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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터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미드나이터스 세트 - 전3권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박주영.정지현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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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은 거대한 힘을 품고 존재한다.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수많은 공상을 하고 그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꿈을 꾼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르되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꿈일 수도 있고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룬 시간 여행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시간 여행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그 근거는 현재에 미래의 수많은 시간 여행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한다.

시간 여행이 보편화되어서 위장을 충분히 하고 숨어 들어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드러나는 부분은 없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수없이 한 여자를 향해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나 하나의 사건을 막기 위해서 모이는 타임스토퍼와 타임리와인더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상상과 은밀한 꿈을 자극한다. 책 <어글리>에서 16살이 되면 전 국민이 전신 성형을 받도록 조장하는 미래 사회를 그렸던 스콧 웨스터펠드의 새로운 소설 <미드 나이터스>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루의 시간은 원래 25시간이었으나 정체불명의 존재들은 자신을 쫓는 사냥꾼을 피하기 위해 하루의 1시간을 접어서 숨겨둔다. 그런 비밀의 시간 속으로 5명의 아이들이 뛰어든다.

자정에서 자정으로 끝나는 비밀의 시간에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인 5명의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서로를 부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자정과 자정 사이에 숨어 있는 한 시간에 얼어붙어 버리고 그 시간의 주인인 다클링들이 깨어나 활동한다. 원래대로라면 먹이 사슬의 제일 위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었으나 인간의 기술을 두려워했고 그들은 인간이 불과 기술을 사용하면서 예전 먹잇감이었던 인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25시간이었던 하루의 한 시간을 은밀한 비밀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시간에는 모든 인간들은 굳어버려 다클링의 먹잇감이 될 수 없지만 운 나쁘게 시간의 경계에 있던 인간은 깨어 있는 채 비밀의 시간 속으로 떨어져 다클링의 식량이 되었다. 그런데 작은 마을 빅스비에는 그 비밀의 시간에도 움직일 수 있으며 묘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을 미드 나이터라고 불렀지만 50년 전 그들은 몽땅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만 움직일 수 있는 한 시간을 기이하게 여기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5명은 한 명씩 빅스비에서 태어나거나 모여들어 반격을 준비한다.

푸른빛에 휩싸인 비밀의 시간이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미드 나이터 제시카 데이가 빅스비에 온 이후 야생동물 같았던 다클링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모여들고 이제 어린 미드 나이터들은 살기 위해서 싸워야 했다. 아무도 모르는 1시간 동안 말이다. 가장 당혹했던 것은 밤의 무리와 싸우는 것은 고등학생 다섯 명이며 치열한 싸움이 끝나도 비밀의 시간 동안 얼어붙어 버리는 일반인들은 그들의 사투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고작해야 자정 넘어서 돌아다니는 청소년을 발견하고 통금을 어겼다고 훈계를 늘어놓는 정도였다.

5명의 미드 나이터들은 자신만의 능력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용하면서 다클링과 싸운다. 그들에게 비밀의 시간은 한껏 누구의 통제도 없는 자유이자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공포의 시간이고 보통 사람들이 생활하는 낮 시간은 견디기 힘든 인내의 시간이 된다.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하면서 성적을 걱정해야 하고 귀찮게 구는 동생을 떼어내고 외출금지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비밀, 숨은 음모가 터져 나오면서 이야기는 주체할 수 없이 흘러간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이 그렇듯 배경과 인물설정을 이해하기까지의 앞부분은 다소 지루한 편이다. 하지만 섬광처럼 터지기 시작하는 마지막에 들어서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이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권 <푸른 정오>에 들어서는 푸른 시간이라고 불리는 자정의 시간이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예상치 못했던 설정도 그렇지만 흥미로운 전개와 성장하는 주인공, 강렬한 마무리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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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가족>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유정천 가족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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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팅 힐>에서 낙과주의자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납득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계란, 생선, 유제품은 물론이고 채소조차도 피해 떨어지는 과실만을 먹는다는 발상이 놀라웠던 것이다. 특히 휴 그랜트가 '살해당한 당근'이란 말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이 세상의 어떤 생물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먹는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그것은 가장 본능과 가까운 행위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행위를 가지고 잔인하다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일부 극렬하게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하다는 말을 듣는다. 덕분에 인도적인 도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했었다. 살면서 무언가를 죽이고 그 사체를 먹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잔인하다면 잔인할지도 모른다. 그 잔인하다는 시각조차도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읽어내는 인간의 오만한 시각이란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이 책 <유정천 가족>의 등장인물들 역시 살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먹고 마시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아버지의 죽음조차도 인간들이 그를 냄비 요리로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식인종이 등장한 것 같지만 주인공은 둔갑 너구리고 금요 구락부라는 이름의 미식가 클럽에서 그의 아버지 시모가모 소이치로를 너구리 냄비 요리로 먹은 것뿐이다. 이 일은 너구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으며 너구리들은 즉각 자신의 수장을 새로 뽑아야 했다. 그리고 소이치로의 가족이었던 아내와 사형제는 매우 슬퍼했다. 그 후에는 어처구니없지만 평소대로 살아간다. 자신이 사랑하던 아버지가 죽었지만 원래 세상 순리가 그렇다고 생각한 것이다.

너구리들은 텐구를 놀래키고, 텐구는 인간을 괴롭히며, 인간은 너구리를 잡아먹는 기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너구리들은 털 뭉치가 되어 늙어가거나 누군가에게 먹히는 죽음이 당연했던 것이다. 왜 굳이 맛있는 많은 음식들을 내버려두고 송년회 음식이 꼭 너구리 냄비 요리여야 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주인공 야사부로는 소이치로의 삼남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딱히 파헤치지도 자신의 아버지를 먹은 텐구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흘러가 아버지의 죽음과 닿고 그는 금요구락부 회원들과 쇠고기 전골요리를 먹는다. 그리고 그들과 담소를 나눈다. <유정천 가족>에는 묘한 뒤틀림이 숨어 있다.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정말 기묘한 관계가 아무렇지 않게 조성되고 텐구는 인간을 납치해 텐구로 만들고 텐구가 된 인간은 예전의 그 텐구의 힘을 빼앗는다. 너구리는 텐구를 돕기도 하고 인간과 교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말 금요구락부의 냄비요리 신세를 피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주인공 가족이 둔갑 너구리고 그들의 스승은 텐구, 첫사랑도 텐구, 인간이 은인이자 원수인 기묘한 고리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라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주인공의 슬픔을 받아들이다가도 '바보의 피'에 좌우되는 너구리들의 엉뚱한 변모부터 수많은 궤변들이 능청스러운 유머와 함께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그 혼란을 유유자적 즐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양대 교토 작가로 불리는 모리미 토미히코의 교토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판타지라 익숙한 듯 신선한 맛이 숨어 있었다. 주인공이 너구리고 그의 아버지의 사인이 냄비 요리가 되었기 때문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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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월드>를 리뷰해주세요.
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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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거울을 주제로 한 공포영화가 나왔었다. 그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거울 속의 다른 자신이 실제로는 자신이 아니지만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었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지만 그것이 실제 자신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공상이나 거울 속의 누군가가 나오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도플갱어처럼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많은 자신을 만나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소설 '드래곤 라자'속의 영원의 숲에서는 기억이 분리되어 무수히 많은 자신을 만들어낸다. 그 때 인간은 다른 자신을 만나면 죽이려 든다.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상대도 역시 자기 자신이어서 죽이면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사라지는 것인데도 그랬다. 여기 조이라고 불리는 한 소년도 무수히 많은 자신을 만나게 된다. 소년은 평범했지만 한 가지만은 특이했다. 길을 지독히도 못 찾았고 방향감각도 없어서 자기 집에서도 길을 잃었다. 마침 동생을 위해 개조공사를 하기도 했지만 식사를 하러 내려가야 할 시간에 동생의 방에 들어가거나 벽장에 들어간다.

그런 소년이 시공간을 뛰어 넘어 다른 세계로 간다. 그가 가진 약점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능력 '워킹'으로 인한 부작용이었던 셈이다. 조이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춘기가 될 때까지 몰랐지만 우연히 팀 별 과제를 하다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자 능력이 발현된다. 허나 건너간 세계도 지금의 자신이 사는 곳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조이는 자신이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자 조이의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거기에 분명 개조공사를 한 집이 개조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그 집에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이 조세핀이었고 딱 조이가 여자애로 태어났다면 가졌을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조이는 공포에 질려 집을 뛰쳐나가고 또 '워킹'을 한다. 그의 능력은 감정에 반응했던 것이다. 그 때 한 사람이 조이에게 접근한다. 그의 이름은 제이, 인터월드 소속의 군인이었다. 물론 조이와 얼굴이 같았다. 전투복으로 인해 그의 얼굴은 왜곡되어 보였지만 매일 보아 왔던 자신의 얼굴을 착각하기는 어려웠다. 조이는 경악하고 그를 경계하지만 그 와중에 다른 자들이 접근한다. 인터월드가 적대하고 있는 바이너리 측 사람들이었다. 워킹 능력자를 포획해서 냉동한 다음 그 능력만 쭉쭉 빨아내는 자들이었다. 과학에 대해 지나치게 신봉하고 다른 차원을 점령하려는 제국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조이는 일단 제이의 말에 따라 도망친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돌아갈 집은 없었다. 일단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그가 가야할 곳을 고민할 때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처음 그가 워킹을 하게 한 사건을 제공한 다마스 선생님이었다. 조이는 선생님이라면 자신의 말을 들어 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조이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능력을 발휘해가며 학교로 돌아간다. 그런데 묘한 것이 선생님이 조이를 보고 하얗게 질린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조이는 몇 년 적에 익사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조이는 다치는 바람에 폭포에 가지 못했지만 죽은 조이는 폭포에 가서 익사했고 선생님이 축사까지 했다고 한다.

다마스 선생님은 놀랐지만 조이가 기대한 대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런데 이 때 방해꾼이 끼어든다. 마찬가지로 인터월드가 적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제국인 헥스 측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마법사로 이뤄진 자들은 강력한 워킹 능력을 가진 조이를 끌고 간다. 그들의 함선을 움직이려면 연료가 필요한데 그 연료를 워킹 능력자의 영혼으로 쓴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삶고 각종 처리를 해서 영혼의 정수만 빼낸다고 했다. 마법에 걸려 속절없이 끌려가는 조이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다.

한 소년이 모든 차원을 정복하려는 두 제국의 사이에 끼어들고 후에는 그에 대항하는 전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소년의 설정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중차원에 대한 부분과 두 제국에 대항해 조화를 유지하려는 군대가 전부 여러 차원에서 모여든 다양한 '조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살던 세계도 다르지만 전부 한 사람이라는 설정이 독특했다. 거기에 작가도 '샌드맨'의 작가 닐 게이먼인 터라 더 호감이 갔다. '샌드맨'으로 매혹적 다크 판타지를 선사한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어떤 것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지만 처음의 설정이 매혹적이었던 반면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판타지에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소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자신을 동료로 하고 마법사와 과학자에 대항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충분히 이색적이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다중 차원을 배경으로 하고 수많은 다른 차원에서 온 자신을 동료로 싸우게 된 소년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점이 좋았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아무래도 닐 게이먼의 그래픽 노블 '샌드맨'이 떠오르네요. 꿈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이색적인 다크 판타지에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판타지 소설을 즐기는 10대~20대 후반까지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가면에 비친 내 얼굴은 얼빠지고 우둔해 보였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 걸레처럼 축 늘어진 적갈색의 머리카락, 크게 뜬 갈색 눈. 그리고 비틀린 입은 놀람과, 솔직히 말해 공포로 얼룩진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다. (P30, 제이와의 만남)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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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 신작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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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영원한 갈증이자 영원한 행복일 것이다. 결말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이야기를 계속 읽을 수 있으니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그림자 자국'의 출간 소식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를 재밌게 읽은 입장에서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허나 '그림자 자국'에 1이라는 숫자가 붙지 않은 점에서 눈치 챘듯이 이 책은 '드래곤 라자'에서 이어지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기 보다 같은 배경을 하고 같은 작가가 쓴, 아직도 '드래곤 라자'라는 책과 그 세계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쉽게 말하면 덤인 셈이다.

후치의 마법의 가을을 다뤘던 '드래곤 라자' 후 천 년이 흐른 시점에서 '그림자 자국'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애정을 가지고 봤던 인물들은 '그림자 자국' 속에서는 역사 속의 인물이나 전설 속의 인물 정도로 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깜짝 선물인 셈이니 그 정도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점은 이 책에서도 이루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드래곤 라자 속의 이루릴은 인간인 후치와 만나면서 점차 인간을 이해했다면 그림자 자국 속의 이루릴은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했기 때문에 엘프지만 인간의 심정을 잘 이해하는 자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천 년 전에는 대마법사 핸드레이크까지는 아니라도 마법을 구사하는 인물이 꽤 있었던 반면 천 년이 흐른 시점의 바이서스에서는 마법을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신비한 엘프인데다가 전설 속의 마법을 구사하는 이루릴은 전설 그 자체로 등장한다. 천 년이 흘렀는데도 건재한 이루릴의 모습은 기쁘기도 하지만 아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야기 속이긴 하지만 천 년을 사는 동안 수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잃어왔기 때문에 일 년 중에 단 하루도 친구의 기일이 아닌 날이 없다는 것이다. 허나 가장 특색 있던 점은 모든 문제를 자아내는 전설 속의 무기의 제조자가 아프나이델이라는 점이었다. 드래곤 라자 초반에 사기를 치는 우스꽝스러운 마법사였던 아프나이델이 핸드레이크나 솔로처에 비견되는 대마법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드래곤 라자 후반에는 믿음직한 동료였지만 핸드레이크 수준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지 않았던 인물이 천 년이 흐르자 대마법사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이야기는 이루릴이 한 남자를 구하러 나선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름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보석세공인이며 '예언자'인 남자는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남자는 다시없을 뛰어난 예언자였지만 결코 예언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예언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타인의 미래를 뺏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에는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남자에게 예언을 종용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남자는 결코 예언을 해주지 않았지만 바이서스가 패전하자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패전의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 했는데 직계 왕가 후손이 없어서 왕이 책임을 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디서든지 희생양을 찾아서 민심을 가라앉혀야 했는데 좋은 목표가 된 것이 바로 예언자였다.

안 그래도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예언자가 바이서스의 패전을 못 봤을 리 없다는 것이다. 패전할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들이 형제가 남편이 가족이 죽었다는 것이다. 순전히 억지 논리였지만 사람들은 예언자를 광적으로 괴롭힌다. 예언자는 그런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을 견디려 했지만 왕비가 그를 불러들인다. 그의 힘을 바이서스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데에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예언자는 이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고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이 때 이루릴이 개입한다. 예언자를 탈출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친구를 위해서 이런 행동을 했지만 왕비는 이로 인해서 예언자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가 예언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물론이고 전설 속의 존재인 엘프 이루릴이 예언자를 탈출시키려는 이유를 궁금해 하게 된 것이다. 예언자는 이루릴의 협조 하에 도둑인 왕지네와 함께 도망치지만 그의 앞에는 알 수 없는 운명이 놓여 있었다.

사실 이 책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 이후에 '퓨처 워커'가 이어졌으니 드래곤 라자의 바로 뒤의 후속작은 아니다. 그럼에도 드래곤 라자와 바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은 이루릴이 주요 인물로 등장했던 탓도 있지만 마지막 반전 탓이 가장 컸다. 그리고 중반부에 등장한 게임에 드래곤 라자 속의 인물들이 말로 등장하고 제레인트가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후치라는 점도 꽤 작용했던 것 같다. 내용도 드래곤 라자와의 연관이 있었지만 드래곤 라자와 관련된 내용이 그림자 자국 전체에 점점이 박혀 있어서 그런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즐거웠다. 단 한 권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했던 '그림자 자국' 즐겁게 읽었다. 한 권으로 끝났으니 끝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좋아했던 시리즈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그 세계를 천 년 후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움을 깊게 느끼려면 '드래곤 라자'부터 '퓨처 워커'까지 읽은 사람이 읽는 편이 좋겠지만 전설을 말하듯이 전개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한 권만을 읽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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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Miracle 2
김재한 외 지음, 김봉석 해설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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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꿈을 꾼다. 백년 남짓한 길면서도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꿈은 하나의 긴 것 일수도 있고 짧은 여러 개의 것 일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꿈은 사람의 노력여하에 따라 이룰 수 있는 수준의 것인 반면 닿을 수 없는 신기루에 가까운 꿈들은 환상이라고 불린다. 그런 환상을 쫓아가는 인생을 산다면 무지개를 잡는 인생을 사는 것마냥 허황될 것이다. 하지만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더 아름다워 보일수도 있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라면 난감하겠지만 그런 환상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은 꽤 즐거운 편이다.

이 책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에는 그런 환상 9개가 실려 있다. 장편이라면 환상적인 이야기라도 현실과의 줄이 닿으면서 그 환상적인 면이 많이 깎여나갈것이다. 허나 단편이니 만큼 현실과 닿아 손상되지 않은 환상의 고유한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9개의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상아처녀'에서는 그리스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이 자신만의 이상적 여성을 만들어내었던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과학을 이용해서 이상적 여성 갈라테이아를 만들어내고 그 여성과의 사랑을 이루려 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 속의 사랑은 온기로 대변된다. 과학을 통해 이상적 여성으로 탄생했지만 이야기 속의 갈라테이아는 이상적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 몸은 성인여성이지만 그녀의 자아는 인간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감정을 학습해야 하고 인간다운 삶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데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갈라테이아의 모습은 측은함까지 갖게 된다. 오히려 실험실의 수조에서 살던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울한 환상인 셈이다.

다른 이야기 '카나리아'와 '사육'은 판타지 소설에서는 흔한 주제인 흡혈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둠의 피조물의 이야기이니만큼 전반적인 분위기도 어둡다. 허나 익숙한 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이색적이다. 또 다른 흡혈귀에게 장난감처럼 사육당하는 흡혈귀의 이야기나 사냥꾼에게 쫓기는 삶을 사느라 하수도 속에서 살아야 하는 흡혈귀의 이야기라니 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을 포기한 대신 더 나은 것을 얻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더 못한 상황에 빠져야 하는 기괴한 생명체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반면 '용의 비늘', '윈드 드리머', '세계는 도둑맞았다'의 경우 주인공이 처한 상황 자체는 힘든 것이지만 그 주인공들의 안에 그 상황을 벗어날 숨은 재능이나 조력자가 숨어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었다. 자신의 나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모험에 떠나는 왕녀나 자유로 대변되는 새로운 비행선을 개발하는 황족, 인간을 공격하는 침략자를 막기위해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처럼 당장 처한 상황은 곤란한 것이었지만 왕녀에게는 용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윈드 드리머'의 황족은 뛰어난 비행선 개발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동양의 설화가 떠오르는 '목소리'였다. 한 남자가 굉장히 매력적인 부인을 가지고 있었고 심부름을 왔던 아이가 그 부인의 모습을 훔쳐본다. 그 장면을 남편이 보고 아이를 죽도록 때리고 쫓아낸다. 주변사람들은 그저 살짝 혼내면 좋을 것을 남자가 유난을 떤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고 아이의 스승인 도사가 와서 사과를 하지만 이마저도 거절한다. 그 도사는 가기 전에 기묘한 말을 하는데 부적을 써줄테니 그 부적을 반드시 갖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했고 부인은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 후 부인은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과 딸 쌍둥이였다. 딸은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아들은 뱀의 혀를 달고 태어난 아이였다. 요괴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아이였던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인해 기괴한 용모를 갖게 된 아이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동양의 설화로는 많이 있는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던 만큼 그런 느낌이 더 했다.

9편의 이야기는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읽는 동안은 환상의 조각을 하나하나 삼키는 기분이었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환상이라서 읽는 내내 즐겁기도 했지만 우울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는 햇살마저 빛을 잃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잊게 하는 9개의 환상 조각이 담긴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그 신기루가 기대했던 형태의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 속에서 잠깐의 청량감을 느끼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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