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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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는 신인류 제노사이드by 다카노 가즈아키

 

읽은 날 : 2026.2.21.

 

2월이 되어 일을 그만두면서 통으로 주어진 물리적인 자유시간덕에 그간 읽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줄줄이 읽는 중이다. 이 책은 밀라노 동계 올림픽의 남자 쇼트트랙 5000미터 계주 결승 경기를 기다리며 읽었다. (나는 황대헌이라는 선수를 아주 좋아하고, 황대헌이 포함 된 한국 쇼트트랙 남자팀은 밀라노 동계 올림픽 계주에서 은메달을 땄다. 축하축하.)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알만하다. 다만 이 책이 처음 집필되고 한국에 출간되던 2012년에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로부터 14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이 책에서 말하는 진화된 인류는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는 느낌이라.

 

내가 기억하는 새로운 AI의 등장은 20164월이다. 그 전까지의 인공지능이란 검색형 인공지능- 다시 말해 인류가 만들어 놓은 지식 정보를 좀 더 빨리 검색하는 정도였다면, 20164월에 만난 알파고씨는 창조형 인공지능- 다시 말해 그간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사고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였다. (이건 전적으로 문과형 인간인 나의 생각이므로 팩트와 다르다해도 어쩔수 없다. 여기까지가 나의 인식과 사고 한계다.) 그야말로 지능을 지닌 전혀 새로운 존재의 도래였다.

 

2016, 그 새로운 존재를 우리 삶에 처음 맞아들였을 때, 당시 최고의 석학들은 AI와 함께 하는 인류의 미래가 그리스 시대의 복원과 같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니까 각종 노동과 기술은 노예(AI)가 담당하고 그리스인(인류)는 자연을 벗 삼아 예술을 창조하고 철학을 논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6.

 

이제는 과거만큼의 권위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여전히 많은 문청들을 설레게 하는 신춘문예’. 2026년 최고의 화두는 AI 였다. 그러니까 응모작의 일부 또는 전부가 작가 본인의 창작품인지 AI를 활용해 쓴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거냐는 문제가 대두 된 거다. 그 판별 또한 AI에게 맡기게 된다면, 여기서 인류가 설 자리는 어디지.

 

이 문제에 쐐기를 박은 건 202622일 조선일보와 한 소설가 황석영의 인터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사상(정치적 스탠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관쪽의 불호가 심하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 황석영이, 최근 출간작 할매를 쓸 때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최근 신작 장편 할매를 내놓은 황석영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GPT를 조수로 활용했다“600년 된 팽나무, 시대 배경, 구성 방법 등 대여섯 가지 요소를 입력해 놓고 AI(인공지능)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이 작업을 “(소설의) 밑그림이라고 표현했다.

기사 전문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2/02/ADCHCE5GXFAYDFD5A5SNJL3DOM/

 

예전 만화가들은 문하생제도를 두고 그림을 그렸다. 작가가 연필로 스케치를 하면 배경 담당, 스크린톤 담당 등이 원고의 완성을 돕는 것이다. 그렇게 만화의 기법을 배워 새로운 만화가로 성장해 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후 문하생어시스턴트’(어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 역할과 위치도 변경되어 가곤 하다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웹툰계에는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전에 썼던 장면을 복사해서 새로운 장면에 붙여넣고 대사만 바꾼다거나 다른 작가가 그린 배경과 구도를 카피해서 자신의 작품에 쓴다거나.

 

이제는 AI에게 몇가지 조건을 제시(이게 황석영 작가가 말하는 밑그림인가)하고 스토리와 대사를 입력하면 AI가 알아서 근사한 웹툰을 그려 가지고 온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이 방법으로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이다. 복붙논쟁은 이제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이야기만큼이나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최근에는 소설 한편을 던져주고 웹툰으로 그려줘, 라고 하면 근사한 만화로 변신한 소설을 받아볼 수 있다. 그림체 지정도 가능하다.

 

일러스트레이터나 웹툰 작가들은 이제 뭘 해서 먹고 사나.

 

황석영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쓸 때 GPT”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창작했음을 말한 그 인터뷰 기사가 실렸던 조선일보 202622일자에는 또 다른 AI 관련 기사가 실렸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영미권에 수출할 예정인 조선 시대 장유의 시 홀로일 때 삼가라(愼獨箴·신독잠)’에 대해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영어 버전과 챗GPT로 번역한 버전을 놓고 국내 영문과 교수 16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누가 번역했는지는 가린 채 한글 원문과 두 번역본만 보여주며 어느 번역이 더 좋은지 물은 결과, 교수 12명이 챗GPT 번역을 선택했고, 2명은 인간 번역을 택했다. 2명은 판단 불가를 선언했다.

기사 전문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2/02/OIG5JDUYT5BV3GTVRDVZ66EM7Q/

 

AI의 압승이다. 나는 지난 2년간 개인적으로 구글 제미나이의 중국어 번역을 살펴보고 있는 중인데, (제미나이 1.5 버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최근엔 3.0pro 버전이 나왔다) 1.52.0 까지는 번역문을 다시 여기저기 트리밍 해 줄 필요가 있었다면, 2.5 버전 이후의 번역은 정말로 어설픈 인간 번역자보다 훨씬 나았다.

 

AI가 우리 곁에 등장하고 10,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리라 예상했던 예술분야가 가장 먼저 박살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건, 2025년의 어느 신문기사에서는 향후 가장 유망한 직종을 기술 육체 노동직(도배공, 타일공, 배관공 등)이라고도 한다. 2016년의 예측이 단 10년만에 이렇게 완벽하게 뒤집힌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 변이로 등장하는 신인류의 특징에 관해 이렇게 묘사한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 할 수 있는 점,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

p.247 하이즈먼 리포트5. 인류의 진화

 

이 소설은 내내, 에마와 누스(아키리)라는 신인류에게 현생인류가 어떻게 농락당하는지를 보여준다. 소설 내 최고 천재로 묘사되는 아서 루벤스를 비롯한 미국의 최고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수준으로 신인류 누스를 이해하고 예단하는 뻘짓을 벌인다. 그나마 루벤스는 그의 적어도 인간들 중에서는 뛰어난 지적 능력 덕에 상황을 조금 더 빨리 이해하기는 하지만. “누스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입니다. 그의 사고를 쫓는 일은 인류에게는 불가능합니다.”(p.316)

 

그리고 이어지는 서술은 묘하게 현재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초인류의 특질은, 그대로 현생인류의 결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습성인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채운 인간만이 세계 평화를 입에 담았다.

p.316-317

 

지금 우리 곁에 창조의 능력까지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homo-AI는 애초에 식욕과 성욕 자체가 없다.(, , 없겠지? 이 또한 비루한 현생인류의 예단인가.)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에 관해서는 모르겠지만, 팩트 이외에 학연 지연 등등의 어설픈 편견(즉 현생인류의 결함)을 가지지 않을 것은 확실하기에 AI로 판사를 대치하자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있다. 인류 전체는 아니어도 한 인간 개체의 운명과 미래를 AI에게 맡기는 것에 대해서 별 저항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개체가 전체로 변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소설은 뒤로 가면 급속히 맥이 빠진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은 1865지구에서 달까지라는 SF 소설을 쓴다. 19세기에 달로 가는 우주선을 상상한 것이다. 로켓이 제대로 실용화 되기도 전에 쓴 소설임에도 1965년의 아폴로 계획과 비교해 봐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엄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가진 쥘 베른이 우주에 띄운 비행선 안에서 쓰는 조명 기구는 가스등이다.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1879에 나오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뒤죽박죽인가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 소설도 그 쥘 베른 로켓 속의 가스등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들이 있다.

 

소설의 설정상, 신인류 에마와 누스(아키리)는 특정 유전자 변이로 인해 나타나게 된 존재들이다. 각자의 모친이 다른 데도 둘 다 신인류인 것을 보면 아버지 에시모로부터의 변이인 듯 하다.

 

인간 게놈 지도는 이 소설이 쓰이기 전 200399,99% 완성 되었고, 2022년 나머지 8% 미해독 영역까지 포함한 100%의 완전한 지도가 완성되었다. 작가가 집필할 당시 게놈지도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고 해도, 작가가 설정한 신인류의 지능이라면 그 당시 미완인 게놈 지도를 완성하는 건 어려울 것도 없다. 현생인류의 기술로도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어 그렇지 이미 유전자 조작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건 가능하다.

 

굳이 근친교배의 위험성을 대비해 약을 개발하고 어쩌고 하는 짓을 할 필요 없이, 수정란의 유전자 조작만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닐까. 그 어마어마한 지능이라면 말이지. 굳이 굳이 번식을 위해 암수 서로 정다울필요가 없었는데. 뭘 그리 기를 쓰고 일본까지 날아가느냐고. 누나가 보고 싶고(현재 유일하게 나와 같은 종이니까) 일본에 숨어 살겠다는 뭐 그런 설정이라면 모를까.

 

뭐 인류 최고 지능으로 설정된 루벤스도 신인류를 이해하는데 실패하는데 작가라고 한들, 이정도의 구멍 쯤이야.

 

즐거운 독서였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카노 가즈아키가 집필할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14년 뒤의 상황속에서 읽으니 허술한 듯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2026.2.21.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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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이야기
김형국 지음 / 나남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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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평전을 읽는다는 것 박경리 이야기』 by 김형국

 

읽은 날 : 2026.2.19.

 

나는 몇몇 작가의 언어적 사생팬에 속한다고 자인自認하는 바, 특별히 추종하는 작가에 관한한 그 작가 본인이 쓴 글은 물론, 그 작가에 대해 타인들이 평한 글도 열심히 찾아 읽으며 내 머릿속에 그 작가의 상을 재구성하는 걸 좋아한다. 순서는 보통 이러하다. 작가 본인의 작품 작가 본인이 쓴 에세이 언론이나 기타 인터뷰 타인이 그 작가에 대해 쓴 글(여기에 작품 평론이 포함된다) 작가의 에세이집에 포함되지 않을 사소한 잡문들(ex. 문학상 작품 심사평이나 책 추천글 등). 다행히 작가의 오프라인 사생활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나 혼자 구성한 그 작가의 상을 어디가서 우겨댈 생각도 전혀 없으니 다행이라 할지.

 

이 책은 그 차원에서 읽었다. 그러니까, 박경리 사생팬이어서, 내가. (참고로, 내가 2002년에 발간된 나남출판사 판 토지의 오탈자 투정을 하며 김형국 사장님 욕을 거하게 했는데, 정정한다. 김형국은 나남출판사 사장이 아니다. 2002년 당시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2002년 나남 출판사 사장은 조상호였고, 나남출판사 판 토지의 책임 편집자는 방순영이었다. 이름을 왜 이야기하느냐면, 내가, 하도 하도 분해서 그런다! 난 뒤끝 길고 질긴 여자.)

 

나는 몇몇 배우의 팬이기도 한데, 정확하게는 그 배우의 팬 이라기 보다는 그 배우가 맡은 역할의 팬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 배우의 사생활이나 인품이나 기타등등을 알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거든. 그래서 나는 연예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않는다. 딱 드라마만 본다. 문학으로 옮기자면 작가 본인의 작품을 보는 데서 끝나버리는 셈이다. 사실, 내가 전작하고 있는 작가들도 대부분은 , 또는 번까지가 끝이다. 타인이 쓴 글이나 사소한 잡문들까지 찾아보는 건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내가 사생질을 하는 작가의 수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건 게으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타인이 쓴 글을 읽는 건, 그리고 그 타인의 글솜씨가 범상할 경우, 참 힘든 일이 된다. 보통은 작가에 대한 글을 다른 작가가 쓰기 때문에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데(작가들의 글솜씨는 일단은 범상한수준을 넘으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음. 이 식재료가 너무 먹고는 싶은데, 맛없게 조리된 음식을 한 접시 앞에 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은, 작가의 평전은 대개가 그러하다. 그리고 이 글도 그렇다, 슬프게도.

 

이 글은 1980년대부터 작가가 타계하던 2008년까지 작가의 문하에 드나들었던 인연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같은 서부경남에 속하는 마산 출신이라는 인연도 있어(시장과 전장의 주인공 남지영은 마산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제 말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다 해서 정해진 것입니다. 제가 박경리 선생과 거의 비슷한 억양, 비슷한 발성법으로 우리말을 하기 때문”(p.527)이란다.

 

김형국은 사람 일대를 연대기적으로, 곧 시간대별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으로 일대를 재구성 하려’(p.603)는 시도를 했다. 문제는 작가의 의미론이 아니라 김형국 본인과 박경리와의 만남에 따른 의미론으로 진행을 했다는 점이다. , 본인은 평전이 아니라 하였으니 김형국이 본인의 의미론 순서에 따라 글을 진행했다고 한들 딱히 뭐 잘못이라고 할 건 없겠다.

 

글의 시작은 토지의 제 3부까지가 완간되었을 무렵, 김형국이 자신의 전공(도시계획학)과 관련하여 토지를 해석하는 글을 쓴 것을 기점으로 박경리와 인연을 맺는 이야기로 시작해, 시장과 전장을 저본으로 살펴보는 박금이(박경리의 본명)의 결혼 이야기와 소박데기가 되어 딸의 집에 함께 살던 어머니 김용수의 이야기를 엮어가다 박금이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박경리가 이미 다른 에세이나 인터뷰 등에서 밝힌 이야기들(14세 소년과 18세 처녀의 결혼, 버림받은 본처 김용수가 결혼 4년 만인 22살에 우연히 외동딸 박경리를 얻게 되는 사연, 기봉이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던 아버지의 첩실 이야기, 어머니와의 불화,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미움의 감정 등.)을 재구성해 낸다. 이후 박경리의 등단 이후 정릉 시절의 단절된 생활 이야기와 김약국의 딸들파시를 저본으로 살피는 고향 통영에 대한 애정, 유방암 투병과 사위 김지하 이야기 등등이 이어지며 끝내 토지의 완간기념 행사-솔출판사 주관- 이후 토지문화관을 건립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렇게 써 놓으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별로 재미가 없다. 슬프다. 박경리 선생의 색채보다 김형국의 색채가 훨씬 강해서 그렇다.

 

그 와중 이 책 덕에 새롭게 알게 된 건, 박경리 선생이 통영 피란시절 음악교사와 재혼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이고(1년 살고 헤어진다), 시인 고은의 추잡한 행동이다. 고은 선생 좀 창피하시겠어요, 좀이 아니고 많이. 박경리 선생의 이름을 도용해 자작 추천사1967년 출간한 에세이집 ·高銀 엣세이: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의 표지 안쪽에 붙여서 냈단다.(p.512-514. 박경리 이름을 도용한 외에, 이어령, 박목월, 강신재의 추천사도 있다. 박경리는 이름 도용이 확실하고, 나머지 세 분은 모르겠다) 한 번만 그랬으면 좀 창피하고 말 일인데, 같은 책을 1968년 문성출판사에서, 1969년 평화문화에서도 재출간 하면서 여전히 그 도용한 추천사를 달고 다녔다는 사실은 좀 추접스럽다.

 

김형국은 작가 연구의 저본으로 이 책이 기능하기를 바란 모양이라 첨언한다.

 

p.279 에서 파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는 부산 사는 처형의 부탁을 받고 통영사람 조만섭이라고 한다거나 p.284에서 보호해 주겠다며 집에 들인 피란민 수옥을 처음 범했던 이도 바로 조만섭의 손위 동서였다. 수옥을 계속 집에 두면 제 서방이 계속 그 짓을 할 거라며 멀리 통영에 사는 동생 집으로 다시 피란, 아니 피신시키는 서울댁 언니의 처신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명백히 오류다. 부산 사는 사람은 조만섭의 처제, 서울댁의 여동생 영자.

 

부산 바닥에 있으면 아무래도 동서하고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난다는 거지. 쫓아내지 않고 나를 부른 것은 당신 동생이 똑똑한 때문이고.”

참 기가 막혀서.”

남자가 나쁘지 계집애야 무슨 죄가 있나. 인생이 불쌍해서 데리고 왔지. 피란 와가지고 오갈 데 없는 처지고 보니 두었다가, 지같이 의지가지 할 데 없는 사람에게 시집이나 보내면 지도 좋고 부산 처제도 안심할 게고…….”

박경리, 파시, 마로니에북스, 2013, p.34

 

p.335에서 작가 박완서와 대학 국문과를 함께 다녔던, 토지2부 가 연재되었던 월간지 <문학사상>을 위해 작가로부터 원고수령 일도 맡았던 문학평론가(강인숙)”라는 서술이 있는데, 일단, 박완서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6.25 발발이후 대학을 다닌 바 없다. 강인숙은 서울대 국문과 52학번이 맞고, 박경리와는 친분이 있지만, 강인숙의 남편 이어령이 <문학사상>주간이요, 본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문학평론가였기에 박경리와 교류했을 뿐 토지가 문학사상에 연재되던 당시 원고수령일을 맡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토지 3부의 연재 관련 문제로 접촉이 있기는 했다. 그 부분을 옮겨본다.

 

토지를 문학사상에 연재하고 있을 때였는데, 무언가에 기분이 상하면 선생님은 연재를 중단하는 습관이 있었다. 마지막은 원주에 계실 때였는데 원고료를 인상하라고 요구하시면서 연재 원고를 주지 않으셨다.

……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 선생(이어령)이 긴 여행을 떠나자 편집실에서 내게 박 선생을 만나 그 일을 마무리해 달라고 자꾸 부탁을 했다.

강인숙, 강인숙 평론전집여류문학, 유럽문학 산고, 박이정, 2020, p.101

 

월간지 <문학사상>은 토지3부가 연재 될 예정이라는 광고까지 실었지만, 결국 토지 3부의 <문학사상> 연재는 불발되었고 <주부생활> 잡지에서 19771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한다. 1976년 하반기의 문학사상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2026.2.20.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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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전장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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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다시 읽기박경리의 6.25 시장과 전장by 박경리

 

읽은 날 : 2026.2.18.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나목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박완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6.25 전쟁이 터진 직후, 정부가 먼저 도망쳐 버린 서울에 남겨진 박완서는 자신의 체험을 글로 써서 고발하리라는 욕망이 그 시절을 버티게 하는 힘(목마른 계절)이었다고 말한다.

 

포 소리가 바로 미아리고개 너머에서 들리는데도 서울을 사수할 테니 시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 방송은 27일 밤까지도 계속되었다. 아마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남으로 후퇴한 뒤까지도 그 소리는 계속됐을 것이다.

……

그렇게 국민을 기만하고 도망갔다가 돌아온 주제에 국민에 대한 사죄와 위무 대신 승자의 오만과 무자비한 복수가 횡행한 게 또한 9.28 수복 후의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지고 생생하게 억울하다.

남들은 잘도 잊고, 잘도 용서하고 언제 그랬더나 싶게 상처도 감쪽같이 아물리고 잘만 사는데, 유독 억울하게 당한 것 어리석게 속은 걸 잊지 못하고 어떡하든 진상을 규명해 보려는 집요하고 고약한 나의 성미가 훗날 글을 쓰게 했고 나의 문학정신의 뼈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박완서,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박완서 문학앨범, 웅진, 2011, p.30-31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박완서는 31년생, 6.25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에는 서울 돈암동에 살던 서울대 국문학과 신입생이었다. 620일에 입학식을 하고, 강의를 3-4일 듣고 바로 터진 전쟁으로, 박완서는 영영 서울대 국문과와 이별을 한다. 20살 박완서가 겪은 진공상태의 서울(6.25 발발직후에서 9.28 서울 수복까지의 3개월)에서의 경험과 이후 3년간 지속된 전쟁 체험은 다양한 소설에서 변주되어 나타난다. 목마른 계절은 그 진공상태의 서울에서 겪은 일이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는 중공군이 밀려 내려오던 시절, 1.4후퇴를 따라 피란을 떠날 때다. 이후 나목에서는 1951년부터 1953년 휴전이 될 때까지의 서울시절 이야기다. 장편 그 남자의 집또한 이 시기의 이야기다.

 

박경리는 1926년생, 6.25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에는 서울 흑석동에 살던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 시절 여인들 대부분이 그랬듯 정신대 징용을 피해 급히 한 결혼이었다. 남편은 일본 주오(中央)대학 출신의 화학 엔지니어 김행도였고, 소박데기였던 친정어머니 김용수가 함께 살고 있었다. 박경리의 전쟁체험은 1964파시이전까지는 내내 전쟁직후의 혼란한 사회상만을 주로 배경으로 한다. 파시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의 후방에 위치한 통영-부산에서의 전쟁 체험기다.

 

박완서가 동어 반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집요하게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장편, 중편, 단편 가리지 않고 써 내려 가는 동안 박경리는 전쟁이 끝난 이후의 혼란기를 여성가장의 입장에서 썼다. 그러다 나온 소설이 시장과 전장이다. 표류도이전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독자의 짐작이 아니라 박경리 본인의 서술에 따른 것이다.

 

당신의 장편소설 시장과 전장(1964)을 들먹였다. 주인공 남지영이 자신의 분신이었고, 그만큼 책 서사가 당신 내력이라 했다.

김형국, 박경리 이야기, 나남, 2022, p.7

 

정부를 믿었다가 낙동강 오리알 아닌 한강변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이후에 국가와 정부를 믿게 되기란 쉽지 않았다. 정부는 도망을 치는 동안에도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다리를 끊어놓는 부지런함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했던 것은 멀리 보이는 한강 철교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많은 차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철교 중간에 있는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르면, 약속이나 한 듯이 헤드라이트들이 꺼져 버리는 것이다. 필름이 끊기듯이 깔끔하게 불들이 꺼져 버리고, 또 꺼져 버리고, 또 꺼져 버리고……

…… 차량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헤드라이트들이, 정지선에 이르면, 꺼지고 꺼지고 하는 일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강인숙, 어느 인문학자의 6.25, 에피파니, 2017 p.44-46

 

강인숙은 1933년생, 6.25가 발발하던 당시 경기고녀 2학년이었고, 함경남도 갑산 출생이다. 해방과 함께 분단이 일어나자 북쪽의 살림을 정리해 남하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6.25가 발발하던 바로 그날, 삼각지에서 한강변 용산 이촌동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150만이었던 서울 인구 중에서 남쪽으로 피란길에 동참한 인구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가운데 80%정도는 1945-1950년의 분단상황에서 북한의 집을 버리고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권헌익, 전쟁과 가족: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창비, 2020, 김형국 박경리 이야기에서 재인용 p.132

 

권헌익의 말대로 북한의 집을 버리고 내려온강인숙은, 아니 강인숙의 가족은 한강철교 폭파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도 강변에서 밤을 새워 기다려 이튿날 보트를 타고 한강을 건너 피난을 간다. 이미 인민군이 지척에 와 있을 때여서 남쪽 강변에 보트가 닿기도 전에 북쪽 강변에 인민군이 나타났단다. 따발총 소리가 진동을 하고 탄환이 강물에 떨어져 물보라를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강인숙 가족은 미친듯이 그 험한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같은 책, p.57)

 

그렇게 한강을 건넌 강인숙의 가족은 아버지의 의형제가 살고 있다는 경기도 광주 정자리를 목적지로 피난을 떠난다. 그러던 사이 인민군은 강인숙 가족을 앞질러 갔고, ‘한강에서부터 내내 인민군에게 쫓기다가, 피난을 한답시고 헐떡거리며 찾아간 곳이 바로 전쟁터 한복판’(같은 책, p.61)이었음을 알게 된 강인숙 가족은 어쩔수 없이 서울 이촌동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피란을 가고자 했으나 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정부는 9.28 서울 수복 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예고도 없이 인도교를 폭파하고, 자기들만 떠나고 나서, 수복이 되자 강을 건넌 사람들이 한강 북쪽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죄인 취급을 하는 이상한 현상’(같은 책, p.41)이 벌어지는 것이다. 박경리의 남편 김행도(소설 속 하기석)는 이 상황에 희생된다. 정확히는 생사불명이 되고 만다.

 

국가를 믿을 수 없게 된 박경리는 중공군의 참전에 따른 1.4후퇴때는 기를 쓰고 남으로, 남으로 피란을 떠난다. 다행히 고향의 이모부가 올라와 남지영의 피란에 동행한 덕에 박경리는 통영으로 피란을 갈 수 있었고 2년간 통영에 머무른다.

 

26년생,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미 직장을 가지고 있던 한 여성이 6.25를 거치며 여성가장이 되는 과정과

31년생,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한 여성이 6.25를 지나며 조카를 포함한 한 가족의 가장이 되는 모습,(박완서는 끝내 대학에 복학하지 못한다.)

33년생, 아직 고2였던 한 여성이 6.25를 지나며 그래도 그나마 부모의 보호아래 전쟁의 참상을 치루어 내는 모습(강인숙은 1.4후퇴때 오빠가 살던 군산으로 피란을 가 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부산으로 피란가있던 서울대 국문과 52학번으로 입학한다.)

이 세 가지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공통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무책임하고도 무능력했던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의 모습이다. 그들의 무능해서 악했던 모습은 당사자의 상황이 어떠했건 동일하게 잔인했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박경리라는 한 개인의 6.25 전쟁 목격담이다. 전쟁 그 자체가 휘두른 폭력보다 무능했던 정부가 자신의 무능을 위장하기 위해 휘둘렀던 폭력이 훨씬 잔혹하고도 비참했다.

 

그러했다.

 

2026.2.19.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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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 다시 읽기 박경리가 박경리인 이유 파시by 박경리

 

다시 읽은 날 : 2026.2.14.

 

벌여놓은 일의 마무리에 약한 것은 나의 오래된 나쁜 습관이다. 마무리가 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고 그다지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을수록, ‘금방 끝낼 수 있어.’ 라는 심리는 오히려 그 마무리를 더 경시하게 만든다. 202410월에 나홀로 시작한 이 박경리 다시 읽기프로젝트도 그 나쁜 습관을 비켜가지 못했다. 네달 동안 열심히 열권을 읽었고, 남아있는 책은 이제 네 다섯권 남짓, 그 남은 책 안에 파시시장과 전장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무려 1년을 그냥 묵혀둔 거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핑계는 있다. 새로 시작한 일이 나의 처음 예상보다 많은 심력(心力)을 요구해서 진득하게 뭘 잡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물론, 핑계다. 심각한 수준의 활자중독자인 나는 그 기간동안 그 어느때보다 많은 업무와 상관없는활자를 읽었다. 심력을 요구하는 그 일들에서 도망치는 기분으로. 그러나 그런 마음과 정신으로는 무언가를 진득하게 잡고 그 세계안에 빠져드는 일은 불가능했다.

 

일을 그만뒀고, 갑자기 주어진 물리적 자유시간에 허둥대며 일주일을 보내고 나서 슬그머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띈 거다. 나남 김형국 사장님이 쓴 박경리 이야기(나남, 2022). (맞다, 나 이 책 결국 샀다.) 당장 밀도 높은 소설을 읽을 자신은 없고, 이 책을 읽으며 슬슬 시동이나 걸어볼까 책을 펼쳤는데,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턱에 걸렸다.

 

대하소설 토지가 완간 된 후, 김형국 사장은 작가의 생애사 연구를 해 글을 쓰기 위해 박경리 선생을 찾는다.

 

……당신 일대를 돌아보는 자술을 마음 닿는 대로 적어주면, 거기에 담길 당신의 개인사 또는 미시사는 일제 식민지배, 국토 분단, 6.25 전쟁 등 현대 한국의 격동적인 사회사와도 맞닿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대답은 당신의 장편소설 시장과 전장(1964)을 들먹였다. 주인공 남지영이 자신의 분신이었고, 그만큼 책 서사가 당신 내력이라 했다.

김형국, 박경리 이야기, 나남, 2022, p.7

 

얌전히 김형국의 책을 덮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시장과 전장을 먼저 읽어야 겠다는, 그래야 이 책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고(시장과 전장은 읽었다는 기억만은 명확한데 그 내용이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어쩌면 안 읽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을 읽을 물리적인 시간이 주어졌으니 1년째 팽개쳐 둔 프로젝트를 완성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들었기 때문이다.

 

연대상 시장과 전장의 앞에 이 작품 파시가 놓여 있으니, 실은 이 책을 읽은 건 시장과 전장을 읽기 위해서였다.(사실 파시는 동아일보에서 1964713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해, 1965531일에 완결된다.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기는 1968년의 일이고, 파시가 한창 연재되고 있던 중인 1964시장과 전장이 현암사에서 전작 장편으로 출간되었으니, 사실 순서만 가지고 따지면 시장과 전장을 먼저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1951-2년 경, 한반도에 아직도 전쟁이 진행형이던 시기 남도땅 통영을 배경으로 한다. 낙동강 방어선이 지켜진 덕에 통영은 피란수도 부산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포화를 입지는 않았다. 사람과 정부만 피란을 온 게 아니라 학교까지 피란을 와서 그 혼란의 시기에도 대학생은 군대를 가지 않았다.(서울대 국문과 52학번인 이어령은 부산에서 입학했다.) 그 엉망진창인 전란 속에서도 인간의 급이 명확하게 갈리는 거다.

 

북쪽 출신인 수옥은 전란을 피해 남하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자신을 아껴주던 세 오빠와 이별하게 된다. 부모님과 오빠들의 생사도 알 길이 없이 홀로 피란민에 휩쓸려 거제까지 내려갔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부산으로 가게 되었고, 명화의 아버지 조만섭씨의 처제 영자씨의 집에 아마도 식모 쯤으로 기거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수옥은 영자의 남편에게 강간을 당했고,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을 못견딘 영자가 형부인 조만섭에게 부탁해 남편 몰래 수옥을 조만섭에게 딸려 보낸다. 남편의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이다.

 

소설의 첫장면은 조만섭씨가 수옥을 데리고 부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설에는 전쟁에 휩쓸린 네 여성이 나온다. 처음 등장하는 수옥은 가세가 꽤 넉넉했던 과수원집 고명딸로 여학교까지 나온데다 뛰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전쟁은 그녀의 모든 보호막을 빼앗아 간다. 그 상황에서 수옥의 미모는 생존에 오히려 치명적인 해악이 된다.

수옥을 구해주려 노력했던 조만섭씨의 딸 명화는 전쟁 그 자체에 망가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전쟁통에도 여전히 대학을 다니고 있고 그녀의 아버지 조만섭씨는 큰 부자는 아니어도 딸을 대학 공부 시킬만큼의 여유는 지니고 있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과 질환(아마도 정신분열쯤?)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전쟁을 피해(또는 공산주의를 피해 해방직후 월남... 정도로 이야기 해야 말이 맞다. 앞에서 박의사는 통영의 시골 의사짓을 이십년 동안했다고 하고, 학자네 집안이 부유했을 때 왕진가방을 들고 학자네 집에 왕진을 다니던 의사나부랭이였다고 학자로부터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또 학자, 학수, 명화, 응주는 모두 어릴때부터의 소꿉친구였다는 서술도 있다. 그런데 뒤에가면 전쟁을 피해 통영으로 왔다는 서술이 나오니 서술의 앞 뒤가 맞지 않다.) 북에서 남하해 온 박의사 집안의 역시나 의대생 박응주와 연인이 된 것은 그녀에게 별로 좋지 못한 일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정신 질환의 유전적 소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 박의사는 아들과 명화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기 때문이다.

명화보다 한 살 어린 학자는 전쟁 전 명화와 함께 여학교를 다니던 통영 유지 집안의 딸이다. 통영에서 가장 부자에 가장 집안이 좋던 학자의 집은 전쟁과 함께 완전히 몰락하고 학자는 학업을 그만 두어야 할 정도로 가난해 진다. 드센 성격의 학자는 수옥과 달리 자신의 몰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명화, 응주, 학자, 학자의 오빠 학수 넷이 소꿉친구로 지내던 시절 학자는 자신은 응주와 명화는 학수와 결혼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이 가져온 몰락으로 학자와 명화, 응주의 사회 계층은 완전히 달라지고 만다. 자괴감으로 자학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던 학자는 결국 아래로 아래로 전락한다.

선애는 경북 봉화 지역의 조촐한 농민의 딸이었다. 전쟁통에 부모 형제를 다 잃고 혼잣몸이 되었지만 어쩌다 조만섭씨의 계실이 된 서울댁의 남동생 문성재를 만나 봉화에서 결혼식까지 올리고 나름대로 자신은 삼서육례를 다 갖춘 본처라는 자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성재는 처음부터 선애와 평생을 해로할 생각은 없었던 듯 어느날 자취를 감추고, 선애는 남편이라 생각하는 문성재를 찾아 통영까지 온다.

 

사회제도가 만들어 둔 안전망이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져버린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분실해버린 이 네 여자는 (명화의 가족 안전망은 모친의 정신병력으로 이미 제기능을 상실했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살아나간다.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떠밀려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 네 명의 여성에 전적으로 대비되는 존재가 죽희다. 의대교수이자 의사인 윤교수의 외동딸로 오빠는 미국에 유학을 가 있고, 죽희는 E여대를 다니고 있다. 윤교수는 본디 서울에 살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남하했지만, 부산의 본가는 팔지 않고 그냥 뒀고, 의사이자 교수라는 직업은 전쟁통에 더욱 안전하고 튼튼한 보호막이 되어준다. 사회와 가족의 안전망 안에서 죽희는 천진난만하고 해맑다. 전쟁이라는 참극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수옥, 학자, 선애가 그랬을.

 

전쟁은 전투에 직접 투입되는 남자에게는 생명과 관여되는 문제다. 그 전쟁에 직접 투입되지 않는 여자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법과 제도의 보호가 무의미해진 혼란한 사회상 안에서 젊은 여자는 가장 연약한 먹이가 된다. 가족의 보호가 없고, 신분(직업, 학벌)의 보호가 없다면 더욱. 어찌해도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수옥을 구원해 주는 것은 학수의 사랑이고, 명화가 끝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응주의 사랑이 옅기 때문이다. (사랑의 옅음을 타박하는 것이 아니다.)

 

박경리의 서술은 박력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박경리는 서사 앞에 머뭇거리거나 움츠리지 않는다. 장면장면의 묘사가 얼마나 핍진하고 명확한지 읽다가 그 밀도에 지레 질려 소름이 돋을 정도다. 박경리가 박경리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첨언하자면.

 

요즘 아이들은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매스컴의 영향이다. 언어가 전체적으로 표준화 되어간다. 이윤기 선생은 사투리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사람은 1970년대 즈음에 해외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민을 간 사람들의 한국어 언어(단어)는 자신이 살던 그 시절에 딱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매스컴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시대인지라 사투리가 표준어로 순화(아니, 변형) 될 기회가 없었던 거다.

 

나는 경상도 사투리로부터 30년 전에 유리 되었다. 억양은 어쩔수 없이 남아있을지언정, 어느샌가 나도 경상도 사투리 단어들을 별로 쓰지 않고 들을 일이 별로 없다. 어느새 나의 일상어는 서울말을 가장한 표준어가 되었다. 그러다 경상도 출신 남자와 살면서 느낀 건 나의 언어를 찾았다는 일종의 해방감, 귀향감이었다. 내가 잊고 살던 그 경상도 사투리가 이 책 파시에는 유난히도 선명하게 등장한다. 박경리가 진주-통영 출신임에도 다른 소설들은 진주-통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거나, 토지의 경우 주인공들(서희, 길상, 윤국, 환국 등등등)은 모두 서울말, 최소 표준어를 쓴다. 배경도 대부분 만주, 서울 등지다. 서희가 경상도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어머니 별당아씨가 서울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별당아씨는 다섯 살에 서희와 이별했고, 평생 경상도에 살았던 최치수도 표준어를 쓴다. 윤씨부인도 마찬가지다. 평사리 농민들의 그 질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상전들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박경리가 통영을 배경으로 쓴 첫 번째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주인공 용빈은 서울말을 쓴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파시에서도 주인공 명화와 응주, 학자는 서울말(최소 표준어)를 쓴다. , 박경리 선생의 이 언어 사대주의라니. 하하하.

명화는 그러해도, 이 소설의 나머지 인물들은 완벽하게 경상도, 특히 진주-통영 지방의 서부경남 사투리를 쓴다. 이제는 잊혀지고 더 이상은 실사용 되지 않을법한 단어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에게서 배운 그 단어들이 이 소설에서는 선명하게 재현되어 있다. , 이런 말도 있었지. 하고 새삼 느낄정도로. 남편과 처음 경상도 말로 자유롭게 대화를 할 때에 느끼던 그 해방감과 기묘한 귀향의 희열이 이 책에 있다.

 

하나의 단어는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표준어로는 도저히 그 뉘앙스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특유의 단어들이 분명히 있다. 경상도 말 여럽다는 정확히 1:1 대치되는 표준어가 없다. 부추-정구지(전구지)의 대치와는 다르다. ‘여럽다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린척을 한다는 뜻으로 대충 설명할 수 있는데 단순히 그 설명만으로는 그 여럽다는 단어에 들어 있는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경상도 사투리 여럽다가 사라지면 여럽다로 설명되던 어떤 감각, 감정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는 존재라.

 

그래서 작가의 존재가 소중해 진다. 현재는 쓰지 않는 단어라고 해도 사라지지 않게 해 그 의미영역을 보존해 주는 거니까. 사투리는 한국어를 풍성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박경리는 일가를 이룬다.

 

송장 뻗얼트려놓고(p.250), 부둑티렸다(p.434 / 내가 엄마에게 배운 말은 부딜티렸다’) 등의 단어들. 아마도 경상도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는 해독이 필요한 암호같을 이 이 단어들. 이게 박경리가 박경리인 이유다.

 

다음 소설 시장과 전장은 배경이 배경인지라, 이런 절묘한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지 않을 거다, 아마도.

 

2026.2.15. by ashima


ps. 마로니에 사장님, 이 책에는 오탈자가 없을 거 같죠? 132, “가질 것을 가져야만 그게 통하는 거다라는 문장이 2번 반복됩니다... , 재판을 찍으실 일은 없으실테지만 알아나 두시라구요. 우리 이러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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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선생께 무한한 경의를 드리는 한 사람입니다. 박경리 선생과 관련한 글을 만나니 반갑고 좋아 댓글 드리고 갑니다. 편안하십시요~
 
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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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모노by 성해나

 

읽은 날 ; 2025.12.16.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봉태규가 독서 근육이라는 말을 하는 걸 얼핏 흘려들었다. 독서도 근육이 필요한 거라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공지영이 2009년에 쓴 에세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에서 마음의 근육이라는 말을 쓴 이후로 여기저기 참 근육이 애쓰는구나 하면서도 수긍이 되어 웃음이 났다.

 

간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읽었다. 최근에 미친 듯이 탐닉하는 장르는 따로 있어서, 사실 독서가 엉망진창이었다. 음식을 먹어야 신체 근육이 생성되듯 글을 읽어야 독서 근육도 발달하겠지만 때때로 어떤 음식은 근육의 형성을 오히려 방해하듯 어떤 글도 그러하다.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길티 플레져란 본래 끊기가 힘들지 않나. 나의 독서 근육은 형편없이 상해있다는 걸 알아서 이 낯선 작가의 단편을 읽기가 망설여졌는데 성해나라는 이 젊은 작가, 글을 참 잘 쓴다. 근육 따위가 다 뭐야, 중요한 건 글이다.

 

짧은 호흡을 가진 일곱 편의 단편이 결코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기법의 측면에서 소설은 기---결의 구조가 안정적이고 단정하게 이루어져 경쾌하게 마디를 짓는데, 독자의 감정은 그 이후에 잠시 침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소설 스무드속의 제프처럼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p.71)이 그저 말쑥한 얼굴로 매끈한 세계를 그려 내 놓는데, 독자는 갤러리답게 비평할 뿐이다

 

구 안쪽에 뭔가 숨겨진 것 같기도 해요.”

성해나, <스무드>, 혼모노, 창비, 2025, p.71

 

라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 구 안쪽에 숨겨진 뭔가가 뭘까. 하고.

 

, 이 작가 글 잘 쓰네, 진짜.

 

2025.12.16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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