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x김춘미 가
비채에서 8/18 출간예정이란 알람이 떴어요!!! 제목은
<가라앉은 프랜시스>래요!!!

김춘미 샘 번역의 마쓰이에 마사시(aka.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를 좋아하신다면 기대하시라!!!

Ps. 출판사 님하, 저 분명 두편 넘겼다 들었습니다만?????

Ps2. 출판사에서 올린 작가 파일을 보니 <거품> 이라는 낯선 제목뒤에 (비채근간) 이라 꼬리표 단 거 보니 곧 나오는 건가요???

일해라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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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 이후북스 책방일기
황부농 지음, 서귤 그림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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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by 황부농

 

읽은 날 : 2025.7.28.

 

작년 여름의 끝물에 읽은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는 전국에 있는 작은 책방들의 탐방기이기도 했다. 전국 각지의 작은 책방들을 소개하는 그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책방이 아니다)은 제주도의 작은 책방을 소개하는 중에 있었다.

2011, 서울 살던 젊은 부부는 제주도에 내려와 게스트 하우스를 연다. 아이까지 낳고 제주에 정착해 살아보려 하니 가장 아쉬웠던 게 책을 맘껏 사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단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친구와 동업으로 제주에 책방을 연다.

 

그리하여 서울에 있는 여자와 제주에 살고 있는 여자가 몹시도 소심하게, 만일 책이 팔리지 않으면 우리 둘이 나눠 갖자는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다.

백창화, 김병록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남해의 봄날, 2015, p.155

 

소심하게 연 책방이라 책방 이름도 <소심한 책방>이다. 하하하

이런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다면, 산다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서울 부부가 제주에 내려와 게스트 하우스를 열게 되기 까지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흘러가는 사고와 사건의 흐름은 유쾌하다.

책 사기가 어렵네? 그럼 내가 팔지 뭐.

혼자 열 용기가 안 나는 데? 그럼 친구랑 같이 동업하지 뭐.

책이 안 팔리면 어쩌지? 그럼 동업자랑 둘이 나눠 갖지 뭐.

이 심플하고도 유려한 생각과 실천의 결합이라니. 책방을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샀을 책을 책방을 한다는 이유(핑계)로 당당히 사게 될 때는 분명 통쾌한 맘이 들었을 거다. 세상과 나에게 당당해지는 그 기분이란,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웠다. , 책방을 하게 되면 책을 당당히 구매할 수 있겠구나, 하는. 책방을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기억이란 참 재미있는 것이어서, <소심한 책방>이라는 이름은 잊었는데 그들의 그 소심하고도 당당한 한마디 팔리지 않으면 우리 둘이 나눠 갖자”(‘내가가 아닌 우리 둘이라는 데서 오는 이 가벼움이라니. 망해도 나 혼자 망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그 주변의 정보들을 희미하게 지워 나갔다. 여성, 제주, 친구 이런 정보들이 그 유쾌한 문장의 그림자처럼 남았다.

 

그러다 이 책을 읽었다. 황부농 이라는 책방지기가 상냥이라는 친구? 동업자와 함께 (우리 둘!) 망원동에서 독립서점을 열었단다. 이 친구의 글을 읽다보면, 제주에서 뭔가를 하다 망... 했고(아닐수도 있고, 어쨌든 제주의 일을 접고) 서울에 올라와 책방을 한다고 정리되었다. 여성이고, 제주고, 책방지기. 기억이 내 맘대로 조작되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까, 제주의 <소심한 책방>은 내 맘대로 이미 망해 버렸고,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주 <소심한 책방>2025.8.2. 현재 아주 성업중인 듯 합니다, 검색결과.) 그 책방을 하던 친구 둘이 그 책들을 사이좋게 나눠가지는 대신 서울로 이고 지고 올라와 망원동에 책방을 열었구나, 하고 내 맘대로 남의 가게 사연을 조작해 버린 거지. 아니, 어쩌면 제주에서 서점이 너무 잘 되어서 서울로 진출하기로 한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도 하며.

 

그런 가슴이 아플수도, 가슴이 웅장해 질 수도 있는 내 맘대로의 사연이 있는 작가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남편과 종알거렸다. 정확히는 내가 생각하는, 언젠가는 내가 열지도 모르는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후 북스에서는 커피와 자몽에이드를 판단다. , 카페와 책방을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책과 음료란 독자 입장에서 잘 맞는 커플인 동시에 서점 주인 입장에서는 최악의 궁합이기도 하다. , 왕십리 역사 내 영풍문고 안에도 카페가 입점해 판매중인 책(정확히는 견본삼아 살펴볼 수 있는 책)을 커피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영풍이니까 가능한 거고, 책을 한 권만 주문하게 되어 목소리가 줄어든 소심한 책방지기가 있는 이후북스에서 그런 게 가능한가. 생각하다가, , 북카페처럼 차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중고책으로 따로 둘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럼 나중에 내가 차릴 책방에서는 어떤 형태로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내 나름의 책 판매 전략을 말했더니, 어 그거 말 된다고, 괜찮은 전략이라고 고개를 끄덕여 주길래 흐뭇해 하다가(충무공은 무려 상경대 출신이다! 나 상경대 출신에게 경영전략 잘 짰다 칭찬받은 문대 출신), 아니 근데 내가 이 책을 판다고? 아직 책방을 열지도 않았음에도 이 애지중지 모아놓은 절판 애장본을 팔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가슴이 아파서 애틋하게 내 책장을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이 책은 팔 수가 없을 거야, 못파는 책들은 미리 딱지를 붙여야하나 생각 하다가, 딱지를 붙이면 책등이 미워질텐데 책장을 분리하나 생각하다가, 팔지는 못해도 읽게는 해 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하하하하하하

 

어린왕자의 그 유명한 구절을 떠올린 거다.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라는.

 

나에게 독립서점에 관한 책들은 다들 이런 효용을 가진다. 아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리고 세시의 기쁨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만드는. 물론 여러 가지 정황상 내가 책방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나는 낯선 사람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상당히 무서워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오프라인 상점은 최악의 선택이다, 나에게) 우리는 종종 책으로 사방의 벽을 둘러 친 조그만 카페를 경영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지역은 어디로 할까, 맥주를 팔아도 되나? 주류 판매 허가는 따로 받아야 하나? 나는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시골, 산골로 들어가야 하겠지? 거기 책방을 열면 누가 오기나 하겠니, 그냥 카페의 탈을 쓴 개인 서재겠지. 뭐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사상누각을 지었다 허물었다, 네 시에 올 너를 기다리며 이미 기뻐진 세 시의 우리 둘

 

책방에 관한 꿈을 꾸는 주제에, 하하하하, 독립 책방 투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서, 아마 이후북스에 가는 일은 없겠지만, 책은 뭐, 나쁘지 않았다. 정말이지 딱 책방지기의 책이었다. 그러니까, 책 판매자의 책이었다. 내가 판매하는 물품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었지만, 내가 판매하는 물품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아마도 나는 지금 이 책방지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고, 어떤 책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함께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 출판물을 많이 다루는 이후북스 책방지기의 입장에서는 제작자와 너무 밀착되어 있는 판매자인지라 말을 하기가 참 어려웠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어떤 책을 욕할 땐 그 작가도 편집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마구 하는 거지, 아는 사람이면 입을 열기 어렵지. 하하하.

 

가볍게, 가볍게 잘 읽었다. 이후에 황부농의 책을 굳이 더 찾아 읽게 될 거 같지는 않지만. 이후북스의 번창을 빕니다. 이 책을 낸 이후에 이후북스는 진짜로 제주 지점을 낸 것 같더라. 소심한 책방 검색하다 혹시나해서 같이 검색해 보니 제주에도 서점을 열었더라고.

 

얼마전 어느 통계에서 대한민국 독서율이 성인 1인당 10.5권이라는 충격적인(진짜로 충격적인!) 숫자를 봤는데, 독립서점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 같은 느낌은(물론 문을 닫는 서점들도 정말 많다고 한다) 이건 대체 뭘까 싶기도 하다마는.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이니까요. 우리 많이 팔고 많이 삽시다. 그리고 독서는, 산 책중에 골라서 하는 겁니다. 하하하.

 

2025.8.2.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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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 책 - 추억의 책장을 펼쳐 어린 나와 다시 만나다
곽아람 지음 / 앨리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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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 책by 곽아람 & 안녕, 나의 순-by 이영희

 

읽은 날 : 2025.7.26.

 

어느 집이나 다 그렇겠지만, 아이를 핑계 삼아 어른의 욕심을 채우는 것들이 있다. 어린날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집에서는 디즈니 베이비돌 시리즈가 그렇고(나는 베이비돌 시리즈를 전부 다! 사이즈 별로 다! 가지고 있다. 하하하, 진지하게 말하건대, 자랑이다. 반어 아님 주의.) 시공주니어의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가 그렇고, 창비 아동문고 시리즈와 시공주니어 문고본 시리즈가 그러하다. 모두가 완역본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다.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날이 멀지않은 지금도, 이 책들은 아이방 책장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고, 얼마전 책장정비를 한참 하던 시기에도 이들을 위한 자리를 지켰다. 처음 살 때는 애 핑계를 대고 산 책들이라 둘째방 책장에 넣었지만 애는 읽지 않는다.(아니 왜 안읽냐고, 이 세상 재미진 책을.)

 

초등학교, 그러니까 그때는 국민학교였던 그 때, 아마 3-4학년이 막 되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동네에는 책 외판원이 돌아다녔다. 엄마는 그 책 외판원을 통해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 소녀 세계문학전집> 30권을 구매하셨다. 1981년이 초판인 책인데 전권은 60권이고 앞의 30권까지는 외부가 파란색, 뒤의 30권은 외부가 갈색(또는 짙은 보라?)이었다. 아마도 경제적 이유로 그때 엄마는 나와 동갑의 아이가 있는 옆집과 사이좋게 나누어 30권씩을 구매하셨던 터라, 우리집에는 30권의 파란책 밖에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9번은 소공자였고, 10번이 소공녀였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책. 1-30번까지의 책은 세계 각국의 전래동화집(영국동화집, 프랑스 동화집, 남유럽 동화집, 중국 동화집 등이 있었다. 내가 지금 쓰는 아이디 ashima는 이 시리즈의 중국 동화집에 실린 동화 <아시마>에서 기인한다)을 비롯한 아동용 이야기가 많았고, 후반 31-60 까지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시작으로 세익스피어에 레미제라블, 돈키호테, 삼국지, 서유기 같은 고전 축약본(,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을 아동용으로 축약, 개작한 것)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두 집이 책을 나눠서 살 때에는 서로 다 읽고 나면 돌려가며 읽자가 약속이었을 텐데, 활자에 미친 나는 그 30권을 후루룩 뚝딱 다 읽어버렸고, 책을 그다지 읽지 않았던 옆집에선, 아직 누구도 그 책을 전부 다 읽지 않은 상태여서(게다가 후반부 30권은 아이들이 탐낼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무려 성서 이야기라는 성경 축약본도 한권 들어간 시리즈였으니까.) 책을 빌리려고 하면 눈치를 주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주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대놓고 거절을 해서(아직 안 읽어서 못 빌려 줘.) 후반부 30권 중에는 읽은 책 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그래도 조르주 상드의 <사랑의 요정>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쇼팽의 연인 그 조르주 상드) 명작의 축약본을 혐오 수준으로 싫어하는지라, 읽지 않았음이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니까 별로 아쉽지는 않다.

 

정말 미친 듯이 좋아했던 전집이었지만, 그때도 어렴풋이 이거 뭐가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더랬다. 그때는 완역의 개념도 잘 모를 때여서 무의식중에 이게 원문의 전부일까? 하는 생각. 완역에 집착하는 나는, 그래서 이 책들을 읽던 시기가 그리울 뿐, 자체가 그립지는 않았다. 소장의 욕구도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축약본과 다이제스트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목록 그 자체는 나에게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시공주니어와 웅진주니어에서 완역본을 출간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읽었던 책들을 기준으로 사모으기 시작했다. 오오 완역본이다아아아아아! 외치면서. 극도로 총애했던 몇몇 이야기들은 (소공자, 소공녀, 작은아씨들) 출판사별 완역본을 다 가지고 있다. 번역가가 다르니까. 그 외에도 이 30권 안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책들의 완역본을 모두 소장했다. 여러 형태로. <쿠오레>라는 제목으로 이 전집의 23번이었던 책은 창비아동문고 <사랑의 학교1,2,3> 완역본을 가지고 있고, 17번 십 오 소년 표류기는 열림원에서 나온 쥘 베른 전집을 갖추면서 완역본을 갖췄다. 18번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는 궁리 출판사 판을 가지고 있다. (시공사에서 이 책의 완역판은 왜 안냈는지 모르겠다)

 

전집의 추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곽아람의 어릴 적 그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부분의 전집들은 이 계몽사 <소년 소녀 세계문학전집>을 제외하고는 단 한 질도 나의 소유였던 적이 없었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ACE 88>(종종 에이브 전집-ABE 88-과 혼동되어 검색된다. ACE 88이 좀 더 어덜트한 소설들이 많았다. 어차피 축약본이었겠지만 반지의 제왕까지 수록된 전집이었다.)은 나와 두 살 터울의 외사촌이 가지고 있었다. 이 전집에서 <백만년 에이라>를 처음 읽었을 때의 매혹은 대단했다. 그 뒤 진 M. 아우얼의 <대지의 아이들> 시리즈를 모두 소장했다. (물론 완역이다. 하하하) 외가에 갈 때마다 함께 놀자는 사촌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책장 앞에 붙어있게 만든 전집이기도 했다. 다행히 이 전집의 소유주였던 두 살 아래 사촌동생은 나와 비슷한 수준의 활자벌레여서 내가 책을 빌려보는 걸 조금도 고까워하지 않았지만, 그렇게도 너그러웠던 외숙모도 이 책을 빌려주려 하지는 않으셨다. 이 전집은 당시 오늘 세계 아이들 최고 책 에이스라는 어마어마한 수식어가 붙어있었고 외숙모는 이 책을 사 준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아마 많이 아끼셨던 모양이다. 책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 전집에 이가 빠지는 것을 혐오 수준으로 싫어하는 나는, 그때도 외숙모를 원망하지 않았고, 지금은 너무나도 이해한다. 어쨌든 자주 만나던 사이지만 아무래도 남의 집에 있는 책이라 이 88권을 전부 독파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나는 이 전집의 몇몇 소설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 외숙모는 다른 책은 아주 잘 빌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외숙모의 책장에서 무려 세로 쓰기로 된 <왕비열전> 전집을 빌려 읽었다. 하하하.)

 

지경사 판 <소녀 명랑 소설> 시리즈는 큰언니의 단골 선물이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5살 터울의 언니는 생일이나 어린이 날,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 이 시리즈의 책을 한권씩 사 주었다.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가 언니의 첫 선물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중에 언니는 작은 아씨들 시리즈의 후속편을 사서 선물해 주었다.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의 8번 작은아씨들은 베스가 병을 앓았다 회복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작은아씨들 1부인 셈이다.) 그 뒤로 언니는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의 책을 때마다 한권씩 사 주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 안에, 소설판 캔디캔디 1,2,3이 있었다. 아빠를 조르고 졸라 이 세 권을 사서 옥상에 누워 읽었다.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햇살이 무섭도록 쨍하던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날이 그렇게 좋으면 캔디 캔디를 읽던 날이 떠오른다. 아아, 나의 테리우스.

 

곽아람은 1979년생이다. 나와 거의 동년배인 셈이라 우리의 유소년기를 지배하는 책은 거의 겹친다. 다행히 나는 이야기에는 집착하지만 그 자체에는 집착하지 않아서 곽아람이 겪은 책 수집의 에피소드는 없다. 지금도 그때 읽었던 그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망은 전혀. 그저 너도? 나도! 반가워!!! 라고 외치는 기분이었다.

 

곽아람의 책을 읽고 바로 어느날 구입해 반쯤 읽고 책장에 던져뒀던 중앙일보 문화부장 이영희의 책 안녕, 나의 순-을 꺼내 다시 읽었다. 나의 초-중등기를 지배했던 것의 팔할이 문학(정확히는 동화, 영 어덜트 소설)이었다면 나의 고등학교 시기를 지배했던 것은 구할이 만화였다.

 

그 시절 연년생 언니와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순정만화 잡지들은 이제 없다. 성인이 돼 독립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본가에 돌아가니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보지도 않는데 쌓아두면 뭐하니? 먼지만 쌓이고 벌레 생겨라고 엄마는 냉정하게 말했었지.

이영희, 안녕, 나의 순-, 다산북스 놀, 2020, p.6

 

이 경험, 나도 있다. 하하하. 만화잡지 <윙크>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38월에 창간되었다. 격주간지였고, 한권에 2500원이었다. 창간호부터 사모았다. 울엄마가 무슨 맘인지 그때 윙크 살 돈은 꼬박꼬박 주셨고, 집에 한권 한권 쌓아두는 것도 그냥 두셨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낙이었다. 대학을 가느라 집을 떠나면서 그 잡지를 얌전히 라면박스에 넣어 고이 보관했다. 또 한 번, 엄만 대체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 만화잡지 박스를 이사하면서도 버리지 않고(내가 대학을 들어간 뒤 우리집은 사정상 두 번의 이사를 했다, 내가 없는 사이)잘 들고 다니셨다. 몇 년을 잘 데리고 있던 엄마는 어느날, 그 책을 묻지도 않고 싸그리 버려버렸다. 윙크가 단종되어 전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다음의 일이라 아까워서 속이 쓰렸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고등학생이던 우리 교실엔 정해진 책 공급책이 있었다. 할리퀸 로맨스는 수영이가 공급했다. 매달 새로운 책이 나오면 만화방에서 빌려와 순서를 정해놓고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끼워넣고 읽었고, 나는 윙크 공급책이었다. 단행본 만화 공급책은 민지와 몇 명이 더 있었다. 할리퀸 로맨스는 만화방이나 책방에서 빌려오는 거였고, 단행본 만화는 각자 모으는 책이나 소장하고 있는 책이 달랐다. 우리는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르미안을 읽었고, 레드문을 읽었고, 불의 검과 점프트리 에이플러스를 읽었다. , 지금도 기억나는, 이은혜 작가. 우리 여고 앞에 와서 사진을 찍어 가는 걸 봤다는 아이가 있었지.

 

한동안은 또, 그때 봤던 만화책들을 엄청나게 사 모으던 시기가 있었다. 중고나라를 통해, 불의 검이니, 안녕 미스터 블랙이니, 이은혜의 책들을. 30이 가까워 오던 나이였다. 결혼을 했고, 내 책장을 보던 남편은 딱 두가지를 말했다. 사조영웅전을 보고는, “나는 무협지를 사서 읽는 사람을 본 건 네가 처음이야.” 했고 만화책들을 보고는 나는 만화책을 사서 읽는 사람도 네가 처음이야.” 했다. ... (그러는 남편도 신의 물방울은 사서 읽었다. -물론 다 팔아치웠다, 내가.)

 

아무래도 만화책이라. 딱히 소장의 욕구가 강하지 않은데다 권수도 워낙 많아서 다 팔아 치우고 몇 개만 남겨두었다가 몇 번의 책장 구조조정을 하던 중에 마저 다 팔아치워 버렸다.

 

마지막으로 팔았던 만화책이 이현세의 <남벌>이었다. 하도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라(순정도 아닌데!) 학산문화사에서 애장 박스판이 나왔을 때 냅다 사서 소장하고 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주문할 땐 남편도 신의 물방울을 살 때라 뭐.) 팔까 말까 많이 망설이다가 가격도 별로 내리지 않고 당근에 올려놓고 잊고 있었다. 팔리면 팔고, 아니면 안고 갈 생각이었다. 올린지 한 반년이 지났을 무렵인가 갑자기 연락이 왔고, 팔았다. 구매자는 우리집 근처 지하철 역을 거래장소로 지정했고, 우리는 지하철 역 앞 파리바게트에서 만났다. 나온 분은 뜻밖에도 50이 훌쩍 넘어 60 가까이 되어보이는 아저씨였다. <남벌>을 사서 읽겠다고 지하철을 타고 와서 중고거래를 하는 아저씨라니. 그는 나를 보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내가 만화책을 사러 간다고 했더니 안그래도 아내가 퉁박을 주더라고요. 무슨 만화책을 사서 보냐고.” 무슨 답을 하겠는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네네, 아내분은 그럴 수도 있죠. 대답을 하는데 그분이 책이 든 쇼핑백을 아주 소중히 안아들며 그랬다.

내가 옛날에 읽은 만환데, 하도 재미있게 읽은 추억이 있어서 꼭 다시 읽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어요.”

어정쩡하고 어설프게 네네, 재미있게 읽으세요.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나도 마흔이 넘어 만화책 중고거래를 하는 아줌마가 될 줄은 몰랐고, 그분도 육십이 다 되어 만화책을 사들이는 아저씨가 될 줄은 몰랐겠지. 우리의 나이는 거의 15년 이상 차이가 났지만 같은 만화책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시기 이후로는 만화를 거의 보지 않아서(나는 웹툰도 보지 않는다.) 만화에 대한 추억은 고등학교 시기를 전후로 하여 거의 멈춰있다. 그래서 이영희의 책에서는 내가 모르는 만화 이야기가 더 많다. 이영희 기자는 아마도 나보다 한두살 많을 것도 같은데 말이지.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으며, 이승환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문을 외어 보자~

 

내가, 완역을 핑계삼아 어릴 때 집착 수준으로 좋아하며 읽었던 책을 사서 모으는 이유는, 이 책들이 주문이기 때문이다. 나를 그때 그 순간으로 데려가는, 마법의 주문. 끝내 외숙모의 책장에서 빌려 읽었던 세로쓰기 왕비열전까지 기억하게 만드는, 그 시기의 나를 다시 불러내어 그때의 그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최근에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그 외숙모의 남편이었던, 우리 엄마와 관계가 아주 각별했던, 우리집 딸들을 모두 고루 아껴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더 많이 편애하셨다는 것을 그분도 알고 나도 아는 그 외삼촌이 갑자기.

 

오래 만나지 못했던 사촌을, ACE 88의 소장자였던 그 사촌을 거의 10년만에 그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사촌도 장가를 갔고, 나도 시집을 갔으니, 내가 명절에 외삼촌에게 인사를 갈 때쯤, 사촌은 이미 아내와 처가에 간 뒤여서 만날 일이 없었다. 그 사이 집안 행사도 없었고.) 장소가 장소임에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은 반가웠다.

문득, 그 사촌에게 간만에 전화라도 할까보다. ACE 88 기억하니? 라고 묻게.

 

2025.7.27.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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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7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모든 책의 추억이 저랑 겹쳐서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아시마 2025-08-11 10:57   좋아요 1 | URL
아마도, 저와 연배가 비슷하신 모양입니다~~ ^^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책들 중 하나가 중1때 짝꿍이 가지고 있던 빨간색 셜록홈즈 전집이었는데, 출판사가 어디였는지, 전질이기는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얇은 페이퍼북 장정이었고, 짝꿍도 아빠의 책이라고 했던 것 밖에는 기억이나지 않아요. 그 친구와 학기 초 이후 사이가 멀어져 몇권 빌려보지도 못했던 책. ㅎㅎㅎㅎ 혹시 어떤 책인지 아시나요.

바람돌이 2025-08-11 10:35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릴 때는 열렬한 루팡 독자였네요. 홈즈는 읽긴 했지만 딱히 좋아하지는 읺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역전되더라구요. ㅎㅎ 그런데 빨간색 표지의 셜록홈즈 약간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는데 기억은 안나요
이 시절에 저는 집에는 책이 없어서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거든요. 그 먼 시절에 도서관이라니 이상하죠. 근데 진짜 국민학교 시절 시골 학교인 저희 학교에 지금 생각해도 꽤 괜찮은 도서관이 갑자기 생겼더랬아요. 그 때 무슨 정책의 변화가 잠깐 있었던거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 - 증보판
김연수.김애란.심보선.신형철.최은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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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by 김연수 외

 

읽은 날 : 2025.5.15.

 

나는 수능 2세대다. 수능으로 대학을 간 두 번째 학번이고, 어쩌면 수능체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첫 세대 일지도 모르겠다. 수능, 그러니까 수학능력시험이 학력고사를 대체하게 되리라는 발표가 나왔을 때 교육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교사들조차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수능이 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그때도, 지금도 한다. 수학능력시험이라는 말을 처음들은 사람들은 수학數學실력 만으로 입시를 한다는 이야기냐고 물었고, 그 수학數學이 아니라 이 수학修學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멍해졌다. 언어 그 자체로만 따졌을 때, 수학능력시험은 과거의 학력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거니까. 잘 배웠느냐를 묻는 게 아니라, 잘 배울 수 있느냐를 묻는 시험. 도대체 뭘로 기준을 잡아야 하나.

 

나는 그 한가운데 학생으로 앉아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3월엔 지금도 그러하듯 모의고사를 보았고, 그때의 모의고사는 학력고사 형태였다. 그러니까 나는 실은, 학력고사라는 형태도 수능이라는 형태도 모두 교육현장에서 경험한 세대인지도.

 

6-7월경, 수능형 모의고사를 처음 보았을 때, 학교는 완전히 뒤집어 졌다. 말도 안 되는 성적 역전현상이 쏟아진 거다. 내신 1-2등급을 받던 아이가 수능모고는 550명중 400등 밖으로 밀려나고 내신이 엉망인 아이가 수능모고 등수는 전교 30등을 하는 식으로. 그 중 아이들을 가장 경악하게 만든 건 언어영역(지금의 국어영역)이었다. 시험에 출제된 모든 지문이 처음 보는 지문이었던 거다.

 

어쩌면 맞는 말이다. 수학능력이라는 건, 앞으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보겠다는 이야기고, 뭔가를 배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 해석능력, 요즘 유행하는 문해력이니까. 최초 수능 언어영역의 기조는 교과서 외 출제였다. 그러니까, 문학으로 한정 지어 이야기하자면, 학교에서 문학 독해능력을 배워 새로운 문학작품을 제대로 해석해 내봐라, 하는 거다. 이론은 좋지.

 

입시에 특화된 지역(우리 지역은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다.)에 입시에 특화된 학교(그랬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포함한 그 지역 인문계고등학교는 4년제에 90%가 진학했다. 내 또래의 대학진학률을 생각할 때 이건 말도 안 되는 수치다)는 빠르게 적응했다. ‘수능도 학력고사를 가르친 방법으로 정복해 주지. 교과서 외 지문 출제가 기조야? 그렇다면 교과서 외의 지문을 전부 가르치겠다는 게 그들의 목표가 되었다. 이 무슨 6.25 중공군 인해전술도 아니고.

 

학교 앞 문구점을 겸하는 서점에 바로 각종 참고서와 문제집이 깔렸다. 현대시만 300편이 실린 문제집이 우리 앞에 등장했다. 교과서에 실릴 일이 없었던, 원래대로라면 대학 국문과에 가서나 배웠음직한 온갖 고전 시가와 가사와 산문이 몽땅 수록된 문제집도 나왔다. 나 현전하는 향가 25수에 정철이 쓴 모든 가사를 고등학교 때 배운 여자. 하하하하하하. (도대체 저 많은 작품을 다 읽고 해석할 시간이 어떻게 났냐고 묻지 마라.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다만 우리는 7시까지 등교해서 저녁 6시까지 꽉 채워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을 했고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으며 토요일엔 5시 하교, 방학 땐 오전엔 보충수업 오후엔 자율학습을 했다. 뭐 이쯤 하면 90%4년제 진학률이 납득이 되지 않나. 미친 세월이었다.)

 

그래. 시는 짧으니까 그렇다 치자. 고전이건 현대건 소설은 어쩔 건데? 심지어 해외 문학도 있는데? 중장편 소설이나 장편서사시는 어쩔 거야. 신동엽 <금강>이나 김동환 <국경의 밤>을 모두 문제집에 실을 거야? 입시와 돈에 관련되자 출판사들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중요작가의 주요작품을 모아놓은 단편집은 기본, 장편 소설의 다이제스트 판과 작품해설 모음집들이 즐비하게 깔렸다. 고전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건대, 저작권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해적판이었음이 분명하다.

 

출간과정이야 어쨌건 전문가들에 의해 선별되어 최고의 작품성이 보장된 시에 최고의 평론가들이 요점정리를 해서 떠 먹여주는 해설집이라니. 10대 후반의 말랑한 뇌는 이해의 과정 없이도 그 모든 글귀를 전두엽에 때려 박았다. 이해가 없으니 감동이 있을 리가. 그러나 앎과 감동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고, 나는 그것들을 그냥 알았다’. 이미 최고의 평론가가 얌전하게 해체해 가지런히 정리해 둔 글이니 나의 견해 따위는 무관했다. 문자는 그대로 뇌에 박혀 이것이 나의 해석인지 타인의 해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작품 해설에 내가 토를 달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냥 받아들이는 거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야심한 시간,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온갖 문학작품의 다이제스트판과 작품해설집을 읽던 시기가. (‘자율학습이라고 해 놓고는 실은 강제여서 우리는 3년 내내 모든 학생들이 별 보고 나와 별 보고 들어가는 생활을 했다. 그때 우리는 야자가 없다던, 머리를 기를 수 있다던 서울의 여학생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 그 끔찍한 귀밑 3센치.) 미친 세월임에도 축복받은 시절이었다. 수능 언어영역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선생님들의 고육책은 많은, 실은 대부분의 아이들을 미치게 만들었지만(그리고 실제로 미친짓이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미셀 트루니에 식의 교양인이 아닌 교육인이 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그 미친 현대시 300(만 배웠겠나요...) 문제집이 아니었다면 교과서 외의 시를 절대 읽지 않았을 것이고, 선생님이 읽으라고 해서 읽었던 그 많은 다이제스트판과 작품해설 모음집에서 본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 낯가림이 심하고 독서 편식이 심한 나에게 그나마 작은 문이 되어주었다. 그때 열린 그 작은 문으로 나는 더듬더듬 문학의 세계를 헤쳐나가는 중이다.

 

이 책은 내가 그때 열었던 그 문보다 훨씬 아름답고, 그 문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지게 만든다. 이 문을 열고 나와보세요, 문 너머의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흥미롭답니다, 같이 걷지 않으실래요? 라고 유혹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우리 다 같이, 문을 열어 보아요. ^^

 

2025.5.19.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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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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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유전by 강화길

 

읽은 날 : 2025.4.18.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의 5-6년간, 나는 거의 매년 한 번 씩 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명은 매번 동일해서 편도선염이었고, 대학을 다니고 있을 무렵의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기에 입원하는 병원도 매번 동일했다. 지금은 없어진 창원 주택가 모퉁이의 자그만 종합병원.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약속한 듯 물었다. 편도선 제거 수술을 하지 그랬니.

 

매번 같은 병원에서 매번 같은 의사에게 진료를 보니 의사는 내가 왜 아픈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 편도선이 약한 것은 엄마 쪽의 유전이요, 그럼에도 무려 입원씩이나 하게 될만큼 심하게 앓는 것은 내 탓이었다. 몸은 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성실하게 전달하는데 그 컨디션 난조를 뚫고도 내 하고 싶은 일들을 해버리는 성격이라 못 버틴 몸땡이가 강제 셧다운을 시켜버리는 게 나의 편도선염이라는 게 그분의 판정이었다. 이 편도선염조차 없다면 너는 크게 앓게 되리니 제거 수술 대신 그냥 일년에 한번쯤 병원 입원하는 걸 택하라고. 그분의 말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너도 철들면 나아지겠지.”

 

편도선염은 말 그대로 염증이라 통증과 고열이 기본인데 사람이 열에 들뜨면, 세상이 몽롱해지기 시작한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을 둥둥 떠 다니는 느낌, 체감되는 입김의 뜨거움. 그 중 제일 재미있는 건 약물의 효과로 실시간으로 열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는 것과, 역시나 그 약물의 효과가 떨어질 때쯤 실시간으로 열이 오르는 것을 실험 관찰하듯 보는것이었다. 그럴 때 내 몸은 투명 실린더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라니. 드래곤 브레쓰를 내뿜으며 오한과 더위를 오고가는 3-4,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고 그렇게 한바탕 앓고 나면 봄이 왔다. 병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샛노란 산수유 꽃을 보며 김종길의 <성탄제>를 중얼거리던 날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대로 내가 철든것인지, 20대 중후반부터는 편도선염의 횟수가 줄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심각한 고열이 오지도 않았다. 더는 편도선염으로 입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왔어, 왔어. 왔다고. 그분이 강림하셨어.

 

몸과 정신이 분열했다. 통증을 견디면서도 그 목젖 너머의 염증과 고열이 연락 끊어진 옛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그 몽롱함과 세상에서 유리된 느낌은 기꺼울 정도.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었다. 눈에 띄는 책 중에 가장 작고 가벼워 보였기에 골랐고 오르내리는 열 사이사이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깨면 다시 읽고. 눈은 글자를 읽는데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 책을 끝냈을 때 내게 강림하셨던 그분도 퇴각을 알렸다.

 

처음 읽은 강화길의 작품은 다른 사람이었고, 2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었기에 읽었다. 작가에 낯가림이 심한 내가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문학상이다. , 나는 권위에 순순히 복종하는 소시민일 뿐이니까, 라고 이야기 하기엔, 이 문학상에도 낯가림을 좀 하는 편이긴 해서. 내가 믿고 보는 문학상보다 믿고 거르는 문학상이 더 많긴 하다. 하여튼 한겨레 문학상은 믿고 보는 문학상이라 강화길이라는 낯선 작가를 만났는데 그녀의 글은 내가 한겨레 문학상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다. 이어서 괜찮은 사람을 읽었고 이후 출간한 작품들도 모두 따라 읽었다. 특히 대불호텔의 유령은 심윤경의 책 영원한 유산과 붙여 읽은 탓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대, 건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 남성 화자와 여성 화자의 차이. , 이런 대조 대비 너무 재미있는 거 있지. 읽은 직후엔 두 글을 가지고 리뷰 써야지 해 놓고는 이러고 있다, 내가.

 

강화길은 오컬트 요소를 글에 잘 끌어들인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는데 서사가 강한 작가라 그 해체된 이야기와 환상과 오컬트 요소들이 하나의 강력한 서사에 묶여 단단한 구조를 이룬다. 강화길의 환상은 오해에서 시작해 인지부조화로 끝난다. 오해라는 요소를 가장 잘 다룬 작품이 다른 사람이었고, 여기서 오해는 타인이 나를 오해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오해하는 인지부조화까지를 포함한다. 강화길은 그 오해를 교정하는 대신 오해를 오해 그 자체로 인정하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강화길의 강력한 서사가 힘을 발한다. , 이 작가 글 참 잘 쓰네.

 

그리고, 이번에 강림하신 그분과 함께 하는 동안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앞에 안 읽고 넘어간 페이지, 또는 챕터가 있었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아 이 장면 왜 이렇게 낯설지 않고 좋지. 하며 읽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중편 한권을 읽었는데, 읽긴 읽었는데 서사는 서로 연결되지 않고 이 인물이 앞에 나왔던 그 인물인가, 앞에 나왔던 그 인물은 대체 어찌된 거지. 이러면서. 느슨하고 성긴 소설이었는데 장면 장면의 서사가 하도 강력하고 매력있어서 그냥 글을 읽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야기가 하나로 온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편인데, 이 소설은, ,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내가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이야긴지는 모르겠어.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 참 좋았다. 강화길의 여성서사는.

 

ps. 개인적으로 여성서사이런 류의 분류,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화길에게는 쓰게 된다.

 

2025.4.2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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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5-05-0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0대 때부터 앓고 있는 잔병들이 지금까지 절 괴롭히는 중인데 의사선생님이 오히려 안쓰러워할 정도였어요.
우스갯소리로 실손보험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ㅎㅎ
편도선염으로 일 년에 한 번씩 입원할 정도였으면 엄청 고생하셨겠어요ㅜ
아픈 와중에도 책 한 권 뚝딱 읽으시다니 • ᵕ •
아프지마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