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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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유전by 강화길

 

읽은 날 : 2025.4.18.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의 5-6년간, 나는 거의 매년 한 번 씩 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명은 매번 동일해서 편도선염이었고, 대학을 다니고 있을 무렵의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기에 입원하는 병원도 매번 동일했다. 지금은 없어진 창원 주택가 모퉁이의 자그만 종합병원.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약속한 듯 물었다. 편도선 제거 수술을 하지 그랬니.

 

매번 같은 병원에서 매번 같은 의사에게 진료를 보니 의사는 내가 왜 아픈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 편도선이 약한 것은 엄마 쪽의 유전이요, 그럼에도 무려 입원씩이나 하게 될만큼 심하게 앓는 것은 내 탓이었다. 몸은 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성실하게 전달하는데 그 컨디션 난조를 뚫고도 내 하고 싶은 일들을 해버리는 성격이라 못 버틴 몸땡이가 강제 셧다운을 시켜버리는 게 나의 편도선염이라는 게 그분의 판정이었다. 이 편도선염조차 없다면 너는 크게 앓게 되리니 제거 수술 대신 그냥 일년에 한번쯤 병원 입원하는 걸 택하라고. 그분의 말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너도 철들면 나아지겠지.”

 

편도선염은 말 그대로 염증이라 통증과 고열이 기본인데 사람이 열에 들뜨면, 세상이 몽롱해지기 시작한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을 둥둥 떠 다니는 느낌, 체감되는 입김의 뜨거움. 그 중 제일 재미있는 건 약물의 효과로 실시간으로 열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는 것과, 역시나 그 약물의 효과가 떨어질 때쯤 실시간으로 열이 오르는 것을 실험 관찰하듯 보는것이었다. 그럴 때 내 몸은 투명 실린더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라니. 드래곤 브레쓰를 내뿜으며 오한과 더위를 오고가는 3-4,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고 그렇게 한바탕 앓고 나면 봄이 왔다. 병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샛노란 산수유 꽃을 보며 김종길의 <성탄제>를 중얼거리던 날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대로 내가 철든것인지, 20대 중후반부터는 편도선염의 횟수가 줄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심각한 고열이 오지도 않았다. 더는 편도선염으로 입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왔어, 왔어. 왔다고. 그분이 강림하셨어.

 

몸과 정신이 분열했다. 통증을 견디면서도 그 목젖 너머의 염증과 고열이 연락 끊어진 옛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그 몽롱함과 세상에서 유리된 느낌은 기꺼울 정도.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었다. 눈에 띄는 책 중에 가장 작고 가벼워 보였기에 골랐고 오르내리는 열 사이사이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깨면 다시 읽고. 눈은 글자를 읽는데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 책을 끝냈을 때 내게 강림하셨던 그분도 퇴각을 알렸다.

 

처음 읽은 강화길의 작품은 다른 사람이었고, 2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었기에 읽었다. 작가에 낯가림이 심한 내가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문학상이다. , 나는 권위에 순순히 복종하는 소시민일 뿐이니까, 라고 이야기 하기엔, 이 문학상에도 낯가림을 좀 하는 편이긴 해서. 내가 믿고 보는 문학상보다 믿고 거르는 문학상이 더 많긴 하다. 하여튼 한겨레 문학상은 믿고 보는 문학상이라 강화길이라는 낯선 작가를 만났는데 그녀의 글은 내가 한겨레 문학상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다. 이어서 괜찮은 사람을 읽었고 이후 출간한 작품들도 모두 따라 읽었다. 특히 대불호텔의 유령은 심윤경의 책 영원한 유산과 붙여 읽은 탓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대, 건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 남성 화자와 여성 화자의 차이. , 이런 대조 대비 너무 재미있는 거 있지. 읽은 직후엔 두 글을 가지고 리뷰 써야지 해 놓고는 이러고 있다, 내가.

 

강화길은 오컬트 요소를 글에 잘 끌어들인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는데 서사가 강한 작가라 그 해체된 이야기와 환상과 오컬트 요소들이 하나의 강력한 서사에 묶여 단단한 구조를 이룬다. 강화길의 환상은 오해에서 시작해 인지부조화로 끝난다. 오해라는 요소를 가장 잘 다룬 작품이 다른 사람이었고, 여기서 오해는 타인이 나를 오해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오해하는 인지부조화까지를 포함한다. 강화길은 그 오해를 교정하는 대신 오해를 오해 그 자체로 인정하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강화길의 강력한 서사가 힘을 발한다. , 이 작가 글 참 잘 쓰네.

 

그리고, 이번에 강림하신 그분과 함께 하는 동안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앞에 안 읽고 넘어간 페이지, 또는 챕터가 있었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아 이 장면 왜 이렇게 낯설지 않고 좋지. 하며 읽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중편 한권을 읽었는데, 읽긴 읽었는데 서사는 서로 연결되지 않고 이 인물이 앞에 나왔던 그 인물인가, 앞에 나왔던 그 인물은 대체 어찌된 거지. 이러면서. 느슨하고 성긴 소설이었는데 장면 장면의 서사가 하도 강력하고 매력있어서 그냥 글을 읽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야기가 하나로 온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편인데, 이 소설은, ,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내가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이야긴지는 모르겠어.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 참 좋았다. 강화길의 여성서사는.

 

ps. 개인적으로 여성서사이런 류의 분류,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화길에게는 쓰게 된다.

 

2025.4.2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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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5-05-0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0대 때부터 앓고 있는 잔병들이 지금까지 절 괴롭히는 중인데 의사선생님이 오히려 안쓰러워할 정도였어요.
우스갯소리로 실손보험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ㅎㅎ
편도선염으로 일 년에 한 번씩 입원할 정도였으면 엄청 고생하셨겠어요ㅜ
아픈 와중에도 책 한 권 뚝딱 읽으시다니 • ᵕ •
아프지마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