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흔히 텔레비전 뉴스에서 내전 상황인 국가나 난민이 된 사람들, 폭탄 테러에 휘말려 든 사람의 모습을 비춰준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뉴스일뿐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질 않는다. 근시안적이라고 해도 사람은 자신의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세상을 돌아본다. 스페인에 사는 한 청년은 자신이 사는 삶에 만족하며 그 곳을 벗어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그 만족감에 감탄하기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반면 누군가는 나라를 버리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며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지옥인지조차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여태까지 그렇듯 그런 삶이 지속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양극단의 사람이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이 그들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순간이 된다면 어떨까. 이 책 <리틀 비>에서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단 한 번의 강렬한 만남은 그들의 전 인생을 뒤흔들어 놓고 그 순간이 지나가자 그들은 그 순간에 자신 안의 무언가는 죽어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한 여자는 잡지의 편집장이며 잘나가는 칼럼니스트를 남편으로, 장난은 많지만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을 둔 영국 여자다.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를 견디다 못해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실이 남편에게 알려져 사이가 소원해지자 화해를 도모한다. 우연히 그녀에게 도착한 공짜 여행권으로 치안이 불안한 국가로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다른 한 여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족할 줄 알았으나 '그 남자들'이 마을에 몰려들면서 모든 것을 잃고 만 나이지리아 소녀다. 소녀는 살기 위해서 숨고 또 도망치지만 석유 회사의 사주를 받은 추적자들은 자신들의 학살 장면을 본 소녀를 끝까지 쫓아온다.

여자와 소녀는 해변에서 만나고 그 순간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소녀는 언니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여자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여자와 남편은 그 상황이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추적자들이 몰려들자 부부는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그 후 2년이 지나고 그때의 소녀 리틀 비가 느닷없이 영국 여자 새라 앞에 나타난다. 리틀 비는 밀입국자 상태였고 그 만남에서 주운 지갑의 주소를 보고 새라에게 다시 한 번 도움을 청한다. 그것도 새라의 남편 앤드루가 자살해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그때에 말이다.

평행선처럼 닿지 않을 것 같던 삶을 살던 두 여자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다. 두 사람은 그 만남이 있기까지와 그 만남이 있은 후 바뀌어 버린 상황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잠시 하나로 묶인다. 전혀 다른 상황을 살아온 두 여자가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기도 못하기도 하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게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여태껏 뉴스라고,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눈을 돌려왔던 현실이 너무 잔혹해서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워졌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리틀 비에게 일어났던 일과 일어날 일을 알기가 두려웠다. 덕분에 리틀 비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아야 했기에 물어야 했고 또 그것을 듣는 새라의 행동을 막고 싶어졌다. 리틀 비는 흉터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생존의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가끔은 너무 깊은 상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과거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만히 아픈 채로 덮고 넘어가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리틀 비는 한 번 시작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고 책장을 넘기는 것도 멈출 수 없었다.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리틀 비의 슬픔은 아름답기보다 잔혹할 때가 많았다. 그녀가 살기 위해 이름을 버려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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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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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광기와 멀쩡함은 얇디얇은 막으로 나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생각을 물에 비유하자면 표면장력보다는 약간 강한 정도의 막에 둘러싸인 상태가 멀쩡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어느 한도를 넘어선 충격이 있다면 그 막은 터지게 된다. 그리고 그 막이 터져 나오면 물이 터지듯 생각이 흘러넘치고 더 이상 그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광기라는 것이다.

이 책 <광기>에서는 일정 한도를 넘어서 광기를 주체할 수 없게 된 여자 아구스티나를 중심으로 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구스티나 자신이 말하는 그녀의 어린 시절, 남편 아길라르가 아구스티나를 보는 시점, 그녀의 옛 연인 미다스가 말하는 주말 동안 있었던 일, 아구스티나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째서 아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그녀의 광기가 어떻게 심화되었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4명은 제각기 다른 시점, 다른 시작에서 말하고 있다.

덕분에 이야기는 지극히 혼란스럽다.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 넘어가고 언뜻은 일련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물살이 하나로 모이듯 이야기가 몰려든다. 그녀의 현재에서 시작해보면 남편 아길라르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들과 주말을 보내고 나니 아내는 낯선 남자와 호텔에 있었다. 남자는 아내를 데려가라고 그에게 연락을 했으며 그는 그 주말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내의 광기가 더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반면 아구스티나의 옛 애인인 미다스는 그 일에 대해서 남편 아길라르가 곤혹스럽게 느끼는 것을 고소하게 생각한다. 그는 그 주말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 자신이 어째서 파멸하게 되었는지를 아구스티나에게 말하는 식으로 늘어놓고 있다. 자신이 더없이 사랑한 그녀를 붙잡지 못한 이유부터 자신의 몰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간간이 아구스티나의 외할아버지가 광기에 쌓여간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아구스티나는 자신의 입으로 어린 시절을 말한다. 미다스의 말에 따르면 세 군데에 저택을 돌아다니면서 살 정도로 부유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의 실상은 처참히 망가진 형태였다. 아버지는 아구스티나의 동생인 비치를 마구 때렸던 것이다. 아구스티나의 오빠는 이기적이지만 아버지와 닮은 데가 많아서 온갖 사고를 쳤어도 넘어갔지만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 비치는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아버지는 항상 그를 때렸다. 아구스티나는 맞지는 않았지만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아버지를 숭배하기도 하고 버림 받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아구스티나는 그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녀 나름대로 동생을 지키려 하지만 어딘가 어긋나있는 가족들 틈에서 그녀의 순수한 영혼은 조금씩 광기에 물들어간다. 그 과정은 4가지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며 헌신적인 남편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읽으면서 내내 혼란스럽고 생각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광기의 중심에는 아구스티나가 있지만 다르게 보면 화자 전부가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힌 터라 때로는 아구스티나의 광기에 다른 사람이 휘말린 것인지 그 반대인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기야 광기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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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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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살인이나 범죄같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독특한 소재를 통해 긴장감있게 풀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살인은 실제 사람이 죽어 나간 일이라기보다 하나의 퍼즐을 풀기 위한 조건으로 격하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추리소설은 한없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감정 이입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추리소설의 역사가 오래되면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웬만한 소재를 다 쓴 이후로는 다양하게 소재를 뒤튼 추리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탐정을 내세웠으나 화자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거나 아예 살인자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것 그리고 이 책 <토탈 케옵스>처럼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짙은 어둠 속에서 피해자에 대한 감정이입을 격하게 시키는 종류의 것 바로 그렇다. 이 책의 배경은 마르세유의 뒷골목이라고 할 수 있다. 목구멍 안 쪽 깊숙하게 뒷골목의 냄새가 배어버린 거리의 아이들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그 곳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가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다.

남자는 친구의 복수를 계획하고 정보통에게 범행을 지시한 자를 찾는다. 원수는 폭력조직의 중간보스였고 범행 계획은 전부 세워져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앞도 뒤도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뚝뚝 끊기는 문체, 사람의 생각을 베어낸 것 같은 혼란스러운 시각까지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남자의 등장과 복수는 사건을 시작하는 하나의 총알에 불과했다. 남자는 복수를 성공하나 너무 맞춘 듯 나타난 경찰의 총에 사살되고 만다. 남자가 비무장이었음에도 그러했다.

그리고 이어 경찰 한 명이 사건 현장을 찾는다. 변두리 경찰로 좌천되어 주요 사건을 맞는 형사들에게 좌시되고 있으나 분명 형사로서의 능력은 뛰어난 수사관 파비오 몬탈레였다. 몬탈레는 죽은 남자, 일명 우고라고 불렸던 자신의 친구의 죽음으로 잠에서 깨어난다. 어디부턴가 길을 잘못 들어 갈라지고 만 친구 사이였다. 범죄자와 경찰의 장벽이 있었고 그 길을 빙빙 돌다보니 자신 역시 한직에 밀려난 경찰 신세였다. 하지만 한 친구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친구가 누군가의 총탄으로 이용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몬탈레는 사건에 깊숙하게 개입하기로 한다.

아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실패한 범죄에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마르세유의 혼란 속에서 점점 그 깊이를 더한다. 프랑스의 필립 말로 같은 몬탈레는 죽음의 위협을 당해 엉망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피난처로 이용하는 마리 루라는 창녀를 돕기도 한다. 그 와중에 사랑했으나 차마 사랑한다고 다가가지 못했던 소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기도 한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고 사건의 중심으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처음 전개는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강했다. 옛 기억이 교차하면서 제목대로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고 여러 가지 사건이 하나로 모여들고 그 사건 속에 다투는 세력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긴장이 한 번에 터져 나갈 때 통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씁쓸함이 남았던 것은 인종의 전시장처럼 되어 있는 마르세유의 어두운 이면을 비추는 모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낭만적이기보다는 차가운 현실에 가까운 묘사로 인해서 도시의 어둠이 지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 권이 기대되는 추리소설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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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문법 달인이 되는 법 - 완전개정판
이경수 지음 / 사람in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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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선택지는 세 가지로 일본어, 불어, 독일어였다. 거기에는 제한 조건이 달려 있었는데 문과는 일본어와 불어, 이과는 독일어였다. 이과인 경우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반면 문과였던 나는 일본어와 불어 중에 선택이 가능했다. 어느 쪽도 특별히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불어가 어렵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별 고민도 없이 일어를 골랐다. 그때 일본어 공부란 내신과 수능에 들어가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 신입생이 된 여름, 일어로 된 비디오 게임이 생겼다. 궁금한 마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로 된 게임을 해석하며 게임을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일어에 흥미가 생겼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반 정도는 게임 탓이기도 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이해하기 쉽게 대학 교양수업으로 일본사, 일본문화 수업도 수강하게 되었다. 이후 소설, 드라마, 영화까지 보면서 일본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갔다. 문제는 취미를 소화하기 위해서 무작위로 쌓은 지식이 부족한 일본어의 구멍을 메우고, 글을 읽는 것 자체는 한자를 읽을 수 있어서 대강 이해가 가능했다는 점에 있었다.

덕분에 구멍을 메우는 일을 소홀히 했더니 일본어 실력이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문법지식이나 일본어 실력의 기반이 되어야 할 지식은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쌓았던 기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점점 갑갑했던 터라 이 책 <일본어 문법 달인이 되는 법>이 반가웠다. 이 책 <일본어 문법 달인이 되는 법>은 제목대로 달인이 되는 법이라기보다 밟고 올라갈 기반을 다지는 책에 가까웠다. 명사, 형용사, 동사 순으로 차근차근 기본을 '읽고' 지나가면 흩어졌던 지식의 파편이 모여드는 느낌이었다.

이어 두 번째로 MP3 파일로 된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읽으면 앞서 모아만 두었던 지식이 정돈되면서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활용노트를 이용해서 문법 활용을 '쓰고' 그 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면 지식의 정돈이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간극이 메워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일본어를 쓸 때, 특히 읽을 때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를 대강 가늠할 것이 아니라 그 정확한 의미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본어를 쓸 때 어떤 것이 거친 말투이고 경어인지를 대충은 알고 있으나 정확히는 구분하지 못했는데 각 장에서 예시가 나올 때 대부분 경어표현이 따라 나오고 마지막 장은 경어표현에 할애된 부분이 좋았다. 특히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일본어 경어표현은 틀리거나 과장되기 쉬웠는데 세 가지 예를 들어 실수 할 수 있는 점과 가장 나은 표현이 언급되어 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여성형 표현이나 수를 셀 때 헷갈릴 만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지적해 준 점, 다의적 의미로 쓰이는 동사들을 정리해 준 것, 틀리기 쉬운 유사 표현을 비교를 통해 재인식 시킨 것과 가끔 페이지 측면에 자투리 지식을 소개한 것처럼 궁금했으며 정리해두면 유용한 것들을 조목조목 지적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으로 반복학습을 하다보면 달인은 몰라도 수제자는 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한 권에 꾹꾹 담은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렇게 반복하고 좀 더 많은 일본어를 접하다보면 언젠가 구멍을 전부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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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에트가 케렛 지음, 이만식 옮김 / 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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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은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면서도 때로 그 상상력이 지나쳐 부담스러워진다. 상상력만 지나치면 이야기가 설득력을 잃고 그 기반까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느껴지면 그때부터 집중력까지 뚝 떨어지니 가장 읽기 고역스러운 책도 기발한 상상력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상상력이 없다면 딱딱하고 고루한 책이 되어버리니 곤란할 때가 많다. 이 책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는 그런 면에서 영리한 책이다.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때문이다. 더욱이 팩션도 SF소설도 아니라서 다급하게 기억해야 할 것 같은 세부 정보도 없다. 또한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처럼 앞에는 서너 장 정도의 초단편이 잔뜩 실려 있는 터라 끊어 읽기도 좋은 편이다.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적절한 순간에 이야기를 끝내서 상상할 여지까지 남기니 읽기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크넬러의 행복한 캠프 생활자들>의 경우에는 다른 것들과 달리 좀 긴 편이지만 이것 역시 장 별로 끊길 때마다 실소를 자아내서 연작으로 된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을 주었다. 사형수가 되어 죽게 된 친구를 떠올리는 것부터 자신보다 약간 나은 친구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낳은 참극까지 주제는 다양하지만 유머러스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게 될 때가 많았다. 냉소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생각거리라는 앙금이 남았지만 말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의 경우에는 일상 속에서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해서 더욱 관심이 갔다. '신이 되고 싶었다고' 하면 거창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항시 정류장에서밖에 정차하지 않으며 정류장이 아니라면 따라서 얼마를 달려오든 문을 열어주지 않은 버스 운전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버스 운전사가 어느 날 자신이 신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으며 관대함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되어 그가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을 한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학교에 한 아이가 오지 않고 그것이 연쇄적인 실종을 낳는다는 <알론 세미쉬의 불가사의한 실종>같이 독특한 소재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한 단편이라 꽤 기억에 남았다. 게다가 <라빈이 죽었다>는 단편의 경우 라빈이 살해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뺑소니 운전자가 정작 라빈의 친구들을 경찰에 고소해 그들이 곤경에 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 순간 나오는 발상의 전환에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 전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외에도 <코르비의 여자>에서 다른 사람의 여자 친구와 연애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 형제가 내린 결론이라든지 신의 분노를 신실한 태도로 견디던 사람들이 뜻밖의 일에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는 <장자의 재앙>처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아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짧은 이야기로 전개되어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에 흥미를 기울이게 되는 것부터 만화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시각에 책이 끝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발한 상상력이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면 이 책의 경우에는 전자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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