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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약국의 딸들』by 박경리
읽은 날 : 2025.2.8.
소설의 첫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소설의 첫인상을 결정하기도 하고,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무심하게 툭 던지는 한 줄이 소설 전체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첫 문장을 가진 소설들의 목록을 만든 이들도 많다. 나는 한국 소설에서는 세 권을 꼽는데, 김훈의 『칼의 노래』(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상의 『날개』(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그리고 이 소설이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마로니에북스, 2013, p.9
이 문장이 왜 그렇게 가슴을 치는가를 묻는다면, 글쎄, 어떻게 설명해야 납득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문장, 다음 단락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문장이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이 문장에 휘말려 이 소설을 읽었다. 30년도 더 전에. 그리고 김약국의 딸이 넷이었나 다섯이었나(다섯이다) 헷갈릴 정도로 내용이 가물가물해진 뒤에도 이 첫문장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이 소설은 김약국집 3대의 낙하를 기록한다. 초대 ‘관약국’(아마도 현대로 치면 보건소장쯤 되는, 나름 국가직 공무원이다.)이었던 김봉제와 그의 동생 김봉룡, 여동생 김봉희가 1대다. 김봉제는 뇌짐병(폐결핵, 신병)을 앓는 딸 연순 하나만을 두고 있고 김봉룡은 2대 관약국이 될 아들 성수를 하나 낳는다. 그러나 김봉룡은 의처증 환자여서 아내 숙정의 부정을 의심해 숙정의 과거 연인을 칼로 찔러 죽이고 사라진다. 숙정은 비상을 먹고 자살했다. ‘비상 묵은(먹은) 자손은 지리지 않는다’는 저주의 시작이다. 지리다는 번성하다의 경상도 사투리다.
2대 김약국이 되는 김성수는 큰어머니 송씨의 손에 자란다. 송씨는 돌이 되지도 않은 조카를 데려와 키웠음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단순히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비상을 먹고 자살한 동서 숙정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조카에게서 늘 동서의 망령을 보는 듯 기분이 나쁘고 이상야릇한 무서움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편의 재산을 자신의 병든 딸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조카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데서 오는 심술이 겹쳐 잔인한 정서적 학대를 가한다.
3대 관약국은 없다. 우선 관약국의 관인을 물려줄 아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약국의 관인을 발행할 나라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상 묵은 자손은 지리지 않는다’는 저주대로 김성수는 아내 한실댁을 맞아 아들 용환을 낳지만 여섯 살에 돌림병에 죽는다. 용환이 죽고, 조선이 망하고, 2대 김약국 김성수는 약국을 그만두고 어장을 경영했다.
한실댁은 첫 아들이 죽은 뒤로 내리 딸을 다섯이나 낳는다. 그 시대의 기준으로 딸은 자손에 들지 않으니 남편 김약국에게 소실이라도 들여 아들을 볼 것을 권하지만 김성수는 딱히 아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 딸들을, 한실댁은 부유한 살림과 타고난 심성으로 여유를 가지고 넉넉히 사랑으로 품는다.
큰 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고 했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훤칠하여 뉘 집 아들 자식과 바꿀까 보냐 싶었다. 셋째 딸 용란은 옷고름 한 짝 달아 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레 남들이 다 시중 들것이요,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리라 생각하였다. 넷째 딸 용옥은 딸 중에서 제일 인물이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이 적고 심정이 고와서 없는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나갈 것이니 걱정 없다고 했다. 막내둥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을 못잔다. 그러나 연한 배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워 어느 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호강을 할 거라는 것이다.
(p.86)
이랬던 한실댁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꿈은 첫째 용숙이 대갓집은 아니어도 부잣집의 맏며느리로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들 하나를 둔 청상의 과부가 되는 것으로 첫 번째 패배를 맛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 김약국네 다섯 딸들의 하강의 과정은 어머니 한실댁의 꿈이 하나씩 꺾이어 나가는 슬픈 기록이다.
여기서 작가 박경리의 무자비하고도 박력있는 서술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작가는 조금도 얼버무리거나 뭉개지 않고 그 비참을 세밀하고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 낸다.
김약국의 딸들이 하락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정의 경제적, 도덕적 몰락에서 오는 결과가 아니다. 점점 비참해지는 집안의 모습은 그대로 구한말-일제시대로 이어지는 조선인들의 몰락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김약국은 나라가 망하면서 직업을 잃었고, 넉넉했던 가산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했던 사업 또한 당시 조선인들의 처지와 비슷하게 점점 악화 일로를 걷는다. 조선의 멸망은 김약국의 멸망으로, 김약국의 멸망은 그 딸들의 멸망으로 포커스가 좁혀지는 것 같아도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본다고, 한 집안의 딸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사는 서민의 몰락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 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p.408-409)
다섯 딸에 대한 한실댁의 꿈과 둘째 용빈이 비참한 현실을 요약해 보여주는 대목은 비교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박경리는 이 비참한 하강으로 이야기를 끝내지는 않는다. 김약국이 죽고 통영을 떠나는 용빈과 용혜, 그리고 용빈의 곁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강극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현재로서는 전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것이 박경리의 힘이다. 그 무자비할 정도의 박력으로 끝의 끝까지 인물을 몰아 붙이고도 박경리는 새로 시작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야말로 끈질긴 생명력이다.
인생이란 사철이 봄일 수는 없잖아?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한겨울이 오면 헐벗고 떨어야 하지만, 이내 봄이 오지 않니? 희망을 잃어서는 안 돼요.
(p.231)
영국에서 온 노처녀 선교사 케이트의 말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한겨울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홍섭의 배신을 포함한 집안의 몰락으로 절망하는 용빈에게 그녀는 ‘기다려라, 기다려봐라’ 라고 말한다.
소설은 초반에 등장하는 ‘비상 묵은 자손은 지리지 않는다’는 저주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완벽하게 펼쳐놓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 한자락을 끝내 놓지 않았다. 김약국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통영으로 내려온 용빈은 김약국 사후 통영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미스 케이트가 한실댁에게 맡겨두고 간 성경을 발견한다. “용빈이, 믿음을 잃지 말아요!” 라는 단 한줄의 메시지. 여기서 믿음은 신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지만 이내 봄이 올 거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을 지탱하다보면 봄이 온다는 믿음 또한 실현되는 것이다. 이 비참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낙하(落下)는 이 믿음을 통해 낙화(落花)로 변환된다. 끝이 아닌 시작이요 강인한 생명력이다. 한 집안이 어떤 부흥과 몰락을 겪든 통영은 여전히 다도해의 조촐한 어항으로 존재할 것이며 그 어떤 강력한 저주가 내려진다 해도 생명은 여전히 이어질 테니.
2025.2.11.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