이프는 정말 괴롭겠다 중얼거렸더니 웬걸, <콜렉터>가 출간된지 2년 반 정도 지나자 그의 와이프가 책을 냈다. 제목하여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다. 


이우일의 수집품목은 다양하다. 똑딱이 카메라에서부터 홍보용 엽서, 책 띠지(아놔, 이걸 왜?), 각종 스티커(9살 내 딸의 취미다), 옷에 붙어있던 태그(헐...) 낙서된 포스트잇(이거야 화가니까 낙서도 예술이니 모을만 하겠다.), 심지어 도끼까지 모으고 있단다. LP, CD, DVD, 비디오 테이프, 책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쯤되면 집이 집이 아니라 고물상 처럼 보일게다. 그런 이우일의 말에 따르면, 아내 선현경도 만만치 않게 레고와 플라스틱 반지를 좋아했다. 


이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 살아가니 참 볼만 했던 모양인지 작가의 친구가 '너희 집 식구들이 꼭 봐야 한다면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추천'한다. 그 다큐멘터리가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 였단다. 작가는 그 다큐멘터리에 충격을 받아 6년동안 살아온 집안의 물건을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1년간의 기록이 이 책이다. 


악세사리며 옷이며 양말에 팬티를 줄기차게 버리는 내내 작가도 끊임없이 다짐한다. 책은 버리지 않는다고. 아니, 다짐할 것도 없이 책을 버릴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 책들이 두겹으로 꽂혀있어, 딸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하자 집안 어딘가에 분명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 사 주기는 하지만. 난 원래 책 말고는 소유의 욕심이 딱히 있지 않아서 버릴 것도 별로 없다............. 라고 써 놓고 반성하는 중이다. 지금 집에는 버릴 게 없는 게 맞다. 지난 여름 근 5년간의 자카르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길에 주변에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거의 다 버리고 왔으니. 입지도 않는 옷이며 쓰지도 않는 악세사리를 어쩌자고 그렇게 끼고 살았던 것일까. 게다가 책은...... 끝내 자카르타에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이고 지고 온 애들의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지. <달님안녕>이며 <사과가 쿵> 이며 그 몇 권의 책은 펼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남을 주지 못한다고 버티다 버티다 눈 질끈 감고 다른 책들과 함께 이웃 아이에게 넘겼다. 그야말로 눈물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정말 너무너무 잘 본 책이야 제발 아껴줘~ 온갖 부연 설명을 다 해가며. 


그래서 안다, 이 작가가 물건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한다는 마음도 이해하고 버리다보면 버리는 일에도 무언가 익숙해지면서 버리는 일의 상쾌함도 이해한다. 물건에 정을 붙이는 성격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그래, 나같은 사람이 그렇게 드문 것만은 아니라니까.


그렇게 해외 이사를 하면서 반 강제로 버리고 비움을 당하고 났더니 버리고 비우는 일의 즐거움도 깨닫게 된다. 1일1폐를 일년간 해 본 작가도, 이제는 버리고 비우는 일들에 좀 더 익숙해졌기를, 더 나아가, 그분의 남편도 좀 ㅎㅎㅎㅎㅎㅎ


요즘은 종종, 지구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예전에는 무심코 하라니까 했던 분리수거라면, 요즘은 지구 환경에 대한 생각으로 아주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식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멀쩡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을 자꾸자꾸 주변에 나눠주려 애쓰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나누어 준 건 아이폰용 이어폰. 그리고 멀쩡하게 서랍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폰 4 흰색을 깨워서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텐데, 차마 나눠주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 지구를 생각한다면 서랍속 아이폰 4를 정리할 게 아니라, 멀쩡한 아이폰 5를 6+로 갈아타는 일부터 안해야 할 텐데 말이다. 나란 인간은 어째 이모양인지. 


어쨌든. 예전엔 무언가를 아낀다는 게 나 개인적인 차원의 알뜰함 정도로 이해되었다면 요즘은 좀 더 대승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원을 아끼고 지구를 아끼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거운(?) 생각을 하면할 수록 삶은 점점 가볍고 단순해져 간다는 거다. 나도 아직 이렇게까지 말할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콜렉터>라는 책까지 써 내며 온갖 잡동사니 수집을 하고 있는 남자와 한 집에 사는 여자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라는 책을 들고 오다니 이 또한 재미있다. 


두권을 이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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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01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아시마님 작년에 돌아오셨구나!! 작년엔 저도 정신없이 살았던지라 알라딘에 통 오지 못했어요~~~~^^;; 반갑네요~~~. 친구 신청도 고맙고요~~^^ 근데 저와 많이 비슷하세요!! 읽으면서 오잉?? 자꾸 이랬다니까요!!ㅎㅎㅎㅎㅎ 저도 이우일의 콜렉터 재밌었는데 사실 전 아내되는 선 현경씨가 더 좋아요. 그림도 그렇고(비밀)ㅎㅎㅎ 이 책 읽고 싶어요. 저도 하나씩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결심. (이러면서 하나 버리고 하나 사오게 될까봐 두렵긴 하;;;)

아시마 2015-02-05 16:19   좋아요 0 | URL
전 이우일이 더 좋아요. ㅎㅎㅎ 선현경은 좋은 책을 많이 쓰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수필가 황인숙 선생님하고도 친하지만요.

한국와서 제일 좋은 건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그날 주문해 그날 받아볼 수 있다는 거요.
정말 최고예요. ㅎㅎㅎ

cyan 2015-02-0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들어 조금씩 정리하고 버려야지...를 다짐하면서도 알라딘 장바구니를 그득 채우는 저를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루 하나 버리기를 위해 이 책을 사야할까요? ㅋㅋㅋ 이런 아이러니가 일요일 아침을 더욱 여유롭게 만들어주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아시마 2015-02-05 16:19   좋아요 0 | URL
인생의 아이러니죠. 버리기 위해 버리기에 관한 책을 산다는 건.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blanca 2015-02-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아시마님 찌찌뿡. 넘 신기해요. 나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아시마님이랑 저는 겹치는 부분이 넘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요. 이우일 씨는 컬렉터라는 책을 썼군요. 아, 잼있네요. 이건 마치 차승원이랑 유해진이 잘 맞는 것과 비슷한 걸까요 ㅋㅋ

아시마 2015-02-05 16:22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차승원을 무지 좋아하는지라 ㅎㅎㅎㅎ 유해진이랑 같이 있으면 그 잘생김이 더욱 돋보인다는. ㅋ 유해진도 좋아하는 배우지만 으하하하, 난 인물 좋은 남자가 좋드라~

저도 가끔 블랑카님과 저의 관심사가 비슷해서 놀라요. ㅎㅎㅎㅎㅎㅎ 직접 만나보고 싶을 때가 있죠. 언제 한번 뵈요. ㅎㅎㅎ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심리로 둘째 권한다고 그랬는데, 어때요? 블랑카님도 주변 외동 엄마들에게 나 혼자 죽을 순 없다, 심리가 되시나요? ㅎㅎㅎㅎㅎㅎㅎ

조선인 2015-02-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우일, 선현경 부부 책은 기꺼이 읽는 편인데, 이 책도 보관함에 담아야겠어요.

아시마 2015-02-05 16:23   좋아요 0 | URL
음, 부부가 작가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서로서로 인기도 경쟁도 할까요? 판매부수 경쟁도 하고?

우리 부부는 꽤 닮았는데, 또 참 많이 달라서,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한 부부는 어떤기분일까 종종 궁금하답니다.
 
다락방의 꽃들 돌런갱어 시리즈 1
V. C. 앤드루스 지음, 문은실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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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처음 만난 작품으로 결정된다. 그 이후의 작품들은 개별 독자에게 있어서는 처음 읽은 작품의 아우라를 웬만해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앤드루스와 처음 만난 작품은 <오도리나> 였다. 그 작품을 읽었던 시기가 중학교 1학년 쯤이었고, 재미있었지만 기괴하기 짝이없는 소설 정도로 기억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 뒤에 읽은 앤드루스의 작품들은 죄다 근친상간의 그늘을 뒤집어 쓴, 기괴하기 짝이없는(그야말로 딱 '고딕' 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그 기괴하기 짝이없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완역판이 나왔다는 말에 출간 당일 사들이고, 받자마자 읽었던 것은 그래도 재미있더라, 하는 그 기억때문에.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첫 느낌은, 어라? 이게 아닌데? 였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나는 많아야 열여섯쯤의 사춘기 소녀였고, 지금의 마흔이 멀지 않은 애 둘의 엄마, 그리고 정보사회의 발달과 열여섯 이후 14년 남짓의 세월덕분에 나는 이미 실화로 존재하는 수많은 기괴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을 알고 있다. 더이상은 순수하지 않은 아줌마의 눈에 이 이야기는 어라? 고작 이거였어? 하는 느낌이랄까. 벽장 너머의 괴물을 두려워하며 부들부들 떨다 어느날 나이가 주는 용기에 힘입어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 안이 텅비어있더라하는 걸 발견한 뒤의 허무함쯤에 비견할 수도 있겠다. 


총 다섯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의 첫번째 권인 이 책의 이야기는 간명하게 몇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복 삼촌과 결혼한 코린은 크리스토퍼, 캐시, 캐리, 코리 네 남매를 낳았고, 남편이 죽은 뒤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친정으로 돌아가서 네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아이 넷을 다락방에 숨긴다. 3년 4개월 16일동안 그 다락방에 갇혀 지내던 아이들은 막내의 죽음 이후 그 집을 탈출한다. 


이게 끝이다. 


처음에 아이들을 위해 애쓰던 엄마 코린은 점점 아이들에 관해 잊어가고 새로운 사랑과 생활에 빠져들게 되며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제대로 자라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고,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는 금지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고. 


이게 열여섯의 나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내용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마흔이 가까운 나에게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되어 버렸다. 이해 못할 것도 없고, 에로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이게 대체 왜 '고딕 로맨스' 라는 이름이 붙어버렸을까. 이보다 더 심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많은데, 이제는 많은 성폭행을 포함한 성추행이 가족에 의해 일어나고, 아동폭력 가해자의 90% 이상이 친엄마를 비롯한 친족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더구나 그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은, 성폭행도 아니었고, 납득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 나이의 아이 둘만을 가두어 놓고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 그게 더 나쁜거지. 아아, 이 책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기엔 난 이미 너무 더럽혀져버렸어.


열여섯 그때는 캐시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이제는 코린이 보인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소설적 창작의 산물이라고 느꼈었다면 지금은 글쎄, 이해를 하고 납득을 한다기 보다는 그녀가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그녀도 그렇고 코린의 엄마, 캐시의 외할머니도 그렇고 그냥 딱 상상할 수 있을만큼 그 안에서 움직였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모성이라는 것이 때로는 환타지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에 


그래서 다시한번, 어라, 뭐야,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책 맞나?


이 책이 더는 기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일테다. 그때만큼 환상적으로 재미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은 사춘기에 읽어야 더 재미있는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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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1-2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제작년까지 김연수책 다 읽어내기가 괴로웠는데, 작년 말에 갑자기 너무 재미있는거에요.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하는 것의 극단적 경험이었어서 이 책 나왔다고 얘기 듣자마자 다시 읽을 기대감에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저도 딱 중학교때 즈음에 읽었었네요. 그 뒤로 그 뒤로 책을 몇 천권은 더 읽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되게 선명하게 기억나요. 그 중에 하나가 발레리나는 다리 힘이 엄청 세다. 는 거. ㅎㅎ 리뷰보니 마음의 준비반 기대반 또 설레네요.

아시마 2015-02-05 16:26   좋아요 0 | URL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다는 말, 저는 아주 어렸을 때 들었거든요. 모파상 여자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에서, 결혼전,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 읽으면 다 제각각의 감상이 나온다는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제가 책을 사서 여러번 읽게 되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직접 경험해 보면, 더욱 놀라운 느낌이더라고요.

이 책 읽은 뒤에 하이드님도 꼭 리뷰 써 주세요, 보러 가겠습니다~ ^^

다락방 2015-01-3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늘 그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을 어른이 되어 읽었다면 그때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을까? 하고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요. 지금 아시마님의 리뷰처럼요. 리뷰 쓰신 문장들 중에 `이제는 코린이 보인다`는 문장이 아주 인상 깊어요, 아시마님. 뭔지 알 것 같아서요. 그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인물이 보인다는 거 말예요.

아시마 2015-02-05 16:31   좋아요 0 | URL
음. 내용말고 책 그 자체로 봤을 때 그다지 잘 쓴 소설은 아닐 것이다,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요. 그 보다는 괜찮더라고요. 기대치가 워낙 낮았던 터라.

코린이란 인물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그렇다고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인 건 아닌데, 음... 뭔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그래서 반드시 누군가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인물이라면 어쩌면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 그 선택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지만, 음... 나이가 주는 연륜이겠죠. 이런 인간도 있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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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결국 문학은 작가와 함께 늙어가는 것인가를 생각하다 떠올린 작가가 하루키다. 하루키는 '문학적' 나이를 먹지 않는 작가다. 그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30대 중반이고, 그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는 30대의 감성을 여전히 유지하며 글을 쓴다. 육체의 늙음과 정신의 늙음이 함께 가지 않는 것이다. 젊게 사는 방법을 말하는 많은 책들에서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정신을 젊게 유지하라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하루키는 성공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나이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몇 안되는 작가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은 자카르타에서 읽었다. 이 책을 주문해 놓고, 책을 받기까지 기다리기가 안타까워 하루키의 또다른 소설 <상실의 시대>를 먼저 읽었다. 책 면지에 써 놓은 읽은 날자를 보니 2003년 10월 12일에 이 책을 처음 읽고, 다시 2013년 9월 8일에 또 읽었다. 읽고는 십 년이 지나도 재미있구나, 십 년 뒤에 또 만나자, 라는 오골거리다 손발이 녹아버릴 문구까지 써 놓았다. 헐. 어쨌든 상실의 시대를 읽고나서 다시 한달 뒤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었다. 2013년 10월 31일의 일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에게 이 책은 <상실의 시대>의 후일담으로 읽힌다. 속편이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쓴 글이 <상실의 시대>가 아니듯, 마지막으로 쓴 소설도 이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상실의 시대>와 <색채가 없는...>이 책이 하루키 문학의 양쪽 괄호처럼 느껴진다. 와타나베=다자키 쓰쿠루 이고, 이건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같다. 마치, 박완서 선생님의 책 <나목>과 <그 남자의 집> 같은 느낌이랄까. 


정확히 말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을 했고, 1987년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원제)으로 전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많은 독자를 하루키의 세계로 끌어들인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 역시 <노르웨이의 숲>(난 <노르웨이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처음 읽었고, 지금도 <상실의 시대>라는 이상한 제목보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이 그 책의 내용과 훨씬 부합한다고 생각한다)으로 하루키를 처음 만났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데뷔작처럼 느껴진다. 박완서의 <나목>처럼. 쓸데없는 잡설을 하나 더 붙이자면 <노르웨이의 숲>은 그가 그리스에 체류하며 쓴 작품이다. <먼 북소리>라는 그의 그리스-유럽 여행기(체류기?)에서 나오는 '쓰고 있는 소설, 또는 써서 일본의 출판사로 보내는 소설'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되시겠다.


<노르웨이의 숲>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라고. 그리고 그 비행기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게 되고 18년 전의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색채가 없는....>의 다자키 쓰쿠루는 36살이다. 현재의 여자친구 기모토 사라가 '무슨 영문인지 쓰쿠루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섯명의 친밀한 그룹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색채 가득한 네 명과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p.24)


<노르웨이의 숲>에서 고등학생인 와타나베에게는 3명이 모인 그룹이 있다. 와타나베의 가장 친한 친구 기오키와, 기오키의 연인인 나오코. 처음에는 나오코의 친구를 불러내 넷이 더블 데이트 같은 것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즈키와 나오코와 나(와타나베) 셋이 남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는 것이 제일 마음 편했고 또 잘 어울려졌다. 다른 아이가 끼여들면 분위기가 어쩐지 어색해지곤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1989, p.44


와타나베의 이러한 친구 관계는 다자키 쓰쿠루에게도 비슷하다. 단지 숫자가 다섯으로 달라졌을 뿐.


"우리들 사이에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암묵적인 룰이 있었어. '가능한 한 다섯이서 같이 행동하자' 라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어. 이를테면 누군가와 누군가가 둘이서만 뭔가를 하는 건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하자.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룹이 흩어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하나의 구심적인 유닛으로 존재해야만 했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 같은 걸 유지하려 했던 거야."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 그 물음에는 순수한 놀라움이 배어있었다.

쓰쿠루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고등학생이니까 이런저런 이상한 생각도 하는 거지."


p.28-29


와나타베가 가지고 있던 세사람의 조화로운 공동체는 기즈키의 느닷없는 자살로 깨어진다. 기즈키의 자살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고(소설 내내 끝내 안나온다. 내가 이 소설을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가의 시점이라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극중 인물 '나'는 끝내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고베에 남겨둔 채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을 해 버린다. 


쓰쿠루의 그는 나머지 네명의 친구들을 나고야에 남겨둔 채 홀로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지만, 방학이나 연휴때면 어김없이 나고야로 내려가 친구들을 만났다. 도쿄라는 낯선 환경 안에서도 그는 신칸센을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만 가면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친밀한 장소'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그 조화로운 친밀한 장소는 대학 2학년 여름에 깨어진다. 그 전 5월의 연휴때만 해도 멀쩡하던 그 장소는 여름에 나머지 네명의 친구가 동시에 쓰쿠루를 내치면서 그를 죽음과도 같은 상태로 몰아갔다.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들판의 우물 이미지가 나온다. 이건 나오코가 와나타베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우물은 초원이 끝나고 잡목 숲이 시작되는 바로 그 경계선에 있다. 땅 밑으로 빠끔히 열린, 지름 1미터 가량의 어두운 구멍을 풀들이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둘레에는 목책도, 높다란 돌담도 없다. 다만 그 구멍만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가장자리의 돌들은 비바람을 맞아 희끄무레하게 변색됐고 여기저기 틈이 벌어지고 무너져 내려 있다. 작은 녹색 도마뱀이 그런 돌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몸을 기울여 그 구멍 속을 들여다보이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내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그 우물이 아무튼 지독하게 깊다는 사실 뿐이다. 어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깊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는 암흑이-이 세상 온갖 종류의 암흑을 응축해 놓은 것 같은 암흑이- 가득 차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1989, p.18


친구들에게 내침을 당한 쓰쿠루 역시 그와 비슷한 절망의 우물을 겪는다.


도쿄로 돌아오고서 다섯 달, 쓰쿠루는 죽음의 입구에서 살았다. 바닥없는 시커먼 구멍의 테두리에 아주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서 혼자 살았다. 잠을 자다 몸을 뒤척이면 그냥 허무의 심연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 것 같은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떨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를 느꼈을 따름이었다. 


p.52-53


나오코의 우물은, 나오코가 와타나베와 꼭 붙어있는 한 너도 나도 절대로 빠지지 않는 우물이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그냥 죽 이렇게 너와 붙어있겠다고 말을 하지만 나오코는 거절한다. 그건 올바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결국 나오코는 그 우물에 빠져 죽지.


쓰쿠루 역시 그 죽음의 입구 옆 공간에서 몸의 구성이 고스란히 바뀌어 버린 듯한 이상한 감각을 겪는다. 그는 그곳에서 결국 죽어 버린 것인지도 몰라, 라고 생각한다. 친구 네명에게 존재를 부정당했을 때 다자키 쓰쿠루라는 소년은 사실상 숨을 거두었고, 여기있는 것은 '편의상 다자키 쓰쿠루라고 부르는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그 내용물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p.58)고 느낀다. 그렇게 쓰쿠루는 '흐트러짐 없는 조화로운 장소'를 잃은 채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하이다라는 새로운 친구도 만든다. 와나타베가 미도리를 만나는 것처럼. 


임사의 체험까지 한 쓰쿠루는 여자친구 사라의 도움으로 색채가 있는 네 친구의 현 주소를 받아 들고 과거를 재구성 하기로 한다.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갔던 친구들의 내침이 왜 있었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가장 먼저 아오를 찾아간다. 운동 선수였던 아오. 지금은 자동차 딜러 일을 하고 있는.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이후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므로 생략. 


여기까지 쓰고보니 <노르웨이의 숲>과 <색채가 없는...>은 별로 관계가 없는 이야기 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색채가 없는...>이 <노르웨이의 숲>의 후일담이라는 생각은 변하지가 않는다. 나오코와 시로의 이미지는 겹친다. 레이코씨와 사라의 이미지역시 겹친다. 


이야기는 소설적 구성을 달리했을 뿐, 결국은 고등학생 남자가 삼십대 중반이 되어 다시 16-18년 뒤로 시계를 돌려 과거를 재구성 하는 이야기이다. 그 재구성이 그를 어찌 바꾸어 놓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두권의 책을 순차적으로 이어 읽어 보시기를.


하루키는 여러가지 면에서 재능이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역시 1Q84 류의 책 보다는 이런식의 리얼리즘에 기반한 책이 더 어울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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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2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설정한 구도가 현재 나이도 돌아가는 스무 살도 삼사십 대의 어떤 해소되지 않은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 같아요. 아시마님 리뷰를 읽으니 노르웨이의 숲을 빨리 제대로 읽고 싶어져요.

아시마 2015-01-28 18:25   좋아요 0 | URL
음... 감히 말하건대, 칼의 노래를 읽지않고 김훈을 말 할 수 없고 태백산맥을 읽지 않고 조정래를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노르웨이의 숲을 읽지 않고 하루키를 말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개별의 작품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있겠지만 그 작가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읽어줘야 하는 작품들이 있죠. 가장 잘 쓴 작품이라기 보다는( 사실 그 평가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니까요) 그 작가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다른 작품들이 모두 그 작품의 파생형으로 보일 수도 있을만큼요. ( 물론 그렇다고 자가 표절 또는 복제를 의미하는 건 아니구요)

블랑카님의 노르웨이의 숲 감상기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