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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평점 :
남들은 무슨 이유로 코스트코에 가는 지(또는 가지 않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코스트코가 나의 선택을 대행해주기 때문에 간다. 코스트코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화장실용 두루말이 티슈는 딱 두 종류, 탁상용 각티슈는 딱 한 종류, 키친 타올도 딱 두 종류 있다. 필요하면 고르는 과정은 생략한 채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그냥 집어들고 오면 된다. 고민의 과정이 생략되는 쇼핑은 심심한듯 하지만 코스트코는 그 외의 것으로 그 심심함을 채워준다. 일반마트에는 잘 없는 물건들, 게다가 갈 때마다 구성품목이 조금씩 바뀐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엔 있었던 커트러리 세트가 지금은 없는 식이다. 그러니까 매번, 코스트코가 이번엔 무슨 새로운 물건을 골라가지고 왔나,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마치, 친구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는 재미랄까.
내가 물건 고르는 걸 싫어하느냐고? 음, 싫어한다고도 좋아한다고도 말을 할 수 있겠다. 물건에 정을 잘 붙이는 나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까지가 힘들다. 올 여름 귀국을 해서, 각종 살림살이를 새로이 구비해야 할 것이 많았는데, 욕실의 비누갑이며 양치컵, 칫솔 홀더 등의 세트를 구매하는데 장장 3주가 걸렸고(안 가 본 온라인 쇼핑몰이 없다.), 집안에 놓아두고 쓸 쓰레기통을 고르는데는 닷새가 걸렸다. 이쯤되면 결정장애다. 그냥 목적에 맞는 적당한 물건을 사서 들여놓는 것을 잘하지를 못한다. 만약 그냥 샀다면 볼 때마다 고민을 한다. 내가 이거 잘 산 거 맞나? 더 좋은 물건이 있지 않았을까? 정이 붙지 않는 물건은 볼 때마다 미워지고, 미움에도 멀쩡한 물건을 버리지는 못하여 볼 때마다 괴롭다. (내가 이런 괴로움을 주변에 호소했더니 누구도 동조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랏멘?'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을 뿐. ㅠ.ㅠ)
그래서 웬만하면 집안에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 물건에 집착하는 성격이어서. 그럼 우리집이 콘도 수준으로 깨끗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는 않다. 물건은 굳이 내가 들여놓지 않아도 얼마든지 쌓인다. 5년간의 해외생활동안 언니는 우리에게 줄 물건을 집안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귀국과 동시에 대방출을 해 주었다. 대단히 감사하지만, 감사는 감사고 이렇게 난감할데가. 내 아이와 열살 가까이 차이나는 조카들의 물건을 내 아이를 생각해 소중히 보관해 준 그 마음은 감사하고, 모든 물건이 다 멀쩡하다. 특히 조카들이 쓰던 가방들만 열개가 넘게 왔는데, 이쯤되면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내내 가방을 사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내 마음에 딱 차게 드는 가방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태를 어찌하리요. 이쯤되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한 가방이 열개가 넘는데 또 가방을 사야하나? 사자니 멀쩡한 가방들을 쳐다보게되어 민망하고 안사자니 마음이 찝찝하고 ... 작은 놈 입학을 핑계로 하나 사? 큰놈도 입학때 가방 사 줬는데. 그래도 그땐 정말 가방이 없었잖아? 이렇게 멀쩡한 것들을 두고 또 사?
이 고민을 미친듯이 하고 있을 때 마침 이 책에 눈에 띄었다.
화가이자 동화작가 선현경은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우일의 아내다. 이우일은 <콜렉터>를 쓴 사람이다. -한 웃기는 만화가의 즐거운 잉여수집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에 읽었는데(2014. 7. 30) 읽는 내내 야~ 이 사람 와이프는 정말 괴롭겠다 중얼거렸더니 웬걸, <콜렉터>가 출간된지 2년 반 정도 지나자 그의 와이프가 책을 냈다. 제목하여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다.
이우일의 수집품목은 다양하다. 똑딱이 카메라에서부터 홍보용 엽서, 책 띠지(아놔, 이걸 왜?), 각종 스티커(9살 내 딸의 취미다), 옷에 붙어있던 태그(헐...) 낙서된 포스트잇(이거야 화가니까 낙서도 예술이니 모을만 하겠다.), 심지어 도끼까지 모으고 있단다. LP, CD, DVD, 비디오 테이프, 책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쯤되면 집이 집이 아니라 고물상 처럼 보일게다. 그런 이우일의 말에 따르면, 아내 선현경도 만만치 않게 레고와 플라스틱 반지를 좋아했다.
이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 살아가니 참 볼만 했던 모양인지 작가의 친구가 '너희 집 식구들이 꼭 봐야 한다면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추천'한다. 그 다큐멘터리가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 였단다. 작가는 그 다큐멘터리에 충격을 받아 6년동안 살아온 집안의 물건을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내다버리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1년간의 기록이 이 책이다.
악세사리며 옷이며 양말에 팬티를 줄기차게 버리는 내내 작가도 끊임없이 다짐한다. 책은 버리지 않는다고. 아니, 다짐할 것도 없이 책을 버릴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그 책들이 두겹으로 꽂혀있어, 딸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하자 집안 어딘가에 분명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 사 주기는 하지만. 난 원래 책 말고는 소유의 욕심이 딱히 있지 않아서 버릴 것도 별로 없다............. 라고 써 놓고 반성하는 중이다. 지금 집에는 버릴 게 없는 게 맞다. 지난 여름 근 5년간의 자카르타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길에 주변에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거의 다 버리고 왔으니. 입지도 않는 옷이며 쓰지도 않는 악세사리를 어쩌자고 그렇게 끼고 살았던 것일까. 게다가 책은...... 끝내 자카르타에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이고 지고 온 애들의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지. <달님안녕>이며 <사과가 쿵> 이며 그 몇 권의 책은 펼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남을 주지 못한다고 버티다 버티다 눈 질끈 감고 다른 책들과 함께 이웃 아이에게 넘겼다. 그야말로 눈물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정말 너무너무 잘 본 책이야 제발 아껴줘~ 온갖 부연 설명을 다 해가며.
그래서 안다, 이 작가가 물건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한다는 마음도 이해하고 버리다보면 버리는 일에도 무언가 익숙해지면서 버리는 일의 상쾌함도 이해한다. 물건에 정을 붙이는 성격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그래, 나같은 사람이 그렇게 드문 것만은 아니라니까.
그렇게 해외 이사를 하면서 반 강제로 버리고 비움을 당하고 났더니 버리고 비우는 일의 즐거움도 깨닫게 된다. 1일1폐를 일년간 해 본 작가도, 이제는 버리고 비우는 일들에 좀 더 익숙해졌기를, 더 나아가, 그분의 남편도 좀 ㅎㅎㅎㅎㅎㅎ
요즘은 종종, 지구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예전에는 무심코 하라니까 했던 분리수거라면, 요즘은 지구 환경에 대한 생각으로 아주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식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멀쩡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을 자꾸자꾸 주변에 나눠주려 애쓰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나누어 준 건 아이폰용 이어폰. 그리고 멀쩡하게 서랍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폰 4 흰색을 깨워서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텐데, 차마 나눠주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 지구를 생각한다면 서랍속 아이폰 4를 정리할 게 아니라, 멀쩡한 아이폰 5를 6+로 갈아타는 일부터 안해야 할 텐데 말이다. 나란 인간은 어째 이모양인지.
어쨌든. 예전엔 무언가를 아낀다는 게 나 개인적인 차원의 알뜰함 정도로 이해되었다면 요즘은 좀 더 대승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원을 아끼고 지구를 아끼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거운(?) 생각을 하면할 수록 삶은 점점 가볍고 단순해져 간다는 거다. 나도 아직 이렇게까지 말할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콜렉터>라는 책까지 써 내며 온갖 잡동사니 수집을 하고 있는 남자와 한 집에 사는 여자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라는 책을 들고 오다니 이 또한 재미있다.
두권을 이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