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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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먼저 온 미래by 장강명

 

읽은 날 : 2026.6.29.

 

리뷰를 쓰려고 날자를 보니, 어라 오늘이 대한민국에 대통령 직선제를 돌려주던 그 ‘6.29 선언의 그날이다. 당시 민정당(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TV에 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생방송을 실시간으로 봤다. 1987년의 일이고 나는 초등학생, 당시의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직선제 선언을 왜 대통령이 아닌 일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했는지를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건 지금도 궁금하다. 고작 일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따위가, 지가 뭐라고.)

 

요즘 올림픽 공원에서 시위 중인 사람들의 슬로건 중에, “전두환도 전라도 사람이 투표하게는 해 줬다는 말이 있다는데, . 대한민국 역사교육이 얼마나 망가졌는가를 보여주는 척도라기 보다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얼마나 위험한가(또는 우스꽝스러운가)’의 척도가 되어준다. 음음, 전두환은 국민투표로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박정희조차 국민투표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전한길이 저 꼬라지가 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역사교육의 탓을 하기보다는 개인의 무식 탓을 하고 싶다.

 

하여튼, 역사는 이렇게 크고 작은 마디와 매듭을 전환점 삼아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게 한 개인의 역사이든 한 국가의 역사이든, 인류 전체의 역사이든. 전환점은 전제나 존재한다. 그 당시에는 그게 전환점인지 아무도 깨닫지 못할지라도. 불가역적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이 분명 있다.

 

인공지능의 전환점은 20164. 알파고였다(고 나는 알고 있고, 믿고 있다).

 

유추(類推, analogy)라는 개념은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의 설명대로라면 두 대상의 유사성을 근거로, 한 대상에서 알려진 성질을 다른 대상에도 적용해 미루어 짐작하는 추리 방식이다. 말하자면 이미 아는 사실에 근거하여 모르는 사실을 추측해 미루어 짐작하는수법이다. 인간은 이 유추라는 방법을 통하여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씩 더듬어 확인해 나간다.

 

이 책은 바둑계라는 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미친 영향을 근거로, 이후 인간생활의 제반분야에 인공지능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유추의 방법으로 탐색한다.

 

20164, 우리 앞에 처음 등장하여 바둑계를 파죽지세의 기세로 무참하게 박살내 버린 인공지능 알파고 리…… 희한하지, 왜 데미스 허사비스를 비롯한 알파고의 개발자가 아니라, 최소한 그들이 설립한 회사 딥마인드 또는 그 딥마인드가 속해있는 구글-회사는 어쨌든 법인法人, 실재하는 인격체는 아니어도 어쨌든 권리와 책임을 가진 인간과 유사한 어떤 존재로 법률이 인정하고 있다-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파죽지세의 기세를 가지고 바둑계를 박살 내었다고 인지하게 되는가. 우리는, 아니 최소한 나는 이미 인공지능에 일종의 개별성과 객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하여튼. 알파고는 그렇게 바둑계를 바닥에서부터 크게 휘저어 분탕질을 쳐 놓고는 유유히 바둑계를 떠나 뜬금없이 화학계로 넘어가 버렸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2015년과 2016년에 인간 바둑 최고수들을 꺾었다. 같은 회사의 알파폴드는 2018년 칸쿤에서 일련 단백질 구조 예측 능력평가에서 인간과학자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알파폴드를 사용한 딥마인드 팀은 가장 어려운 표적 43개 중 25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다. 2위를 차지한 인간 과학자팀은 세 개만 예측했다. 2년에 한번 열리던 이 대회는 알파폴드 등장 이후 아예 폐지됐다. 후에 딥마인드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

(p.111-112)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알파고(AlphaGo)’의 고(Go)는 바둑의 영어 이름이다. ‘알파폴드(AlphaFold)’에서 폴드(Fold)는 생물학의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현상에서 따온 말로 인공지능을 통해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고 결합하는지를 분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벨상 위원회는 그나마 아직(?) 제정신이어서 노벨 화학상을 알파폴드가 아닌 그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수여하고 있지만(2024년의 일이다.) 내가 체감하는 건 아이고 이 문무겸전의 천재 알파X님이 무려 노벨상을 받으셨네.’ . 이 알파X, 저야 바둑계에서 놀 거 다 놀았고 더는 재미 볼 것도 없을 것 같아 새로운 재미(와 돈벌이)를 찾아 화학계와 신약 개발 사업 분야로 떠나셨으나 정말 회복불가 수준으로 쳐맞아 엉망진창이 된 바둑계의 남아 있는 사람은 어쩌나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유추의 방법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바둑계가 아닌 다른 분야라고 딱히 다를까 싶다. 이 책에서 작가 장강명은 소설계(또는 문학계)를 주로 이야기 하고 있고 나 역시 가장 관심두는 분야가 거기이긴 한데, 인공지능이 휩쓸고 간 뒤의 바둑계처럼 초토화 된 문학계는 상상하기가 무섭다. ‘어렵다가 아니라 무섭다. 인간계 최고 고수인 이세돌이 은퇴를 선언하듯 문학계 최고 고수 누군가(문학계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둑계처럼 명확한 랭킹이 매겨지지 않는다만)가 은퇴를 선언하고, 커제처럼 화장실에서 울고 인플루언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는 누구의 작품을 기다려야 하나.

 

이 리뷰를 쓰면서, 문득 2016년 알파고 등장 직후에 쏟아졌던 인간계 문과석학들의 헛발질이 기억난다. 알파고가 무엇인지(또는 누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그분들의 애처로운 헛발질은 신문의 메인 기사 제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아냥이나 비웃음이 아니다. 지금 나도 그러고 있지 않나. 2018년 한창 블록체인의 암호화폐 기술이 화두가 되었을 때, JTBC에서 편성했던 긴급 토론에서 유시민과 정재승의 토론은 겉으로는 유시민의 승리로 보였으나(토론이란 승패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도 지금도, 둘 다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 하기만 했었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의 토론. 이제는 아는 것이 뭔가가 중요한 세상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세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 어느 뛰어난 철학자(꼭 인간이 아니어도 된다.)가 튀어나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195-60년대에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개념을 설파했듯 암묵맹의 개념과 그 대처방법을 설명하는 날이 올려나.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말로 니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라고 설파했지만, 아니,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니까. . 지금 막 제미나이에게 질문하니 제미나이는 이렇게 답한다. “기술적으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인지하는 것'(AI의 메타인지 및 할루시네이션 제어)은 현대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 , 거 봐. AI는 이미 인간보다 훨씬 앞에 있는 걸.

 

과학기술은 후진하지 않는다. 이미 알게 된 것을 다시 무지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치매나 뇌손상에 따른 기억상실등의 병적 영역외에는 불가능하다. AI 기술은 이렇게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고 알파X’씨들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인간의 영역을 초토화 시키고 있는데, 인류는 초토화 되는 외에는 이것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어떤 가치는 죽으며, 한번 죽고 나면 되살리지 못한다.

(p.334)

 

작가는 이러한 인공지능의 폭주에 가까운 질주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야기는 다시 도돌이표다. 가치란 무엇인가부터 인지해야 하고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가치는 망가진 후에야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바둑의 가치가 그랬다.

 

과학기술이 후진하지 않듯, 인간의 어떤 영역도 불가역성을 가진 부분이 존재한다. 바둑계는 이제 이세돌이 귀환을 선언하고, 커제가 X나 웨이보를 자신의 폰에서 지운다고 해도 회복되지 않는다. 몇천년을 군림하던 인류의 가치 하나가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 이 망가짐은 불가역적이다.

 

, 그러면 다시 가치의 이야기로. 인류의 어떤 가치는 암묵맹의 영역 안에 있다. 망가지는 순간에서야 존재했음을 알게 되는 그 어떤 영역에.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라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2026.6.29. by ashima


p.s.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래도. 김새섬 그믐 대표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조용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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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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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여전함에 관하여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by 스티븐 킹

 

읽은 날 : 2026.5.14.

 

나는 전작주의자에 가깝다. 전작주의자라고 단정짓기 보다 그에 가깝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읽기 시작한 모든 작가의 작품을 전작하지는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몇몇 작가의 작품은 완벽하게 전작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번 전작하려 마음먹은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작품에서 실망을 하더라도 버리는 일이 없다. 사실 실망이라고 해도 기대치 자체가 높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작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이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취향은 변할 수 있어도 작가의 스타일이 변하기는 어렵다. 한 작가의 작품 안에서 수준별 편차가 있을 수는 있으나 내가 처음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그 작가 특유의 스타일)는 변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내가, 얼마전 어느 작가의 전작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이전에 모아둔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처분한다거나 하는 일은 영영 없을거지만, 앞으로 그 작가의 신작을 읽는 일 또한 없을 것 같다. 이유를 묻는다면, 아아, 늙음은 슬픈 것이구나, 라고 답할 밖에. (어느 작가인지 묻지 마시라. 당신이 예상하는 그 작가 맞을 거다. 근데 우리, 입밖에 내어 이야기하지 말자.)

 

소설가는 뜻밖에, 조로(早老)하는 존재, 아니, 소설가라는 직업은 뜻밖에 은퇴가 이른 직업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늙음을 이겨내는 작가는 흔하지 않다. 흔하지 않기에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왜 작가와 함께 나이 먹어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사실 하루키의 주인공들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기는 하다. 최근작의 주인공은 40대였다.) 그 영원한 젊음이 감탄스럽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루키가 써 내는 노년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질 때도 있다.(그게 좋을 거라는 보장은 못하겠다마는) 그 생각을 하던 중에 이 단편집을 읽었다.

 

바로 전작 페어리 테일의 주인공은 10대 후반의 소년이었기에, 이 단편집이 뜻밖이었다. 뜻밖이었을 뿐, 싫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이라는 그 고색창연한 경구가 이렇게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경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947년에 태어나 올해 만 77세가 된 이 할아버지의 소설은 캐리를 발표하던 26살의 그때와 동일하게 펄떡펄떡 싱싱하다. 주인공이 75세가 되어있어도 말이다. 75세의 주인공이 75세가 겪을 수 있는 노인병(고관절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이야기(<방울뱀>)는 그 초자연적인 공포(스티븐 킹이 가장 많이, 잘 다루는)를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상실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75세의 필은 얼마전 두 번째 결혼한 아내 다나와 사별했다. 두 번의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한명 뿐이었고, 다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태드가 너무나 불행한 사고로 4-5살 무렵 죽은 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 미워서 미운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p.200) 헤어졌다. 그리고 몇십년의 세월을 지나 재회했고, 재결합 해 1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다.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인 필과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벨 부인의 차이는 뭘까.

 

다나와 필 부부는 아이의 죽음에서 오는 공허함과 분노를 서로에게 투사할 수 있었다. 벨 부인은 그토록 비참하게 쌍둥이를 잃었지만, 남편 역시 닷새 뒤 심장마비로 별세한 탓에 그 분노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끝내 놓지 못한 것이다. “잊어버리는 건 안되는 일이지만, 너무 꼭 붙잡고 있으면…… 그러면 괴물이 탄생된다”(p.207)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 몰랐던 게 아니지만 놓을 방법도 놓을 기회도 없었던 거다. 그래서 무섭다기보다는 슬펐다, 이 이야기가.

 

7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나이일 것이다. 부모님과 이별하고, 친구와 이별하고, 때로는 자녀와의 이별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젊음과도 이별하겠지만 또한 나의 늙음과 조우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되는 나이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은 여전히 아내 태비사 킹과 해로하고 있으며, 세명의 자녀 역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사람이, 모든 일을 겪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니까.

 

작가 후기가 재미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이야기가 알맞은 도화선을 만나 온전한 형태로 떠오르는 것인데, 아주 끝내주는 경험이다. 세세한 부분이나 이야기의 결말까지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창작이 주는 즐거움의 일부다. 이런 방식이 어떤 이유에서 또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나도 전혀 알 수가 없다.”(하권, p.344)

 

스티븐 킹의 왕성한 작품활동과 그 고르게 높은 작품 수준에 많은 사람들이 창작의 비법을 물었고, 스티븐 킹의 답은 너무도 유명하다. “창작의 뮤즈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언제 오면 되는지 알려 주라.”. 그는 매우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작가 후기는 이번 단편집의 첫 번째 단편 <재주 많은 두 녀석>과 연결된다.

 

유명작가 루스 크로퍼드의 아들 시점에서 쓴 이 단편에서, 작가는 이 뛰어난 작가의 창작 비법에 대해 슬쩍 흘리는 척을 한다. 그건 뜻밖에도 우주에서 날아온 특혜였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비법을 알려주는 척하며 마지막엔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없는 걸 줄 수 있는 건 없어요.”(상권, p.93 <재주 많은 두 녀석>)

 

그러니까 엄청난 외부의 도움이 있더라도(그야말로 창작의 뮤즈가 네 옆에 붙어서 항상 노래를 불러주더라도) 기본적으로 네가 최소한의 재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아픈 깨달음을 주는 소설이다. 있는 걸 크게 키울 수는 있지만 아예 없는 걸 만들 방법은 없으니까.

 

소설의 화자는, 대부분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체념한다.

 

가질 수 없는 걸 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그걸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 된다.” .

 

하하, 이 장난꾸러기 할배.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어요!!! 오래오래 장수하세요!!!

 

2026.5.14.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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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없는 것 하영 연대기 3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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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좀. 나에게 없는 것by 서미애

 

읽은 날 : 2026.4.20.

 

시리즈 물은 작가 입장에서도 독자 입장에서도 위험과 고수익이 동반되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도박과 비슷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전 시리즈에서 구축해 놓은 작중 인물의 설정을 가져옴과 동시에 그때 이미 확보해 놓은 팬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장사일 수 있고, 독자 입장에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다음 이야기를 읽는다는 점에서 편안한 독서가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의 전개가 예측가능하다는 이야긴데(어차피 주동 인물의 성격이야 정해져 있으니까) 이건 작가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동일한, 이미 정해져버린 성격의 주인공을 데리고 독자가 예측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써 내야 작가로서의 승리를 확인받을 수 있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머리싸움을 하는 스릴러 장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작가 서미애는 한국 문학에서는 드물게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하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 하영의 매력에 힘입어 시리즈의 2편도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꽤 기대하면 읽었던 3편은. . 너무 기대해서 그럴까.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청국 칸은 자신의 문한관(문서를 작성해 주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p.284

 

서미애의 소설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김훈의 저 일갈이 떠올랐다.

 

작가는 시리즈물의 세 번째 권이자 완결편인 이 소설에서, 독자와 머리싸움을 하느라 이야기를 너무 여러번 접는다. 그렇다, 꼬는 것이 아니라 접는다. 시리즈 2편에서 써 먹은 반전이 꽤 매력있었던 건 인정할 수 있고, 그 반전으로 재미를 본 것인지 3편에서도 반전을 시도하기는 하는데, . 실패했다.

 

시리즈 1편에서 재성의 인물됨을 어느 정도 그리고 있었던 것이 시리즈 2편의 반전에 가장 큰 키포인트가 되었던 것과 달리, 시리즈 3편의 등장인물들은 이전 편에서의 빌드업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반전은 글쎄, . 사실 시리즈 2편의 반전 역시도 1편에서의 빌드업이 없었다면 그다지 신선하지 않을 반전이었다. 시리즈 물로써의 장점을 극대화 한 2편이었고, 인물을 그대로 가져다 쓴 이외 시리즈물로서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3편이었다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작가는 반전을 시도하느라 이야기를 접고, 또 접고, 또 접다보니 이야기가 여기저기 툭툭 튀어오른다. 이전편에서 가지고 있던 작가 특유의, 이야기와 장면을 끝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박력이 사라져 버리는 거다. 사실 밀어붙일 이야기가 없기도 했고.

 

작가가 이 시리즈를 이즈음에서 완료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뭐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했다고 했지만) 뜬금없이 새삼, 다행이다, 싶다.

 

2026.5.14.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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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와 생존자 잘 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by 서미애

 

읽은 날 : 잘 자요, 엄마2026.3.7.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2026.3.8.

 

바로 며칠 전 뉴스에 세칭 모텔연쇄살인사건의 범인 20대 김모 여인이 사이코패스 진단 평가(PCL-R) 결과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는 친절하게도 사이코 패스 진단 검사의 만점이 40점 이라는 것부터, 25점 이상이면 통상적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이고 유영철의 점수가 38, 정유정이 28, 강호순이 27점이라는 것까지 밝혀주었다. 언젠가부터 흉악 범죄가 벌어지고 그 범인이 검거되면 그들의 사이코패스 진단과 그 결과를 고지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 소설 잘 자요, 엄마에는 20여명의 여성을 살해한, 굳이 검사를 해 보지 않아도 사이코패스임이 분명한 연쇄살인범 이병도가 등장한다. 검거 후에도 밝혀진 범죄 외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굳이 풋내기 범죄심리학자 이선경을 지목해 면담을 원하고 선경은 학자적 탐구욕으로 이 상황에 엮여 들어간다.

 

소설은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 내가 아는 맥도널드는 미국의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야뇨증, 방화, 동물을 상대로 한 잔혹행위라는 세 가지 아동기 특징으로 어떤 사람이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정상인지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특징이죠?”

연쇄살인범들의 어릴 때 특징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이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죠? , 특수 상황을 일반화시킬 때 생기는 오류죠. 그것들이 연쇄살인범의 어릴 때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의 경우, 즉 그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연쇄살인범은 아니죠. 아니, 오히려 그 수는 극히 미미하다고 봐야죠.”

……

어릴 때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이 된 거죠?”

서미애, 잘 자요, 엄마, 엘릭시르, 2010, p.42-45 발췌

 

풋내기 초보이기는 하지만 범죄심리학자인 선경은 연쇄살인범들은 수많은 퍼즐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여러 가지 요인이 모여서 완성되는 존재”(p.47)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그 여러 가지 요인을 모아주는 것이 어린시절의 가정 내 학대라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그 말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가해자의 서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이 된 거죠?’라는 말에 답을 할 수도 없다.

 

인류는 이 라는 질문을 통해 생존했고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라는 질문을 통한 원인과 결과 찾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원인의 소거를 통해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개별 범죄자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지언정 그 왜?라는 질문을 멈출수는 없다. 인간이란 원인과 결과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인류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기에.

 

이병도는 지독한 가정폭력 속에 성장하다 11-2살 무렵 그 폭력에서 도망친다. 도망의 끝에 다다른 곳에 과수원집 네 모녀가 있었고, 그곳에서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평화와 안정을 맛본다.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아동폭력의 희생자였지만 아직은 그 무엇도 하기 전에 도망을 쳤고, 도망친 곳에서 만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따뜻한 사람들이었기에.

 

선경의 의붓딸 하영은 선경의 남편 재성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결혼한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가, 어느날 남편이 12살이 다 되어가는 이 아이를 두 사람만의 안온한 가정으로 데리고 온다. 하영은 10살에 엄마를, 11살에 자신을 돌봐주던 외조부모를 동시에 잃은 불쌍한 아이다. 15살 무렵에 엄마를 병으로 잃었던 선경으로서는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병도와의 기싸움과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보이는 의붓딸 하영과의 기싸움에 선경은 점점 지쳐가고, 이병도도 하영도 선경에게 매달려 구원을 찾는다. 그 와중에 남편 재성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이 굴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학문적 지식은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선경은 점점 지쳐간다. 이병도의 선경에 대한 집착이 병적으로 진행될 무렵, 선경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병도와의 접점을 끊어내려 하고, 하영에 대한 어른이자 부모로서의 연민과 책임감, 인간으로서의 거부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이병도와 하영은 자신들의 구원자로 생각했던 선경에 대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작가의 서술은 스피디하고 박력있다.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책이다. 작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선경의 행동이나 사고가 거부감을 느끼게 할 것임을 알지만 적당히 뭉뚱거리는 성녀적인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 선경의 답답할 정도의 머뭇거림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선경에게 독약을 먹이고 이불을 덮어주며 잘 자요, 엄마라고 말하는 하영의 말은 기묘하게 슬프다. 소설 전체에서 처음으로 선경을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이 선경을 독살하는 순간이라니. 그 순간 하영이 죽인 것은 선경이라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구원자의 존재이기도 하다. 구원의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작가는 연쇄살인범이 되는 여러 가지 요인을 한데 모으는 것이 본인의 선택임을 입증한다. 희망에의 포기.

 

작가는 잘 자요, 엄마를 통해 어린 사이코패스의 완성을 보여준 지 10여년이 지나 16살의 하영을 데리고 다시 왔다. 선경은 죽지 않았고, 하영은 3년여의 아동 상담을 받으며 선경의 곁에서 성장했다. 4-5년 간, 선경과 하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으며 한 집에서 살아간다.

 

선경은 아동심리 전문가인 친구 최희주에게 하영의 심리상담을 맡기고, 하영은 어쩌면 최 선생을 통해 아줌마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 2021, p.69)에 그 상담에 응했지만 삼 년간의 상담은 결국 아줌마와 다시는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소설 초반부, 선경의 친구이자 하영을 상담하는 아동심리전문가 최희주의 말은 너무나 정답이어서 상대적인 반감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독자도, 주인공 선경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마, 라는 반발을 일으키는 말이랄까.

 

바보야,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몰라서 그래?”

?”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거잖아. 하영인 애정을 원하는 거야. 정에 목말라하는 거라고.”

……

삼 년 동안 너희 모녀 상담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하영인 끊임없이 너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고 너는 햇볕 한 줌 안 주는 차가운 태양 같았어.”

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 2021, p.91-92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작중인물만이 아니다. 독자 역시 작가의 유도에 따른 것이든 오독의 결과이든 편견을 쉽게 가지는 존재다. 그것이 시리즈물의 등장인물일 경우 더하다. 이전 시리즈에서 구축 된 작중인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작중인물인 최희주에게 주어진 하영에 대한 정보보다 독자에게 주어진 하영에 대한 정보가 훨씬 많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최희주의 저 교과서적인 말들이 하찮음을 넘어 주인공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너의 진심은 알지만 너는 모르는 일들이 있어. 랄까.

 

전 편 잘 자요, 엄마가 사이코패스 이병도의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후편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는 사이코패스 하영의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성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대한 답이 나온다.

 

재미있는 교차다. 이병도는 11살에 도망쳤고, 하영은 11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능동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과수원집이라는 안온한 피난처에서 이병도는 16살에 스스로 떠나 그 지옥으로 돌아갔고, 하영은 16살에 과거의 지독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본의와 상관없이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일까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만들어진다면 왜 만들어지는 걸까요.

 

연쇄살인마와 외과의사가 냉정함과 대담함의 측면에서 동일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흔히 알려진 말이다. 같은 특질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끝도 없이 파괴하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끝도 없이 살리는 외과의사가 된다. 그 둘을 가르는 선은 무엇일까.

 

17살이 될 무렵의 이병도와 하영에게는 동일한 살인충동이 찾아온다. 물론 그 강도와 상황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그 순간에 각자의 선택이 그 ?’라는 질문의 답이 된다. 왜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 누군가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누군가는 아니게 될까요. 라는.

 

 

새로운 작가를 소개받는다는 건 매번 망설여지는 일이다. ‘소개받는이라는 피동의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작품을 읽는 것은 나의 능동적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때로 그 피동을 가장한 능동의 행위가 흡족한 결과를 가져 올 때, 나의 독서쾌감은 더 커진다.

 

작가는 이 하영 연대기3부작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2편이 나왔으니 이제 한편 더 남았다.

하영의 선택이 지켜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주문해 둔 다음편을 기다리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신작을 기다릴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건, 삶의 즐거움이 또 하나 늘었다는 소리다.

기쁘다.

 

2026.3.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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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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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필요했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by 김지현

 

읽은 날 : 2026.3.4.

 

나는 음식 관련 이야기를 좋아한다. 음식을 주요 소재로 한 소설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보다 이야기의 갈피에 삽입된 음식 이야기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박완서를 좋아하는 건 그분의 소설에 음식이야기가 정말 맛깔나게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관련 최고의 박완서 작품은 그 남자네 집이지만(아 그 다양한 서울 음식의 향연), 도시의 흉년에 등장하는 음식들과 미망의 그 개성 음식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소설 속 음식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에 생동감과 실제성을 높인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에서 눈 내리는 날 메이플 시럽 달이는 이야기와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에서 등장하는 그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는 어떻고. 그 중 최고 백미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의 그 장면이다. 어멘가드와의 파티가 라비니아의 고자질에 따른 민틴 선생의 훼방으로 파토난 직후 등장한 그 마법 같은 한상.

 

접시의 뚜껑을 열어 보니 충분히 끼니가 될 만한 따끈하고 먹음직스런 진한 수프와 샌드위치와, 둘이 먹고도 남을 만한 토스트와 머핀이 있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세라 이야기, 시공주니어, 2004, p.246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의 맛과 식감을 충분히 알고 상상할 수 있기에 세라가 받은 그 따뜻한 위안을 독자인 나도 함께 받는 순간이었다. 따끈하고 진한 수프와 샌드위치, 토스트와 머핀. 그게 어떤 맛인지 나도 알거든.

 

언제나 문제는 그 상상이 불가능할 때에 발생한다. 해리 포터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버터맥주(버터비어) 같은 것. 아직도 한참이나 미성년인 11-2살 아이들이 먹는 맥주라니, 19세 미만은 술을 사는 것조차 불가능한 나라에서 성장한 나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너무도 맛있게들 마시니까 더욱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에 읽었던 소설에 등장하는 요크셔 푸딩 이라든가,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가 끝내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원인이었던 라임 절임, 초원의 집에서 나오는 버터밀크나 로라의 아빠가 히코리 나무 연기로 처리한 햄만큼 맛있는 건 없단다.”라고 말하던 그 훈제 사슴고기나 돼지고기. .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어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요즘은 구글느님의 힘으로 클릭 몇 번이면 사진은 물론 제조법과 원한다면 구매처까지 일괄 검색이 가능하지만.)일단 내가 아는 햄은 고깃덩이가 아니고, 히코리 나무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박완서의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오감을 동반한 실제감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것과는 정 반대에 있었다. 아는 맛과 모르는 맛의 차이.

 

그저 홀로 상상을 해 보는 수 밖에. 버터 맥주는 맥주에 버터를 녹여 넣은 건가, 아니면 맥주가 버터를 녹인 것처럼 걸쭉한 질감이 나게 만든 건가. 버터 밀크에 대한 상상은 나름의 합리성까지 띠고 있었다. 우유에 버터를 녹여서 더 녹진하고 풍부한 맛을 내게 한 건가보다. 하는 실제의 버터밀크와는 정반대의 상상을. 크리스마스 만찬마다 등장하는 칠면조 통구이는 어차피 같은 조류니 통닭 전기구이와 비슷한 맛이려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마다 일상의 음식을 하도 맛있게 조리하고 먹는 장면을 삽입하기에 하루키의 소설속 음식 관련 책들도 나왔다. (내 부엌으로 하루키가 걸어들어왔다1,2,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작가정신, 2003 / 하루키 레시피, 차유진, 문학동네, 2013) 소설 속 주인공이 먹는 음식을 나도 먹어보는 건 그 무엇보다 강력한 몰입을 위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책이 나온 걸 보면. 이 책은 해외 소설(주로 영미권)에 등장하는 우리에게는 낯선 음식과 식재료, 그리고 오역으로 잘못된 소개로 잘못 알려진 음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덕분에 몇몇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풀었고, 몇몇 음식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었으며, 몇몇 소설을 소개받았다.

 

그래, 이런 책도 있긴 해야지.

 

2026.3.4.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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