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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운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른 운하』by. 박경리
읽은 날 : 2024.11.19.
박경리 다시 읽기라고 부제를 달다 문득, 좀 부끄러웠다. 다시 읽기는 무슨, 지금까지 내리 읽은 여섯 권 중 『표류도』한 권 빼곤 죄다 처음 읽는다. 하하하. 자신있게 말하건대, 박완서의 작품은 진짜로 전부 읽은지라, 지금은 무슨 책을 읽어도 ‘다시 읽기’가 맞는데, 박경리는 앞으로 줄줄이 남아있는 장편(마로니에판 기준이다) 13권 중 『김약국의 딸들』과 『파시』『시장과 전장』을 제외하곤 죄다 처음 읽기다. 여기에 마로니에에선 출간하지 않았고, 다산에서만 출간한 몇몇 장편들을 포함한다면 더 늘어나겠지. 지금이라도 부제를 바꿔야 하나.
박경리의 장편은 대부분 1960년대에 쓰였다. 1969년 토지 1부가 연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선생은 단편과 몇몇 경장편을 쓴 외엔 더 이상 토지 외의 장편을 집필하지 않는다. 26년의 세월을 오롯이 『토지』에 바치는 거다. 토지가 완간된 이후 집필하기 시작한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는 미완으로 남았고, 그 작품을 제외한다면 박경리는 더 이상 소설을 집필하지 않는다. 시집만 두어권 내셨다. 그러니까, 실제 박경리의 작품활동은 1994년으로 종료되다시피 하는 거다.
박완서가 처음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70년이다. 박완서는 다산성의 작가여서, 집필을 시작한 이후 장편 단편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책을 내 작고한 2011년까지 꾸준히 신작이 나왔다. 나는 1990년대 초중반부터 이 두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나를 미치도록 매혹시킨 책은 『토지』였고 거의 실시간으로 동시 호흡한 작가는 박완서다. 전작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토지 이전의 작품을 찾아 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미 읽은 파시, 표류도,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은 토지를 읽기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박완서의 책은 찾기가 너무 쉬웠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쉴틈 없이 옷을 갈아입고 출판사와 판형을 바꿔가며 재출간, 재출간, 재출간을 거듭했다. 박경리의 책은 달랐다. 내가 이미 읽은 네 권의 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1970년이후에 출간된 책이 거의 없다. 장편은.
출판의 논리도 시장 논리와 다르지 않을 게다. 팔리지 않는 책은 만들지 않는다. 무협지를 잔뜩 팔아(그것도 저작권이 해결되지 않은 해적판을.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협회에 가입한 건 1994년이고, 그 이전에는 뭐. 해외 작품은 맘 내키는대로 저자 허락 따위 받지 않고 마구 번역해 책으로 찍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출판사였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벌어들인 돈으로 절대 팔리지 않는 교수들의 평론집이나 학술이론서를 내주는 출판사가 있었다. 대학 때 그 출판사에서 찍어낸 책 몇 권이 교재였는데 우린 그나마도 학교 앞 제본소를 활용했으니 흠흠. 평론집이나 학술서적은 그 출판사의 목적이었고, 해적판 무협지는 그 출판사의 수단이었으려나.
박경리의 1960년대 장편들은 그 시대에는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영화로도 제작되고, 연재가 끝나면 바로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고, 바로 전작 장편으로 출간되는 책도 있었고, 어쨌든 박경리는 그 소설들을 팔아 어머니와 외동딸을 홀로 부양하며 전업 작가로서 생계를 꾸려나갔으니 그 시대치고도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거다. 이 60년대의 장편들이 박경리로서는 그 볼드모트 출판사의 해적판 무협지 같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베스트셀러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시대가 지나가고나면 다시 재출간 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은.
박경리와 박완서를 두고 누가 더 뛰어난 작가인가를 비교한다는 건 누가 봐도 어딜 감히, 라는 말을 들을 법한 불경스런 짓이다. 음, 최소한 나에게는 불경에 근접한 일이다. 다만, 박경리의 1960년대 작품이 몇몇을 제외한다면 전멸이라 할만큼 1980년대 이후 출판시장에서 사라진 것과 박완서의 1970년대 작품이 대부분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싱싱하게 살아있었던 차이는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건 박완서의 작품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해도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경리의 1960년대 여성지에 연재되었던 소설들과는 달리. 박경리의 1960년대 초기 장편들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을 1960년에 가져다 놔도, 1950년에, 2020년에 가져다 놔도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인류 공통의 어떤 정서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런 면도 있다. 이 와중에도 인간의 심리는 어찌나 잘 그려내시는지) 현실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소설 속 세상에서만 노는 인간인 탓이다. 그야말로 시대가 이 꼬락서닌데 연애질하느라 바쁜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주어진 시대 현실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토지』의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 나온다. (아, 그래서 연애소설이구나.) 『표류도』에서 잠시 현실이 반영되다 다시 현실과 상관없는 뜬구름 소설들이 줄줄줄 나온다. (그 와중에 글빨은 미쳤구요. 와, 어쩜 이런 소설도 이렇게 잘 쓰세요, 선생님.) 그러니 그저 베스트셀러로 끝이 난다. 글빨이 미쳤고, 읽다보면 우와우와 하다가, 돌아서면 끝.
그러다 드디어 이 소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자유당과 이승만 정권 말기의 시대 혼란상과 마산에서 시작된 3.15 의거에 이은 4.19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 현실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드디어 등장하고, 그 시대 현실이 주인공들의 앞길에 영향을 준다. 드디어, 드디어 현실과 꿈(연애) 사이에 운하를 뚫기 시작하신 거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은경이 바다 같아서 잡히지 않는 치윤의 마음을 차지하려 애쓰는 대신 운하를 파서 바다를 끌어들일 거라 결심하는 것처럼.
드디어 이 소설에 처음으로 유식하지 않은, 학벌이 높지 않은 고졸 여자주인공이 등장한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어리기까지 한 주인공은 세련되고 유식한 다른 여성들에게 무시도 당하고 놀림도 당한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춤도 출 줄 모르며 가끔은 식모 취급까지 당하기도 한다. 박경리의 여주인공치고는 가장 하층민에 가깝다. 그러나 그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가장 흔한(하긴 그 시대엔 고졸도 흔하진 않았겠다마는) 현실 반영의 인물이다. 주인공 치윤도 가난한 시골 출신에 고학으로 대학을 마친 인물이다. 물론 김남식이라는 재벌가 도련님도 나오지만.
자 드디어 운하를 뚫으셨어요, 선생님. 이제 이 운하를 따라 우리는 토지로 가는 걸까요?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얘기군요. 하긴, 모든 일이 다 그렇죠. 꿈과 현실이 같을 수 없지.”
(p.109)
2024.11.19.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