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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 앤드류스를 처음 접한 건 아마도 중학교 1학년쯤이었지 싶다. 그때 큰언니가 누군가에게 빌려 집에 가져온 책은 <오도리나>였다. 큰언니는 기를 쓰고 동생들이 그 책을 읽는 것을 막고자 했지만 나는 물러터진 큰언니의 반대를 뚫고 그 책을 읽었다. 나는 언니가 책을 읽는 속도의 (거짓말 조금 보태)세배쯤의 속도로 읽었으므로, 언니가 그 책을 읽다 덮어 두고 외출을 한 사이 다 읽어 버렸다. 언니보다도 빠르게. 


책은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는데 몹시도 기괴한 느낌이었다. 오도리나는 아직 열살도 안된, 아니면 많아도 십대 초반의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어느날 숲 속에서 누군가에게 강간(또는 윤간)을 당하고 그녀의 부모님은 무슨 치료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정확히는 그녀의 기억에 듬성듬성 구멍을 낸다. 정신의학적 용어로는 해리쯤 되겠다. 그때부터 그녀의 집에는 두명의 오도리나가 산다. 말하자면 지금 살고 있는 오도리나는 강간의 경험(?!)이 없는 오도리나이고, 언니 오도리나가 있었는데 숲에 들어갔다 강간을 당해서 죽었다...는 것이 그들의 시나리오이다. 


그 집에는 오도리나의 고종사촌이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또한 기묘하다. 오도리나의 고종사촌은 오도리나의 고모 딸이기는 한데, 아빠는 알고보니 오도리나의 아빠였다. 그러니까 고종사촌이 아니라 근친상간에 의한 이복형제라고 해야하나. 그 탓인지 그 고종사촌은 뼈가 유리처럼 쉽게 부서지는 병이 있었고 마침내 계단에서 굴러 죽고 만다. (죽었나? 안죽었나? 확실하지 않다.)


그 뒤 중학생인 나에게 주어진 앤드류스의 책들은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였다. 그 즈음 붐이 일었던 책대여점에서는 표지가 날깃날깃 닳아 중간에 두꺼운 호지키스 심을 박은 그 시리즈의 책들을 빌려볼 수 있었다. 


반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그 책을 읽었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작가에 대한 설명이 나돌았다. 그러니까 V.C. 앤드류스 역시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났고, 그래서 그녀역시 오도리나의 사촌언니와 같이 뼈가 유리처럼 약한 병이 있어 평생 휠체어에 앉아 생활을 했다고.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늘 근친관계의 남자들만 보니 그녀의 소설은 항상 근친에 의한 관계들만이 소재가 된다는.


그런 소문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만큼 그녀의 책은 모두 근친상간이 소재였다. 으악 스러운 소재이긴 한데 엄청나게 재미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를 다 읽고 헤븐 시리즈도 다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도온 시리즈에 가서는 두손을 들었다. 읽다가 독서를 포기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더는 못읽겠다, 하는 느낌.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수록된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의 말대로 '중학생인 나를 더럽힌 소설' 이었다.

기사 원문은 여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8059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뭔가 내 안의 깨끗하던 무언가가 좀 더럽혀졌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도온 시리즈는 읽기를 포기했음에도 (여러번 말했던 바, 내가 읽던 소설을 중단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일이다. 나는 읽던 소설을 중단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약간의 강박증 같은 게 있어서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다 읽는다.) 역시 김용언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재간 소식에 책을 구매한다. 


이놈의 완역 덕후는, 내가 읽었던 번역서의 '완역본'이 출간되었다는 말에는 정신을 못차린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 읽기를 즐기는 나는, 심지어 드라마를 보던 중 등장인물의 대사 한마디를 놓치는 것도 질색을 해서 드라마를 실시간 본방이 아니라 VOD로 주로 본다. 드라마를 보던 중간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드라마를 중지해 놓고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그런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더럽힌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하고 탐독했던 이 책의 완역본이 나왔다는데 사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산다, 산다, 무조건 사고 본다. 


그런데, 사기는 사는데...... 다인이 없을 때 얼른 읽고 다락방(이 있다면) 어딘가에 깊숙히 숨겨둬야 겠다. 다인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아니, 해인이도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풀어놓지 말아야지. 그래봐야 다인이도 중학생이 되면 엄마가 기겁할 책을 어디선가 찾아 읽을 테지만 아아, 내 책장에서 꺼내보는 건 좀 죄책감이 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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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1-2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오도리나도 생각나네요. ㅎㅎ 헤븐 시리즈도 가물가물 떠오르구요. 다시 읽으면 어떨까 정말 궁금해요.

아시마 2015-01-27 20:45   좋아요 0 | URL
오도리나...... 정말 기괴하기 짝이없는 책이었죠. 그 책중에 엄마가 아이를 욕실에 넣고 온몸을 박박 문질러 씻기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게 아마 강간을 당한 아이를 발견해 집에 데리고 온 직후였나.... 한동안 목욕할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었다죠.

헤븐 시리즈는 도온 시리즈랑 내용이 좀 헷갈려요.

하여간 이 작가도 머릿속이 좀 애매모호한ㅎㅎㅎㅎ 재미있는 건 이 충격적인 내용의 소설이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되기 까지 했다는 사실이죠. 미국에서도 인기는 인기였나봐요.

blanca 2015-01-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들 비슷한 연배. 비슷한 추억. 오도리나 저도 기억나요. ㅋ

아시마 2015-01-27 20: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70년대 중후반생은 거의 비슷한 추억일걸요? ㅎㅎㅎ

다락방 2015-01-2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의 꽃들 너무 충격이어서 헤븐시리즈, 도온시리즈, 오도리나 다 읽었었거든요. 오도리나, 정말 충격이었죠. 사실 강간을 당한 게 오도리나 본인이었다는 거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한테 무리지어 당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엄마가 집에서 욕조에서 오도리나를 되게 더럽혀졌다고 하면서 엄청 빡빡 씻기고, 그래서 기억을 잃는 걸로 기억해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등의 말을 해준 게 아니라, 너는 더럽혀졌으니 깨끗해져야 해, 하면서요. 크.

링크해주신 칼럼도 읽었어요. 아, 우리는 그러니까 다같이 그당시에 더렵혀진겁니까.

여기 댓글 달아주신 하이드님, 블랑카님, 저는 아마도 제가 알기로는 다 동갑일걸요? ㅋㅋㅋㅋㅋ 아시마님은 제가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한두살 차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하하하하하.

아시마 2015-01-28 10: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 아마 동갑일 거예요. 학번만 하나 정도 빠를걸요. 제가 1월생이라. 우리, 아마 럭키한 숫자가 두개 겹쳐졌던 그해에 태어났죠?

그나저나, 현대문학(폴라북스)에서는 앤드류스의 작품들을 모두 줄줄이 재간해 낼까요? 과연? 일단 이게 궁금합니다. ㅎㅎㅎ 오도리나가 재간 된다면 그건 사고 싶고, 헤븐이나 도온 시리즈는 노땡큐.
그래도 앤드류스의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서, 출판사가 돈 많~~~~~~~이 벌어서 다이애너 개벌든의 책 아웃랜더 연작들이나 계속 출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제발 책 좀 내줘!!!

다락방 2015-01-28 11:14   좋아요 0 | URL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 시리즈라면 저 역시 환영입니다만 ㅋㅋㅋㅋㅋ

프리강양 2015-02-1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던 객이 눈치없이 끼어들고 싶네요 ^^
당시 라디오 광고도 엄청 많이 나왔던 책이었는데, 전 책 줄거리 듣고 질색하며 거들떠도 안 봤어요. 할리퀸을 볼 지언정 이 작가는 제 취향과는 너무나 극에 있던 작가였거든요.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 시리즈는 저 역시 환영입니다 ㅠㅡㅠ 애증의 제이미 ㅠㅡㅠ
아웃랜더가 미드로 만들어져 방영 중이기도 해요. 배우들도 스코티시에.
다만 책은 뒤로 갈수록 작가의 의욕이 더해져 문화사 책이 되어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아아
 

얼마전 곽재구의 신작 에세이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었다. 판단은 일단 보류. 이 사람 글은 좋을 땐 참 좋은데, 음. 뭔가. 싶을 때가 있어서. 그래도 별 세개 반은 일단 주고. 

그 책에 그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 네번째 아름다운 학교 라는. 정확한 문장을 옮겨보면 이렇다.  

이 학교는 지상에서 네번째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첫째와 둘째 셋째 학교를 알지 못합니다. 빠따바반이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세개쯤은 더 있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곽재구, <우리가 사랑한 1초들>, 톨, 2011, p. 47  

요즘 나는 남편과 곧잘 페이스 타임으로 노는데, 약간 사오정끼가 있는 이분(실제 신체검사에서 청력 약화 소견이 나왔음!)에게는 정말 딱 맞는 소통의 방법이 되셨다. 그 전까지 우리의 대화는 보통 거의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이러했다. 

"뭐해?"
"책 봐."
"무슨 책?"
"블라블라블라...(책제목, 또는 저자 이름 등등등)"
"뭐라고?"
"블라블라블라... 라고."
"몰라몰라몰라?"
"아니, 블라블라블라!"
"아, 울라울라울라...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
"울라울라울라 아니고 블라블라블라아아아아!!!"
"니가 아까는 줄라줄라줄라 라며."
"됐어! 이 사오정!!" 

요즘은, 똑같은 질문에 그냥 화면으로 비춰준다. 그럼 그나마 노안은 안 오신 이분, 책 제목이랑 저자명이랑 잘 읽어주신다. 그러고는 묻는다. 

"무슨 책인데?
"뭐 이러쿵저러쿵 하는 책이야."
 

그럼 반드시 하시는 말. "무슨 그런 책을 읽냐." -_-;;; 

이번에 읽던 책은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와 <호박속의 잠자리> 7권을 사흘간 달렸다. 2004년에 마지막으로 읽고 덮어뒀다가 다시 꺼내 읽었는데 여전히 완전 재미있음. 역시나 남편님하와 같은 질문을 반복한 끝에, 

"내 인생의 10대 소설 안에 들어가는 책이라 할 수 있지." 

라는 말을 무심코 덧붙였더니 그런 말 절대 놓치지 않는 이분, 바로 질문한다. 

"그 10대 소설에 들어가는 다른 책은 뭔데?" 

그래서 꼽아본 내 인생의 10대 소설들. 

 

이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영원한 1순위. 

토지.  

p.s 문득 자랑질. 나 토지 1번에 박경리 선생님 저자 싸인 받아놨다아아아아!!! 

 

 

빠질 수 없는 2순위  

빨간머리 앤.  

빨간머리 앤이랑 토지는 내가 몇번이나 읽었을까 곰곰 생각중. 각각 10번은 넘지 않았을까? 뭐가 날 이리 매료시킨 걸까.  

p.s. 문득 추가, 앤 번역 판본 모으고 있음. 

그리고 이번엔,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음, 뭔가를 딱 하나 찝어서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냥, 박완서 선생님의 책들, 이라고 넣어줘야 할 것 같은. 

이래서 목록은 무한대로 길어지고 있음. 이건 뭔가 반칙같지만, 뭐 어쩌라고, 어느 한권을 뽑아낼 수가 없는데. 3순위에 놓는 것도 이건 뭔가 아닌듯. 에세이를 뺀 것도 죄송스러움. 내 인생관 사고관 가치관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신 관계로다.

 

 

 

드디어 나온 단행본. 이 책 이후로 김훈 선생은 많은 글들을 써 냈지만 여전히 이 책의 아우라를 벗어나지 못하셨다는 느낌. 

p.s. 나 또 자랑질. 이 책이 동인문학상을 타기 직전 2001년 생각의 나무에서 은빛 장정으로 나온 적이 있다는. 그 책 되게 예쁜데, 나 가지고 있다눈!!!  

 

그리고, 5,6,7,8,9는 여전히 블랭크인 상태로. 

다이애너 개벌든의 <아웃랜더>랑 <호박속의 잠자리>(둘다 아웃랜더 시리즈.) 

이 책은 나에게 영어공부에 대한 열망... 이라기 보다는 어쩔수 없는 필요성을 자극하는 책.  

현대 문화센터가 다음 시리즈들을 번역해 주기만을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건만... 

2006년에 출간되리라던 시리즈 3편 번역본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임. 현대 문화센터는 각성하라! 

음, 그리고 순위 외지만 11번쯤엔. 

<앰버 연대기> 넣어주겠음. 

 

 

 

ps. 문득, 

서재 식구님들, 잘 계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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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9-1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의 10대 소설이라... 재밌어요.

아시마 2011-09-16 16: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런 줄세우기 좋아하는 저는 .... 좀 쫌스럽고 많이 촌스럽고 꽤나 편협하지요.ㅎㅎㅎ 그러나, 이런 줄세우기, 재미있죠?

다락방 2011-09-15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저 이 페이퍼 클릭하기 전에 막 두근두근 했거든요. 뭐가 있을까, 나랑 겹치는게 있을까,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한권도 겹치지 않아서 좀 놀랐어요. 생각해보니 아시마님은 주로 국내소설을 애정하시고 저는 번역소설을 애정하지요. 겹칠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토지]는 좋았어요. 한번 밖에 읽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시마님도 아웃랜더 읽으셨군요! ㅎㅎ 젊은 청년 제이미 ㅎㅎㅎ
좀 자주 오셔서 글 좀 써주세요, 아시마님!! 네?!!(안그러면 즐찾 빼버릴거에욧! 흥!)

아시마 2011-09-16 16:52   좋아요 0 | URL
젊은 청년 제이미는 겨우 23살. 그러나 최고의 남주여요.

즐찾 빼신다는 말은.... 열심히 써 보렵니다 ㅎㅎㅎ 잘좀.

Ps. 또 문득 자랑질, 저 지금 아이 패드로 서재질 중!!!

blanca 2011-09-1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저도 모르게 기다렸나 봐요. 아시마님의 강추 리뷰를 읽고 <토지>를 읽은 게 올해의 유일한 의미 있닌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칼의 노래>의 아시마님 평에 동의해요. 얼마전 이런 생각도 했어요. 김훈에게 이순신이 임해서 ^^;; 김훈이 받아 쓴 것 같다고.

아시마 2011-09-16 16:53   좋아요 0 | URL
김훈이 이순신에게 임햤단 말엔 저도 격하게 공감가요.
 

인터뷰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가 진실이라고 믿으세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때가 있나요? 인터뷰를 읽은 것으로 내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거라고 믿으세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렇죠. 어쩌면 그 어떤 글쓰기보다 공적인 글쓰기 같기도 하고, 그 어떤 발언보다 사적인 발언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극단적인 개인사와 극단적인 공적 발화가 뒤섞인 장르가 인터뷰죠. 

잠깐, 제가 방금 '장르'라는 말을 썼나요? 흠. 인터뷰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문학의 범주안으로 들어간 하나의 장르. 그럼 이 인터뷰는 "한국문학통사"를 집필한 조동일 선생식의 분류를 따르자면 교술장르인 걸까요, 서정장르인 걸까요. 인터뷰란 결국,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아니면 나의 외면을 치장하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이것에 따라 서정이냐 교술이냐가 나뉘겠군요. 인터뷰를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도 여기서 결정이 나겠군요. 그런데 잠깐. 우리 흔히 그런말 하잖아요. 패션은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거라고. 그럼 말로 나를 치장하는 것또한 나의 내면의 반영이니 결국 인터뷰란 내 내면의 표현이되는 거네요? 결국 서정장르로 들어가야 하나요? 아. 학부시절에 참 지겹게도 했던 말들.  

작년(그래요, 벌써 작년!), 2010년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었던 김혜리의 책을 볼까요.  

 

 

씨네 21의 기자인 김혜리와 22명의 "크리에이티브 리더"가 한 인터뷰를 하나로 묶어서 냈어요. 아무래도 영화잡지라는 한계가 있으니 당시 이슈가 되는 영화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포함된 인터뷰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영화와 상관없는 신경민 앵커나 유시민 님이나 장한나, 번역가 정영목 등등의 인터뷰도 있네요.  

사실 이 책은 고현정의 인터뷰가 보고 싶어서 샀는데, 정영목의 인터뷰가 뜻밖에도 몹시 흥미로웠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으로 번역가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한 번역가가 정영목이었거든요.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말이죠. 인터뷰 중에 정영목도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줄바꿈이나 따옴표를 전혀 쓰지 않고 줄줄줄 기술하는 책을, 그것도 중역(포르투칼어->영어->한국어)으로 옮겼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정영목의 번역이라면 별 고민없이 집어들죠. 그렇다고 정영목이 자기 냄새를 많이 풍기는 번역자는 아니예요. 이윤기는 이윤기 스럽게, 김연수는 김연수 스럽게 번역을 하는데 정영목은 자기 냄새를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정영목은 이렇게 말하죠.  

   
 

저보고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번역스러운 번역쪽을 택하겠죠. '번역투'가 나쁘다는 것이 통념인데,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거든요. 번역인데 번역투가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나요?................ 저는 번역의 매끄러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번역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p. 318 

 
   

 번역문이 번역스러운거, 그게 정영목스러운 번역일거예요. 아마. 그래서 저는 정영목을 좋아하구요.  

김혜리의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런식으로 흘러가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끄집어 내고, 상대방이 물어 주었으면 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김혜리의 인터뷰집을 읽고 있다보면 새록새록, 어머 이 사람 참 매력있네, 싶을때가 많아요. 이 책 이전에 나온 인터뷰집  

 

 

이 책에서도 김혜리의 장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김혜리의 인터뷰는 보통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죠. 한두페이지 정도, 김혜리가 생각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스케치가 들어가요. 그 스케치를 읽어보면, 김혜리는 이 사람을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인터뷰는 어떤 형태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문답 형식이 시작되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듯 중간중간 괄호안의 (좌중 폭소)라는 대목도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격성은 별로 없는, 가능하면 장점을 뽑아 내려 노력하는, 그래서 이충걸 식으로 말하면 '아름다운 거짓말'을 완성하는 거죠.  

이 책에서 김혜리의 인터뷰이는 전방위적이예요. 배우는 물론 기본베이스이고요, 소설가(박민규, 박완서) 만화가(김진) 건축가(황두진) 디자이너(정구호) 사진작가(구본창) DJ(전영혁) 등등. 그래서 인터뷰집 본연의 재미를 충족하게 해 주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재미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별난 생각들을 하며 각각의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보는 재미요. 그게 아마도, 제가 인터뷰라는 걸 읽는 최고의 목적이니까요.  

김혜리의 인터뷰집은, 말하자면, 사실과 비유의 비율을 7:3 정도로 유지하고 있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이 6:4 정도 되어요. 김혜리라는 창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김혜리가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씩은 김혜리의 아우라를 덧입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들 닮은 꼴로 보인다는 단점이. ^^ 하지만, 어쨌든, 정말이지 썩 괜찮은 인터뷰집이라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요. ^^ 

자, 그럼 이번에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을 나눈다는 것이 의미없어지는 이충걸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이충걸을 아시나요? 이 친구, 참 독특한 친구죠. 남성잡지 GQ의 편집장인 이 친구는 사실, 여성성을 굉장히 강하게 풍겨요. 외모와 취향에서도 그렇고, 사실 글쓰는 스타일에서도 그래요. 섬세한 떨림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이 친구에 대해 "인터뷰 기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 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고, 소설가 은희경은 이 책의 발문에서  

   
 

그는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 그에게는 라디오 속처럼 사람을 뜯어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있죠.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과연 인터뷰라는 글쓰기에서 가능한 걸까요? 이충걸은 자신의 그러한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듯, 이 책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을 탈피해요. 일종의 에세이를 쓰듯, 줄줄줄 내려가죠. 일반적 에세이와의 차이라면 인용부호(따옴표)가 좀 많다는 정도? 

김혜리와 이충걸의 인터뷰이는 단 한명도 겹치지 않아요. 이건 두 사람의 성향 차이가 가져온 인터뷰이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시의성이 강한 인터뷰의 특성상 당시에 회자되는 인물의 차이일수도, 게재되는 매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 사실 첫번째 이유가 가장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김혜리와 이충걸이 만나고 싶은 인물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거죠. 이충걸은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것에 집착....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자, 이제 이충걸과 비슷하게, 패션 잡지에 실리는 인터뷰를 한 김경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김경은 패션지 월간 바자의 편집장이죠. 이 책의 인터뷰들은 대부분 바자에 실리기 위해 작성된 것들이구요. 제목대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가 있고, 가수 싸이의 인터뷰로 끝이 나네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인터뷰가 있어요. 아, 이 인터뷰를 할 때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가 읽을때는, 그분이 나와 함께, 이곳에 계셨군요. ㅠ.ㅠ 

김경의 인터뷰집은 특별한 형식이 없어요. 이충걸과 김혜리의 중복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아무래도 패션지라는 형식상, 이런식의 질문이 나올때도 있죠.  

   
  외람된 질문입니다. '나쁜 여자 매뉴얼' 같은 데 나오는 얘기인데, 나쁜 여자들이 질질 끌지 않고 첫눈에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답해주길 바랍니다.
1. 최근에 무슨 영화를 봤나요?
2. 신발은 어디서 사나요?
3. 섹스나 전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p.26 김훈과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
 
   

그러니까 말이죠, 우리의 김훈 선생께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거죠.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거야 원. 김훈 선생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영화는 안보고, 신발은 내 손으로 한 번도 사 본적이 없고, 그리고 세번째는 남녀의 사랑의 감정으로 풀어버리는데, 그야말로 우문 현답이죠. 

얼마전 읽은 평론이었나, 아, 성석제의 글에서였나 김경을 새로운 기대주 중의 하나로 평가하던데, 저도 뭐,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음. 왜, 새로운 기대주일까, 싶어서요. 새로 글 내시면 꼭 읽어볼 의향이 있는데 아직 본격 소설이나 시나... 그쪽 장르는 손을 안대시는듯.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경의 인터뷰 집에서는 약간 마이너한 성향의 인터뷰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김형태라든가, 한대수라든가,백현진 이런 매니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죠. 그리고, 김혜리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크리에이티브 리더" 라고 칭한 것과 달리, 김경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단독자"라고 표현합니다. 리더와 단독자의 어감의 차이는, 그대로 김혜리의 인터뷰이들과 김경의 인터뷰이들의 차이를 압축하기도 하고, 인터뷰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혜리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즉, 인물의 매력을 강조하는) 인터뷰를 한다면, 김경의 인터뷰는 단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즉,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는)인터뷰에 치중합니다.  

자,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넘어갈까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인터뷰 전문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 지승호님의 인터뷰집입니다. 지승호는 김경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터뷰를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이 책을 볼까요. 

 

이 책의 부제는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탐구를 시도하고 있는, 말하자면 시사성이 굉장히 강한 인터뷰를 하시는 거죠.  

이 책은 꽤 두껍습니다. 400 페이지가 넘으니까요. 이 400 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다루는 인터뷰이는 고작(고작?) 9명입니다. 9명의 인터뷰이와 8개의 인터뷰를 하는 거죠. 인터뷰이도 문화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룹니다.  

진중권이라든가, 홍세화 라든가. 그나마 좀 소프트한 쪽으로 가면 김어준과 손석희가 있겠네요. 김동춘과 한홍구는 아이고야, 싶구요. 이건 인터뷰라는 형태를 띈 강연이다 싶을 때가 있어서.  

책은 그다지 쉽게 술술 넘어가지 않습니다. 꽤나 딱딱한 부분이 많아요. 그나마 진중권이 워낙에 말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라 진중권 편이 잘 넘어가고, 손석희는 알아듣게 말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다 싶구요.  

이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2004년 당시의 시사의 포인트를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지승호는 정말 드물게 제대로 인터뷰를 해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이구요.  

이런 지승호가 이번에는 한권을 통 털어 한 사람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2008년, 2009년을 통털어 베스트 셀러중의 한권이었죠.  

지승호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공지영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을 많이 없애준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 책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이 있는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인터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마주치다 눈뜨다 : 2005. 10.2 
괜찮다, 다 괜찮다 : 2010. 5. 8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2007. 6. 14
해를 등지고 놀다 : 2004. 12.1
진심의 탐닉 : 2010. 12. 24 
그녀에게 말하다 : 201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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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0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또 관심이 겹쳐요. 김혜리의 저 책 두 권과 지승호의 인터뷰, 다. 이충걸의 것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바자,GQ 이러면 왠지 삶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도 다 근사할 것 같다는....저도 인터뷰 아주 많이 좋아해요.

아시마 2011-01-03 22:26   좋아요 0 | URL
이충걸의 책은, 음... -_-;;; 약간 난해해요. 글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이충걸에 대한 태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죠.
굉장히... 뭐랄까... 수식적인 문장을 쓰는데, 스티븐 킹이 그랬죠. 지옥으로 가는 길엔 부사와 관형사가 깔려 있을 거라고. 징글징글하도록 많은 수식어들 부사어 관형어 부사절 등등등을 구사하는 작가라 음...
뭐, 저는 싫어하진 않지만요. ^^ 때로는 음, 맞다, 미원을 듬뿍 넣은 음식 맛 같아요, 글이.

저절로 2011-01-0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좋아해야 할 분위긴데요.
오히려 시마님이 인터뷰어들을 인터뷰한 것 같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떡국 드셨어요?


아시마 2011-01-03 22: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나라에도 떡국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서 먹던 그런 쫄깃한 떡은 아니구요. 쌀의 품종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끓여놓으면 풀어지고 이에 달라붙는 그런 떡국이라... 맛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먹긴 먹었습니다. ㅎㅎㅎ
그 덕에 한살 더 먹었고요. 애들도 남편도 다 한그릇씩 먹였지요.

인터뷰, 좋아해 보세요. ^^ 재미있다니까요. 거짓말이라도 재미있고 참말은 참말이라 더 재미있고, 허세에 쩔은 말도 재미있고, 진솔한 말은 진솔한 맛에 정말 쫄깃하니 맛나지요. ^^
 

작년 이맘때쯤, 황경신의 프로방스 여행기를 읽었다. 그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애초에 나는 독일이나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그쪽으로 갈 사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 떠올린 곳은 그리스였는데, 생각해보니 그리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이나 살다가 돌아와서 『먼 북소리』라는 훌륭한 여행서를 낸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3년이나 살 수도 없을뿐더러 살다 온다고 해서 하루키보다 재미있는 책을 낼 자신도 없기 때문에 마음을 접기로 했다.  

p. 15 

그때, 내 책장에는 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꽂혀 있었다. 그것도 한 10년전에 사다 꽂아 둔 책이었다. <먼 북소리> 읽기를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난 책을 읽다 덮어두는 일을 별로 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먼 북소리는 두어번 시도해서 5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곤 했다. 특별히 글이 재미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내가 가진 일종의 징크스 같은 거다. 첫판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번에도 쉽게 되지가 않는거. 하지만 황경신의 말은 그런 징크스마저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몇달 뒤, 드디어 나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 읽기에 성공한다. (정확히 3개월 뒤였다.) 읽고나서 알았다. 이 책이 <상실의 시대>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하루키의 책이 된 이유를. 

하루키의 책을 읽고 곧 이어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체류기?)를 읽었다.  

하루키를 의식해 그리스를 피해 간 황경신과는 달리, 김영하는 하루키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인지, 둘의 체류지는 많은 부분이 겹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도 비슷하고, 비교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마흔 살이 되려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긴 여행으로 몰아낸 이유중의 하나이다. p. 16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너무 지쳐 있다는 것이다. 참 내, 어쩌다 이렇게 지쳐버렸지? 그러나 아무튼 나는 지쳐있다. 적어도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그것이 내가 껴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두 편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생각하고 있다기 보다는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쓰면 좋은가, 어떻게 쓰면 되는가, 그런 것도 대충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대로 영원히 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분조차 든다. 그리고 머리 안으로는 벌이 붕붕 날아다니고 있다. 너무 시끄러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p. 30 

이런 이유로 하루키는 일본을 떠나 그리스 로마로 떠난다. 그럼, 우리의 영하씨는(사실은, 내사랑 영하씨, 라고 쓰고 싶지만, 김영하의 아내님이나 충무공이 보면 기분 나쁠 것 같아 참는다. 뭐, 어쩌면, 김영하씨가 보고도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더욱 큰 이유다. 쳇.) 그 멀고먼 시칠리아, 마피아들의 섬으로 왜 떠나셨나.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국립 예술대학의 교수였고 네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였고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서울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가 있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받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엔 내 책들이 어깨를 맞댄 채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p. 19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저주의 형식을 닮았다. 너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소설 쓰기에 대한 얘기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그 시간에 네 자신의 소설을 써서는 안된다. 너는 다른 사람의 예술에 대해 얼마든지 말해도 좋다. 신나게 떠들어라. 하지만 그 시간에 네 소설을 이야기 하거나 그것을 써서는 안된다. 나는 그 저주의 대가로 월급과 연금을 보장받고 꽤 쏠쏠한 출연료를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기분이었다. 쉬익쉬익,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들렸다. p. 21

 

두 사람의 작가는 놀랍도록 동일한 이유로 각자의 생활터전을 포기하고 모국을 떠난다. 오직,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서.  

김영하는  로마를 거쳐 라파리 섬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섬에서 그는 스무살적의 자신을 만난다. 그 부분은, 이 책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07년 겨울, 나는 시라쿠사와 타오르미나에서 한동안 기시감에 사로잡혀 먹먹해지는 마음을 다잡느라 애를 먹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그리스식 극장때문이었다. 20년 전의 그 노천극장이 거기, 시칠리아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라쿠사의 퇴색한 석회암 계단에 앉아 저 멀리 희붐하게 빛나는 지중해의 수평선을 보며 열아홉 살의 봄에 경험했던 찬란한 행복을 회상했다. 모두 같은 색의 티셔츠를 입고 손을 높이 쳐든채 <젊었다>를 부르던 그 날을. 그럴 때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갈데 모를 방랑이 아니라 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내면으로의 항해가 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타오르미나의 그리스식 극장에 앉아 나는 그때의 노래를 소심하게 웅얼거린다. 간단한 가사를 계속하여 반복하던, 그래서 신입생들도 쉽게 따라 배울 수 있었던 그 응원가는 이렇게 끝난다. 그대여, 그대여어어,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
김영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랜덤하우스, 2009, p. 87-88 

이 구절을 읽는데 왜 갑자기 울컥했었을까. 이 글을 쓰느라 다시 이 책을 펼쳐서 이 구절을 보는데도 여전히 울컥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젊었다>를 그리스식 극장에 앉아 흥얼거렸을 김영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그 생각을 한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흥얼거리고 있었을 김영하는, 사랑해 줘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로마를 거쳐 들어간 라피나를 시작으로, 김영하는 두달간, 시칠리아 지역에 머문다. 여행기의 나머지 부분은 평이하다. 그렇다고 평범한 여행기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무려 김영하가 쓴 여행기이니까. 여행기도 위트있다, 이 친구는.  

그리고 그렇게 떠난 김영하는 아직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책에 의하면, 2008년 8월부터 캐나다 밴쿠버의 UBC대학에서 1년동안 머물러 있었을테니, 2010년 8월인 지금, 그는 어디를 흘러다니고 있을까. 그는 오지 않고 그의 책만 물결에 밀려 한국에 왔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소문에 의하면, 그의 새로운 단편집은 썩 괜찮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가 그의 재능을 허비하지 않아서. 조금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와 같은 나이에, 그와 같은 이유로 모국을 떠났던 하루키가 그 여행에서 그 자신의 최고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실의 시대>를 써냈던 것처럼, 김영하도 무언가를 들고 돌아오기를, 그리고 하루키가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철딱서니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젊은 글을 써 내는 현역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김영하도 그럴수 있게 되기를. 사실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다 좋아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뺄 수 없을만큼 사랑하지만, 그래도 노년문학으로 접어든 것은 슬펐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겠지만, 나는 김영하가 노년문학으로 가는 건 정말 바라지 않는다. 80이 되어서도 김영하는 김영하였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여행기라기보다는 체류기 또는 생활기에 가깝다. 김영하의 책이 여행기답게 자신이 방문한 지역의 특산물과 명소를 소개하고 그 지역에 얽힌 문학이나 고전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 과는 달리, 하루키의 책에서는 관광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이사를 했으니 옆집 사람은 이런 사람이 있고, 나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그럴거면 뭐하러 굳이 로마까지 가냐 싶기도 하지만, (로마, 그 복잡하고 물가 비싼곳!) 그거야 하루키 마음이고, 그는 거기서도 콜로세움에 가는 대신 영화관에 가고, 트레비 분수에 가는 대신 마라톤을 한다. 이 글 역시 하루키답게 재미있다.  

하지만 글 어디에서도 그의 내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속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외부 풍경이 건드린 자신의 내면을 펼쳐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라피나 섬의 원형극장이 김영하의 내면을 어떻게 건드렸는지, 김영하는 고스란히 펼쳐보인다. 하지만 하루키는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이, 일본인의 특성인건지도 모르겠다. 민족성이라는 게 전혀 없을수는 없을테니까. 일본인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하루키지만, 읽어보면 가장 일본적인 감성을 다루는 작가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작년 하반기, 김영하의 여행기를 읽고서, 써보면 재미있겠다, 생각한 글을 이제야 쓰고 있는 나는 뭔가. -_-;;; 지금까지도 안쓰고 있던 내가 게으른 건지, 1년 전의 생각을 끝까지 지켜낸 내가 집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ps1. 요즘 나는 꿩대신 닭을 하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신작 에세이집을 읽고 싶은 나머지 박완서 선생님의 다른 책들을 세권이나 읽었고, 김영하의 신작 단편집을 읽고 싶은 나머지 김영하의 다른 책들을 차례로 독파해나가고 있다. 하루키도 마찬가지. 사실 이 글은 그 꿩대신 닭의 결과물이다. 흑흑. 불쌍하다, 나.  

ps2. 충무공의 사랑이 식었다. 예전엔 다섯권씩 갖다주고 그러더니, 이번엔 딱 두권만 주문하라고 해서 김영하와 박완서의 신작을 선택했다. 하루키와 영원의 아이와 김이설은 또 뒤로 밀렸다. 에혀. 사랑이 식었어어어어어어어어어! \ 

ps3. 여튼, 며칠만 기다리면 김영하도 박완서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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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1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가들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을 알수있어서 이런 글이 좋습니다.

아시마 2010-08-11 11:33   좋아요 0 | URL
리뷰를 쓰고 읽는 재미가 그런거 아니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욕하면 막 열받기도 하고, 취향이 같은 사람 만나면 막 열렬히 찬양하기도 하고(제 취향은 열렬한 찬양쪽. ㅎㅎ) 서재질이 그래서 재미있나봐요.

그리고, 한 작가에 대한 리뷰를 꾸준히 쓰다보면, 그 작가의 변화도 느껴지지만 글을 보는 나의 눈이 달라진다는 것도 느껴져요. 예전에 읽었던 글을 새로 읽고, 예전에 읽고 써 뒀던 리뷰를 읽으면, 막, 남이 쓴 것 같을때가 있다니까요! 전 그런게 좋아요.

stillyours 2010-08-1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유월, 높은 곳에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읽었어요.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떠나지 않는 한 결국 여기구나,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래 전에 읽은 <먼 북소리>가 새록새록 떠올라 두근거렸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아시마 2010-08-11 11:41   좋아요 0 | URL
달님 안녕하세요. (문득 울 딸들이 환장하는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 달님 안녕이. ^^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대부분 유아들의 '훼이보릿'북이라지요.)

높은 곳에서라면, 어디에서 읽으셨던 걸까요? 설악산이나 한라산 같은 산? 아니면 63빌딩 스카이 라운지?(아. 이 빈약한 상상력.)

떠난다고 해도 똑같은 것 같아요. 중심에 대한 구심력이 강한 사람들은, 떠나도 떠나지 못하고 늘 한쪽발을 걸쳐두죠. 때때로 저는 장 그르니에 식의,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어쩌면 지금 그런 상황인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은, 뭐. 귀환을 염두에 둔 떠남이라는 건, 결국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먼 북소리, 네, 저도 참 좋았어요. 그렇게 살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마음 나눌 배우자랑 단 둘이, 우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밥 지어 먹고, 영화보고, 글 쓰다가, 때때로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가고. 그런데 이렇게 쓰고보니, 참 무책임한 삶 같기도 해요. 아니, 자기 인생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 있지만, 나머지 것들, 예를 들면 관계라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정확히 반반이 있는데, 배우자와의 관계 이외의 관계는 맺지도, 맺더라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태도 같아요. 책임지기 싫으니까 관계 맺지도 않는, 아, 그러고 보니, 하루키 문학의 쿨함의 배경이 이것인지도.

-_-;;; 저 지금 달님 댓글에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걸까요. 아. 이건 정말 하루키 식의 총체적 난국이군요. 흠.

LAYLA 2010-08-1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 북소리는 베스트이고, 김영하씨 책은 바로 장바구니로!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 근데 김영하씨 한국에 계시지 않나요? 6월에 뵈었는데.. ','

아시마 2010-08-11 11:43   좋아요 0 | URL
헉, 한국에 계신가요? 음, 작가 사인회나 출간 기념 등등해서 잠깐 들어온 거 아닐까요? (이건 뭔가, 들어오면 안된다고 막 우기고 있는듯...;;;)

내 맘대로 막, 외국에 보내버렸군요. 흠...

blanca 2010-08-1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도 김영하를 스토킹하기로 했습니다. ㅋㅋㅋ 사생활도 집요하게 파구요 ㅋㅋ 사실 그리 관심없을 때부터 아내가 참 궁금하기는 했답니다.

너무 신기해요. 저 막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그리고 그 담에 또 김영하의 <호출>을 읽을까 했었는데. 아시마님의 리뷰가 기다려져요. 제가 홀릭해 있는 두 작가의 근간을 연대기처럼 읽어내는 리뷰 정말 기대됩니다. 젊음. 저 그기분 알 것 같아요. 김영하님, 아시마님, 저. 찬란한 젊음. 그 시간을 동시에 떠올려 봐요.

<먼 북소리>는 읽으려다 빽빽하고 두꺼워서 안읽으려고 결심했었는데...방금도 도서관에서 빼보고는 말았어요. 아시마님의 리뷰로 갈음할래요^^

아시마 2010-08-11 11: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열아홉 살때의 그 찬란한 행복감이라고 하니까, 음,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그때의 그 기분이 막 살아나면서, 뭔지 알것 같아요. 저도 대학 신입생때 들었던 노래들은, 여전히 특별하거든요.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막 그대로 살아나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괜찮기는 한데, 하루키의 에세이는 뭐랄까, 동어반복이 심해요. 어떤거 하나만 읽으면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는데, <달리기>랑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든가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이런걸 읽으면, 맨날 하는 그 말이 그말이다, 싶어요. 이건 예전에 김훈 에세이집 <밥 벌이의 지겨움>보면서도 했던 생각이기는 한데, 그런거 있잖아요. 글을 잘 쓰고, 인지도 높고 잘 팔린다 싶으니까 여기저기서 청탁이 막 쏟아져 들어오고, 그럼 그 청탁 받아 글 다 써주고(물론 다 써주지는 않겠지만) 그러다 보니까 동일한 시기에 너무 많은 글을 써냈다, 라는 느낌? 김훈이나 하루키보다 훨씬 더 많은 글을 써내는 박완서 선생님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되는 걸 보면, 참 희한해요. 하긴 김훈 선생도 <밥벌이의 즐거움>을 마지막으로 그런 동어반복이 좀 줄었다 싶긴 하지만요.

자자, 작가 스토킹에 일가견이 있는 제가, 작가 스토깅 방법을 말씀드리겠는데 말이지요, ㅎㅎㅎ 작가 스토킹을 하려면 일단,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으셔야 해요. 반드시. 젊은 김영하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2002년에 출간된 에세이집 <포스트 잇>을 읽으세요. 그리고 좀더 자라면 2006년에 출간된 <랄랄라 하우스>가 있지요. 물론 영화 에세이도 두권 <굴비낚시>와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가 있는데 작가가 쓰는 영화 평론이란 늘 딴소리를 하게 마련인지라, 읽으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모아들어 조합하면 김영하가 됩니다. 물론 김영하의 아내도 만들어 낼 수 있고, 심지어 장모님도 가능합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사는 지역 등등은 뭐, 껌이죠. 침고로 김영하 아내는 부산 사람이고 장모님은 부산에 살고 계십니다. 네네네. ㅎㅎㅎㅎㅎㅎㅎㅎ

이 글 쓰다가 또 생각이 났는데, 그러고 보면 말예요, 박완서 선생님은 그렇게 많은 에세이를 써 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극단적일 정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이리 저리 변형해서 나오지만 그나마도 남편에 한정되었고, 자식이 글에 등장하는 건 정말 보지 못한듯.

하긴, 나중에 <한말씀만 하소서>로 모두 말씀하시긴 하셨지만요.

마녀고양이 2010-08-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블랑카님의 서재에 이어 아시마님이 서재에서도 김영하 님을 보는군요.
한번 읽어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나저나.. 인도네시아는 덥지 않나요? 한국 너무 덥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여행기, 또는 사는 얘기 부탁드려여, 아시마님 글이야 워낙 이쁘니.. ^^

아시마 2010-08-11 12:06   좋아요 0 | URL
김영하는 한번쯤은요. ㅎㅎㅎ 읽다보면 빠지십니다. 단편으로 시작하셔요~
그렇지만 막 중독성있는 매니아적 작가는 아니예요.

인도네시아 덥죠. 전에도 말했지만, 한국은 가을이라는 희망이 있잖아요! 벌써 8월도 중순이고 입추도 지났고, 처서만 지나면 덤불밑이 훤해진다는 말도 어른들은 하시던데. 저희 외할아버지 기제가 처서거든요. 그래서 외할아버지 제사만 지내고 나면 여름도 다 갔다고, 그런 말씀하시던 기억이 나요.

여행기는, 여행을 하지 않으니... -_-;; 사는 이야기는 그렇잖아도, 흑흑, 식모가 바뀌고 기사가 바뀌고(사실 이 나라 아줌마들 화제의 90%는 식모와 기사라는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설마가 설마가 아녜요. 워낙에 어이없는 사고를 퍽퍽 쳐주는지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정말 버라이어티한 며칠을 보냈는데 말이죠. ㅎㅎ 기대하시라~
 

내가 옷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들 묻는다. 양재 전공했어요? 아니요. 국문과 나왔는데요. 그러면 또 묻는다. 옷 관련 회사를 다녔나요? 아니요. 전공 살려 취직했었는데요. 그럼 학원을 다닌건가요? 아니요. 그냥 책보고 만드는 건데요. 그럼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가 비슷하다. 원래 손재주가 있으셨군요! 

글쎄, 내가 원래 손재주가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내가 손재주가 전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 하며 30년 가까이 살았고, 막상 양재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잘 하리라고는(음하하하하하!!! 자화자찬이 내 삶의 모토닷!) 나 스스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손재주가 없어서 하고 싶어도 못해요, 라고 말하는 당신, 당신도 양재의 달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과 블로그의 발달이 각종 취미생활의 활성화를 만들어 냈다는 건 굉장히 특이한 역설같다. 인터넷은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불러들여 현실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로 되돌려 보내고 오프라인의 인맥과 취미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게 알라딘 서재. 서재질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다. 원래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재질을 하는 거지만, 서재질을 통해 더 많은 책을 알게되고 더 많이 읽게 되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눈다. 이건 참, 특이한 역설이다.(나중에 누가 이와 관련하여 책 한권 써줬으면 좋겠다. 만약 이미 나와있다면 추천바람.)  

독서라는 취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취미들이 블로그와 인터넷을 통해 강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핸드메이드다. 여인네 규방의 개인적인 취미가 햇살아래 드러났다. 취미는 빠르게 전파되고, 새로운 동호인들을 끌어들인다. 모든 취미는 유행처럼 번져가는 것이다. 한때 십자수가 그렇게 유행을 했던 것처럼. 요즘의 유행은 바느질같다.  

자아. 아이 옷을 만들려 마음먹은 당신,   

당신은 반드시! 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들 옷은 그냥 사입혀라. 여아선호 미안하다. 부럽나? 어쩔수 없다. 사회가 다 그런거다. -_-;;; 

재봉틀은 준비해야 한다. 가정용과 공업용이 있는데, 초보는 당연히 가정용. 모든 사설 양재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다들 가정용을 5년 이상 쓰다가 공업용으로 바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싱거 미싱 추천. 내가 쓰는 건 싱거 7462 모델인데, 40가지 이상의 바느질 패턴이 있지만 실제로 쓰는 건 직선 박기와 지그재그(오버록 대신 사용한다), 단춧구멍 만들기 셋 밖에 없다. 모든 가전이 그렇지만 기능이 단순할수록 고장이 안난다.  

원단 구입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각종 부자재들도 인터넷 쇼핑몰이 잘 되어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주의해야 할 점은 초보가 동대문 원단상에 뛰어가는 일이다. 가지 마라. -_- 나도 아직 원단사러는 안 가봤다. 나중에 귀국하면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딸도 적어도 하나쯤 낳았고, 재봉틀도 구매 또는 할 예정이며, 원단 및 부자재 구입처도 알아두었다. 이 셋 중 준비 안된 것이 있다면 백스페이스 누르시라. 특히, 또 한번 말하건대, 딸!!! 딸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딸은 없는데 옷은 꼭 만들고 싶다면 컴퓨터와 불을 끄고 침대부터 가시라. 물론 배우자와 함께. 음, 나는 아직 결혼을 안했지만 딸을 낳고 싶으니 미리 공부해두겠다, 라고 한다면... 음. 뭐, 괜찮을 것 같은데, 딸은 아무나 낳는게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 그대의 팔자에 딸이 없을수도 있다. 서러워도 어쩔수 없다. 인생이란 원래 공평한 게 아니다. 훗. 내 말을 무시했다간 내 아들 옷은 사다 입히고 옆집 애, 조카, 친구 딸 옷 만들어 선물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 이제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사실 이 페이퍼는,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각종 양재관련 서적들의 폭탄에서 알짜를 골라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만 나 딸 가지고 있다는, 그것도 둘이나 가지고 있다는 자랑질로 치닫고 있음을 깨닫고 반성.............은 안한다!  

 

2004년에 처음 나온 책.  

아직까지도 아이옷 만들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책이다. 저자 배효숙은 이 책을 포함 모두 4권의 양재 관련 책을 펴 냈는데 초보를 위해서는 가장 적합한 책이다. 배효숙 본인도 양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 오히려 비 전공자들에게 적합한 설명을 한다.   

자상한 설명과 28종의 다양하고 실용적인 옷들이 실려있다. 다른 양재관련 책과 비교해 본다면 디자인이 독보적으로 예쁘다. 전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사이즈는 100-110-120 세가지 종류.

단점은, 실물패턴이 7종밖에 들어가 있지 않다. 요즘 나오는 양재관련 책들이 거의 대부분 실물 패턴을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명대로 패턴을 그리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이 책은 무조건 사야한다. 이 책의 옷들을 만들다보면 기본적인 옷만들기의 테크닉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사계절의 옷이 다 들어가 있으나 여름 옷이 좀 더 많은 편. 

저자 홈페이지 : www.jom.pe.kr 

    

 

 

2002년에 나온 이 책은 현재 절판상태다.  

저자들이 운영하던 홈페이지도 현재는 사라져서 접속 불능상태.  

아주아주 기본적인 옷이 많다. 남방셔츠나 7부바지, 고무줄 치마나 반바지 끈원피스 같은. 그래서 추천. 나도 이 책을 알라딘 중고샵에서 구했다. 구할 수 있으면 한권쯤 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4계절 옷중 여름옷에 집중되어 있다. 설명이 아주 자세하진 않아서 이 책으로 양재를 처음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역시나 실물패턴은 6종밖에 없다.  

 

 

 

이 책 역시 절판상태. 2002년에 나왔다.  

이 책의 저자 성자은은 실제 경희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의상디자이너이고, 홈메이드 패션 전문회사를 설립 운영했다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 홈페이지 역시 사라지고 없다.  

이 책은 대부분 겨울옷이다. 그리고 초보를 위한 책은 아니다. 총 38종의 옷들이 있고, 역시 실물패턴은 3종밖에 없다. 혹시나, 혹시나 혹시나 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난 아들만 있지만 그래도 옷 만들기는 꼭 한번 해 보련다 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 책은 그나마 좀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아들옷이 좀 있다. 어느정도 옷을 좀 만들어 봤고, 원단도 다룰줄 안다, 하면 이 책의 옷을 만들어도 될듯. 만드는 과정 컷이 아예 없어서 초보는 이 책보고 옷 만들기 불가.  개인적으로 말해선, 절판도 되었는데 굳이 구하러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신생아 용품과 배냇저고리로 시작한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옷보다는 육아용품이나 장난감 관련된 것들이 많다. 3-4세 이상의 아이를 둔 엄마라면 글쎄, 별로 유용하지는 않겠다. 수록작품들이 대부분 돌 이전의 아이를 타겟으로 했다. 장난감과 옷 모두가.

모든 수록 작품의 실물패턴이 실려있고 만들기 과정도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라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초보가 보고 따라하기 무난하다. 옷보다는 용품들이 예쁘다. 옷은 사실 디자인도 실용성도 별로. 하지만 보통 실물패턴 한장을 따로 구입할 경우 5천원에서 1만원이 훌쩍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을 사는 것도 그다지 손해는 아니다.

저자 윤아영은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한다. 에코와 유기농을 강조하는데, 흠.  

 

 

 

이번에도 배효숙의 책. 

이 책은 사실 아이옷 만들기만 전문으로 하는 책은 아니다. 실제로 아이 옷은 두세벌 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것도 앞치마와 투투 정도. 물론 돌 이쪽 저쪽 아기를 위한 모자나 목욕가운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이 책은, 양재 초보가 바느질을 연습하기에 알맞다. 자잘한 소품을 하나씩 완성해가면서 양재에 자신감을 붙여가고,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을 만들어 주변에 선물하다보면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수도. 이 책의 최대 강점은 그거다. 양재가 실용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거. 사실, 이 책에 실린 작품이 실용적이라는 건 아닌데 (필통, 수건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싸다.) 선물로서의 양재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이런 선물을 주고 받는다는 건 굉장한 감동을 주니까.  

모두 42작품이 실렸고, 그 중 32개가 실물패턴으로 수록되었다. 배효숙의 책답게 만들기 과정도 자세하고 꼼꼼해서 따라하는 것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실려 있는 작품들의 디자인 센스도 대단하고. 정말이지 이 사람이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는 놀랍다.  

 

 

 

사실 이 책 때문에 이 페이퍼를 한번 쓰기는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 판명희는 80년대 패션 유통업계에서 디자인과 경영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것에 비하면, 옷의 디자인이 너무 형편없다. 원래 평범한 옷이 실용적이지만, 이 책에서 건질만한 옷이라고는 표지의 저 원피스 하나가 전부. 나머지는 글쎄.  

성안당이라는 새로운 핸드메이드 관련 출판사가 등장을 한 모양인데, 음. 역시 책이라는 건 저자에 대한 믿음과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가야 하는 것 같다. 특히 이런 실용서에서는.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도 너무 허술하고, 과정컷도 허술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이 책 살라구? 진짜?  

ps. 난 이 책을 출장자 편에 받았다. 진짜 얼마나 힘들게 받은건데, 내용이 이렇다니 어찌나 분하던지. 내가 이거 한국에서 걍 편하게 산 책이기만 했어도 이런 앙심 안품는다. 하여간 좀 팔린다 싶으니 죄다 그쪽에 뛰어드는 거, 이거 좀 안했으면 싶다.  

 

 

언제부턴가 리넨이 엄청나게 각광받는 소재가 되었다.  

덕분에 리넨 전문 쇼핑몰까지 등장하고, 이 책은 그 리넨 전문 쇼핑몰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세명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을 실은 책이다. 대부분이 소품과 침구류들이고, 아이 옷은 두벌 정도만 실려있다.  

이 책은, 취향을 탄다. 리넨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책일수 있겠지만, 사실 실려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디자인이나 바느질쪽 보다는 리넨이라는 소재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들이라, 특별히 양재책으로 보기는 어려울듯 싶다. 굳이 말하자면 리넨 브로슈어 정도? 사진을 공들여 잘 찍었다. 사진 보는 재미에 그냥그냥 볼만하다. 양재북이라고 하긴 2% 아쉽고, 인테리어쪽으로도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느낌.  

실물 패턴 수록되어 있고, 바느질 과정 설명도 그럭저럭 무난하다.  

관련 홈페이지 : www.nesshome.com   리넨 전문 쇼핑몰이다. 들어가면 커뮤니티로도 연결된다.  

 

 

자, 양장만 만들수는 없다. 한복에도 도전해 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침선장 박광훈 선생의 책이다. 배냇저고리와 두렁치마 만들기부터 삼회장 저고리와 당의 털배자 만들기까지 할 수 있다. 장식소품 만들기도 자세히 실려있다.  

한복 옷감의 종류와 바느질법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고 옷을 만든후 보관하는 법도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도움이된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의 격식갖춘 복식에 대한 설명이 자세해서 우리 문화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실물패턴은 2가지만 실려있고, 나머지는 본뜨기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 전혀 어렵지 않다, 물론 본 뜨는 것만. -_-;;; 재봉틀로 하기는 어렵고, 손바느질로 하자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도전해 볼 만하다. 아직 제대로 만들어 본 건 하나도 없다. 언젠가는 꼭.  

 

 

 

구라이 무키 여사는 일본에서 유명한 핸드메이드 작가 되시겠다. 

사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양재열풍이 불기 전에 이미 일본과 유럽쪽에서는 옷을 만들어입기가 일반화 되었던 것 같다. 월간 잡지 또는 계간 잡지가 있고, 양재관련 책도 많이 나와있다. (한국에서 일본이나 유럽의 잡지를 구하려면 원단쇼핑몰에서 가능하다.)  

이 책은 이 책대로는 나쁘지 않다. 양재는 하나도 모르고, 임신은 했고, 아이 태교도 할 겸 배냇저고리는 하나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하는 임산부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은 책. 말 그대로 아기 옷 책이라는 점을 꼭 명심할 것.  

 

 

핸드메이드는 추억이다. 추억을 담기에 핸드메이드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이 책은 특별한 옷이 있지는 않다. 사실 양재책이라고 분류를 하기는 애매하다. 양재를 하기 위한 책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책은, 양재가, 엄마와 딸을 어떻게 이어주는지, 엄마와 딸이 핸드메이드와 바느질을 매개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흐흐흐흐흐흐 나는 딸이 둘이나 있다네, 자랑하게 된달까.  

 

 

대충, 여기까지.  

다음번엔 어른 옷 만들기로 포스팅 할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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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8-0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엄마, 특히 딸을 둔 엄마들에게 아주 유용한 페이퍼겠네요.^^
나도 딸 둘이지만 너무 커버려서 이젠 손주가 태어나면 해주는게 좋을 듯.ㅋㅋ

반가워요~ 아시마님.
은근 드나들면서 인사는 처음이네요.^^

아시마 2010-08-02 15:45   좋아요 0 | URL
우와. 저 순오기님 팬이여요. 저도 한때는 마을도서관을 꿈꾸었던지라.
혹시,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 관장 박영숙씨가 쓴 책인데. 순오기님 페이퍼 보면서 박영숙씨 생각을 많이했더랬지요.

특히 딸을 둔 엄마가 아니라 오직 딸을 둔 엄마에게만 유용한 페이퍼랍지요. 모녀특권.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0-08-0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전제 조건이 "딸 하나가 있어야 한다" 에서 그만 빵 웃어버렸다눈.

저는 뒤늦게 퀼트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중입니다.
손으로 무엇인가 만든다는게 정말 행복해여. 머리도 맑게 해주고. 맘도 편안하게 해주고.

아시마님,, 만든 옷 사진도 올려주세염!! 플리이즈~~~

아시마 2010-08-02 15:51   좋아요 0 | URL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있죠. 그건 정말 만들어 본 사람만이 느끼는 건데.
전 사미인곡적인 옷만들기를 하죠. 님 안계신 기나긴 밤, 비단천 풀어내어 금자로 겨누어서 만들죠. 솜씨와 격식을 모두 갖춘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뭔가 하나를 만들어 놓으면 뿌듯해요. 만들때 집중하면서 잡념이 사라지는 효과도 있고.
사진은, 올리고 싶은데, 이곳의 인터넷 사정이 나쁘고, 제가 사진 리사이징 하는 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어요. 저 DSLR쓰는지라 사진 한장당 사이즈는 얼마나 큰지. -_-;;; 방법만 발견하면 반드시 올리겠사와요.

옷 만들기를 하려면 딸은 반드시! 반드시! 있어야 해요. 입을 사람 없는 옷을 만들때의 허무감이란...

하지만, 음, 사실 배효숙씨는 아들만 하나라는. ㅎㅎㅎ

Joule 2010-08-0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옷 기대하고 있을게요. 저도 요즘 바느질에 재미를 붙여서. 근데 재봉틀은 없고 일일히 손바느질로 해야 하니 시간이 좀 어마어마하게 들기는 해요. 재봉틀 사자니 집도 좁은데 들여놓고 감당할 엄두는 안 나고.

아시마 2010-08-02 15:54   좋아요 0 | URL
재봉틀이 큰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아요. 정말로. 저는 결혼할 때 혼수로 장만했던 화장대위의 화장품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거기에다 재봉틀을 올려놨어요. 딱 맞아요. ㅎㅎㅎ 화장품들은 거의 없기도 하지만 어쨌든 욕실로 퇴출되었구요. 손바느질로 양재 하는 분들도 있긴 하던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어렵지 않나요?

네, 어른옷 페이퍼도 곧, ㅎㅎㅎ 소개하고 싶은 책이랑, 막 갈구고 싶은 책이 몇권씩 있거든요.

꿈꾸는섬 2010-08-0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너무 좋은 페이페에요. 딸 아이가 좀 더 자라기전에 양재를 배워두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사실 자신은 별로 없거든요. 손재주가 없어서...하지만 상관없다는 님의 말씀을 철썩같이 믿고 한번 시작해볼까봐요. 우선 재봉틀을 사야겠네요. 재봉틀 사기전에 책부터 사야하는건가요?

아시마 2010-08-02 20:33   좋아요 0 | URL
의지가 굳으시다면, 재봉틀 먼저 사시라고 말씀드리겠지만, ㅎㅎㅎ 저 위에 배효숙씨 명품 아이옷 책 한권 사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양재의 포인트는 사이즈에 맞는 맞춤옷을 만들기 위한 패턴을 그리는 거라고 하던데, 이 방법으로는 사실 내 사이즈에 맞는 패턴 그리는 건 배울수가 없어요. 이미 만들어진 패턴으로 재봉을 하는 것만 배우는 거죠. 그래도 그게 어딘가 하고 감사해하면서 해요.

옷 만들기를 시작하면 각종 양재 관련 블로그들을 뒤지며, 그 블로그 주인장들이 만들어서 파는 실물패턴을 장당 5천원에서 만원 정도를 주고 구입하게 되는데요, 감히 딱 잘라 말씀드리건대, 살만한 실물패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배효숙씨 밖에 없고, 그나마도 초보일때는 책에 있는 옷들을 만들어 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씀도 덧붙여 드려요. ^^

하세요, 하세요, 하세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런데, 따님이 몇살이세요?

꿈꾸는섬 2010-08-03 00:06   좋아요 0 | URL
ㅎㅎ4살이에요. 만 세돌이 되었지요. 진작 시작할걸 싶은 마음이 드네요. 도전해보고 싶어요.^^ 우선 책부터 구입해봐야겠어요.

gomgom 2010-08-0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하, 전 바느질도 못하고, 아들만 있어요. ㅋㅋㅋ 정말 부럽네요. 딸도 부럽고, 바느질솜씨도 그렇고^^

아시마 2010-08-02 20:36   좋아요 0 | URL
바느질은 사실, 솜씨라고 할 것이 못되구요,
곰곰님은 제가 없는 아들이 있군요. ㅎㅎㅎㅎㅎㅎ
















부... 부러우면 지는 거닷!

pjy 2010-08-0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가진 딸 없고, 조만간 생길리도 없는 노처녀인데다가, 설마 나같은 성질 드러운 딸 낳을까봐 무섭지만^^
이거 참, 땡기는 페이퍼군요ㅋ

아시마 2010-08-07 13: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기대하시라, 다음 페이퍼는 어른옷 만들기!!!

pjy님 반갑습니다.(이건 블랑카님식 인사. ^^)

우리 '노'는 빼고 말하자구요. 처녀이시군요. ㅎㅎ 결혼을 후회하진 않지만 처녀이신 분들이 부럽기는 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황인숙의 <인숙만필>에서 그런 시기를 "우리들 노처녀들은 사랑 없이, 결핍감 없이 살아간다. 아련히, 유포리아라는 것에 향수와 궁금함을 갖고." 라고 표현하던데, 저는 그런게 좋아요. 뭔가를 궁금해하고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게. 사실 결혼해보면 그놈의 유포리아라는 게 있기는한데, 음. ㅎㅎㅎ
그 향수와 궁금함을 지켜드리기 위해 그만 말할랍니다.

처녀시절을 즐기세요!!!!!!

라로 2010-08-0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행이 딸이 하나 있고 아들은 둘이나 됩니다.
게을러서 하나있는 딸 옷을 한번도 만들어준적이 없어요.
다른것도 안해요,,,,그나마 퀼트로 가방하나 만들어 준듯,,
그거 떨어질때까지 들고 다니더라는,,^^;;;
만드신 옷들 사진좀 올려주세요~~.^^

아시마 2010-08-07 13:58   좋아요 0 | URL
오, 정말 다행이세요. 딸이 있다니!!! ㅎㅎㅎㅎㅎㅎㅎㅎ

사진은 준비중, 언제나 늘 준비중. ㅎㅎㅎㅎㅎㅎㅎㅎ

근데, 퀼트는 손바느질이니까, 아마, 옷 만들기보다 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요? 사실 애들 원피스 같은 건 한나절이면 뚝딱 완성되거든요. 본뜨기부터 재단, 재봉질까지 모두다요.

그리고, 옷 만드는 커뮤니티 가보면, 다들 하는 이야긴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가면 대부분 엄마가 만들어주는 옷을 거부한대요. ㅠ.ㅠ (아 이거 진짜 영업비밀인데. 흑흑.) 떨어질 때까지 들고다니는 그 시기가 좋은 것 같아요. 막 애써 만들어줬는데 싫어! 이러면 내 자식이고 뭐고 내다 버리고 싶어질지도.

BurdaLove 2010-08-2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실은 재봉책하나 사려고 들어왔다가 로그인하고 글남겨요...
뭐랄까 재봉에 대한 사랑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페이퍼네요... 저도 배효숙씨책 좋아해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고, 손재수도 엄청 없지만 꼼꼼한 거 하나 믿고 재봉을 시작했다가 완전 빠져버렸지요.... 몇 달 한게 고작인데 그래도 참 좋네요. 제대로 만들어낸 건 몇개 안되지만... 제 옷을 만드니까 아무래도 하나 하는것도 엄청 시간이 걸려요. 게다가 헐렁한 옷 싫어하고 몸에 꼭 맞는 타이트 스커트 같은 거나 만드니 진도 안 나가죠. ㅋㅋ
하여간.... 전 좀 배우다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복식학원에 다닐까도 생각 중인데 문제는 곧 임신을 하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여자아이 둘 낳는게 목표인데(완벽하죠?^^), 아이들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재봉틀 만질 시간이 생길까요? 전 나이도 좀 있어서 둘 낳으려면 빨리빨리 놔야하는데 (ㅋㅋ) 그러면 최소한 3-4년은 정신없을테고 지금 이걸 배우는 게 정말 잘하는일일까? 차라리 그럴 시간에 돈을 벌어서 사입는게 더 낫지 않나? 오만 생각이 다들어요. 이런...밤이라 그런지 괜히 주절주절 말만 많네요... 어른 옷 만들기에 관한 페이퍼 기대합니다! 팬되었어요!^^

zwo 2010-09-0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배효숙씨 책 중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지 요래조래 살피다 인터파크에 올려진 님 글 추천누르고 여기까지 쫒아와보니 세상 참 읽을꺼리가 너무 많아 한국책 주문하기 더럭 겂나는 제게 샛별이 되주시는군요. 히히히 여기는 베를린이고 오늘 제대로 추워 담요덮고 밤새는 중이고 책에 관한 너무 재밌는 글들과 귀여운 두 따님의 이야기를 참으로 감질나게 읽고 있습니다. 고맙구요.
그런데 역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미혼이기에 성인을 위한 옷만들기 책도 좀 평해주시길 바랍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꾸벅 ^^

오랑구 2010-09-1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래전부터 재봉질에 관심이있었지만 재봉틀 살돈이 없어서 한동안 제껴두었다가... 딸아이 생기고 우연히 블로그에서 본 손수만든 여아 원피스가 넘 이뻐서 갑자기 다시 관심이 생겨 여기저기기웃거리다가 님글을 보게되었네요..글재밌게 읽었어요ㅋㅋ 근데 재봉가르치는 학원안다녀도 재봉틀로 옷만드는법 습득가능한가요? 사실은 학원다니고 싶어도 아기가 아직어려서 시간이 안나거든요. 평일엔 직장가고, 아기 잠잘때 겨우 나는 시간에 한번 만들어보려고 하는데...괜히 재통틀사는데 돈만 낭비하게 되는건아닌지 고민중입니다..조언부탁해도 될까요? ^^

레드쥬디 2010-10-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친절하신 조언 감사합니다. 책을 좀 사볼까 생각중인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글구 전 딸은 있는데 이제 다 커버려서 어릴 때 그냥 제 마음대로 만들어 입히기는 했었는데 어느 틈에 이제 엄마표는 거절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되버렸어요.... 그래서 요즘 조금 우울하네요....

로시맘 2010-11-0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 막 옷 만들기에 발딛은 초보입니다.
검색하다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었는데
국문학도답게(?) 참 잘 쓰셨네요 ^^
저도 두 딸을 가진 딸기맘인데,
님의 글을 읽고 갑자기 어깨에 힘이 막 들어가네요 ㅋ
역시 양재 배우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강주혜 2020-10-0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신하고 배냇이랑 턱받이 겨우 만들어봤는데 의외로 재미있고 취향에 잘맞아서 책을 더 찾다가 글을 봤어요 ㅎㅎ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몇권 더 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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