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꽃들 돌런갱어 시리즈 1
V. C. 앤드루스 지음, 문은실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보통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처음 만난 작품으로 결정된다. 그 이후의 작품들은 개별 독자에게 있어서는 처음 읽은 작품의 아우라를 웬만해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앤드루스와 처음 만난 작품은 <오도리나> 였다. 그 작품을 읽었던 시기가 중학교 1학년 쯤이었고, 재미있었지만 기괴하기 짝이없는 소설 정도로 기억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 뒤에 읽은 앤드루스의 작품들은 죄다 근친상간의 그늘을 뒤집어 쓴, 기괴하기 짝이없는(그야말로 딱 '고딕' 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그 기괴하기 짝이없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완역판이 나왔다는 말에 출간 당일 사들이고, 받자마자 읽었던 것은 그래도 재미있더라, 하는 그 기억때문에.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첫 느낌은, 어라? 이게 아닌데? 였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나는 많아야 열여섯쯤의 사춘기 소녀였고, 지금의 마흔이 멀지 않은 애 둘의 엄마, 그리고 정보사회의 발달과 열여섯 이후 14년 남짓의 세월덕분에 나는 이미 실화로 존재하는 수많은 기괴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을 알고 있다. 더이상은 순수하지 않은 아줌마의 눈에 이 이야기는 어라? 고작 이거였어? 하는 느낌이랄까. 벽장 너머의 괴물을 두려워하며 부들부들 떨다 어느날 나이가 주는 용기에 힘입어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 안이 텅비어있더라하는 걸 발견한 뒤의 허무함쯤에 비견할 수도 있겠다. 


총 다섯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의 첫번째 권인 이 책의 이야기는 간명하게 몇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복 삼촌과 결혼한 코린은 크리스토퍼, 캐시, 캐리, 코리 네 남매를 낳았고, 남편이 죽은 뒤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친정으로 돌아가서 네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아이 넷을 다락방에 숨긴다. 3년 4개월 16일동안 그 다락방에 갇혀 지내던 아이들은 막내의 죽음 이후 그 집을 탈출한다. 


이게 끝이다. 


처음에 아이들을 위해 애쓰던 엄마 코린은 점점 아이들에 관해 잊어가고 새로운 사랑과 생활에 빠져들게 되며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제대로 자라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고,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는 금지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고. 


이게 열여섯의 나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내용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마흔이 가까운 나에게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되어 버렸다. 이해 못할 것도 없고, 에로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이게 대체 왜 '고딕 로맨스' 라는 이름이 붙어버렸을까. 이보다 더 심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많은데, 이제는 많은 성폭행을 포함한 성추행이 가족에 의해 일어나고, 아동폭력 가해자의 90% 이상이 친엄마를 비롯한 친족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더구나 그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은, 성폭행도 아니었고, 납득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 나이의 아이 둘만을 가두어 놓고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 그게 더 나쁜거지. 아아, 이 책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기엔 난 이미 너무 더럽혀져버렸어.


열여섯 그때는 캐시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이제는 코린이 보인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소설적 창작의 산물이라고 느꼈었다면 지금은 글쎄, 이해를 하고 납득을 한다기 보다는 그녀가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그녀도 그렇고 코린의 엄마, 캐시의 외할머니도 그렇고 그냥 딱 상상할 수 있을만큼 그 안에서 움직였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모성이라는 것이 때로는 환타지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기에 


그래서 다시한번, 어라, 뭐야,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책 맞나?


이 책이 더는 기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일테다. 그때만큼 환상적으로 재미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은 사춘기에 읽어야 더 재미있는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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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1-2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제작년까지 김연수책 다 읽어내기가 괴로웠는데, 작년 말에 갑자기 너무 재미있는거에요.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하는 것의 극단적 경험이었어서 이 책 나왔다고 얘기 듣자마자 다시 읽을 기대감에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저도 딱 중학교때 즈음에 읽었었네요. 그 뒤로 그 뒤로 책을 몇 천권은 더 읽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되게 선명하게 기억나요. 그 중에 하나가 발레리나는 다리 힘이 엄청 세다. 는 거. ㅎㅎ 리뷰보니 마음의 준비반 기대반 또 설레네요.

아시마 2015-02-05 16:26   좋아요 0 | URL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다는 말, 저는 아주 어렸을 때 들었거든요. 모파상 여자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에서, 결혼전,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 읽으면 다 제각각의 감상이 나온다는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제가 책을 사서 여러번 읽게 되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직접 경험해 보면, 더욱 놀라운 느낌이더라고요.

이 책 읽은 뒤에 하이드님도 꼭 리뷰 써 주세요, 보러 가겠습니다~ ^^

다락방 2015-01-3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늘 그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을 어른이 되어 읽었다면 그때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을까? 하고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요. 지금 아시마님의 리뷰처럼요. 리뷰 쓰신 문장들 중에 `이제는 코린이 보인다`는 문장이 아주 인상 깊어요, 아시마님. 뭔지 알 것 같아서요. 그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인물이 보인다는 거 말예요.

아시마 2015-02-05 16:31   좋아요 0 | URL
음. 내용말고 책 그 자체로 봤을 때 그다지 잘 쓴 소설은 아닐 것이다,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요. 그 보다는 괜찮더라고요. 기대치가 워낙 낮았던 터라.

코린이란 인물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그렇다고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인 건 아닌데, 음... 뭔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그래서 반드시 누군가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인물이라면 어쩌면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 그 선택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지만, 음... 나이가 주는 연륜이겠죠. 이런 인간도 있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