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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브러시
최완우 지음 / 리더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자고 일어나보니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눈이 왔다. 내심 이십 년 정도 젊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가 눈싸움을 하고 싶을 정도의 눈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소복하게 눈이 쌓이기를 간절히 바라도 예상 외로 따뜻한 겨울에 내리는 눈이 땅에 닿는 족족 녹아 버려 아쉬웠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된 이후 폭설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집 안에 있을 때는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어 아름다워만 보이는 눈이 집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거치적거릴 수가 없다.
아름답게만 보이고 때로 설탕이었으면 좋겠다는 묘한 흑심까지 불러일으키는 눈이 사람들 발에 밟혀 약간씩 녹은 상태에서 얼어붙으면 꽤 미끄러운 편이다. 잡을 것도 기댈 것도 없는 대로에서 그렇게 녹은 눈을 밟고 걷다보면 미끄러워 비틀거리니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다. 덕분에 얼어붙은 눈이 만든 빙판 위에서는 평소의 보폭을 줄이고 종종걸음을 친다. 아름답게 보이는 눈도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 미끄러운 장애물에 불과하다. 일상이 그런 게 아닐까.
삶 속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고, 감탄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것들에 이면 때문에 불평하게 된다.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좋지만 만원 버스에서의 커피는 짐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이 책 <스마일 브러시>는 인터넷에 연재되었던 웹툰을 모은 책이다. 생활툰이 대개 그렇듯 일상 속의 어처구니없는 순간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일상 속에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들, 감사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들, 수많은 생각들을 서정적인 그림으로 그려낸다.
즉, 가을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마음과 만원 버스 때문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커피를 두 시간 후 다시 돌아와 슬쩍 마시려다 무안함을 느끼는 일화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변에 느끼는 아름다움보다는 일상에서 주인공 와루가 저지르는 온갖 일들이 훨씬 공감하기 쉽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에서 자신이 새로 산 슬리퍼가 도둑맞을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핸드폰을 떨어뜨리자 그 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간다. 이참에 바꿀까 싶다가도 아직 할부금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무협지에 나오는 인물에 버금가는 동작으로 핸드폰을 잡아낸다.
일상 속의 이야기들이 공감하기 쉽다면 친구 할머니의 얼굴을 그린 그림 한 장과 글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가슴 찡한 감동을 자아낸다. 할머니가 걱정돼서 폭설에도 집으로 가려던 친구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폭설로 차가 갈 수 없자 마음이 다급해져 걸어서라도 할머니에게 가려고 하다가 동사한 것이다. 와루는 그 소식을 전하려 할머니에게 가지만 할머니는 기억을 많이 잃으신 건지 그를 손자로 착각한다. 그는 결국 친구의 죽음을 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하고 손자 노릇을 하지만 실은 할머니가 손자의 죽음을 이미 전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의 가슴 찡함과 다시 친구 할머니에게 갈 차표를 샀다는 저자의 말에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삶이 고되고 때로 헛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웃을 일이 있다는 생각, 수많은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모른 채 지나쳤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친구 결혼식을 축하하는 고운 마음과 약속대로 축가를 해주려 연습하다보니 솔로인 자신에 울컥해서 난장판을 만들어줄까 하는 사악한 마음이 공존하는 일상을 잘 나타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일상에는 웃을 일이 많다. 지하철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사탕을 주라고 건네는 할머니도, 그에 따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진 사탕과 그걸 먹고 울음을 그친 아이도, 그 모습을 보고 짜증스러움에서 사랑스러움으로 순식간에 마음이 전환되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도 숨어 있는 걸 보니 말이다.