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전 4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장 유행했던 귀신 이야기는 귀신을 보면 대학에 간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남들 다 피하려는 귀신을 못 봐서 안달인 아이들이 속출했었다. 그 와중에 다리 없는 귀신을 본 것 같다고 말하자 내 친구들은 모두 투덜댔다. 나는 수시로 이미 들어갈 대학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으로 추측되는 귀신의 모습은 이랬다. 흰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였고 잠시 우리 반 교실을 들여다보다 복도 꺾이는 부분으로 사라지셨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잘못 학교에 들어온 할아버지일 가능성이 크지만 얼핏 보았을 때 다리가 보이지 않아서 반 농담으로 말하자 아이들은 전부 귀신이라 소리쳤다. 진실은 아직도 모른다. 그 할아버지가 귀신이었는지 아니면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귀신의 존재는 그런 존재면 족하다. 만화 <백귀야행>에서 요괴는 이렇게 말한다. 어둠을 꿰뚫는 네 시선이 있을 수 없는 것을 존재하게 한다고 말이다. 요마를 보는 능력이 있는 남자가 있어 경계가 분명해지고 그들이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볼 수 없는 사람에게 귀신은 관계 없는이야기인 것이다. 분명하지 않은 것, 그것이 귀신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 <귀신전>에서는 그 분명하지 않으면 족했을 존재들이 점차 힘을 얻는다. 무당같이 특수한 사람들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귀신과 관련된 일에 휘말리는 것이다. 여태까지 귀신전 1, 2, 3권에서는 검은 안개와 함께 힘을 얻어 마을 하나를 삼키는 악령들이 나왔었다.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분명해야 할 이승과 중음의 경계는 흐릿해지며 그에 따라 귀신이라는 존재는 분명해진다.

반대급부로 퇴마사들도 힘을 얻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다. 전 편에서는 각 권마다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가 있었고 퇴마사들이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나왔었다. 전 권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고 작은 이야기가 전부 그것과 약간씩 관련을 가지고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문제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지만 동시에 작은 이야기들은 거의 사라졌다. 검은 눈구멍을 가진 괴물들이 도시에 나타나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치열한 전초전을 벌이지만 퇴마사들은 아직도 열세이고 본색을 드러낸 숙희야 말로 이제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통쾌하기는커녕 답답함만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도시를 습격하는 검은 눈구멍의 괴물들에게 속수무책인 시민들의 모습, 상황파악을 위해 들어갔다가 위기에 빠진 경찰 특공대의 이야기, 정체불명의 여인의 등장까지 흥미요소는 많았지만 중반부에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아쉬웠다.

좀 더 호쾌한 맛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전초전이라 고생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반면 작가가 공포소설가이니 만큼 초반의 아비규환은 오싹했다. 검은 눈구멍들이 지하에서 그리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마구 습격하는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숙희를 비롯해서 묘화까지 여태껏 뿌려두었던 문제들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앞으로 <귀신전>에서 어떤 세상을 보여줄지 궁금하기만 하다. 작은 이야기들이 거의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숨어 있었던 진짜 문제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다음 권에는 좀 더 호쾌하면서도 오싹한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역시 귀신의 진실은 궁금하지만 알고 싶지 않다. 가끔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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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8-14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신꿈은 꾼 적 있는데..;; 그런데 귀신이 처음엔 무섭다가 나중엔 같이 놀게 되는... 이상한 내용을 흐르더라고요.;; 저는 그 존재 여부를 떠나 그냥 재미있어요. 이런 이야기들..^^ㅋ <백귀야행>은 제가 사랑하는 만화책이랍니다.^^;; 얼마전에 정리해서 지금은 없지만 다시 살까 생각을 하고 있다는..^^;;

에이안 2009-08-14 15:41   좋아요 0 | URL
저도 <백귀야행>을 좋아해서 전 권 가지고 있어요. 그런 류의 귀신 이야기들은 꽤 즐겁더군요. 꿈에서 귀신과 함께 노셨다니 살짝 부럽네요. 전 꿈에서 귀신이 나오면 도망치기 바쁜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