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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박완서 선생님 사망 10주기다. 돌아가셨다 했을 때도 참 황망했는데, 벌써 10주기라니. 흐르는 줄도 몰랐던 시간에 이렇게 마디를 지어주는 것들이 있을 땐 문득 달력을 보고, 손가락을 꼽아보게 된다. 어언 10년이 흘렀구나. 어느새 10년이.
10주기에 맞추어 박완서 선생님 관련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아니, 10주기에 맞추어가 아니다. 박완서 선생님이 작고 하시고도 10년 내내, 저자 박완서의 이름을 단 신간은 거의 매년 나왔고, 또 팔렸다. 전집에 선집에 개정판에 대담집에 후배들의 추모글 모음. 달리는 이름이 참 다양하기도 하지. 한때 시집의 초판본들이 초기 형태 그대로 출간되는 것이 유행했듯, 나중엔 박완서 초판본까지 나오겠구나야. 구매력 있는 계층을 주 타겟으로 하는 작가란 출판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알 법 하다. 한때 무협지 팔아 돈을 벌어 안 팔리는 학술 서적을 출간해 준다는 출판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교수님도 그 출판사에서 절대 팔리지 않을 평론집을 내셨으니까. 그래. 팔리는 책을 찍어서 돈을 벌어야 팔리지 않더라도 출간할 가치가 있는 책들을 펴낼 여력이 생기는 거지. 간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며 세계사, 돈 많이 버세요. 어떤 책 찍어내나 내 지켜 볼 겁니다. 중얼거렸다.
그냥 딱 그만큼, 거기까지. 비아냥과 냉소가 섞인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완서는 참 좋구나. 읽고 또 읽어도 새롭디 새로운 이 글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건가. 감탄하면서. 가볍게 읽고 넘겼는데.
며칠 전 내가 자주 가는 아줌마들의 커뮤니티에 박완서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소설에 대한 개인의 감상에 딱히 토를 달 생각은 없음에도 그 글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완서에 대한 몰이해, 비평은커녕 비판도 못 되는 매도. 그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박완서의 책으로는 세 권째 읽고 있음을 밝히며 비난과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혹평을 이어나갔다. 이런 건 참을 수가 없지, 커뮤니티의 개싸움이라도 참전을 해 볼까, 하기도 전에 이미 댓글은 100여개를 넘어서며 비난과 비평, 호평과 악평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 그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글들은 이런 거다. 이제 단편집 한 권 읽었는데 좋더라, 라는 글. 박완서 이름만 들었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런 논쟁적인(?) 작가였군요, 하는 감탄, 그 와중에 박완서 책 좀 추천해 주시라 이제 읽어 보려 한다는 댓글.
그러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돌아가신 지 이미 10년이라 신간, 그러니까 새책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작가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문학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바로 그 새로운 독자의 끊임없는 유입이 있어야 하고 그 독자의 유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끊이지 않는 신간의 출간이다.
이번에 박완서 산문집이 전집으로 묶여 나왔는데, 그 산문집만 무려 9권이다. 단편집은 문학동네에서 여섯 권으로 묶여 나온 지 한참 되었고, 장편 소설은 세계사에서 20여권이 넘게 묶여 나오고 있다. 박완서를 처음 만나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질릴법하다. 무엇을 읽어도 다 좋습니다. 박완서는 다 좋아요! 라고 외치지만 그야 내 입장이고, 박완서, 유명하다던데, 이제 한번 읽어보려구요. 하는 사람에게 수십 권의 책을 들이대고 아무거나 읽으세요! 하면. 나라도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겠다.
이 책의 뒤에는 친절한 문구가 실려있다. “한국 문학의 가장 크고 따듯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
누군지, 글 참 잘 고르셨다.
박완서 뉴비를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 박완서 월드 입장 티켓으로 손색없는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니, 읽으세요. 읽으세요. 박완서 신장판, 결정판, 완전판을 넘어 무슨 이름을 달고라도 출간을 멈추지 말아주시길, 우리 문학사에 박완서 뉴비가 계속 나올 수 있게 해 주시길.
아, 이래서 유명 밴드들이 다들 베스트 앨범을 내나보다. 이 뜬금없는 깨달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