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성장했기 때문이다 - 상처 입은 치유자 공지영이 보내온 오랜 질문과 답
공지영.지승호 지음 / 온(도서출판) / 2025년 10월
평점 :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성장했기 때문이다』by 공지영
읽은 날 : 2025.12.13.
종종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떤 고민에 대한 답을 얻고자 굳이 그 책을 찾아 읽은 것도 아닌데 무슨 마법처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답이 그 책에 떡하니 있을 때. 물론 합리적인 설명을 찾는다면 아마도 내 신경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으니 그 책에서 딱 그에 맞는 부분이 도드라지게 튀어올라 보이는 그런 것일테지만(이것도 일종의 확증편향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이런 경험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확인하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다. 추가로 말하자면, 그 답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너그러워지는 나를 느낀다. 그와 동시에 참을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느껴진다. 이제는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데 기력을 소비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 것과 견디지 않는 것은 서로 연관되지 않을 수도 있더라. 화가 나지는 않는다. 순간순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그게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음을 더는 견디고 싶어지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쁜 사람 아니고 나쁜 뜻도 없고 심지어 나를 좋아하기까지 한다는 거 알아요. 근데 그 사람은 나를 보면 화가 나는 지점이 있고 그걸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나를 보면 화가 나는 사람을 내가 왜 만나야 해요?”
p.46
공지영의 이 명쾌한 답이라니. 나는 종종 ‘상대방의 선의’에 대해 생각하는데, 실은 상대가 무슨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내게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잘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랬겠지, 그 사람은 이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면 내 맘이 편하니까. 그런데 50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는, 상대가 선의든 악의든 그저 거슬리는 걸 참는 데서 오는 감정의 소비를 더는 안 하고 싶어진다. 에너지가 점점 떨어져서 그런데까지 쓸 기력이 없는 거다. 그냥 심플하게 ‘물리적 거리’를 두고 싶은데, 아아, 그게 쉽지가 않네.
어느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그 운명과 맞설 수 있다’는 답을 얻었어요. 어떤 경우든 자긍심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자긍심은 ‘내가 룰을 어기지 않았고 노력을 하며 살아왔다’는 데서 오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덕목입니다.
p.114
예전에는 사람들의 뒷말에 귀를 쫑긋 세웠었다. 내가 뒤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고, 남들이 나를 뭐라고 말하는가가 나를 쉽게 흔들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나는 남들이 내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뭐라고 말하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룰을 지켰고, 남의 험담을 하지 않았으면 됐다. 내가 했던 언행이 뒷말이 되어 돌아온다 한들, 그 언행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누가 뒤에서 무슨 말을 한들 내가 뭘 어찌할 수 있겠나. 이 생각은 나를 구했다.
때로 사람들은 참 집요하게도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는 나의 이야기를 굳이굳이 내 귀에 넣어 주고 싶어 했다. 그걸 단호하게 거절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보호였다. 명확하게 말했다. 저는 궁금하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제게 중요한 것은 제 뒷이야기를 했다는 그 사람을 지금 만나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거예요. 설사 제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한들, 그건 그때 저의 최선이었을 겁니다. 저는 제게 부끄럽지 않아요.
내가 나 스스로를 이렇게 긍정하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남의 뒷말에 너덜너덜해진 심장으로 제 3자에게 나를 변명하게 되지 않기까지. 이 이야기를 공지영이 했다.
룰을 지키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아온 것이 결국 자긍심을 갖게 해준 거죠. 이는 제가 어떤 책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이야기예요.
p.115
공지영도 자긍을 통한 자존을 지키기까지 참 많이 아팠겠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공지영의 답은 알겠다. 그런데 나의 답은 어떻게 내리지.
2025.12.14.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